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독일·네덜란드에는 ‘경제기후부’가 있습니다. 기후위기를 환경 문제에 국한해서 다루는 게 아니라 경제와도 연계해서 보는 것이죠. 한국도 이러한 융합적 부처가 필요합니다. 또 에너지 설비 설치와 관련해 지역간 갈등을 해결할 상설기구도 필요합니다.”
26일 한국행정연구원이 개최한 ‘새 정부의 도전과 기대: 국가역할 재정립과 정부 운영전략 탐색’ 세미나에서 발표자로 나선 이호무 에너지경제연구원 실장의 주장이다. 현재 정부 차원의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실현 방안이 환경부, 산업부 등 부처마다 따로 마련되고 있는 데에 따른 지적이다.
글로벌 금융계에서는 경제와 환경을 분리해서 볼 수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영국 중앙은행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해 영국 주요 은행과 보험사들이 2050년까지 떠안아야 할 손실액은 3340억파운드(약 531조원)에 달한다. 기후위기로 금융업의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영향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실장은 “기후변화와 경제·금융 위기 대응을 총괄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에너지 시장 규제 완화도 강조했다. 한국전력공사는 올 1분기에만 8조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기록했다. 그는 “값싼 전기료를 내면서는 탄소중립을 이행할 수 없다”며 “에너지 가격 규제 완화로 전기료가 오르면 빈곤취약계층에는 에너지 비용 인상 대비 가격 할인 등의 복지를 제공하면 된다”고 했다.
이번 세미나는 한국행정연구원과 경제·인문사회연구원이 공동으로 수행한 ‘대전환기 국가 역할 재정립과 정부운영전략 탐색’ 연구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기획됐다. 27명의 박사급 연구진이 해당 연구에 참여해 환경·인구·양극화 등에 대응하기 위한 새 정부 운영전략을 제언했다.
이날 ‘대전환 시대, 기후환경위기 대응과 과제’를 주제로 발표한 한상운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912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 연평균 기온은 약 1.8도씩 상승했다”며 “한국이 글로벌 친환경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국가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선제적인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한국 정부가 취해야 할 조처도 발표했다. ▲탄소중립목표 달성을 위한 법제기반 구축 ▲국제기후·환경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컨설팅·법률 등의 녹색서비스 지원 ▲기후변화 적응역량 강화 등이다. 그는 특히 ‘BOTTOM-UP 정의로운 전환 프로그램’ 개발을 강조했다. 이 프로그램은 노동·산업계, 지자체, 시민단체 등이 친환경 활동을 주도하면 정부는 이를 지원한다는 기후변화 대응 방안이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저출산·고령화, 지방소멸 등의 인구 구조적인 문제도 중점으로 다뤘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윤 정부 국정과제에 인구 문제 대응 방안이 언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심각한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한 논의는 심도있게 진행되고 있다”면서도 “이 문제를 어떤 영역에서, 어떤 부처가 담당할 것인지는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한국은 25년 뒤 일본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나라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의 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방소멸도 한국 사회에서 해결돼야 할 중요한 문제로 지목됐다. 이 연구위원은 “여러 부처가 협력해야만 인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범부처를 필요로하는 현 상황에서 정부는 융합적인 거버넌스 구조를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연 더나은미래 기자 y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