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이름만 공익위원회… 유명무실한 조직될 수도

[공익 이슈] ‘법무부 시민공익위원회’ 논란

최근 법무부가 내놓은 ‘시민공익위원회’ 신설 계획을 두고 비영리단체들 사이에서 우려와 반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30일 법무부는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익법인법’)’ 전부개정안을 발의하며 그 핵심 내용으로 시민공익위원회 설치를 공표했다. 시민공익위원회를 신설해 전국에 흩어져 있는 모든 공익법인들을 관리·감독하고 이를 통해 비영리 공익법인의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설명이다.

개정안에 담긴 시민공익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을 들여다본 비영리단체들은 “뒤통수를 맞았다”는 반응이다. 지난 수년간 비영리단체들은 공익법인을 총괄하는 기구인 공익위원회 설치를 정부에 강력하게 요구해왔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시민공익위원회 설치가 현 정부의 100대 국정 과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비영리단체들은 “법무부의 공익위원회 설립 관련 TF에 참석해 의견을 내고 국회 토론회도 열며 오랜 시간 함께 틀을 잡았는데, 이번 개정안은 그 틀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주장했다.

학계와 법조계 등 외부 전문가들도 법무부가 추진하려는 시민공익위원회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모범적 사례로 평가받는 영국과 호주의 공익위원회와 비교할 때 수준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시민공익위원회의 한계점을 쟁점별로 살펴봤다.

쟁점 1. “공익법인 4000개 모두 관리” vs. “공익법인은 4만개인데?”

법무부는 개정안을 발표하며 “시민공익위원회가 전국 4000여 개의 모든 공익법인을 관리·감독한다”고 설명했다. 과연 전국에 공익법인이 4000여 개뿐일까. 일반적으로 공익법인은 공익 활동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법인을 통칭한다. 법무부가 말하는 공익법인은 전체 2만여 비영리법인 가운데 공익법인법에 근거해서 설립된 4000여 개를 의미한다. 기부금을 걷고 세금 공제 혜택을 받는 세법상의 공익법인등은 4만개가 넘는다. 법무부가 관리·감독한다는 4000개는 사실상 전체 공익법인의 10%에 불과한 셈이다. 전국 공익법인을 관리·감독하는 기관이라고 설명하기에는 수가 너무 적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법무부는 개정안을 통해 공익법인법상 공익법인을 ‘시민공익법인’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민법상 비영리법인들도 시민공익법인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시민공익법인을 늘려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민법상 비영리법인이 시민공익법인이 되면 수익 사업에 대해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고, 기본 재산 관리 시에도 허가를 받아야 하며, 위원회에 의해 임원 해임이 될 수 있고, 법 위반 시 징역·벌금형을 받을 수 있는 등 상당한 규제가 따른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시민공익법인으로 전환하겠다고 나서는 비영리법인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쟁점 2. “관리·감독을 일원화” vs. “예전과 달라진 게 없어”

공익위원회 설립의 핵심은 비영리 공익법인의 등록, 관리, 감독, 육성 등을 한 곳으로 통합해 일원화하는 것이다. 영국과 호주도 부처별로 제각각 진행되던 비영리 공익법인 등록, 관리 업무를 통합하기 위해 공익위원회를 설립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비영리 공익법인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목적 사업에 맞는 정부 부처를 찾아가서 설립 허가를 받고 관리·감독을 받아야 한다. 이를 ‘주무관청제’라고 하는데, 주무관청마다 기부금 처리 방식도 다르고 보고서 양식도 달라서 현장의 혼란이 컸다.

법무부는 공익법인들의 주무관청을 시민공익위원회로 이관해 지자체 등에서 각각 관리하던 것을 통일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무부가 통합할 수 있는 대상은 4000여 공익법인뿐이다. 또 4000여 개 중 3000여 개는 학술·교육 단체로 교육부와 전국 교육청 소속 법인이다. 주로 교육부 산하 법인들이 법무부 시민공익위원회의 관리를 받게 되는 셈이다. 그 외 민법 등 다른 근거법에 의해 설립된 대다수의 공익법인들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주무관청제는 그대로 유지된다. 세법상 공익법인등에 대한 지정 추천권과 감독권도 예전과 같이 국세청이 갖는다. 김희정 한국자선단체협의회 사무총장은 “중복 보고와 중복 감독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공익위원회 설립을 추진했던 것인데 개정안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쟁점 3. “법무부 산하에 설치” vs. “영국·호주처럼 독립된 기관으로”

개정안에 따르면 시민공익위원회는 법무부 산하에 설치된다. 영국과 호주의 공익위원회가 별도의 독립된 행정기관으로 운영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어느 한 부처 산하에 시민공익위원회가 설치될 경우 위원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 와중에 당초 입법 예고안에 포함됐던 위원회의 독립성에 관한 규정과 위원장의 예산 요구·집행권에 대한 규정이 이번 개정안에서는 사라졌다. 인사권과 예산권 모두 법무부가 가져가게 되는 셈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법무부장관이 시민공익위원회 위원장을 제청하고 위원장이 추천하는 상임위원을 법무부장관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김진우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공익활동법센터장)는 “이런 지배 구조에서는 법무부장관의 의지가 공익위원회의 운영에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영리섹터(제3섹터)가 국가(제1섹터)에 예속되는 부정적인 사례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면서 “영국이나 호주의 공익위원회처럼 정치적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된 별도 행정 조직으로 설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쟁점 4. “정부 100대 과제 달성” vs.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법무부는 이번 공익법인법 전부개정안을 공개하면서 “정부의 100대 국정 과제 중 하나인 ‘시민공익위원회’가 신설된다”는 내용으로 보도 자료를 냈다.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는 “법무부가 신설하겠다고 밝힌 시민공익위원회는 이름만 공익위원회일 뿐 전체 공익법인을 총괄하지도 못하고 기능도 없는 유명무실한 조직”이라며 “비영리섹터에 미칠 영향은 생각하지 않고 국정 과제를 달성했다는 선언을 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생각만 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보완책을 마련한 뒤 입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진우 교수는 “각 정부 부처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은 ‘공익위원회 설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다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면서 “그동안 축적된 논의와 검토가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기자 blindlett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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