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네이버스 글로벌리더단 목소리
月평균 107만원 사교육비 공교육 질적 향상 시급…
언어 폭력도 학대의 일종, 늦은 귀갓길 등 안전 위해 CCTV나 가로등 설치도 필요
성별·나이 차별 존재해선 안돼… 모든 아동 평등한 대우 받아야
지난 13일 굿네이버스 글로벌리더단 아동 대표 8인의 자유 발언 시간엔 열기가 가득했다. 엄태익(19·광덕고 3)군의 말은 끝나기 무섭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엄군은 이어 “국·영·수 위주의 획일화된 수업을 강요받다 보니 학업 성취감이 떨어지고 아예 공부를 포기하는 친구들도 있다”며 “꿈에 맞춰서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학과에 적합한 적성을 지닌 학생을 뽑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유엔아동권리협약(UN CRC)에 가입한 지 올해로 26년째다. 하지만 현재 우리 아동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OECD 22개국 중 20위, 최하위다. 아동 학대, 사교육, 학교 폭력, 빈부 격차, 차별 등 아이들을 병들게 하는 요소가 곳곳에 산적해 있다. 아동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필요조건은 무엇일까.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굿네이버스는 아동 정책 제안 캠페인 ‘똑똑똑, 아이들의 정책을 부탁해’의 일환으로 당사자인 아동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굿네이버스 글로벌리더단 아동 대표 8명을 초청, ▲교육 ▲아동 안전 ▲아동 사회 참여 ▲아동 놀이 문화 등 4개 영역에 대해 자유 발언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꿈을 펼칠 수 있는 사회’…입시, 교육제도 바꿔주세요
우리 아동의 하루는 학교로 시작해 학원으로 끝난다. 만 2세 이하 아동의 35%, 만 5세 이하 아동은 83%가 사교육을 받고 있을 정도다. 치열한 사교육에 입시 전쟁을 뚫고 대학에 가도 그다음 관문인 취업이 걱정이다. 이날 굿네이버스에 모인 8인의 아동도 “교육 분야가 가장 해결이 시급한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적성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입시 및 교육 제도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큰 공감을 얻었다.
조은진(18·서산여고 2)양은 “대학에 가도 다들 한 번씩은 공무원 시험을 보고, 전공을 살려 취업하는 경우도 드물다고 들었다”며 “방과 후 교실, 자유학기제 등 교육 프로그램이 학생들의 적성에 맞고 진로 설정에 도움이 되도록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월평균 107만원의 사교육비, 대학 진학까지 4억원이 들어가는 높은 양육비는 아동들에게도 부담이다. 신혜지(18·안양여고 2)양은 “주위에 학원비 때문에 부모님께 미안해하거나 부담감을 느끼는 친구들이 많다”며 “학교에서 받는 공교육의 질적 향상으로 학생들도 재능을 펼치고 부모님의 부담도 줄어들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냈다.
◇아동 학대, 학교 폭력, 늦은 귀갓길…아동 안전 지켜주세요
‘서현이 사건’ ‘원영이 사건’ 등 끊이지 않는 아동 학대 역시 아동이 직면한 주요 사회문제다. 월 1회 학대 경험이 있는 아동이 전체 27.4%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굿네이버스 아동권리연구소, 2016). 특히 가정·학교 등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정신적 학대’에 대해서는 아동들의 체감 정도가 더 컸다. 8인의 아동은 “엄마가 성적표를 보고 ‘이래서 대학 갈 수 있겠느냐’고 하셨을 때 슬프고 위축감이 들었다” “우리 학교에는 아직도 언어폭력이나 약한 체벌이 남아 있다” 등 각종 경험담을 쏟아냈다.
한편 서지원(17·춘천여고 1)양은 “부모 세대는 아동 학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며 “아동 학대 예산 증가와 인프라 구축, 영국의 ‘신데렐라법’처럼 정신적 학대도 처벌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지수(17·서울세종고 1)양은 “학교에 설치된 ‘위클래스(Wee Class·학교 부적응 학생 조기 발견·예방·지원하는 교내 상담실)에서 가정 내 학대 사례도 조기 발견해 처리하는 시스템이 갖춰지면 좋겠다”는 의견도 냈다.
따돌림, 학교 폭력, 늦은 귀갓길 등 아동의 생활 반경 곳곳에 위험 요소는 숨어 있다. 아동들은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밤 11시에도 순찰을 해달라” “학교 주위에 CCTV나 가로등을 설치해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등 아동의 안전을 지켜줄 제도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성별, 나이 등 모든 차별 STOP…모든 아동 평등하게 대우해주세요
‘청소년은 학생’ ‘학생이면 학생답게’ 등 아동을 학생이라는 특정 역할로 규정짓는 사회의 관행도 아동을 옭아매는 문제다. 이현주(18·서울동양고 2)군은 “아동은 조기 교육, 선행 학습 등으로 바빠 놀 시간이 없다”며 “시간이 나도 즐길 만한 놀이 시설이 없어 대부분이 PC방을 전전한다”고 했다. 이군은 “영화·뮤지컬 등 문화생활에 드는 비용이 너무 비싸고 체육 시설도 평일 밤이나 주말에는 이용하기 어렵다”며 “여가 비용 할인과 다목적 체육 시설을 늘려 달라”고 발언해 큰 공감을 얻었다.
‘어리다’는 이유로 자기 의견을 내거나 참여할 기회를 묵살당하는 경험도 아동이 일상에서 겪는 차별이다. 강우상(17·서울국제고 1)군은 “아동 관련 안건은 아동이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어른들의 정당·단체처럼 의견을 낼 창구가 부족하다”며 “성인이 됐을 때 정치적 무관심, 무력감에 빠지지 않도록 ‘청소년특별회의’, ‘청소년사회참여발표대회’와 같은 사회 참여 기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혜지양도 “지난 촛불 집회 때도 수많은 청소년이 주체적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다”며 “청소년이 정치 등 사회 이슈에도 관심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나이뿐 아니라 성별, 지역, 학교 성적, 장애 유무 등에 대한 갖가지 차별도 해소돼야 할 문제다. 신유호(18·서울동양고 2)군은 “등굣길에 장애인 특수학교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크게 달려 있는 것을 봤는데 어린 학생들이 보면 어떤 생각을 하겠나”라며 “장애나 피부색 등에 대한 차별 없이 모든 아동이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의 목소리가 담긴 정책들은 과연 아동에게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줄까. 강우상군은 “우리의 중요한 문제를 직접 어른들에게 전달할 기회가 생겨 좋다”며 “이런 기회가 좀 더 많아졌으면 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굿네이버스 커뮤니케이션팀 어정욱 과장은 “오늘 나온 아동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정리해 청와대 또는 국회로 보내 실행을 촉구할 예정”이라며 “앞으로도 아동들의 생각을 우리 사회에 표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