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0일(토)

“분쟁 지역 아동 구호 지원금 턱없이 부족…장기적 지원 필요해”

지난 16일 만난 린제이 호킨 국제월드비전 유엔대표부 인도적지원 선임 정책고문. 호킨 정책고문은 월드비전 세이브더칠드런과 월드비전이 공동주최하고 외교부와 한국국제협력단이 후원하는 ‘인도적 지원 정책포럼’ 참여차 방한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기자
“분쟁 지역의 아동 구호는 아이를 전쟁터에서 꺼내오는 일에서 끝나서는 안됩니다. 전쟁으로 고통받은 한 아이가 다시 건강하게 자라나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합니다.”

지난달 16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열린 ‘인도적 지원 정책 포럼’ 현장. 린제이 호킨 국제월드비전 UN 대표부 인도주의 정책 선임고문이 분쟁 지역 아동이 처한 상황을 생생한 목소리로 전했다. 호킨 고문은 지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약 3년간 남수단에서 월드비전의 아동 구호 활동을 총괄했다. 남수단은 지난 2011년 수단으로부터 독립한 신생국가로 2013년 정부군과 전 부통령인 리에크 마차르를 추대하는 반군 세력의 대립으로 내전이 시작됐다. 포럼 당일 만난 호킨 고문은 “남수단에서는 지금도 무력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지난해 700명가량의 아이들이 마을로 돌아오긴 했지만, 아이들을 위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아이가 전쟁의 상처 극복하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아이들에게는 병원이나 학교뿐 아니라 아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줄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마약에 취해 사람을 수없이 죽인 남자 아이들, 군인에게 성폭행당해 임신하거나 출산한 여자 아이들을 마을 사람들이 보듬어줘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들은 아이들을 ‘살인자’나 ‘미혼모’로 낙인 찍고 손가락질한다. 심지어 가족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마을 공동체를 되살려내는 것까지가 아동 구호단체의 일이다.”

남수단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
“크게 보면 ‘협상’과 ‘구호’ 두 가지 일을 했다. 협상은 정부나 무장 단체를 상대로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달라고 설득하는 일을 뜻한다. 우리와 같은 비영리단체는 특정 정부나 정치 세력으로부터 독립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적당한 친분과 거리를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협상이 끝나면 본격적인 구호가 시작된다. 풀려난 아동들을 돌보는 일이다. 신체적·정신적 치료, 가족 찾아주기, 미혼모가 된 여자 아이들을 위한 보호 프로그램 제공, 교육 등이 대표적이다. 아이들이 잘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을의 종교 지도자를 찾아가 부탁하고 화해와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지난 2016년 노르웨이의 ‘오슬로평화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무력 분쟁지역에 사는 아동 수는 약 35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전 세계 아동 6명 중 1명이 분쟁으로 인한 사망, 상해, 납치, 징집, 성폭력 등에 노출돼 있다는 뜻이다. 그중에서도 남수단은 소년병 징집 문제가 가장 심각한 나라 중 하나다. 지난 9월 유니세프 발표에 따르면, 현재 남수단의 소년병은 19000명에 이른다.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일부 마을에서는 종교적 이유나 정치적 이유로 ‘아이들이라도 전쟁터에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인식을 바꾸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아이들이 마을에서 살아갈 수 없으면 최악의 경우 다시 무장단체로 돌아가기도 했다. 우리는 풀려난 아이들이 마을 안에서 건강하게 통합돼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아이들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까지 치유하기 위해 애썼다.  마을이 살아나야 아이들도 안전하기 때문이다.”

린제이 호킨 국제월드비전 유엔대표부 인도적지원 선임 정책고문. ⓒ이신영 C영상미디어기자

◇분쟁 지역 아동 구호의 열쇠는 ‘장기적 지원’

호킨 고문은 “분쟁 지역 아동 구호는 당장 드러나는 성과가 없기 때문에 지원금을 받기가 어려운 분야”라고 말했다. 성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뿐 아니라 얼만큼 효과가 있는지 측정하거나 증명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분쟁 지역 아동 구호 예산이 전체 구호 예산에서 가장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어려운 일이지만 뿌듯함도 크겠다.
물론이다. 소년병이었던 아이 중 하나가 과학자가 되고 싶다며 현미경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을 때를 잊을 수 없다. 이것은 한 아이의 ‘인생’을 구하는 일이다.”

-현재 UN에 파견돼 분쟁지역 아동 구호 정책을 개선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가장 관심이 가는 정책 의제가 있다면.
젠더 기반 폭력 문제다. 무장단체에 끌려간 아이들 중에는 총을 들고 싸우는 남자 아이들도 있지만, 강제 결혼 상대나 성 노예로 끌려가거나 성폭행을 당하는 여자 아이들도 있다. 분쟁 지역 국가들 중에 여성 인권 수준이 낮은 국가가 많기 때문에 해당 지역에서 여성 교사들을 양성해 여자아이들을 가르치도록 하거나 트라우마 치료를 진행하도록 하는 등 구체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어떤 정책이 가장 시급하다고 보는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각 기관들이 분쟁 지역 재건이나 구호 활동을 할때 아동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지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구체적인 활동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호킨 고문에 따르면, 현재 각국 정부가 분쟁 지역 아동 구호를 위해 내놓은 지원금 대부분이 6개월짜리 단기 프로젝트성이다. 그는 “최소 5년 이상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한 분야”라며 “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아이들이 치유되지 못한 채 어른이 되면 우리 사회 전체에 더 큰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가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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