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4일(수)

직무 개발에 집중한 10년… “발달장애인도 대기업으로 출근합니다”

[인터뷰] 이진희 베어베터 공동대표

지난 2012년 발달장애 사원 5명과 함께 시작한 ‘베어베터’는 10년 만에 300명이 넘는 직원이 일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발달장애인 사원 242명, 이들을 지원하는 비장애 관리직원은 100명을 넘는다. 이들은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발달장애인을 고용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베어베터에서 일을 배운 발달장애 사원이 대기업 정직원으로 이직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네이버, 삼정회계법인, 대웅제약 등으로 이직한 사원은 65명에 이른다.

지난 7일 서울 성동구 베어베터 사무실에서 만난 이진희(57) 공동대표는 “베어베터가 지속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업의 방점이 수익 창출이 아닌 발달장애인 고용에 찍혀있었기 때문”이라면서 “발달장애인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하는 모습이 익숙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진희 베어베터 공동대표는 “베어베터가 10년간 지속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업의 방점이 수익 창출이 아닌 ‘발달장애인 고용’에 찍혀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요즘은 베어베터가 알게 모르게 뿌려온 씨앗이 점차 꽃을 피우고 있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이진희 베어베터 공동대표는 “베어베터가 10년간 지속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업의 방점이 수익 창출이 아닌 ‘발달장애인 고용’에 찍혀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요즘은 베어베터가 알게 모르게 뿌려온 씨앗이 점차 꽃을 피우고 있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발달장애인들은 어떤 일을 하나요?

“복사·제본 등 인쇄 작업부터 로스팅 원두를 소분·포장하는 바리스타, 화환·화분을 관리하고 플로리스트까지 발달장애 사원들이 수행하는 직무는 다양해요. 최근에는 네이버, 카카오, NHN 등 베어베터 파트너사 사옥 내 편의점에서 발달장애인이 근무할 수 있도록 했어요. 발달장애 사원들은 하루 4시간씩 근무하면서 상품 검수, 유통기한 확인, 매장 청결유지 등의 업무를 수행합니다.”

-대기업 사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파견 근무인가요?

“매장마다 다릅니다. 베어베터 소속 직원이 운영하는 곳도 있고, 기업에서 직접 발달장애 사원을 고용해서 운영하는 매장도 있어요. 최근에 기업들은 발달장애인이 만든 제품을 구매하는 방식의 ‘간접고용’을 넘어 발달장애인을 직접 고용하고 싶어해요. 일해본 경험이 있는 베어베터 소속 발달장애인들이 이직해 대기업 소속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과정이 궁금한데요.

“어떤 기업에서 발달장애인 채용 공고를 내면, 이 내용을 사내에 공유해요. 베어베터보다 더 좋은 근무환경과 임금이 보장된 곳이라면 사원들에게 이직을 권합니다.”

-이직을 권하는 기업은 처음 봅니다.

“훈련된 인력이 다른 직장으로 떠나는데 업무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발달장애 사원들이 이직을 하면 더 넓은 풀에서 색다른 경험을 해볼 수 있고, 베어베터는 일자리가 없는 발달장애인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되죠. 지속적으로 발달장애인을 고용할 수 있기 때문에 타기업으로의 이직은 선순환 구조라고 볼 수 있어요.”

지난 7일 서울 성동구 베어베터 사무실에서 10주년 근속 근로자를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진희(왼쪽) 베어베터 공동대표가 발달장애인 사원 정태규(오른쪽)씨에게 상패를 전달하고 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7일 서울 성동구 베어베터 사무실에서 10년 근속자를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진희(왼쪽) 베어베터 공동대표가 발달장애인 사원 정태규(오른쪽)씨에게 상패를 전달하고 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이날 베어베터는 10년 근속자에게 상패와 기념품을 수여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베어베터는 발달장애 사원들의 입사일에 맞춰 장기 근속 기념식을 매번 열고 있다. 이날은 2012년 9월 7일부터 출근한 이병주(30)씨와 정태규(35)씨가 많은 이들의 축하 속에 상패와 기념품을 전달받았다. 이 대표는 “병주씨와 태규씨를 포함해 베어베터에서 10년간 근속한 발달장애인 사원은 27명에 이른다”면서 “베어베터 소속 발달장애 사원의 근무기간은 5년 8개월로 긴 편에 속한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들이 오래 일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핵심은 직무를 세분화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카페에서 일하는 경우 손님에게 주문을 받고, 원두에서 커피액을 추출하고, 컵에 커피액을 따르고, 완제품을 손님한테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이 있죠. 이러한 과정을 단계별로 쪼개고 담당자를 한 명씩 배치합니다. 물론 사원들과 이야기 나누고 훈련을 통해 가장 잘 할 수 있는 업무를 줘요. 그래야 일에 지치지 않고, 만족감도 높습니다.”

-발달장애인 직무 개발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도 합니다. 베어베터만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 공공기관은 개괄적으로 직무 개발을 하기 때문에 개별 기업의 특수한 상황까지 고려하지 못할 수 있어요. 베어베터는 공공기관이 만들어 놓은 정책·제도를 활용해 발달장애인과 개별 기업에 맞는 직무를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맞춤 제작 서비스) 하는 거죠.”

-앞으로의 사업 계획이 궁금합니다.

“발달장애 고용 범위를 지방으로까지 넓히려고 합니다. 첫 걸음으로 지난 5월에 지분투자형 장애인표준사업인 ‘브라보비버 대구’를 오픈했어요. 여러 기업의 지분 투자로 만든 장애인사업장이에요. 지방 사업장에서는 해당 지역의 특성을 살려 과일청, 특산물, 유기농 꽃차, 탈취제 등을 판매하는 ‘스테이셔너리(Stationary)’를 운영할 계획입니다.”

김수연 더나은미래 기자 ye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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