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페미니즘 잡지 ‘이프(if)’ 유숙열 대표&조박선영 편집장 인터뷰
창간 20주년 기념 단행본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 발간
1997년 여름, 결사항전의 태세로 등장한 잡지가 있다. 그 이름은 ‘이프(if)’.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센 언니가 되는 국내 최초 페미니즘 잡지였다. 그러나 이후 인터넷을 기반으로 수면 위로 등장한 페미니즘 운동은 노골적인 공격에 몰려 고립되고, 페미니스트를 향한 혐오는 외환위기와 군 가산점제 위헌 판결 등을 거치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같은 혼란 속에서 2006년 이프는 폐간됐고, 페미니즘 또한 숨을 죽였다.
그리고 2016년 5월. ‘여성혐오’의 광풍과 함께 페미니즘이 다시 불타올랐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기폭제가 됐다. 그동안 쌓여온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와 범죄에 대한 울분은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을 탄생시켰다. 페미니즘 온라인 커뮤니티 ‘메갈리아’가 등장하고, 온라인 플랫폼이 새로운 연대 방식을 제시하며 오히려 페미니즘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센 언니’부터 귀갓길이 무서운 보통의 여성,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남성들까지, 많은 이들이 스스로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했다.
이에 이프도 다시 나섰다. 올해 창간 2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페미니스트들의 고민, 이념을 담은 ‘고백서’를 발간한 것.
‘왜 지금 페미니즘인가?’ 이프 창간사 제목이다. 지난달 14일 이프 편집국에서 만난 유숙열(64) 이프 대표와 조박선영(41) 편집장에게 20년이 지난 지금, 이 질문을 던졌다.
◇페미니즘과 함께한 20년
이프는 남성 지식인들의 폭력적 성차별에 대항해 탄생했다. 1997년 이문열 작가가 ‘선택’이라는 책을 통해 주인공 ‘장씨 부인’의 입을 빌려 공지영, 이경자 등 여성 작가들의 이혼 경력을 비난하면서 현대 여성들을 힐난한 것. 이에 유숙열 대표는 “페미니스트들에게 도전한 것이니 이프를 창간해 응전했다”고 표현했다.
-왜 이프를 창간했나요.
유숙열(이하 유): “이 작가의 책이 아니더라도 이프 창간은 이미 결정돼 있었어요. 그런데 이 작가가 불을 붙였달까. 남산만한 배를 들이밀며 젠 채 하는 남성 지도자들한테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신문사에 오래 다니는 동안, 기자, 사장, 편집국장, 원로 언론인들을 보고 깨달은 거죠. 그 사람들이 여자를 동료나 기자로 보지 않았어요. 구색 맞추기에만 이용할 뿐, 권력을 주거나 승진을 안 시켜. 원로 언론인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한 신문사 사장으로 있으면서 나를 정리해고 하려고 했어요. 나이 마흔에 차장이고 여성 관련한 이슈를 계속 던져왔는데도, 그 사람 눈에는 내가 기자가 아니라 ‘일개 여직원’인 거야.”
1세대 페미니스트 언론인인 유 대표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 연루돼 안기부에게 고문을 당하고 합동통신에서 해직되는 등 고초를 겼었다. 이후 국내에서 기자일을 이어 나가기 어려워지자 미국으로 가 페미니즘을 공부했다. 국내로 돌아온 이후 막 창간한 문화일보에 합류했지만, ‘노조의 선봉장’, ‘페미니즘을 외치는 이단아’로 낙인 찍혔다. 결국 1997년 여름 유 대표는 사비를 들여 국내 최초 페미니즘 잡지, ‘이프’를 만들게 됐다.
유: “미국에서 페미니즘 공부할 때부터 내 소망은 한국에서 페미니스트 저널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여성의 욕망을 아는 잡지’를 콘셉트로 잡고 ‘웃자, 놀자, 뒤집자’를 이프 정신으로 내걸었죠. 여성문화예술기획의 출판 분과 사람들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아 십시일반으로 돈을 내서 시작했어요. 미스코리아 반대 운동도 하고 페미니즘 관련 책 출판도 했습니다.”
조박선영(이하 조박): “인간을 계속 살게 하는 건 욕망이거든요. 여성들이 자신의 욕망을 없앤 채 아내, 엄마로서 타인의 욕망을 채워주는 존재로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여성잡지들은 남편을 꼬시는 법, 아이를 영재로 키우는 법, 연예인 가십, 요리 레시피 등으로 가득 차 있고, 여성학의 담론은 너무나 현학적이라서 격차가 컸어요. 우리는 지식인 남성의 성희롱, 여성의 오르가즘, 욕망, 남자들을 위한 요리 레시피 등 많은 사람들이 읽기 쉬우면서도 메시지를 던지는 주제들을 다루면서 그 간극을 메우려고 했어요.”
창간호를 5만부 찍어내며 시작한 이프는 ‘안티미스코리아페스티벌’, ‘밤거리를 허하라’ 등의 퍼포먼스를 벌이며 여성의 성상품화, 왜곡된 성윤리 등 페미니즘 의제를 던졌다. 조박선영 이프 편집장은 “이프가 뭔가를 했다 하면 신문에 났고, ‘이프를 끼고 다니는 여자는 무서워서 건드리지도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던 이프가 2006년 36호를 마지막으로 완간했다. 이후 웹진 형태로 그 명맥을 이어갔지만 사람들의 관심에선 서서히 멀어져 갔다.
조박: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점점 약해지기 시작하더니 이후 완전히 관심 밖으로 밀렸어요.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페미니즘이냐는 것이었죠. 2000년에 입사한 저는 정점에 오른 이프도, 색이 바랜 이프도 모두 봐온 셈이에요.”
그리고 2015년. ‘이프 언니’들이 돌아왔다. 조박선영 편집장과 유 대표는 2015년 홈페이지(www.onlineif.com)를 새로 만들고 종로 인쇄소를 오가며 36권의 잡지를 PDF 파일로 만들어 저장하면서 20년간의 페미니즘의 역사를 복구했다. 같은 해 4월엔 조박선영 편집장, 유숙열 대표, 박미라 전 편집장 등이 팟캐스트 ‘웃자 뒤집자 놀자’ 채널을 만들었으며 20~30대 여성 작가, 저널리스트, 페미니스트 활동가를 불러모아 저변을 넓혔다.
◇왜 지금 페미니즘일까?
유: “이프는 죽지 않았어요. 다만 숨 죽이고 다시 일어설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죠. 그동안 22권 페미니즘 단행본들을 출판해 왔어요. 2014년에 조박선영도 돌아왔겠다, 우리 이프 멤버들이 뭔가를 해보자고 한 게 팟캐스트였죠.”
조박선영 편집장은 2000년 취재 기자로 이프에 입사했다. 처음엔 “웃자, 놀자, 뒤집자”며 요란하고 활기찬 이프에서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군 가산점 문제 비판, 여성의 욕망을 다룬 ‘호스트바 잠입취재’, 남성 중심적인 포르노 문제를 다룬 ‘포르NO!’… 충격적이면서도 문제의 본질을 꼬집는 날카로움이 국내 유일 페미니즘 잡지의 프리미엄을 높였고 그런 잡지사 기자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힘이 빠져버린 2004년, 조박 편집장의 체력도 서서히 떨어져갔다. ‘내가 뭘 할 수 있지?’라는 삐뚤어진 무기력함과 냉소가 그를 잠식했다. 그는 여성가족부 포털 사이트 ‘위민넷’의 콘텐츠 담당자로, 페미니즘 연극 대본의 작가로 입봉하는 등 이프가 아닌 다른 곳에서 페미니즘을 하려 애썼다. 그렇게 일과 육아를 병행한 지 7년. 조박 편집장은 “무슨 정신으로 살아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혼돈의 시간을 보냈다”면서 “엄마와 아내, 여성운동가의 역할까지 해내려니 내 안의 분열이 그치지 않았는데, 세월호 사건이 계기가 돼 이프로 돌아왔다”고 이야기했다.
조박: “세월호 침몰 사건이 일어났던 2014년 이프에 돌아왔어요. 페미니즘의 차원을 넘어 세상이 잘못 돌아간다는 걸 알리고 싶었고, 그래서 팟캐스트를 시작했어요. 이후 사람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미쳐 돌아가는 세상, 우리 한번 고쳐보자’고 떠들었습니다. 이제 이프 팟캐스트는 올해 상반기 400여명의 독자가 정기적으로 듣는 채널로 자리 잡았어요. 지나치게 재미만을 추구하지도 않으면서 나름 정보도 충실한, 페미니즘 입문을 위한 제법 괜찮은 채널로 인식되는 중입니다.”
-다시 돌아온 입장에서,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후배 운동가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유: “만감이 교차해요. 그동안 왜 목소리를 내지 않았는지 답답한 적도 있었지만, 우리 때는 도저히 생각지도 못한 기발한 방법으로 여성 운동을 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 후배지만 존경스러워요.”
조박: “요즘 페미니즘 운동은 참 다양한 것 같아요. 메갈리안, 워마드와 같은 인터넷 여성 커뮤니티 활동으로 세력을 모은 뒤 오프라인 퍼포먼스, 입법 청원, 길거리 시위 등 형태도 다양하고요. 미러링(여성혐오가 드러난 글을 거울로 비추듯 역으로 남성에게 적용시켜 혐오의 실체를 드러내는 행위, 예를 들어 ‘여자는 3일에 한 번씩 패야 한다’는 말을 남자로 바꾸어 말하는 것), 여성 대상 몰카 범죄 적발, 리벤지 포르노(헤어진 연인에 대한 복수심으로 온라인에 성관계 동영상 게재하는 범죄행위) 없애기 운동 등 내용 또한 다채로워졌습니다.”
유: “우리 세대에는 운동권이 여성운동을 함께하는 경우가 많았죠. 페미니즘은 행동과 동시에 신념이었어요. 길게 보려면 페미니즘 자체를 생활화하고 즐겨야 하는데 시대상황상 그럴 수 없었거든요.”
조박: “그런데 요즘 친구들은 참 재기발랄해요. 이데올로기로써의 페미니즘에서 나아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생활 페미니즘으로 진화했죠.”
-요즘 여성 혐오 범죄가 사회 문제예요. 페미니즘이 마냥 즐거운 것이 아니게 됐어요. 페미니즘의 도래가 필연적이라는 의견도 많습니다.
유: “90년대는 운동권 선배들이 페미니즘 운동을 단체화, 조직화했다면 지금은 ‘절실의 페미니즘’이에요. 요즘 2030세대를 두고 ‘삼포세대’, ’N포세대’라고 하잖아요? 살기 힘들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 범죄’는 늘어난다고 해요. 그 중 여성들은 쉬운 범죄 표적이 되고요.”
조박: “전통 사회에선 남성이 주도권을 잡았기에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누렸던 특권이 있었죠. 현대 사회는 어떤가요? 살기는 팍팍한데 능력 있는 여성들이 늘어나 한 자리씩 차지하는 일이 많아졌죠. 원래 자기 자리로 여겼던 남성들에게 성공한 여성은 눈엣가시가 됐고, 경쟁에서 도태된 남성들의 분풀이 대상이 됩니다. 이것이 여성 혐오 범죄 증가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주요한 범죄 유발인자가 된다는 겁니다.”
유: “‘절실의 페미니즘’은 더 이상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만난 페미니즘이라는 거예요. 결혼, 출산, 연애, 취업, 취미생활 등 예전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사회에서 ‘안전’이라는 최후의 보루까지 내어주는 비극적 상황이라는 거죠. 대표적으로 강남역 10번출구 살인사건만 봐도 알 수 있죠. 요즘 젊은 여성들은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페미니즘을 외쳐요.”
유 대표와 조박 편집장은 후배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을 적극 지지, 응원하면서도 절실의 페미니즘을 할 수밖에 없는 현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동시에 여러 갈래로 나눠졌다 모이고 다양한 주제로 재잘대는 페미니스트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유: “다양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대한민국 페미니즘의 바로미터이자 미래예요. 이들은 페미니즘이 다양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논쟁하고 연대합니다. 페미니스트는 여전히 사회 비주류이자 소수예요. 분열해선 명맥을 이어 나갈 수 없어요. 건전한 비판을 통한 발전, 설득과 토론을 통한 단단한 연대, 이런 게 대한민국 페미니즘을 지속해 갈 수 있는 힘입니다.”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되는 그날을 위해
유 대표와 조박 편집장의 인터뷰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말은 ‘생존을 위한 페미니즘’, ‘절실의 페미니즘’. 이프 20주년 기념으로 발간된 단행본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 또한 여성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담았다.
-20주년 기념 단행본이 나왔어요. 집필진이 무려 26명이나 되네요. 섭외부터 집필 과정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네요.
조박: “처음엔 잡지 형태로 출판하려 했어요. 그런데 취재에 공력이 많이 들기에 단행본으로 냈어요. 필진은 과거 운동을 같이 했던 동료, 팟캐스트에 출연했던 이들 위주로 모아서 섭외는 어렵지 않았고요. 페미니즘 액션그룹 안현진 활동가, 하예나 디지털 성범죄 퇴출 운동가 등의 젊은 여성운동가들부터 ‘82년생 김지영’의 저자 조남주 작가, 유숙열 대표, 박미라 이프 초대 편집장, 황오금희 여성신문 편집장 등 굵직한 선배 운동가들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페미니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책 제목이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이에요. 무엇을 고백하나요?
유: “26명 집필진들의 고백이죠. 페미니스트로서의 자아성찰일 수도 있고 사회 고발, 아픈 과거에 대한 고백, 미래 세대를 위한 조언까지 다양합니다. 그러나 ‘왜 내가 페미니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나’라는 질문은 공통적입니다.”
-대답이 궁금하군요. 집필집마다 다르던가요?
조박: “아뇨. 대부분 ‘자의로 페미니스트가 되진 않았다’고 말해요. 생존을 위해, 이 세상을 살아나가기 위해서 발버둥치다 보니 페미니스트가 되어 있더라는 거죠. 저 또한 그래요. 대한민국은 여성들에게 매우 불친절해요. ‘아이를 출산하라’면서 여성들을 다그치지만 정작 출산을 위한 환경은 조성해 주지 않죠. 오로지 여성의 희생만을 바래요. 여성 사회 진출은 어떤가요? 유리천장, 아니 요즘은 ‘유리 절벽’이라는 말도 있더군요. 구색을 맞추려 여성 리더를 만들어 놓고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과제를 주어서 못 해내면 ‘절벽’ 밑으로 떨어뜨려 버리는 거죠. 게다가 여성 혐오 범죄는 어떻고요. 정말 여성들이 살기 힘든 세상이죠. 이런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겁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페미니스트들의 고백을 읽으면서 놀라움 대신 공감이 새겨졌다. 친구와의 즐거운 만남 후 귀갓길을 걱정하고, 초인종을 누르는 낯선 이를 겁내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가족계획이 두려워지는 상황은 여성들에겐 일상이 됐다.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여성에게 기회를 보장하라’고 많은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쉽사리 변할 것 같지 않은 세상.
유 대표는 이럴 때일수록 분열과 대립 대신 화합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성은 물론 남성과 성소수자 등 모든 이의 평등을 부르짖는 이념이 페미니즘이라는 것.
유: “온순해지라는 건, 타협하라는 게 아니라 분노의 대상을 바꾸라는 거예요. 남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적이 아니에요. 차별의 적은 사회구조이지. 그런 면에서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게 아닙니다. 페미니즘이 ‘가장 늦게 이루어질 혁명’이라고 하잖아요. 남성들이 겪는 성 차별 문제도 우리가 대변해줄 수 있어요. 왜? 페미니즘은 모든 부당한 차별을 반대하는 이념이니까. 성소수자의 인권도 마찬가지예요. 페미니즘은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소수이기에 겪는 차별을 반대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해요. 즉 여성들에게 안전한 사회도, 남성들에게 평화로운 사회도 우리가 힘을 합쳐야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조박: “요즘 여성 혐오에 대항해 남성 혐오가 생기고, 서로를 증오하는 반목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요. 물론 혐오가 차별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사용될 순 있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 증오를 위한 증오가 되어서는 안돼요.”
-전투적인 입장에서 돌아선 건가요.
유: “그건 아니예요. 다만 현장에서 극렬 페미니스트로 활동해보니, 한가지 깨달은 게 있어요. 여자나 남자나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라는 거.(웃음) 우리의 적은 여자와 남자 즉 개인이 아니라 사회구조야. 서로 밥그릇 싸움을 할 필요가 없어요. 오히려 같이 목소리를 내야지. 나는 남자들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여자한테 가해자의 입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남자들도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구나’ 하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남자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브의 눈이 뜨이면 삼라만상이 성차별로 보인다’는 말이 있어요. 현재 모든 게 불만족스럽겠지만 모든 걸 걸고 넘어질 순 없잖아요. 당위성을 가진 전투에 힘을 쏟았으면 좋겠어요. 그럼에도 싸울 거면 이길 전쟁을 하길 바라고요.(웃음)”
-이게 이프의 목표인가요. 여성과 남성이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는.
유: “목소리를 내면서도 화합하는 것, 힘들지. 그런데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포기하고 등지고 살면, 벽에 대고 소리치는 것과 같아요. 견해의 차이가 있어도 치열하게 논쟁하고, 끝까지 붙잡고, 페미니즘을 설득시켜야 앞으로 나갈 수 있어요. 페미니스트냐, 아니냐가 성별의 차이가 아닌 개인의 차이가 되는 세상.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출판, 커뮤니티, 퍼포먼스 등 여러 방식을 활용해 토론의 장을 만들어주는 일. 이게 이프의 목표입니다.”
페미니즘은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며 끝없이 진동해왔고, 그 진동에 실려 조금씩 전진했다. 이제 페미니즘은 특정 계층을 넘어 사회 전체 문제로 확장했다. 다양한 문화와 인종, 성의 공존을 과제로 삼은 오늘날, 페미니즘은 정의와 인권 문제를 개선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유 대표와 조박 편집장의 말처럼 여성뿐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많은 이들이 페미니즘을 배우고 대화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