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공동 우승 거머쥔 에누마 이수인 대표 인터뷰
스스로 문해력 키우는 교육용 게임 ‘킷킷스쿨’ 개발
15개월간 경진대회 결승전, 아프리카 오지서 실험
기기 작동도 서툴던 아이들, 글·셈 발전 모습에 뿌듯
“난민·청각장애 아동 위한 교육 앱도 만들고 싶어”
총상금 1500만달러(약 180억원). 지난 2014년부터 5년간 진행된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Global Learning XPRIZE)’에서 한국 교육 스타트업 에누마가 영국 비영리단체 원빌리언과 함께 공동 우승을 차지했다.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는 미국 비영리재단 엑스프라이즈가 진행한 세계 최대 비영리 경진대회.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대회 상금 전액을 후원해 화제가 됐다.
전 세계 아동 문맹 퇴치를 주제로 진행된 이 대회에는 각국 198개 팀이 참여했다. 에누마는 태블릿 기반 교육용 게임 ‘킷킷스쿨’로 정상에 올랐다. 글자와 숫자를 모르는 아이들이 선 긋기, 퍼즐 만들기 등 단계별 게임을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2학년 수준의 수리·문해력을 갖추도록 구성한 앱이다.
지난 15일(이하 한국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구글 신사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우승 트로피를 받은 이수인 에누마 대표는 “우승이라는 타이틀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은 것”이라며 “국제사회가 오랫동안 매달렸는데도 퇴치하지 못한 개발도상국 문맹 문제를 해결할 길을 제시했다는 점이 기쁘다”고 말했다. 시상식 사흘 뒤인 18일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이수인 대표를 만났다.
“아프리카의 곤충, 동물 콘텐츠에 담는 등 현지화에 주력”
“돌이켜 보면 에누마도, 주최 측도, 참 독했던 것 같습니다(웃음).” 5년간 매달린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에 대해 이 대표는 이렇게 자평했다.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의 최종 후보 다섯 팀은 지난 2017년부터 1년 3개월간 탄자니아 300개 마을을 대상으로 아동의 학업 성취도 변화를 살펴보는 시범 사업으로 승부를 가렸다. 주최 측은 각 팀의 학습 소프트웨어가 마을 아이들의 학습 성취도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측정했다. 후보 팀들은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마을에 들어갈 수도, 아이들의 학습 진도나 성취도 데이터를 확인할 수도 없었다.
“마을마다 태블릿 충전용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마을 주민 한 명씩을 관리 담당자로 정했어요. 엑스프라이즈는 담당자들에게 ‘아이들에게 어떠한 조언이나 충고 없이 충전만 해줘야 한다’는 지침을 내렸어요. 동일한 조건에서 각각 앱의 성능만 평가하도록 엄격히 관리한 덕에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어요. 마을 상황을 알 수 없어 조금 답답하긴 했지만요.”
이수인 대표는 남편 이건호 공동대표와 함께 지난 2012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에누마를 창업했다. 부부는 NC소프트 게임 개발자 출신이다. 2014년 출시한 수학 교육 앱 ‘토도수학’이 한국·미국 등 20여 개 나라 애플 앱스토어에서 교육 부문 1위에 오르면서 주목받았다. 이 대표는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뒤 ‘킷킷스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면서 “교육 앱 개발에는 자신 있었지만,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맞게 현지화하는 게 관건이었다”고 했다.
에누마는 아프리카 오지 마을의 상황에 맞는 앱을 만들기 위해 코이카·굿네이버스와 협력해 케냐·탄자니아에서 자체 시범 사업을 진행했다. “사업 초기에 ‘아이들이 태블릿은 자주 쓰는데 게임은 안 하고 비디오만 본다’는 데이터가 나와서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아프리카 출신 직원이 ‘이곳은 물자가 귀해서 아이들이 물건을 함부로 만지면 어른들에게 혼난다’고 귀띔하더라고요. ‘마음껏 가지고 놀라’는 내용의 영상을 만들어 넣었더니 아이들이 신나게 쓰기 시작하더라고요. 또 하나, 태블릿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아프리카에 사는 곤충이나 동물 등을 킷킷스쿨 콘텐츠에 담았더니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
“시장에서의 성공과 사회적 가치 창출, 동시에 이룰 것”
이 대표는 “킷킷스쿨에 깔린 그림판에 아이들이 쓴 글씨와 그림이 점점 발전하는 것을 보는 일이 가장 즐거웠다”고 말했다. 선 하나도 제대로 못 긋던 아이들이 다채로운 그림으로 태블릿을 채워 넣고, 투박한 글씨로 문장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 확신을 얻었다. “글과 셈을 익히는 것은 자신의 세계와 그를 표현할 도구를 갖는 일이에요. 읽고 쓰게 된 아이들은 장래 희망에 선생님·의사처럼 공부가 필요한 직업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 놓인 모든 아이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성장하도록 돕는 가장 좋은 무기는 ‘디지털 기술’이라는 것이 이 대표의 신념이다.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를 개최할 때 ‘태블릿을 보급해 아프리카 교육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게 서양 중심적인 발상’이라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아프리카 아이들에게도 선진국 아이들이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최고의 기술을 주고 싶고, 동등한 디지털 경험을 주고 싶어요.”
이 대표는 유료 앱인 토도수학과 무료로 제공하는 킷킷스쿨의 지향점이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학교나 교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배울 수 있게 하자는 것이 두 앱의 공통점이다”며 “모든 아이가 자신이 놓인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학교에 가기 어려운 난민이나 청각장애 아동을 위한 교육 앱도 만들고 싶습니다. ‘착한 일’은 비영리단체가 하고, 일반 회사는 ‘돈만 번다’는 건 낡은 생각이에요. 사회에 기여하면서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는 기업이 에누마의 지향점입니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