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대부분이 적자 늪에 ‘허덕’
‘소재은행’ 있지만 전시장에 불과… 재료 부족해 제품 못 만들기도
公共이 ‘소재 중개 전문가’ 키워야
업사이클 특성상 제품 설명 중요 더 많은 오프라인 판매처 필요해
정부, 청년 창업·지원센터 확대 계획
전문가 “생산 시설 마련이 더 급해”
아름다운가게가 운영하는 업사이클(upcycle· 폐기물에 디자인·기능을 덧입혀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 브랜드 ‘에코파티메아리’가 최근 대대적인 쇄신 작업에 들어갔다. 오프라인 매장 디스플레이를 세련된 편집숍처럼 바꾸고, 최신 유행 디자인을 접목한 하위 브랜드 ‘리업(Reup)’도 출시했다. 공격적인 사업 확장 전략이라기보다 존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타개책이다. 에코파티메아리 관계자는 “사업이 몇 년째 계속 적자를 내자 아름다운가게 내부에서 브랜드를 완전히 접어야 한다는 얘기가 진지하게 오갔다”며 “버려진 자원에 새 가치를 부여한다는 사업 취지를 고려해 좀 더 두고 보기로 했지만, 앞으로도 난관이 예상된다”고 했다.
2006년 탄생한 에코파티메아리는 명실공히 국내 1호 업사이클 브랜드다. 아름다운가게로 들어온 기부 물품 중 판매하기엔 질이 떨어지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것들을 재료 삼아 인형, 지갑, 가방, 의류 등을 제작해 판매해왔다. 에코파티메아리 제품은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에 전시될 만큼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한계에 부닥친 지 오래다.
국내 업사이클 시장이 위태롭다. 2018년 경기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업사이클 시장 규모는 40억원 미만으로 추정된다. 세계적인 업사이클 기업 ‘프라이탁(Freitag)’이 연간 벌어들이는 금액(약 700억원)의 5%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개별 기업들의 상황도 좋지 않다. 한국업사이클디자인협회가 2016년 국내 주요 업사이클 기업 24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9곳은 직원이 5인 미만이었으며, 이 중 5곳은 대표 혼자 일하는 1인 기업이었다. 연 매출 규모도 응답자의 절반을 넘는 15곳이 1억원을 넘기지 못했다. 10곳은 5000만원 미만이었고, 1000만원 미만인 곳도 2곳이나 됐다. 인건비와 제품 생산비를 감안하면 대부분 적자인 셈이다.
업사이클 업체들 “소재 수급이 어려워 제품 못 만든다”
전문가들은 국내 업사이클 산업의 성장을 막는 가장 큰 문제로 ‘소재 수급’이 어렵다는 점을 꼽는다. 제품을 만들고 싶어도 재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2017년 서울시 업사이클 지원센터인 서울새활용플라자가 22개 입주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참여 기업 모두 필요한 소재를 찾아내고 이를 공급받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소재 공급처에 대한 정보 부족 ▲불안정한 소재 수급 ▲소재를 세척·가공·보관할 시설 미흡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설문에 참여한 업사이클 업체 L사는 “업사이클 소재를 충분히 공급받지 못해 제품 제작이 원활하지 않다”고 답했다. E사는 “자체적으로 소재 수급 시스템을 갖추고 싶어도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보류한 상태”라고 했다. 현재 서울새활용플라자 안에 소재들을 모아둔 ‘소재은행’이 마련돼 있지만, 이름처럼 소재를 보관·공급하는 ‘은행’이라기보다 소재들을 보기 좋게 진열해놓은 ‘전시장’에 가깝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2008년 설립된 업사이클 기업 ‘터치포굿’은 소재 유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0년부터 다른 업사이클 기업들과 소재 공급처를 연결하는 ‘소재 중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박미현 터치포굿 대표는 “소재 중개 업무는 개별 기업이 맡기보다는 정부·지자체 등 공공 영역에서 맡아 체계적·전문적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영역”이라며 “업사이클 분야가 산업 구조를 갖추기 위해서는 소재 공급처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기업에 적절한 소재를 찾아주고 공급처를 주선해줄 소재 중개 전문가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기업 수 늘리기보다 기존 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제품 유통망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도 국내 업사이클 업계의 오랜 고민이다. 대형 온·오프라인 쇼핑몰에 입점해 제품을 판매하고 싶어도 쇼핑몰 업체들이 ‘제품에 흠집이 있다’ ‘디자인이 일정하지 않다’ ‘공급 물량이 너무 적다’는 이유로 퇴짜를 놓는 일이 많다. 온라인 크라우드 펀딩이나 업사이클·핸드메이드 페어 등을 활용해 물건을 판매하기도 하지만 모두 일회성 이벤트라는 한계가 있다. 에코파티메아리 관계자는 “업사이클링은 수작업이 많아 제품 생산에 인력과 시간이 많이 들고, 생산량이 많지 않다 보니 판매처를 찾는 게 쉽지 않다”면서 “우리보다 규모가 작은 기업들은 상황이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리적 패션 전문 매장 ‘SEF’나 사회적경제기업 제품 전용관 ‘이치(Each)’ 등 일부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업사이클 제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SEF와 이치의 운영사 ‘아트임팩트’의 송윤일 대표는 “업사이클 제품은 같은 제품끼리도 모양이 다르거나 제품 하자처럼 보이는 요소가 있는 경우가 많아 손님에게 제품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줄 수 있는 직원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며 “이런 측면에서 온라인 쇼핑몰보다는 오프라인 매장이 업사이클 제품 판매에 더 유리하다”고 했다. 문제는 이런 오프라인 매장이 손에 꼽힌다는 것이다. SEF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내 1곳, 이치는 제주 국제공항 JDC면세점 등 3곳뿐이다. 송 대표는 “지자체나 백화점·할인마트 등 대형 유통체인 매장이 입지 좋은 공간을 지원해준다면 더 많은 소비자에게 업사이클 제품을 소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오프라인 판매처가 늘면 업사이클 기업들이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정부는 업사이클 산업이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수익도 낼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최근 육성책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환경부는 서울·대구 등 5개 지역에 있는 업사이클 지원센터를 전국으로 확산할 계획이다. 일자리위원회는 ‘환경 분야 일자리 창출 방안’의 일부로 청년 업사이클 기업 창업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업사이클이 제대로 된 ‘산업’으로 성장하려면 보다 현실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센터를 짓는 것보다 업사이클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제품 생산 시설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면서 “또 단순히 업사이클 기업 수를 늘리는 것보다 기존 기업 중에 ‘프라이탁’급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방법이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승희 더나은미래 기자 hee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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