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TEDFest 참관기 (하)] TED가 시크릿 연사를 두는 이유

TEDFest 참관기 (하)

사전에 미리 공개하지 않는 연사

2017 올해의 시크릿 연사 프란치스코 교황

TEDFest 둘째날 저녁, 네번째 세션의 주제는 건강, 삶, 사랑이었다. 화면에선 바티칸 시 성베드로 광장의 모습이 등장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원샷으로 담은 아름다운 사진이었다. 알고보니 작년 TED2016에서 강연한 세계적인 사진작가 스테판 와잌스(Stephen Wikes)의 작품. 곧이어 화면에 등장한 깜짝 인물은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좋은 아침입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TEDFest 현장에 스크린으로 깜짝 등장한 교황 프란치스코 ⓒ박윤아

TED가 미리 공개하지 않은 올해의 시크릿 연사는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교황은 TED2017의 주제인 ‘미래의 당신(The Future You)’을 자신의 경험담으로 풀었다. 아르헨티나 이주민 출신인 교황은 “나도 어려운 사람들 중 하나가 됐을 수 있었다”고 했다.

아픈 사람, 이주민, 수감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많은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 자신에게 질문을 합니다. 어째서 내가 아니라 저들이어야 할까요? 우리 모두에게 서로는 꼭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중략)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교황은 또 우리 모두에게 연대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밝혔다.

“당신의 미래는 현재 만나는 만남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모든 사람의 존재는 다른 사람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생이란 그 관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연대를 키워낼 수 있을까. 교황은 평등과 단결, 유연함을 강조했다.

“희망을 키우는 작은 불꽃 하나가 어둠의 장막을 깨뜨립니다. 단 한 사람만 있어도 희망은 존재합니다. 또 다른 ‘당신’과 ‘당신’으로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이 바로 혁명의 시작입니다.”

기립 박수는 꽤 오래도록 이어졌다. 곧 이어 등장한 세계은행 김용 총재와 미래 인류학자 조너선 색스도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화합과 통합은 개인으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결국 미래의 ‘당신’이 되려면 지금의 ‘우리’가 먼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드워드 스노든, 달라이라마, 앨고어 등 대대로 시크릿 연사를 둔 TED  

TED는 매년 그 해의 연사 리스트를 공개하면서 동시에 시크릿 연사를 둔다. 2014년에는 중앙정보국(CIA) 출신으로 러시아로 망명한 에드워드 스노든, 2015년에는 종교지도자 달라이 라마, 2016년에는 미 전 부대통령 앨 고어였다.

시크릿 연사를 둔 것도 인상적이지만, 교황이 등장한 시점이 더욱 흥미로웠다.’달러스트리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안나 로슬링(Anna Rosling)의 등장 직후, 프란치스코 교황이 등장한 것이다.(안나는 세계적인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의 딸이다)

달러 스트리트는 가장 부유한 가정부터 가장 가난한 가정의 일상 물건을 찍은 사진들을 하나의 사이트에 모은 프로젝트다. 칫솔, 테이블, 신발, 장난감의 모습이 등장한다.  50여개의 국가 중 빈부의 격차가 존재하는 270개 가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사진과 영상을 데이터로 감상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의 불평등을 들여다볼 수 있고, 우리가 흔히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자는 취지다.

우리가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삶을 상상했을 때 ‘경제적 수준에 따른 엄청난 차이를 보여줄 것 같다’라고 보통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침대, 가스렌지, 화장실을 비교해 보면 결국 세상 저 반대편 사람들도 우리와 비슷한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달러스트리트 홈페이지

안나는 통계적 자료에 근거, 우리가 공통된 생활 모습을 지니고 있음을 밝힌다. “희망과 연대가 결국 미래의 당신을 만드는 데 답이다”라는 교황의 말에 무게가 실릴 수 있었다.

TED는 그저 대단한 인물을 초대해 강연하지 않는다. 어느 시점에서 더 큰 울림이 있을 것인지를 계산해 선보인다. 이것은 오랜 경험이 녹아있는 TED만의 ‘큐레이션’ 힘이었다. TED의 큐레이터가 1년 넘게 바티칸을 왕복하며 준비한 것이라 한다. 현대의 기술 중심의 사회와 자본에 집중되어 있는 우리의 시선을 되돌아보기 위해 메시지에 힘을 실을 수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정한 것이라고 했다.

정교하게 잘 짜여진 하나의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보여지는 숫자와 콘텐츠에 치중하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이야기의 구성과 메시지의 힘을 가지는 것. 이것이 1000만원의 입장권을 내고도 기꺼이 TED에 참석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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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란?
‘Ideas Worth Spreading(퍼뜨릴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이라는 모토를 가진 TED는 흔히 유명인들의 강연 컨퍼런스로 알려져있다. 1984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기술(Technology)·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디자인(Design)과 관련해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를 나누는 강연 컨퍼런스이다. 1996년부터 온라인에 강연을 무료로 배포하며 ‘지식 공유’의 획을 그었다. TED2017은 캐나다 벤쿠버에서 지난 4월 22일부터 26일까지 열렸다.

박윤아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7기)

 좋은 노동, 좋은 일을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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