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제 해결, ‘디지털 기술’로 재미있고 안전하게 하자”
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Share on print

[인터뷰] 오드리 탕 대만 디지털 특임장관

오드리 탕 대만 디지털 특임장관은 “누구나 안심하고 사회를 위한 창의적 활동을 할 수 있는 판을 여는 것이 디지털 기술과 법제도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오드리 탕(39) 대만 디지털 특임장관에겐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2016년 당시 35세 나이로 취임하며 대만 역사상 최연소 장관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세계 최초의 트렌스젠더 장관’이기도 하다. ‘천재 개발자’란 수식어도 따라다닌다. 14세에 독학으로 코딩을 깨우친 뒤 10대 후반부터는 애플, 벤큐 등 미국 실리콘밸리 유수의 기업에서 일하며 이름을 날렸다. 그는 2014년 대만에서 민주주의 확산을 요구하는 청년 중심의 사회 운동이 대대적으로 시작되던 때 조국으로 돌아와 이 운동을 이끌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정부가 가진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더 많은 시민이 사회적·정치적 의견을 낼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도 만들었다. ‘디지털 민주주의’를 통해 사회혁신을 이뤄내고 있는 셈이다.

사회혁신은 재미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누구도 상처 주지 않고, 나도 지치지 않을 수 있어요. 물론, 효과적이기도 하지요.”

지난달 13일 서울시 은평구 혁신파크에서 열린 ‘AYARF(아야프·아시아 청년 액티비스트 리서처 펠로우십) 컨퍼런스급진적 미래’ 현장. 행사에 참석한 30여명의 아야프 펠로우 앞에서 탕 장관이 말했다.  아야프는 서울특별시가 주최하고 서울시 청년허브, 서울연구원, 청년재단이 공동주관하는 프로젝트로, 환경·이주·젠더 등 사회 문제의 해법을 찾는 청년들의 활동을 지원한다. 이날 컨퍼런스에 참여한 탕 장관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른 위치나 입장에 있는 사람을 이해하고 협력하는 일이 중요하다재미있고 참신한 방법으로 지치지 말고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나가자고 청년들을 격려했다.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만의 ‘디지털 민주주의’

사회혁신을 재미있게 하자고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렇게 해야 더 많은 사람이 사회에 대한 토론에 참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기 때문이죠.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는 하지 말자는 게 아닙니다. 재미있는 방법을 찾으면 더 많은 사람이 사회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공론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우리가 찾아낸 해결 방법도 더 빨리 확산하기 때문에 효과도 큽니다. 지난해 대만에서 있었던 가짜뉴스 해결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온라인상에서 정부가 일주일 내에 한 사람에게 펌과 염색을 동시에 시술하는 미용사에게 33000달러( 39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만들고 있다는 가짜뉴스가 퍼졌어요. 행정원 측에선 딱딱한 공문서로는 온라인상에 퍼지는 가짜뉴스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온라인 커뮤니티 식으로 대응하자며 꾀를 냈죠. 쑤전창 행정원장의 얼굴을 넣은 우스꽝스러운 포스터를 만들어 온라인에 뿌렸습니다. 쑤 행정원장이 대머리라는 점에 착안해, 그의 얼굴 사진 옆에 펌과 염색을 동시에 진행해도 벌금은 없습니다. 다만, 저처럼 대머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하는 문구를 넣었죠. 금세 온갖 인터넷에 퍼져서 가짜뉴스가 잡혔습니다.”

대만 행정원이 직접 만들어 배포한 가짜뉴스 해명 포스터. 젊은 시절 쑤전창 행정원장의 사진(흑백)과 현재 쑤 원장의 사진을 나란히 놓은 후, “펌과 염색에 세금을 부과하진 않지만 잦은 펌과 염색은 탈모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대만 행정원

ㅡ흥미로운 내용이긴 하지만, 정부 활동이 가벼워 보인다는 지적이 나오진 않을까요.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또 하나의 원칙이 있습니다. 바로 누구도 상처주지 않는 사회혁신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할 땐 정부는 딱딱하고 혁신에 뒤처진다는 인상이 있었는데, 실제로 정부와 함께 일하기 시작하니 이 안에도 혁신을 만들기를 원하는 유능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한 사람의 튀는 시도가 결국 전체 부처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걱정이 만연해 아이디어가 있어도 시도를 못 하고 있을 뿐이었죠. 그래서 제가 일하는 디지털 특임 부서에서는 이들에게 안전하게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을 공간을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등 개별 부처 출신 공무원이 1명씩 저희 팀에 파견돼 일하고 있는데, 여기서 부처의 전문성은 살리되 혹시 잘못돼 부처에 해를 끼칠까 하는 걱정 없이 자유로운 의견을 낼 수 있죠. 여기서 나가는 모든 정책은 제 이름으로 나갑니다. 기존의 어느 부처도 공격받지 않아요. 오로지 저만 공격받을 뿐이죠. (웃음) 이런 공간을 만들면, 충분히 정부도 재미있고 창의적인 혁신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탕 장관은 소속 부처가 없는 무부처 디지털 특임 장관이다. 기존 정부 부처에 속하지 않되 국방부 등 파견을 거부한 일부 부처를 제외한 21개 부처 출신 공무원과 팀을 이뤄 IT를 활용한 사회 혁신 정책을 만들고 있다. 총통배 디지털 해커톤, 시민이 정책에 대해 정부 관료와 직접 토론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 조인’ 등이 대표적이다.  탕 장관의 정책을 도입하고자 하는 지방 정부에 자문을 제공하기도 한다대만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민주주의 확산 실험은 의회 민주주의의 발상지인 영국에서조차 롤 모델로 삼자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전 영국 노동당 당수인 제러미 코빈 의원은 영국이 대만식 디지털 민주주의를 배워야 한다고 공식 석상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청년들의 아이디어가 정책이 되는 세상을 꿈꾸며

 ㅡ해커톤, 온라인 공론장 등은 다른 나라에서도 시도됐는데 대만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합니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플랫폼에 정치적 권한을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 장치들을 세심하게 도입했습니다. 지금 대만에서 시도하는 온라인 플랫폼들은 시민 의견을 듣는다는 식의 제스쳐 정도의 역할을 넘어서 있습니다. 예를 들어 총통배 해커톤의 경우, 여기서 우승한 아이디어는 바로 정책이 됩니다. 총통의 권한으로 그걸 보장하기 때문에 이름이 총통배인 거죠. 공론장의 경우 즉시 정책이 되지는 않지만, 투표가 게임 방식으로 진행돼서 청소년까지 관심을 갖도록 유도했습니다. 대만 인구가 2300만명인데 1000만명이 이 공론장에 참여하고 있을 정도죠. 그 결과 지난해 15세 청소년이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해달라는 의견을 냈는데 이 의견이 공론장에서 큰 동의를 받아 지난해 법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ㅡ대만에 이런 제도가 잘 갖춰지게 된 비결이 있습니까.

지난 2014년 민주주의 확산 운동이 시작되면서 이를 이끌었던 청년 그룹들이 주류 정치 무대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기성 정치인이 청년들에게 정치권력을 나눠줘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커지면서 이를 보장하는 여러 제도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게 각 부처의 35세 미만 청년 직원이 장관에게 직접 정책 제안을 하는 리버스 멘토(Reverse Mentor)’제와 청년의회입니다. 저 역시 차이잉원 총통의 리버스 멘토이자 청년의회 위원으로 활동했는데, 리버스 멘토단과 청년의회 역시 단순 자문단이 아니라 언제든 장관과 독대하고 정책 제안을 할 수 있고, 청년의회에서의 결정 사항이 바로 정책이 되도록 했죠. 혁신을 위해선 아이디어가 정책이 되도록 보장하는 법적 권한이 부여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대만 정치권과 시민사회에 생긴 게 큰 힘이 됐죠.”

ㅡ다양한 정책을 만들어 왔는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무엇인가요?

“두 가지입니다. ‘투명한 정보 공유’와 ‘열린 공론장’. 가지고 있는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거기서 많은 사람의 의견을 모아 내는 게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점입니다. 제가 2014년부터 참여하기 시작한 시민운동인 ‘거브제로(g0v)’에서는 정부·국회가 예산안이나 회의록 등 정보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면서, 저희가 확보한 정보를 공개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저희 거브제로 리더 그룹들의 회의록 등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모두 공유했고요.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장관으로서의 제 동선과 미팅 내용이나 주제, 거기서 나눈 내용은 모두 온라인에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됩니다. 정보 공개는 부정부패를 막는 길일뿐 아니라 시민들이 정부나 국회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파악해 의견을 제시하기도 쉽겠죠. 더 많은 사람들이 공론장에 참여하면 우리 사회도 더 나은 곳으로 변해갈 겁니다.”

탕 장관은 “미래는 문화 다양성(multiculture)이 아니라 혼종 문화(transculture)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다양한 환경에서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문화 안에서 서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보다 투명하게 공개된 공론장 위에서 현실 문제를 끊임없이 토론하며 섞이는 것이 민주주의의 미래라는 것이다. 기술은 이 과정에서 투명성과 공론장의 효율성, 보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담보하는 도구라는 게 탕 장관의 생각이다.

“한국에서 만난 많은 아시아 청년들 역시 기성세대가 생각지도 못하던 미래를 그려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그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도록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사회혁신을 만드는 길입니다. 디지털 기술은 그 길로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도록 하는 도구입니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