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7일(금)

[도시재생, 길을 묻다] 마을의 가려운 곳 긁어줘야, 지역이 살아남는다

[도시재생, 길을 묻다] ④소셜벤처·협동조합이 도시를 재생한다

지난 6~7일 로컬라이즈 군산에서 외국인 여행객을 위한 국내 여행 가이드 사업을 준비 중인 ‘소도시(so.dosi)’팀이 아이디어를 직접 실행해보는 액션데이를 진행했다. ⓒ로컬라이즈 군산

‘정부 지원이 끊기고 나면 그다음엔 어떡해야 하나….’

최근 전국적으로 도시재생 사업이 본격화되고 있지만, 동시에 사업 종료 이후를 걱정하는 활동가와 주민이 늘고 있다. 정부 보조금이 투입되는 3~4년 내에 지역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지역 활동가들은 “정부가 영원히 보조금을 지급할 수도 없고, 또 그걸 바라지도 않는다”면서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을 위해서는 행정기관의 손이 닿지 못하는 곳까지 맡을 수 있는 지역 기반의 사회적기업·소셜벤처·협동조합이 뿌리내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역 콘텐츠 발굴하는 사회적기업…마을과 마을을 잇다

사회적기업 ‘인디053’은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문화예술 단체다. 이들은 지역 쇠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을 이야기와 개인의 다양한 역사 등을 발굴해 콘텐츠로 만들어낸다.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깨치게 하고, 이를 문학 콘텐츠로 연결하는 식이다. 칠곡에서는 할머니 400여 명이 문해 교육을 받고 있다. 평균 연령 78세. 뒤늦게 글을 깨친 할머니들은 직접 쓴 시는 지난 2015년 ‘시가 뭐고’라는 이름으로 출간돼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다. 또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빨래터 노래를 채록해 마을 연극단 무대에 올리기도 한다.

마을마다 차별화된 콘텐츠는 마을 공동체 활동의 기반으로 작용한다. 이창원 인디053 대표는 “현재 칠곡의 인문학 마을 25곳 가운데 9곳이 아파트 마을”이라며 “농촌 어르신들은 아파트 마을 주민에게 텃밭을 내놓으시고, 아파트 마을 주민들은 농산물을 직거래로 구입하면서 서로 교류한다”고 말했다.

효율적인 도시재생 사업을 위해 ‘행정의 무관심’을 주문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윤주선 건축도시공간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지역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일률적 재생 사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행정기관의 무관심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꼽는 대표적인 도시재생 성공 사례는 일본 히로시마의 자전거 호텔 ‘오노미치 U2’다.

“히로시마현 오노미치시가 시 소유의 해운 창고를 지난 2014년 지역 청년들에게 장기 임대한 케이스입니다. 오노미치시는 기획, 설계, 시공뿐 아니라 유지 관리까지 모두 청년들에게 맡겼습니다. 청년들은 자신들의 아이디어로 자전거 호텔을 만들었고, 지금은 전 세계 라이더들의 성지로 완전히 자리 잡았습니다.”

SK E&S는 언더독스와 함께 전북 군산에서 소셜 벤처 육성 프로젝트 ‘로컬라이즈 군산’을 진행하고 있다. ⓒ로컬라이즈 군산

정부 중심에서 민간 중심으로…소셜벤처 이어 대기업도 합류

충남 천안 지역의 도시재생도 눈길을 끈다. 천안은 지난 2014년 도시재생 선도 지역으로 선정된 지역인데, 사업 초기만 해도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을 비롯한 구성원이 다섯 번이나 교체될 정도로 부침이 많았던 곳이다. 이후 주민들이 협의체를 구성했고, 이를 돕는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이 나타나면서 사업을 제대로 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었다.

천안 도시재생의 중심에는 ‘청년’이 있다. 도시재생 전문 협동조합 ‘천안청년들’은 청년들에게 지역의 발전 가능성을 전파하는 동시에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사업도 펼치고 있다.

“천안 지역에만 대학 11곳에 10만명이 넘는 젊은 청년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천안 지역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청년을 위한 좋은 지자체 사업이 있어도 대학생들은 몰라요. 그게 반복되다 보니 지역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게 되는 거죠.”

최광운 천안청년들 대표는 천안 지역의 대학교에서 ‘천안학(天安學) 강의’를 하고 있다. 천안학은 천안 지역의 역사, 인문, 지리, 문화, 산업 등 천안의 정체성과 발전 가능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반응은 뜨겁다. 최근에는 소셜 벤처와 사회적기업 창업에 대해 자문을 구하는 대학생들이 부쩍 늘고 있다. 천안청년들이 운영하는 ‘청년복덕방’에서는 원도심에서 사업을 시작하려는 청년들에게 임대 정보와 함께 무료로 지역 네트워킹, 사업 컨설팅까지 제공하고 있다.

물론 사회적경제 조직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남는다. 지역에서도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어야 도시재생 사업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천안청년들은 도시재생 사업에 민간 자본을 유치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사회적기업이나 지역협동조합은 전체 사업에서 공모 사업 비중이 큰 편이라, 자칫 사업 수주에 실패하면 식물 상태로 남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최광운 대표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건설사와 제조업, 소매업 기업들로부터 후원을 받을 받아 사업을 꾸리고 있다”며 “협동조합 형태를 띠고 있지만 조합원의 회비로 운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 주도의 도시재생 사업의 민간 영역으로 전환하기 위해 대기업이 나선 사례도 있다. 에너지 기업 SK E&S는 사회혁신 창업 교육 전문 기업 언더독스와 함께 소셜 벤처 육성 프로젝트 ‘로컬라이즈(Local:Rise)’를 진행 중이다. 민간 기업이 소셜벤처 육성을 위한 도시재생 사업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첫 번째 도시로 선정된 곳은 전북 군산. 지난 1월 시작된 이번 프로젝트에는 신사업을 발굴할 ‘인큐베이팅’ 11팀과 기존 사업을 발전시킬 ‘엑셀러레이팅’ 13팀 등 총 24팀 7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슬기 언더독스 디렉터는 “군산 지역의 청년뿐 아니라 연고가 없는 타 지역 청년들도 프로젝트에 다수 참여했다”고 말했다. 김기영 SK E&S 소셜밸류본부장은 “군산을 시작으로 전국 각 지역의 사회문제에 주목하는 맞춤형 혁신 프로젝트를 발굴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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