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목)

[협동조합으로 한달살기] 프롤로그 : “협동조합으로 한 달을 살아보려고요.”

1824년, 뉴라너크 방직공장의 공장주였던 로버트 오언은 영국을 떠나 자유의 나라 미국에 도착한다. 미국에 도착한 그는 본인의 전재산을 가지고 인디애나 주에 3672만 평의 땅을 매입해, 뉴하모니 공동체라는 실험을 시작한다. 뉴하모니 공동체에서는 함께 결정하고 함께 생산하며 함께 분배하며 살아가는 사회, 가난과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러나 5년도 되지 않아 뉴하모니 공동체의 실험은 실패하게 된다. 일치할 것만 같던 이상은 달랐고, 협동은 쉽지 않았으며 실험에 실패한 오언은 빈털터리가 되어 영국으로 돌아온다.
 
그로부터 약 200년의 시간이 흘러 먼 바다 넘어 대한민국에선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 시행되었다. 5년이 채 안 되어 1만1000개가 넘는 협동조합이 설립되었으며, 지난 5년간의 모습은 200여년전 오언의 실험과 결코 다르지않다. 함께 소비하고 이용하는 소비공동체,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주거공동체, 공동으로 생산하고 분배하는 기업, 협동조합의 실험이 이곳 대한민국에서 계속되고 있다.
 
퇴사 후 시작된 30일간의 프로젝트 : 협동조합으로만 살아볼래!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첫 직장. 필자의 일은 누군가에겐 생소한 협동조합 교육을 운영하는 일이었다.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많은 협동조합이 생기기 시작했고, 대학 내에서 대학생활소비자협동조합 활동과 협동조합 동아리 활동을 했던 필자는 자연스럽게 협동조합과 관련된 직장을 원했다. 그렇게 즐거워서, 협동조합이라는 가치가 좋아서 시작했다.
 
올해 나이 서른. 3년이 지나자 맡은 업무에도 적응했고 일도 손이 익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퇴사를 결심하였다. 그렇지만 퇴사를 했다고,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바쁘게 살아온 지난 시간을 정리하는 동시에 개인적인 휴식과 새로운 경험을 원했다.
 
긴 여행도 하고, 외국어도 배우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이들도 만나면서 뭔가 즐거우면서도 보람찬 그럴싸한 백수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문득 협동조합으로 한달을 살아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단순하게도 협동조합이 궁금해서 였다.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업무를 하며, 협동조합을 하는 많은 분들을 만났지만 정작 내 일상은 협동조합과 가깝지 않았다.
 
지금껏 먹거리는 생협보다 마트를 이용했고, 식사는 회사에서 가까운 식당을 이용했다. 바쁜 일상 속, 정작 협동조합을 찾아가며 생활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퇴사를 한 지금이라면 가능할거라 생각했다.
 

협동조합으로 한달을 살아보려고요.

 
협동조합으로 한달살기를 위한 규칙
 
망설이기보다 우선 실행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협동조합 한달살기를 위한 몇 가지 규칙을 정했다. 협동조합을 크게 세가지 범위로 규정했다. 기본법협동조합, 개별법 협동조합, 협동조합 방식의 구조를 가진 법인이다. 첫째, 협동조합을 세 종류로 범주화해 해당되는 협동조합만을 이용하기로 했다.

필자가 설정한 협동조합으로 한달살기 프로젝트의 범위. ⓒ황명연

 
둘째, 불가피하게 협동조합을 이용하지 못할 경우 사회적기업 제품을 이용한다. 사회적기업 중 협동조합 법인을 채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회적기업이 협동조합 기본법 이전에 만들어진 제도인만큼, 기존 사회적기업 중 협동조합이 아닌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기업은 의사결정 구조 내 직원 등의 이해관계자의 참여 조항이 있다. 또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협동조합이 없을 경우 이를 대체하기로 한다.
 
셋째, 협동조합이지만 한달살기의 목적과 일치하지 않는 곳은 이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하나로마트는 농협에서 운영하는 마트다. 다양한 물품을 판매하지만 하나로마트에는 협동조합 제품을 판매하거나 하지 않다. 또한 생협의 경우 일반 마트와 구분이 가능하나 하나로마트는 그 구분이 어렵다. 이와 같은 사례의 경우 이용범위에서 제외한다. 

넷째, 한달살기 프로젝트 전에 구입한 비협동조합 물품의 경우 다 사용하지 않았다면 무리하게 새로 구입하지 않는다.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불필요한 소비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치약, 칫솔 등 생필품은 다 사용한 후에 다시 구입하기로 했다. 오히려 그런 과정을 통해 기존 물품과 생협 물품간의 차이를 더욱 잘 구별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협동조합은 지도를 통해 표시한다. 거주처가 서울인만큼 대부분의 생활은 서울에서 이뤄졌다. 하루 하루 협동조합을 방문할때마다 지도에 표시했다.

필자가 30일(3월 22일부터 4월 20일까지) 동안 이용했던 협동조합 목록. 클릭하시면 구글 지도에서 장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황명연

어떻게 협동조합으로 한달을 살았냐고요?
 
‘협동조합으로 한달살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총 30곳의 협동조합을 방문 또는 이용했다. 많으면 많고, 적으면 적은 협동조합이지만 일상 속에서 협동조합을 방문하고자 노력했다. 게으르지 않았다면 더 많은 협동조합을 방문했을 것이라는 것을 굳이 부정하지 않겠다.

<방문 협동조합 리스트> 카페오아시아 사회적협동조합, 아이쿱 소비자생활협동조합, 한살림 소비자생활협동조합, 행복중심 소비자생활협동조합, 두레생협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주민생협 소비자생화협동조합, 한국화가협동조합, 여우책방협동조합, 비어랩협동조합, 이모네곱창 협동조합, 지구마을사회적협동조합, 국수나무(해피브릿지), 하이쿱, 충주지역자활센터사회적협동조합, 명랑시대청년협동조합, 좋은바람협동조합(바보주막협동조합), 와플대학, 한국택시협동조합, 달고나협동조합, 사이좋은카페, 이풀약초협동조합, 협동조합위스테이, 폴스브래드(화목바오로협동조합), 동네빵네협동조합, 그리다협동조합(어슬렁정거장), 아카데미쿱협동조합, 쿱비즈협동조합, 수협, 농협,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총 30곳)

협동조합 조합원에서부터 이사, 이사장등의 임원뿐 아니라 다양한 위치에서 협동조합을 지원하고 있는 분들도 만났다. 이전 직장에서 교육생으로 만났던 협동조합 관계자분들을 직접 운영하는 협동조합에서 만나니 새로운 느낌이었다. 협동조합에 대한 고민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셨다. 감사한 시간이었다.

바보주막협동조합에서 지인들과 함께한 술자리. 가장 오른쪽이 필자(황명연). ⓒ황명연

가장 많이 이용한 협동조합은 생협이 아닌 해피브릿지 브랜드인 국수나무다. 여러 지하철역 근처에 있던 국수나무 덕분에 무사히 한끼를 먹으며 생활할 수 있었다. 추후 프랜차이즈 협동조합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겠지만 국수나무는 정말 훌륭한 곳이다.
 

해피브릿지 협동조합의 프랜차이즈인 국수나무에서의 한 끼. ⓒ황명연

한달살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약속장소는 늘 협동조합이었다. 그러나 막상 이용할 협동조합이 많지 않았다. 여의도 근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커피 한 잔을 하기 위해 경복궁역까지 가기도 했다. 1차-2차-3차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술자리도 1차에서 멈추거나 애써 옮긴 술자리에서 잔 부딪히는 모습을 바라봐야만 했다. 때론 집으로 초대해 술을 마시기도 했다. 직접 요리를 해야했지만, 그 또한 즐거운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이를 이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가능했다. 피할 수 없는 회식에서도 끔찍히 배려해준 덕분에(?) 물 한 잔으로 자리를 버틸 수 있었다.

집에서 지인들과 함께한 삼겹살 파티. 생협에서 장을 본 재료로 상을 차렸다. ⓒ황명연

한달살기를 돌아보며
 
협동조합 한달살기가 끝난 지금, 지난 한달은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우수한 협동조합이 많았고 때론 현실 속에서 다양한 협동조합의 활동 모습을 좀 더 가까이 접할 수 있었다. 앞으로 그 협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들을 조금씩 나눠 해보고자한다. 마냥 좋을 순 없다. 그러나 무척 흥미롭고 유쾌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 협동조합으로 한달살기 프로젝트는 팟캐스트 공존공생(6월 10일 방송)에서도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으로 한달살기 팟캐스트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연구원으로 첫 사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협동조합을 컨설팅하고 교육하는 쿱비즈협동조합의 이사로 활동하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지난 3월 사표를 던졌습니다. 지금은 쿱비즈협동조합의 조합원입니다. 협동하는 청년에서 협동하는 노년이 되고 싶은, 협동조합과 사랑에 빠진 남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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