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스태프도 근로계약서 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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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지부장 인터뷰

김두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지부장. ⓒ신영빈 청년기자

“노조 시작하고 체중이 6kg 빠졌어요. 몸도 가볍고, 오히려 노조 활동하면서 건강해졌달까요. 힘들어도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니 즐겁습니다.”

김두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지부장의 말이다. 1년 전, 그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누려보겠다는 일념으로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를 결성했다. 올해 7월 4일 지부는 출범 1주년을 맞았다. 이날 국회의원회관 제1 소회의실에서 열린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 1주년 출범 기념식’에는 다양한 단체와 정부 부처관계자, 국회의원, 방송 종사자 등이 참여했다. 기념식이 끝난 뒤 김 지부장을 만나 방송 노동환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방송 스태프, 지난해 하루 평균 20.4시간 근무

“지부 활동 전에는 노조 경험이 전혀 없었습니다. 원래는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조명팀으로 일했는데, 트럭에서 추락해 크게 다쳤습니다. 이후 방송 현장에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차로 보직을 옮겼어요. 열악한 노동 여건 때문에 제가 다쳤고 동료들 역시 과중한 노동에 힘겨워하는 것을 보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방송 스태프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방송 스태프들이 뭉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를 만들기 위해 시민단체를 찾아다니며 자문했고 방송스태프지부를 만들었다.

김 지부장은 방송 스태프들의 노동시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방송스태프지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드라마 현장의 스태프는 하루 평균 20.4시간을 일했다. 올해 조사에서는 18시간으로 나타났다.

“두 시간이 줄었지만 개선이라고 말하기엔 부끄러울 정도로 과중한 노동강도죠. 현장에 가면 스태프들 눈이 다 풀려있어요. 피로하니 사고가 날 수밖에요.”

노동시간만큼의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다. 소위 ‘턴키(Turn-key)계약’이라 불리는 계약관행 때문이다. 턴키계약은 방송국 혹은 제작사가 제작비를 책정한 뒤 팀별로 용역계약을 맺고 대금을 나눠주는 방식이다. 가령 조명팀이 있다면 조명팀 팀장이 자신이 이끄는 팀 전원의 인건비·장비 비용 등을 나눠 받은 제작비 안에서 해결한다. 사고가 터지거나 추가 비용이 발생하면 그 책임을 팀장이 떠안게 되는 것이다. 스태프 개개인은 변변한 계약서도 없다. 사용자인 방송국이나 제작사가 책임을 선임 스태프에게 전가하는 구조다. 스태프들 역시 개별 계약서가 없다 보니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다.

지난 7월 4일 열린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창립 1주년 기념식 현장. ⓒ신영빈 청년기자

지상파 드라마 현장 ‘표준계약서’ 도입 이끌어

지난 2016년 10월,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이었던 이한빛 PD가 목숨을 끊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한빛 PD는 자신이 방송계 노동 착취의 ‘가해자’가 되는 현실을 견디기 어렵다는 유서를 남겼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회가 방송 관계자들의 노동 환경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CJ E&M 역시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이한빛 PD 사건이 일어난 후에도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CJ E&M도 바뀌지 않았고, 과중한 노동으로 인한 스태프들의 사고는 계속됐습니다. 이한빛 PD 사건을 열심히 보도하던 지상파 역시 자사에서 터진 문제에는 침묵했습니다.”

방송스태프지부를 창립하긴 했지만 막상 활동이 쉽지 않았다. 생계가 달린 문제였기에 방송 스태프들은 쉽게 목소리를 내지못했다. 근로계약서도 본 적도 없고, 늘 프리랜서 취급을 받다 보니 본인들이 노동자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지부의 간부 중에도 아직 공식 석상에서 얼굴을 드러내기를 꺼리는 이들이 많다. 노조 참여가 알려지면 방송사나 제작사가 자신을 쓰지 않을까 걱정해서다.

“실제로 노조를 만든 이후 단 한곳도 저와 일하겠다는 곳이 없었습니다. 형체 없는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얘깁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방송스태프지부는 뜻깊은 성과를 냈다. 지난 6월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전국언론노동조합, 지상파 3사,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등으로 구성된 ‘4자 협의체’를 통해 지상파 드라마 현장에 ‘표준근로계약서’를 적용하기로 했다. 4자 협의체는 ▲노동시간단축 ▲주 52시간 제도 시행 대비 ▲9월까지 드라마스태프 표준근로계약서·표준인건비 기준 마련 및 현장 적용 등에 합의했다.

“작년 연말까지만해도 방송사와 제작사가 지부와 대화하려 들지 않았어요. 지부는 직접 제작현장을 찾아가 스태프들의 노동환경을 살폈고, 환경이 양호한 드라마 현장에는 커피차를 몰고 가기도 했죠. 이런 노력 덕분인지 처음에는 무조건 반대하고 짜증 내던 사람들까지 시간을 내주고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기 시작했어요. 느리지만 천천히 변화가 이뤄지고 있어요. 신이 나죠.”

김 지부장은 “조금씩 성과가 나고 있지만 갈길이 멀다”고 했다. 협의체에는 지상파 3사만 참여했고, 케이블·종합편성채널 등이 빠져 있다. 지부는 2020년까지 모든 드라마 현장에 표준근로계약서를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또 드라마뿐 아니라 시사·교양·예능 등 모든 방송 분야에 표준근로계약서를 도입하고, 독립 PD 등 프리랜서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예전에 길거리에서 밤샘 촬영을 하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돈도 많이 받고 연예인도 보고 좋겠다’며 한마디씩 했어요. 하지만 방송 스태프는 일당 외의 추가수당을 전혀 받지 못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억울한 생각이 들다가도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죠. 앞으로는 방송 스태프가 처한 노동환경을 더 적극적으로 알려나갈 예정입니다. 모든 방송 스태프가 노동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찾을 때까지.”

 

[신영빈 청년기자(청세담 10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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