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4일(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부 믿고 해외봉사 갔는데… ‘불법 체류자’ 신세라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코이카가 운영하는 해외봉사단 ‘WFK’
정부의 무상원조기금으로 활동하지만
위탁 운영하며 비자 관리까지 NGO에

네팔 등 개도국, NGO 비자 정책 ‘깐깐’
‘편법적인’ 관광·학생 비자 받을 수밖에
봉사자들, 현지 단속 걸릴까 ‘전전긍긍’

ⓒ게티이미지뱅크

“태극 마크 달고 봉사활동 하러 왔는데, 여기서 저는 정부 관계자를 보면 숨어야 하는 불법체류자였어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하 코이카)이 운영하는 봉사단 ‘월드프렌즈코리아(World Friends Korea·이하 WFK)’ 단원 자격으로 네팔에 있는 한국 NGO 사무소에 파견된 A씨는 “그 시간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현지 주민 수십명 앞에서 교육을 하다가도 “정부 사람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리면 옆 건물, 부엌 등으로 헐레벌떡 뛰어가 그들이 돌아갈 때까지 몸을 숨겨야 했다. A씨가 학생비자 소지자였기 때문이다.

네팔 정부는 외국인이 비자에 명시된 체류 목적 외 활동을 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A씨가 학생비자로 NGO 활동을 한다는 사실이 적발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벌금 부과는 물론 심한 경우 구금되거나 추방될 수도 있다. 네팔 정부의 단속이 잦아지자 A씨의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현지의 한국인 사무소장에게 이런 심경을 호소하자 돌아온 대답은 “다음엔 더 빨리 숨으라”는 핀잔이었다. 최대 2년을 계획하고 네팔에 간 A씨는 결국 몇 달 만에 귀국했다.

WFK 소속으로 해외로 봉사활동을 떠난 한국 청년들이 현지에서 비자 문제로 곤란을 겪고 있다. WFK는 정부의 무상원조기금으로 운영하는 해외봉사단을 통칭하는 브랜드명으로, 외교부 산하의 무상원조기관인 코이카가 총괄하고 있다. 해외에서 합법적으로 NGO 활동을 하려면 ‘NGO비자’나 ‘취업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코이카가 비자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주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름만 ‘정부 봉사단’, 비자 발급은 “나 몰라라”

코이카는 1991년부터 해외에 봉사단을 파견하기 시작했다. 2009년부터는 기존 코이카 봉사단을 비롯해 정부 무상원조기금으로 운영되는 해외 봉사단을 통합해 WFK라는 이름으로 총괄하고 있다. WFK 봉사단은 ▲WFK-코이카 봉사단 ▲WFK-대학생 봉사단 ▲WFK-시니어 봉사단 ▲WFK-NGO 봉사단 등 17개의 봉사단으로 나뉘는데, 현재 54개국에서 2089명이 활동 중이다.

이중 비자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은 30여 개국에서 300여명이 활동 중인 ‘WFK-NGO 봉사단’이다. 개발도상국에서 활동하는 국내 NGO에 대졸 이상 성인을 최장 2년까지 파견하는 형태로 운영되는데 A씨 역시 WFK-NGO 봉사단 소속이었다.

WFK-NGO 봉사단에서 비자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코이카가 이 사업을 NGO에 위탁해 운영하면서, 비자 문제까지 이들에게 맡겨놓고 있기 때문이다. 코이카는 NGO 봉사단 운영을 국제구호 NGO들의 협의체인 KCOC(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에 위탁하고 있다. KCOC가 NGO를 선정하고, NGO가 개별적으로 단원을 뽑아 해외에 파견을 보내는 식이다. 단원들의 비자 발급도 NGO가 직접 진행하게 된다.

문제는 NGO에 대한 개도국의 비자 정책이 생각보다 까다롭다는 것이다. 정부가 쉽게 취업 허가증(Work Permit)을 내어 주는 몽골이나, 현지 한국 대사관이 보증을 서 특별 비자를 받는 동티모르의 경우 체류에 문제가 없지만 그 밖의 대부분 국가에서는 소장급 NGO 직원조차도 관광비자나 학생비자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비자 발급이 어렵다 보니 불법인 줄 알면서도 직접 뽑은 WFK-NGO 봉사단원들에게 ‘관광·학생 비자를 받으라’고 안내할 수밖에 없다는 게 NGO들의 입장이다.

코이카 “지원 미흡 인정… 제도 개선 노력할 것”

네팔의 경우 비자 단속이 특히 심한 국가에 속하지만, 단속이 느슨한 국가라고 해서 안심할 순 없다. 개도국이 비자 정책을 바꾸면 바로 상황이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노영선 KCOC 봉사사업팀장은 “작년까지 문제가 없던 나라에서 갑자기 비자 발급을 거절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며 “개도국 정부가 NGO를 반정부 단체로 간주하거나 자국민을 고용하라는 식으로 태도를 바꾸면 개별 NGO가 대응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미얀마에서 활동하는 한 국제NGO 직원은 “미얀마에도 WFK-NGO 봉사단원들이 제대로 된 비자 없이 편법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장 괜찮아 보여도 권위주의적인 미얀마 정부가 문제시하면 언제든 단원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KCOC 측은 “비자 문제로 단원이 활동에 어려움을 겪거나 추방되는 일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면서 “올해 초부터 코이카에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건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NGO 봉사단도 정부 봉사단인 만큼 비자 문제는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국제개발협력 감시 단체인 ‘발전대안 피다’의 한재광 대표는 “정부가 NGO를 통해 개도국에 봉사단을 파견하는 것은 영국·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도 흔한 일”이라며 “문제는 ‘NGO가 파견하니까 비자도 단체에서 알아서 하라’는 코이카의 태도”라고 말했다. 코이카 측은 “봉사단 지원에 미흡한 점이 있었음을 인정한다”며 “외교부나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 협조를 받아 WFK소속 모든 단원이 적법한 비자를 받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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