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월)

장애인 승객에 성추행·폭언 일삼는 장애인콜택시 기사들

세종 장애인콜택시 이용자 차별 경험
진정서 제출, 석 달째 시청 앞 농성
지자체의 관리 감독 소홀 지적도

지난달 17일 세종시청 앞에서 장애인콜택시 누리콜 이용자들과 시민단체들이 장애인콜택시의 공공 운영을 요구하며 농성하고 있다. /세종누리콜시민대책위원회 제공

“왜 그렇게 짧은 치마를 입었어. 다 보이네.”

세종시에 사는 지체장애인 문경희(51)씨는 몇 달 전 장애인콜택시 운전기사에게 성희롱을 당했다. 출근하려 콜택시를 탔다가 일어난 일이었다. 문씨는 잠시 망설이다가 “기분이 나쁘니 그런 말은 하지 마라”고 했다. 운전기사가 문씨에게 사과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문씨는 ‘일진이 안 좋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적장애를 가진 지인 A씨가 문씨에게 “장애인콜택시 운전기사가 몸을 만졌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문씨는 이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장애인콜택시 운전기사에게 폭언이나 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증언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문씨를 비롯한 세종시 장애인 당사자들은 전국장애인차별추진연대의 도움을 받아 지난달 16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세종시 장애인콜택시인 ‘누리콜’ 소속 운전기사들이 이용자에게 폭언과 추행을 일삼았다는 내용이었다. 세종시 장애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누리콜이용자연대’를 조직하고 지난해 12월 14일부터 석 달째 세종시청 앞에서 농성 중이다.

지적장애인에 반말, 음주 운전하는 경우도

장애인콜택시는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이하 ‘교통약자법’)’에 따른 특별교통수단을 말한다. 특별교통수단은 휠체어 리프트 등 특수 장치를 설치해 전동 휠체어가 승하차할 수 있도록 개조한 차량이다. 보행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들과 65세 이상 노인, 임신부 등 교통 약자만 이용 가능하다. 택시비를 공공에서 보조해주기 때문에 대중교통만큼 싼 가격에 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교통약자법은 장애인콜택시 운영을 지자체에 위임하고 있다. 직접 운영하는 지자체도 있지만 대부분은 운영을 공공이나 민간 등 외부에 위탁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지자체에서 직영하는 곳이 1곳, 공공에 운영을 맡기는 곳이 35곳, 민간에 맡기는 곳이 125곳 등이었다.

세종시 장애인콜택시인 ‘누리콜’은 민간 업체가 운영하는 서비스다. 지난달 22일 세종시 농성 현장에서 만난 장애인들은 “일반 택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장애인콜택시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전동 휠체어를 타는 B씨는 한밤중에 택시를 탔다가 계속된 택시 기사의 짜증 때문에 인적 드문 도로 한복판에 내린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밤 10시에 세종에서 대전으로 가려고 누리콜 장애인콜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왜 이런 시간에 이용하느냐, 퇴근이 늦어지게 생겼다’며 짜증을 부렸다”면서 “계속된 짜증에 화가 나서 ‘그럴 거면 여기서 내려달라’고 하니 곧바로 차를 세워 도로 한복판에 나를 내려주고 떠났다”고 말했다. B씨는 대전 장애인콜택시에 사정을 이야기해 대전 지역 차량을 이용할 수 있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전맹 시각장애인 C씨도 최근 비슷한 일을 당했다. 외출을 나갔다가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아파트 앞에 도착했는데 비가 많이 오는 날이라 운전기사에게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 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다. 하지만 운전기사는 “그건 내 알 바 아니다”라며 비 오는 길가에 C씨를 두고 떠나버렸다.

농성 현장에서 만난 문경희씨는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지적장애인들에게는 일상적으로 반말을 하고, 심지어 음주 운전을 하는 기사도 있다”고 말했다. 김인숙 세종누리콜시민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장애인콜택시는 운전기사와 이용자 단둘이 타는 경우가 많아 당사자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면서 “밝혀진 것보다 훨씬 많은 사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해자를 다시 만나야 하는 현실

지자체의 관리 감독 소홀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누리콜의 재원은 세종시가 교통 복지 차원에서 마련한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예산이다. 업체가 세종시에서 예산을 넘겨받아 콜택시를 운영하기 때문에 일을 적게 하든 많이 하든 일정한 수입이 들어온다.

애써 고객을 유치할 필요가 없으니 점점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장애인콜택시 운전기사들을 대상으로 진행해야 하는 장애인식 교육, 서비스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현직 기사들의 증언도 나온다.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세종시는 소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 세종시 관계자는 “성추행 운전기사는 업체 소속이라 직접적으로 징계를 내리거나 해고를 요구할 수가 없다”면서 “대신 업체에 ‘해당 운전기사에 대한 업무 배제 등 조치를 취하라’는 공문을 세 번 보냈다”고 말했다.

취재 결과, 현재 가해자는 여전히 업체에 근무하면서 장애인콜택시를 운행하고 있었다. 해당 기사에게 추행당했던 A씨는 “나를 성추행했던 기사가 운행하는 차량은 배정하지 말아 달라고 콜택시 상담원에게 부탁하고 있지만, 세종에 있는 장애인콜택시가 17대뿐이라 늘 불안하다”고 말했다.

문경희씨는 “지역의 중소 도시에 사는 장애인들은 택시 말고는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면서 “지하철은 광역시 단위가 아니면 없고, 휠체어를 타고 이용할 수 있는 저상 버스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토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 저상 버스 도입률도 23% 정도다. A씨처럼 장애인콜택시에서 성추행을 당하거나 차별을 당하고도 참고 콜택시를 타야 하는 일이 발생하는 이유다.

장애인콜택시 수가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다. 교통약자법에서는 지자체에서 마련해야 하는 장애인콜택시 수를 ‘보행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 150명당 1대’로 정하고 있다. 중증 장애인 150명이 택시 1대를 나눠 타야 하는 셈이다. 여기에 65세 이상 노인이나 임신부, 신장 투석 환자 등도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콜택시를 한번 이용하려면 경쟁이 치열하다. 항상 차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A씨가 가해자가 운전하는 콜택시를 부득이하게 타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세종시 장애인들은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며 ‘장애인콜택시 공공 운영’을 요구하고 있다. 공공 기관인 세종시 시설관리공단에서 장애인콜택시를 맡아 투명하게 운영하라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공공 운영이 세종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본다. 최윤영 백석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공이 장애인콜택시를 맡게 된다면 민간 위탁 때보다 재정과 운영 두 측면 모두에서 투명성이 담보될 것”이라며 “지자체의 관리 감독이 더 철저해져 서비스의 질도 높아지고 혹시 문제 상황이 발생해도 대처가 빠르고 정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김지강 더나은미래 기자 riv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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