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미래 위해, 기자가 해봤다] 취약 계층 보급용 ‘면 마스크 만들기’ 봉사
“애만 태울 순 없어요” 가게 주인, 농부, 주부도 참여
작업 앞서 체온 측정, 위생장갑 착용, 소독 등 꼼꼼히
면 마스크 제작, 재단부터 포장까지 사람의 손 거쳐야
하루새 마스크 1800개 완성, 노숙자·쪽방촌 등 배분
“보건용 마스크만 못하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 되길”
마스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곳곳에서 마스크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적 재난을 한몫 챙길 기회로 삼은 비양심 판매자들이 기승을 부리는 사이 경제·사회적 약자들은 ‘마스크 소외 계층’으로 전락했다. 정부의 ‘공공 마스크’ 정책 시행에도 마스크 수급은 좀처럼 안정되지 않고 있다.
지난 2일 찾아간 수원시가족여성회관 1층 의상실은 노란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들로 북적였다. 경기 수원 주민들이 노숙자 등 취약 계층에게 나눠줄 ‘면 마스크’를 만드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가정주부, 보험 설계사, 식당 주인, 시민 단체 회원 등 다양한 사람이 이곳에 모인 이유는 하나.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다. 기자도 노란 조끼를 입고 봉사에 동참했다.
재단·재봉·포장 등 분업해 제작… “허리 펼 시간 없어요”
현장에 도착하고 가장 먼저 체온 측정부터 했다. 36.2도. 다행히 정상 범위에 들었다. 이후 손 소독을 하고 조끼와 마스크, 위생용 고무장갑을 받아 착용했다. 매일 공간 전체에 대한 소독도 진행한다고 한다. 봉사 현장이 감염병 전파 통로가 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 방명록에 소속과 이름을 적고서야 현장을 관리하는 수원시자원봉사센터 관계자의 ‘오케이(OK) 사인’이 떨어졌다.
현장은 바쁘게 돌아갔다. ‘일당백’의 각오로 입성했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잠시 넋을 놓고 지켜보다가 용기 내 한 사람을 붙잡으니 웃으며 가위를 내밀었다.
“펼쳐진 천에 제가 연필로 그어 놓은 선이 보이죠. 이걸 따라서 가위로 계속 자르면 됩니다.”
봉사에 참여한다는 뿌듯함, 민폐가 돼서는 안 된다는 중압감을 느낄 새도 없이 첫 임무가 주어졌다. 가위를 건넨 자원봉사자 이나영(46)씨는 “재단은 마스크 제작의 출발점”이라며 “책임감을 가지고 해 달라”고 당부했다. 겹겹이 포개진 천을 가지런히 자르는 일은 상상처럼 쉽지 않았다. 일반 가위보다 몇 배는 무거운 재단용 가위도 버겁게 느껴졌다. 거북이처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신참의 가위질을 지켜보던 정선아(52)씨는 “손을 왜 그렇게 벌벌 떠느냐”며 “조금 비뚤어져도 재봉하는 분들이 다 맞춰 줄 테니 자신 있게 하라”고 기자를 격려했다.
자동화 기계 설비를 활용해 대량으로 찍어 내는 보건용 마스크와 다르게 면 마스크는 모든 과정에 사람의 손길이 닿는다. 가내수공업이다. 공정은 모두 여섯 단계. ▲마스크 크기에 맞게 원단을 가위로 자르는 ‘재단’ ▲안감과 겉감을 이어 붙이는 ‘1차 재봉’ ▲마스크에 끈을 다는 ‘2차 재봉’ ▲실밥 제거 ▲다림질 ▲소독·포장 등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마스크 한 개가 완성된다. 기자를 포함한 자원봉사자 33명이 작업을 나눠서 했다. 재봉틀은 기술이 있어야 다룰 수 있지만, 나머지는 열의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기술이 없는 기자는 메뚜기처럼 뛰어다니며 그때그때 도움을 청하는 곳에서 일했다.
수공예품 제작 동호회 ‘달별장’에서 활동하는 고윤주(51)씨의 제안으로 마스크 재봉에도 도전해 봤지만 쉽지 않았다. 마스크 양쪽에 끈을 다는 데 10분 넘게 걸렸다. 재봉틀 고수들은 1분이면 끝마치는 일이다. 기자가 조용히 가위를 다시 집어 들자 주변 봉사자들은 “적성에 맞는 일을 하라”며 크게 웃었다. 고씨는 “재봉틀 앞에 고개 숙이고 앉아서 종일 박음질만 했더니 고되다”면서도 “한시가 급한 일이니까 쉬고 싶지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손으로 주변을 가리키더니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다들 저렇게 열정적이다”라며 “아저씨(기자)도 더 열심히 하라”고 했다.
하루 만에 면 마스크 1800개 제작… 자원봉사자들 “내일도 와야죠”
질병관리본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3일 새 마스크 사용 지침을 공개했다. ‘KF(Korea Filter)’ 인증을 받은 보건용 마스크를 추천하지만, 구하기 어렵다면 면 마스크를 쓰는 것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골자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버텨야 하는 상황이다.
마스크 제작 봉사에 참여한 사람들도 면 마스크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쯤은 잘 안다. 30수 원단을 이중으로 포개 침방울이 침투할 우려는 낮지만, 보건용 마스크에 비하기는 어렵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도 마련해 보자는 것이다.
김명희(52)씨는 “집에서 애만 태울 수는 없지 않으냐”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괜찮다는 마음으로 왔다”고 했다. 김씨는 수원에서 중식당을 운영한다. 평소에는 ‘중사모’(중화요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라는 급식 봉사 단체에서 활동한다는 그는 마스크 제작 봉사에 참여하려고 가게를 잠시 남편에게 맡겼다고 했다.
수원 권선구 호매실동에서 상추·바질·고추 등 농사를 짓는 이진욱(57)씨도 따뜻한 마음 하나만 가지고 이곳을 찾았다. 동네 주민들에게 전해 듣고 찾아왔다고 했다. 이씨는 마스크에 남은 실밥을 쪽가위로 제거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씨는 “바느질을 못하는 사람도 쓸모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기에 왔다”며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최성수(46)씨는 이날 아내와 함께 봉사활동을 했다. 기자에게 처음으로 ‘업무지시’를 내린 이나영씨의 남편이다. 최씨는 “아내가 봉사활동을 간다기에 가게 문을 일찍 닫고 같이 왔다”며 “아이들도 엄마 아빠를 응원해주더라”고 말했다. 최씨 부부는 지난달 28일에도 함께 마스크를 만들었다. 주말에도 집에 들고간 마스크 재료로 약 200개를 제작해 가져왔다고 했다.
윤세훈 수원시자원봉사센터 팀장은 “수원에도 확진자가 없는 것이 아닌데도 선뜻 자원봉사에 참여하겠다는 분이 정말 많다”며 “마스크 수급이 안정될 때까지 당분간 봉사활동을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내일도 오세요?” “저는 오전 10시쯤 오려고요.” 일을 끝낸 자원봉사자들은 내일도 모이자는 인사를 나누며 떡과 음료수를 나눠 먹었다. 이날 기자를 포함한 자원봉사자들이 만든 마스크는 모두 합쳐 1800개. 수원시는 마스크를 노숙자와 쪽방촌 거주자 등 취약 계층에게 먼저 배분하고, 나머지는 각 지역 동사무소에 비치해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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