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주연 다시입다연구소 대표
“경쟁자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아직까지 패션 산업의 환경 문제에 집중하는 비영리스타트업은 많지 않아요. 특히 의류 폐기물에 대한 관심만큼 그 해법에 대한 고민은 부족한 실정이에요. 한 해 의류가 얼마나 생산되고, 그중에 쓰레기로 소각되는 양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한 통계도 없을 정도니까요. 경쟁자이자 동료들과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아야죠.”
제로웨이스트 의생활 비영리스타트업 ‘다시입다연구소’의 정주연(48) 대표는 중고의류를 교환할 수 있는 ‘21%파티’를 열어 자원 순환 활동을 벌인다. 자체 설문조사 결과 옷장 속에 그대로 방치되는 옷의 비율인 21%를 행사 이름에 붙였다. 지난 2020년부터 지금까지 파티 누적 참가자 수는 2173명이다. 의류 교환율도 높은 편이다. 지난 9월 기준으로 총 6747개 의류가 모였고, 이 중 4502개(66.7%)가 새 주인을 만났다.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스타트업 지원 공간 마루360에서 열린 22번째 파티에서 정 대표를 만났다. 그는 “처음 시작할 때에 비하면 찾아주는 분들이 부쩍 늘어 부담도 된다”면서 “행사 공지가 뜨면 환경 보호에 관심이 많은 사람 혹은 자원봉사를 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모임이 꾸려진다”고 말했다.
-2030세대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고 들었습니다.
“젊은 사람 중에 ‘고급 브랜드를 입는 나’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환경 보호를 위해 실천하는 나’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분들이 21%파티 참가 경험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또 다른 참가자들을 이끌어 옵니다.”
-의류 폐기물은 전 세대에 걸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만.
“청년뿐 아니라 장년층들도 의류 교환에 동참할 수 있도록 ‘21%파티 툴킷’을 만들었어요. 툴킷은 의류 교환 파티를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개최할 수 있도록 설명서와 파티 진행에 필요한 물품들로 구성됐습니다. 다시입다연구소가 호스트로 나서지 않아도 생활협동조합이나 마을복지관 같은 데서 21%파티를 열고 있어요.”
-단체 운영 자금은 어떻게 조달하나요.
“무료 키트는 아닙니다. 개인은 2만원대에서 키트를 구매할 수 있고, 단체용 키트는 구성에 따라 5만원에서 8만원 사이로 가격을 책정했어요. 요즘 대학 동아리와 규모가 큰 단체에서도 키트를 구매합니다.”
-의류 폐기물 문제를 비영리로 접근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출판사를 함께 운영하던 네 명이 의기투합했어요. 패션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지만 환경 문제만큼은 공통적으로 관심이 많았어요. 저는 대학에서 통번역을 전공했는데, 유럽 쪽에서 나오는 글들을 읽다가 ‘숍스캄(Köpskam)’이란 단어가 눈에 확 들어왔어요. 우리나라 말로 옮기면 ‘소비의 창피함’이란 뜻이에요. 숍스캄이 모든 소비가 환경에 좋지 않다는 의미를 가지는 말이기도 하지만, 특히 의류 소비에서 많이 쓰입니다. 사소한 계기지만 2020년에 ‘우리 비영리스타트업 한번 해보자’면서 서울시NPO지원센터에 지원서를 냈는데, 운이 좋게도 선정되면서 다시입다연구소가 시작됐습니다.”
-제법 큰 행사인데, 4명이 감당하기에 벅차지 않나요.
“고맙게도 행사 때마다 도와주시는 서포터즈가 있어요. 행사는 서포터즈를 포함해 총 10명이 준비해요. 서포터즈도 모집하는데, 연락 오는 분들이 너무 많으셔서 어쩔 수 없이 선발 기준을 두게 됐어요. 기본적으로 21%파티에 참가해본 경험이 있는 지원자를 대상으로 의류 환경 문제에 얼마나 관심이 많으신 지를 기준으로 선발합니다.”
-오염된 옷을 파티에 갖고 오는 경우는 없나요.
“물론 초창기에는 그런 일이 있었어요. 찢어진 옷이나 오염으로 입을 수 없는 옷을 갖고 오면 난감했어요. 그래서 행사를 예약제로 바꿨는데 이 문제가 많이 개선됐어요. 사전에 ‘내 친구에게 줄 수 있는 옷’을 준비해달라고 안내도 해요. 이제는 옷을 깨끗하게 다리미질까지 해서 오시는 분들도 계세요.”
-‘36% 패션랩’ 프로젝트도 따로 진행하고 있던데요.
“21%파티를 열면 10개 중 6개는 새 주인을 찾아요. 남은 옷을 세보니 전체의 36% 정도가 되더라고요. 그동안 이 옷들은 자선단체에 기부해왔는데, 자선단체에서도 이 옷들이 재고로 남는 경우가 있었어요. 어쩌면 기부라는 이름으로 옷에 대한 책임을 쉽게 놓아버리는 건 아닐까 고민했어요. 이렇게 멀쩡해 보이는 옷들이 왜 교환되지 못하고 남았는지 비밀을 풀어보고 싶었죠. 그래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림책 작가, 커스텀 아티스트, 수선 예술가, 업사이클링 공예가 등으로 구성된 연구원 8명을 모셨어요. 이분들과 함께 리폼 과정을 거쳐 새로운 교환 의류를 만들고 있습니다.”
-‘21%파티’에서 남는 옷이 0%가 된다면요.
“남는 옷 없이 모두 가져간다···. 상상도 해본 적 없지만, 언젠가는 그날이 올 거라 믿습니다. 제가 항상 생각하는 질문이 있어요. ‘당신은 지금 어떤 옷을 입고 있습니까? 당신이 원하는 미래를 위해서 옷을 입을 의향은 없으신가요?’라고요. 옷은 자기를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잖아요. 당신이 원하는 세상을 위해서 옷을 입어달라는 거죠. 의류 폐기물 0%를 만드는 건, 현재 여러분의 의(衣)생활이 아닐까요.”
백지원 더나은미래 기자 100g1@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