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30일(월)
[세계 Top 10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서] ③ ‘KIVA’ 창업자 맷 플래너리
[세계 Top 10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서] ③ ‘KIVA’ 창업자 맷 플래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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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을 바꾸는 나눔 빛이 되는 대출
5년간 가난한 이들에게 1600억원 지원
2005년부터 52개국 35만명 도와
현지 돌아다니며 제안·타당성 검토
모금기간 한계선 정해 희소성 심어

미상_그래픽_KIVA_지도_20101998년 5월 6일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북쪽에 위치한 콘뎀바야 마을에 혁명군(RUF)이 들이닥쳤다. 이날 혁명군은 눈에 띄는 대로 마을 젊은이들의 손을 잘랐다. 적에게 협조했다는 이유였다. 당시 18살이었던 옌쿠 세새이(Yenku Sesay·30)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피투성이가 된 옌쿠를 오토바이에 태워 병원이 있는 수도로 3일 밤낮을 달렸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손을 되살릴 수는 없었다. 그 후 옌쿠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시에라리온에서 손이 없는 옌쿠가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거리로 나와 구걸을 시작했다.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온 것은 2006년, 사회적 기업 키바(KIVA)의 현지 파트너인 살롱소액금융신용(Salone Microfinance Trust·SMT)을 만나면서였다. SMT는 긴 시간의 면접과 심사를 통해 옌쿠의 잠재력과 자립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높이 사 30만레온(100달러에 해당)을 빌려주었다. 옌쿠는 작은 구멍가게를 열어 과자, 건포도 등의 마른 과일을 팔았다. 2년 만에 옌쿠는 자신의 대출금을 모두 갚았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발생한 수익을 재투자하여 다양한 식료품, 의류, 신발 등을 파는 가게로 사업을 확장했다.

옌쿠처럼 키바를 통해 지금까지 인생 역전을 이룬 사람은 52개국, 35만명이 넘는다. 키바는 세계 최초로 개인 대 개인(P2P) 방식의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 소액금융) 사업을 온라인으로 펼치는 사회적 기업이다. 인터넷을 통해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 자립하려는 사람들과 자신의 작은 도움으로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일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이어준다. 지난 5년간 가난한 이들에게 빌려준 돈은 1억3800만달러(1600억원)를 넘는다.

이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시스템의 주인공, 이제 겨우 32살의 나이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는 선물을 주고 있는 키바의 창립자 맷 플래너리(Matt Flannery)를 만났다. 그는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2007), 스콜 재단 사회적 기업가(2008), 드레이퍼 리차드 펠로우(2007) 등에 선정된 글로벌 리더다.

그가 키바를 꿈꾸기 시작한 것은 2003년이다. 모교인 스탠퍼드 대학에서 열린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 강연을 듣고부터다. 무하마드 유누스는 방글라데시에서 소액금융으로 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고 노벨상을 받았다.

키바 사무실 한쪽 벽에 걸린 세계지도에는 현지 파트너 기관과 소액 대출을 받아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에 대한 메모지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맷 플래너리는 “키바 직원이 1년 내내 현지를 돌아다니며 제안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이런 투명성을 바탕으로 지난 6년간 급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키바 사무실 한쪽 벽에 걸린 세계지도에는 현지 파트너 기관과 소액 대출을 받아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에 대한 메모지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맷 플래너리는 “키바 직원이 1년 내내 현지를 돌아다니며 제안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이런 투명성을 바탕으로 지난 6년간 급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의를 듣고 얼마 후 아프리카로 여행을 갔습니다. 매일 생선을 파는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하루 5~6마리의 생선을 팔아 일곱 아이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익이 안 남는다는 겁니다. 2시간만 가면 직접 생선을 싸게 사올 수 있는 데 버스표가 없어서 중간 상인에게 물고기를 산다는 거예요. 돌아오는 내내 이 말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소액대출의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구상하게 됐습니다.”

맷 플래너리는 그때부터 1년간 밤잠도 포기하며 웹 시스템을 개발했다. 아프리카 스와힐리어로 ‘연합’을 뜻하는 키바(KIVA)라는 이름을 찾아 도메인도 확보했다. 아프리카 우간다에 있는 친구 모세스(Moses)를 통해 소액 대출 희망자들을 선별해 7개의 제안서를 웹사이트에 올리고 돈을 빌려줄 사람들을 기다렸다. 2005년 4월 키바의 첫 대출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친구 집 한쪽에 모여 밤낮으로 일했던 그때가 정말 멋진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저개발국가 사람들을 돕는 일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흥분해 있었어요. 아무도 이것을 직업이나 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즐거운 놀이였어요.”

맷 플래너리는 키바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바로 투명성이다. 키바에서는 10여명의 직원이 전 세계 114개의 현지 파트너 기관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모니터링한다. 그 결과 2009년까지 단 6개 기관만이 사기를 저질러 파트너십이 해지되었다. 사기를 저지른 것이 발견되었을 때에도 키바는 그 사실을 대출자들에게 알리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러한 투명성에 대출자들은 돌려받은 돈을 다시 다른 제안서에 기부했다.

두 번째로 그는 희소성을 들었다. 많은 비영리단체 모금의 경우 모금액 또는 모금기간 등의 한계선이 정해져 있지 않은 데 반해 키바는 제안서마다 목표 모금액이 정해져 있고 그 액수에 도달한 순간 모금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희소성을 심어주니 오히려 제안의 가치가 더 높아진 것 같아요.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거죠. 나중으로 미루다가는 돈을 빌려줄 기회가 사라질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일까? 키바에는 마치 홍보대사처럼 열성을 다하는 대출자들이 많다. 개발 전문가인 조나단은 두 살 된 강아지와 함께 지난 3월부터 미국을 횡단하고 있다. 스스로 키바 행진(KIVA walk)이라 이름붙여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매일 사진, 영상, 글을 올리고 있다. 이미 12만달러 정도가 모금되어 키바 제안서들에 대출금으로 입금되고 있다.

맷 플래너리는 “키바를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들은 주변에 나누는 기쁨을 알려주려 한다”며 “키바에는 45만명이 넘는 나눔의 전파자가 존재한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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