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폐업 원하는 개 농장 주인들을 돕습니다”

개 농장 폐쇄 지원하는 국제 동물권 옹호 단체 ‘HSI코리아’

HSI 자원활동가들이 지난 10월 4일 인천공항 화물터미널에서 캐나다로 보내질 개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다. ⓒ조성은 청년기자

지난 10월 4일 오후 1시 인천공항 화물터미널. 말라뮤트 믹스견 피터(가명)는 지난 석 달간 자신을 돌봐준 이모, 삼촌들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피터는 이날 오후 3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로 갔다. 같이 자란 15마리 개도 함께 떠났다. 피터를 비롯한 16마리의 개는 모두 국제 동물권 옹호 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 코리아(Humane Society International Korea, 이하 HSI 코리아)’에 의해 경기도 남양주의 한 개 농장에서 구조됐다. 캐나다에 도착하면 HSI 캐나다의 보호소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된다.

피터가 있던 개 농장은 HSI 코리아가 2015년부터 진행 중인 개 농장 폐쇄 프로젝트의 열세 번째 대상지다. 피터네 농장 주인 이종민(71)씨는 30여년간 신문 배급소를 운영하다 은퇴하고서 12년 전 노후대책으로 이 개 농장을 인수했다. 처음엔 돈이 좀 됐다. 하지만 갈수록 개고기 수요는 줄어들고 ‘고깃값’이 떨어져 적자가 났다. 이씨는 “이제는 개고기 먹는 사람보다 안 먹는 사람이 훨씬 더 많지 않으냐”며 “여름 한 철 장사인데 그것마저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개들도 잘 팔리지 않는 판국에, 사료 대신 식당에서 ‘짬밥(음식물 쓰레기)’를 얻어다 먹이는 게 불법이 되자 농장 운영이 더 어려워졌다. 200마리가 넘는 개들을 먹일 사료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각종 과태료까지 내고 나면 이씨 손에 떨어지는 게 거의 없었다. 이씨는 “답답했던 찰나에 이 사람들(HSI)이 농장 폐쇄를 도와줄 수 있다고 해서 반가웠다”고 했다. 캐나다로 간 17마리를 시작으로, 이씨 농장에 있던 개들 모두 미국, 영국, 네덜란드로 보내질 예정이다.

이씨네 개 농장에서 구조된 200여 마리 개들은 모두 해외의 HSI 보호소로 보내진다. ⓒ조성은 청년기자

 ◇농장주의 전업 의지만 확고하면 HSI코리아가 농장 폐쇄 전 과정 도맡아

HSI의 개 농장 폐쇄 프로젝트는 이씨처럼 농장주가 ‘농장을 폐쇄하겠다’며 HSI에 먼저 연락을 해야 진행될 수 있다. HSI가 개 농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농장주에게 폐쇄를 설득하지는 않는다. 대체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농장을 폐쇄한 이들이 다른 농장주들에게 알려주는 식으로 알음알음 소문이 난다고 한다. 이씨도 HSI의 열 번째 프로젝트 대상자의 소개로 HSI를 알게 됐다.

HSI는 농장 시설 철거부터 개들의 해외 이송까지 농장 폐쇄에 드는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 조건은 단 하나, 농장주의 ‘전업(轉業) 약속’이다. 대신 다른 동물 농장을 연다거나 동물보호에 어긋나는 업종으로 전환해선 안 된다. 김나라 HSI 코리아 캠페인 매니저(32)는 “전업에 성공한 농장주들이 여럿 나오고 있다”고 했다. “세 번째로 농장을 폐쇄하신 분은 살수차 사업을 하세요. 처음엔 차 한 대로 시작하셨는데 지금은 다섯 대로 늘렸다고 하시더라고요. 버섯, 미나리 농사를 짓는 분들도 있고 창업 대신 식당이나 공장에 취업하신 분들도 있고요.” 모든 농장주가 다른 일을 시작하는 건 아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농장주 이씨는 “칠십 넘은 나이에 새로운 걸 시작하는 건 무리”라면서 “그냥 쉬겠다”고 했다. 김 매니저는 “대부분의 농장주가 이씨처럼 나이가 많아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면서 “축산법 개정으로 개가 가축 분류에서 빠져 개 농장 운영이 불법이 되면, 고령 농장주의 업종 전환을 위한 별도 지침도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이라고 말했다.

개 농장에서 구조한 강아지의 상태를 확인 중인 김나라 HSI코리아 캠페인 매니저(왼쪽). ⓒ조성은 청년기자

 ◇농장 13곳 폐쇄하고 개 1600여 마리 구조… “개 식용 종식의 날까지 열심히 뛸 것”

HSI 코리아는 구조한 개를 임시 보호하며 병을 치료하고 필수 예방접종을 한 뒤 캐나다, 미국, 영국, 네덜란드의 HSI 보호소로 보낸다. 김 매니저는 “국내 보호소는 이미 포화상태여서 해외로 보낼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해외에서 입양이 수월하기 때문도 있다. 김 매니저는 “개 농장에 있었다는 안타까운 사연 때문인지 입양은 잘 되는 편”이라고 했다. 김 매니저는 스마트폰을 꺼내 입양 간 개들이 가족들과 산책을 하는 모습, 뛰어놀거나 잠을 자는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보여줬다. 입양 가족들로부터 개들의 근황을 주기적으로 받고 있다고 했다. “이 아이들 중엔 무시무시한 ‘투견’이라고 알려진 아이도 있어요. 하지만 좋은 가족을 만나면 순하고 사람 잘 따르는 반려견일 뿐이죠.”

김나라 HSI코리아 캠페인 매니저(가운데). ⓒHSI코리아

여태까지 HSI 코리아는 이런 식으로 총 13개 농장 문을 닫고 개 1600여 마리를 구조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국내 동물권 옹호 단체들은 전국에 1만 7000여개 개 농장이 영업 중인 것으로 추정한다. 김 매니저는 “개 농장이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뿐”이라며 “‘반려견’과 ‘식용견’이 구분되는 상황도 개 농장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 지적했다. 그는 “개 농장 단속이 심해지고 관련 규제가 하나 둘 나오면서 농장을 닫고 싶어하는 농장주들이 많아지는 추세”라면서 “어마어마하게 드는 농장 폐쇄 비용과 턱없이 부족한 인력은 큰 숙제지만 지금껏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개 식용 종식의 날’을 위해 열심히 뛰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조성은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9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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