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르포] 해외 인도적 지원 관계자 위한 실전 훈련, ‘현장안전접근 훈련’ 현장을 가다

유엔국제이주기구 현장안전접근 훈련(SSAFE) 르포

 

“쾅!”

기자가 탄 9인승 검정 카니발이 언덕을 끼고 좌회전을 하는 순간, 갑자기 주변이 쩌렁 울리는 큰 폭발음이 났다. “뭐야?” 차에 함께 타고 있던 팀원들이 혼비백산해 소리쳤다. 어디선가 흰 연기가 피어올라 시야는 점차 흐려졌다. 그 때, 옆의 언덕 위에서 반군 복장을 한 무리가 언덕을 달음박질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손에 든 무전기를 켤 생각도 못한 채 겁이 나서 몸이 굳어버렸다.

“당장 차 문 열어!” 테러리스트 중 하나가 조수석 창문으로 소총을 들이밀며 소리쳤다. 총구를 보자마자 운전대를 잡은 팀원이 문을 열어버렸다. 차에 있던 모두가 뒷목을 잡힌 채로 끌려가 풀밭에 내쳐졌다. “머리 위에 손 올려!” 두 손을 뒤통수에 대고 땅 속 깊숙이 머리를 묻었다. 누군가 다가와 손목시계와 신고 있던 신발과 양말을 거칠게 벗겨갔다. 괴한들이 쓰고 있는 헬멧을 두드리며 “여기 뭐 하러 왔느냐”고 고함쳐댔다. 사지가 덜덜 떨렸다. 

“UN에서 왔다고? 고개 들면 바로 총 맞을 줄 알아. 누워서 기도나 해.”

타고온 차량을 뺏기고 풀밭에 눕혀진 참가자들. 실제와 같은 상황 속에서 공포를 느꼈다. ⓒ국제이주기구

언뜻 시리아 분쟁지역 한가운데 같은 이곳은 대한민국의 한 군부대, 지난 9월 12일부터 4일간 진행된 유엔 국제이주기구 한국대표부(이하 국제이주기구)가 주최하는 ‘현장안전접근 훈련(SSAFE)’의 3일차 실전 훈련 현장이다. 현장안전접근 훈련이란, 해외 비안전 국가 및 현장으로 파견되는 정부와 군 공무원, 인도적 지원 관계자들이 위험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관련 이론과 실습을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이날 기자를 포함한 수강생 34여명은 이틀 간 배운 이론들을 활용해 가상의 미션을 수행했다. UN 현장 조사 팀 소속 직원으로서, 일정 경로를 통해 가상의 이주 캠프를 찾아가 수요 조사를 시행하는 것이었다. 이는 실제 해외 인도적 지원 현장에 파견되는 국제기구 및 NGO 담당자들이 마주하는 미션과 유사했다. 하나 다른 것은 ‘깜짝’ 위험 상황이 일어날 것이란 사실이었다.

금전적 대가를 요구하며 각종 꼬투리를 잡는 검문소를 통과한 후, 총을 든 테러리스트들이 차량을 탈취해간 앰부시(Ambush‧매복 습격)상황까지 연달아 닥치자 수강생들은 전부 얼이 빠진 모습이었다. 그 이후, 지뢰 매설 표식을 식별하고 지뢰 매설 지역을 피해 전진하는 것 등 갑작스러운 위험 상황이 연속해서 벌어졌다. 모두 전날 강의를 통해 학습한 위험 상황이었지만, 막상 닥치니 한 발짝을 떼는 일도 쉽지 않았다.

실전 훈련 중인 참가자들. 위험지역에서 일어날 법한 여러가지 상황에 대한 깜짝 시뮬레이션이 있었다. ⓒ국제이주기구

 

◇해외 나간 인도적 지원 관계자 수 900명… 이론과 실전 훈련 모두 필요해

 

“비상 상황에서는 ‘7W’를 기억하세요. 무전기로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슨 일을 했는지(What happened), 당신이 무엇을 했으며(What you did), 지금이 무엇이 필요한지(What you need),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What are your intentions)를 정확히 전해야 빠른 지원이 가능합니다.“ (UN 안보 전문가)

현장안전접근 훈련 첫 날인 9월 12일, 군부대 안 강의실. 강의를 듣는 34명 수강생들의 눈이 빛났다. 이들은 월드비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세계식량계획(WFP),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KUCSS) 등 다양한 기관 소속으로, 대부분 해외 인도적 지원 현장에의 파견을 앞두고 있거나 해당 인력을 관리하는 담당자들이었다. 강의는 훈련을 위해 방한한 세 명의 UN 안보 전문가들이 직접 맡았다. 세 명 모두 UN참모양성학교(UNSSC)에서 안보 관련 교육을 수료한 후 이라크 등 갈등 지역에서 오래 근무한 베테랑들이다.

강의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졌다. 수강생들은 심폐소생술(CPR) 실습부터 개인 안전 인지, 공격 상황에서 본부와 무전 소통하기 등 현장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비상 상황에 대한 대응 수칙을 꼼꼼히 공부했다. 군 관계자의 협조로, 실제 현장에서 쓰는 무전기와 방탄조끼, 헬멧 등 보호구들을 직접 만지고 착용해보며 사용법을 익힐 수 있었다. UN 안보 전문가의 지도하에 안전한 상황에서 총기류와 지뢰 등도 관찰했다.

방탄 헬멧과 조끼 착용법을 배우고 있는 수강생들. 한 수강생이 포즈를 취했다. ⓒ국제이주기구

“살바도르에 있을 때 액티브 슈터(Active shooter‧총기난사자)를 마주쳤는데 미처 도망갈 수가 없었어요. 수차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봤는데도 막상 실전에선 쇼크 상태가 돼버리더군요. 처음 30초는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강승헌 코이카 중남미실 과장)

테러, 급조폭발물(IED), 매복 습격, 납치, 강도 등 위험상황별 대처법도 배웠다. 영화 속에서나 들어봄직한 일들이 인도적 지원 담당자들에게는 현실이었다. 아프리카 현지 지원 사업을 하는 모 기관 소속 수강생은 “현지에서 일어난 테러로 실제 부상자가 나온 적도 있어 특히 이런 훈련에 대한 니즈가 있다”고 말했다. 한 UN 안보전문가는 “언제든 위험 상황이 닥칠 수 있음을 항상 고려하고 있어야 한다”며 “안전 훈련은 ‘복싱’과 같아서 계속해서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해외에 파견된 우리나라 인도적 지원 관계자들의 수는 900여명. 놀랍게도 이중 대다수는 적정한 교육과 실습 경험 없이 현장에 파견된다. 코이카(KOICA)와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를 비롯해, 일부 대형 NGO들이 자체 또는 사설 기관의 프로그램을 통해 안전 교육을 시행하고 있지만 전수가 앉아서 듣는 이론 교육 위주다. 나머지 기관은 이마저 거치지 않은 채 현지로 인력을 보낸다.

수강생들이 직접 매설된 모형 지뢰를 찾아보는 실습을 해본 뒤, UN 안보 전문가가 지뢰 식별 방법을 한 번 더 강의하고 있다. ⓒ국제이주기구

수강생인 국제개발협력 전문가 박선희씨는 “연구를 위해 치안이나 정세가 불안한 국가들을 많이 다니는데도 이런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잘 없었다”며 “기존 프로그램은 2~3시간 이론식 강의에만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실전 훈련까지 시행하는 프로그램은 현장안전접근 훈련이 유일하다. 한국 뿐 아니라 이라크, 요르단, 세네갈, 레바논, 두바이 등 수많은 국가들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2015년부터 3년째 무료로 진행돼왔다. UN참모양성학교와 UN 보안국(UNDSS)이 훈련 커리큘럼을 구성하며, 미국국제개발처(USAID)가 예산을 지원한다.

박미형 국제이주기구(IOM) 소장은 “국내는 지금까지 이런 훈련이 전무했고, 해외에서 접할 수 있는 사설 기관의 교육은 비용이 1인당 2500~3000불에 달할 정도로 비싸다”며 “전 세계적으로 테러 등 안보 위협이 심각해지는 이때, 인도적 지원 담당자들이 실제 같은 상황에서 대응 역량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군부대와 협력해 훈련을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훈련 또 훈련…4일간의 실전 경험으로 자신감 생겨

 

“살려주세요! 내 팔! 피가 엄청 나요!”

“이분부터 처치해야할 것 같아요. 어떡하죠? 구급상자에 지혈대가 없는데.” 

풀밭에 누워 비명을 지르는 기자의 옆으로 수강생 한 명이 다가왔다. 그는 ‘동맥 출혈’, ‘왼팔 절단’이 적힌 부상 팻말을 보고 당황한 듯 연신 주위를 살폈다. 치료팀의 팀장도 옆에 서서 이를 지켜봤다. “출혈 부위를 높게 하고, 지혈대가 없으면 허리 벨트로 대신할 수 있어요. 팀장은 가서 전체 부상자 수와 치료 우선순위부터 파악하세요.” 상황을 관찰하던 UN 안보전문가가 조언하자 팀장은 황급히 자리를 떠 다른 부상자들을 살폈다. 

치료팀 역할의 참가자가 기자의 가상 부상 상태를 확인한 뒤,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국제이주기구

현장안전접근 훈련 마지막 날, 수강생들은 가상의 응급 상황을 설정한 뒤 부상자와 치료팀 둘로 나뉘어 강의에서 배운 응급 처치법을 실습했다. 기자는 10여명의 수강생들과 함께 부상자 역을 맡았다. 왼쪽 팔이 절단된 응급 환자 역이었다. 사방에서 10여 명이 고함치는 아비규환의 상황. 전체 상황이 종료되자 치료팀도 부상자들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온몸이 흙과 땀으로 범벅이 돼있었다.

4일 간의 훈련이 끝난 후, 풀밭과 돌밭을 구르며 온갖 상황을 겪은 수강생들의 눈빛은 사뭇 달라져 있었다. 수강생 중 하나가 “집에 가서 보니 다리에 멍이 네 개나 들어있더라”고 하소연할 만큼 다들 크고 작은 상처를 남았지만 동시에 ‘자신감’도 얻었다. 기은재 사단법인 피난처 담당자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르완다 지역에 주로 있지만, 언제 어디가 위험 지역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실전 경험을 하고자 훈련에 참여했다”며 “이제는 실전에서도 얼어버리지 않고 잘 대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김야야 한국개발전략연구소 선임담당관은 “검문소 상황에서 군인들이 신분증을 요구했는데 나도 모르게 ‘본부에 신분증을 두고 왔다’는 임기응변으로 대처했다”며 “이런 훈련에 참가하지 않았으면 실제 상황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담당자는 “아무리 강의를 들어도 실전 상황에서 배운 대로 할 수 있을지 막연했는데 이제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 상황에 대비해 ‘보험’을 든 느낌”이라고 말했다. 강승헌 코이카 중남미실 과장은 “UN 뿐 아니라 한국형 교육프로그램도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밝혔다.

훈련 중에는 모든 상황마다 UN 안보전문가가 직접 코칭하며 수강생들을 살피고 대처법을 교육했다. ⓒ국제이주기구

UN 안보 전문가는 “이런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닥칠 수 있는 사고나 위험 요소들을 제대로 모를 수밖에 없다”며 “해외로 가는 인도적 지원 담당자들에게는 이런 훈련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훈련처럼 군과 MOU를 맺어 시행한 것은 관계 기관뿐 아니라 한국의 인도적 지원 담당자들에게도 진일보한 경험”이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직원들에게 스스로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다양한 훈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박미형 소장은 “현장안전접근 훈련은 받은 이에게 정말 도움이 되고 현장에 있는 분들의 요구가 높기에 지속을 위해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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