2024년 11월 24일(일)

“한국은 ‘다자주의 가치’ 가장 잘 이해하는 나라”

[인터뷰] 스티브 우터우게 UNDP 공공파트너십 국장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풀기 어려운 이슈들이 산적해 있고, 또 새로운 갈등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위기 상황들이 모두 연계돼 있다는 점입니다. 가령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이 한국 소비자에게 물가상승이라는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요. 한 국가에서 일어난 일로 전 세계인이 영향을 받지만, 이를 해결하는 건 한 국가가 해낼 수 없습니다. 유엔 같은 다자 시스템이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최근 한국 정부와 파트너십 강화를 목적으로 방한한 스티브 우터우게 유엔개발계획(UNDP) 공공파트너십 국장은 국제사회가 마주한 여러 위기를 해결할 방안으로 다자간 협력을 강조했다. 지난 1일 서울 성북구 UNDP 서울정책센터에서 만난 우터우게 국장은 “코로나19 이후 세계 경제 위기까지 대두되면서 취약 국가를 지원해오던 부국들조차 예산 압박을 받고 있어 해외 원조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라며 “지금처럼 글로벌 이슈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강력한 다자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으면 추후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을 찾은 스티브 우터우게 UNDP 공공파트너십 국장은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한국은 국제개발협력에서 강조하는 다자주의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라며 "한국 정부가 ODA 예산을 유지하거나 늘리는 것만으로도 다른 국가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수열 C영상미디어 기자
최근 한국을 찾은 스티브 우터우게 UNDP 공공파트너십 국장은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한국은 국제개발협력에서 강조하는 다자주의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라며 “한국 정부가 ODA 예산을 유지하거나 늘리는 것만으로도 다른 국가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수열 C영상미디어 기자

-현재 직면한 다양한 위기 중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뭔가.

“굳이 우선순위를 매기자면 기후위기다. 기후위기는 인류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유엔 사무총장도 이와 관련해서 귀가 아플 정도로 이야기해왔다. COP27에서 세계 각국이 논의하겠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올여름 파키스탄에서는 대홍수로 수천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는데, 파키스탄이 전 세계 탄소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최하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 정부와는 어떤 의제로 논의했나.

“UNDP와 한국 파트너십의 성격과 전략를 비롯한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이번에 한국 정부와 UNDP가 논의한 우선 과제는 분쟁 위기대응, 젠더 불평등, 기후위기 대응, 디지털 인프라 등 네 가지다. 특히 한국은 분쟁이나 위기 상황을 다룰 때 인도주의 지원과 함께 개발이 이뤄지고 또 평화 구축도 미리 고려하는 ‘HDP 넥서스’(Humanitarian-Development-Peace Nexus)에 관심이 많고, 전 세계에서 이 분야에 가장 많은 지원을 하는 국가로 꼽힌다. 또 하나 중요한 이슈가 한국 인재들을 UNDP에 유치하는 것이다. 현재 UNDP에는 전문직부터 인턴까지 73명의 한국인이 다양한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러한 인재 유입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한국 공무원들이 1~2년씩 파견와서 전문 지식을 교류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이야기했다.”

-국제개발에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세계 각국에서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을 축소하는 계획을 갖고 있는데, 한국은 그 수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늘릴 계획이라고 들었다. 한국은 UNDP의 주요 공여국 중 하나다. 정기적인 재원 기여국을 지칭하는 ‘코어 컨트리뷰션(core contributions)’의 규모 면에서 한국은 세계 15위를 차지한다. 특히 한국은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올라선 모범 사례로, 과거 원조를 받았던 국가 중 ODA 기여를 가장 많이 하는 국가로 성장했다. 특히 사람에 대한 투자, 이를 테면 교육이라던가 성평등과 관련된 개발원조 성공 사례로 한국을 활용하고 있다. 세계은행에 근무할 당시 가깝게 지냈던 김용 총재는 국제개발 분야에서도 특히 교육에 대한 투자가 지금의 한국을 만들었다고 종종 말했다.”

지난 1일 만난 우터우게 국장은 "한국의 유능한 인재들이 유엔 시스템에 들어와서 전문 지식을 공유하면서 세계적으로 다자주의 가치를 확산시키길 바란다"고 말했다. /양수열 C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일 만난 우터우게 국장은 “한국의 유능한 인재들이 유엔 시스템에 들어와서 전문 지식을 공유하면서 세계적으로 다자주의 가치를 확산시키길 바란다”고 말했다. /양수열 C영상미디어 기자

한국은 국제사회로부터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전환된 세계 몇 안되는 국가다. UNDP의 전신인 유엔기술원조확대계획(UNEPTA)는 1963년 한국에 서울사무소를 설치해 국가 지원 사업으로 7800만 달러를 지원했다. 한국 정부는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으로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지위가 전환됐고, UNDP 서울사무소 사업도 그해 종료했다. UNDP의 ‘2021년 재정지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정부의 기여금은 7300만 달러(약 971억원)에 이른다.

-최근 한국 정부가 ‘주제별 자금조달 창구(Funding Windows)’에 참여했다.

“지난 9월 한국은 정기 기여금과 별도로 UNDP의 ‘주제별 자금조달 창구(Funding Windows)’를 통해 400만 달러 규모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진하는 협정 체결했다. 한국은 펀딩 윈도우에 기여금을 내는 10개 국가 중 하나다. 이 기금은 빈곤과 불평등, 기후위기, 성평등, 거버넌스와 회복탄력성 등 크게 네 주제로 나뉘지만, 예산을 특정 목적으로 지정하지 않기 때문에 한 가지 주제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이슈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국제개발협력 활성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국제개발 업무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필요하다. 정부와 학계, 비영리와 시민사회 단체들도 많이 개입돼 있다. 이번 방한의 목적 중 하나도 한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구호개발 NGO와의 교류다. 한국의 100여 개 NGO가 모인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를 통해 여러 파트너들과 관계를 강화하고 싶다. 또 일반 대중과도 접점을 늘려나가려고 한다.”

-대중과 접점을 늘린다는 건 어떤 뜻인가.

“국제기구로 전달된 한국 정부의 기여금은 한국의 납세자들이 낸 세금이다. 이 소중한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어떤 임팩트를 내는지 알권리가 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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