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나는 70명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입니다

10년 넘게 개도국 아이들의 부모로 

70명 넘는 아동을 매달 후원하는 기부자까지

한국컴패션 해외 아동 열혈후원자 인터뷰 

 

일대일 결연이라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가족처럼 느껴져요. 실제로 저희를 엄마 아빠라고 부릅니다.

지난 2월 18일, 이들 부부처럼 꾸준한 지원으로 어린이들을 졸업(경제적 자립)시킨 후원자들이 한데 모였다. 서울 도곡동 숙명여고에서 열린 한국컴패션의 ‘아주 특별한 졸업식’에서다. 이날 행사에서 한국컴패션이 후원하는 12만명의 어린이 중 807명의 어린이가 졸업했다. 컴패션이 설립된 2003년 이후 처음으로 맺은 결실.​ 70명이 넘는 아이들을 돕는 후원자부터, 10년 넘게 기부를 이어온 이들까지…한 어린이를 성인이 되기까지 오랜 기간 키워낸 장기 후원자들을 만났다.

한국컴패션_후원아동_파올라
김고은,이홍석 부부의 후원 아동 파올라의 성장과정. 그녀는 10년 만에 멋진 성인이 되어 컴패션을 졸업했다. ⓒ한국컴패션

 

◇ 매달 12명 아동 후원, 김고은·이홍석 부부 

어릴 때 보내준 원피스가 점점 무릎까지 짧아지더군요.

김고은(49)씨가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사진첩을 넘길 때마다 한 여자아이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6살부터 17살까지 사진이에요. 파올라와 함께해온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네요(웃음).” 옆에 있던 이홍석(56)씨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부부인 두 사람은 지난 2006년부터 10년간 매달 12명의 아이들을 후원해왔다. 국제어린이양육기구 한국컴패션을 통해 맺은 인연이다. 이중 가장 먼저 부부와 인연을 맺었던 볼리비아의 파올라는 경제적으로 자립, 올해 대학 진학 예정이다. 

부부가 후원을 시작한 계기는 볼리비아에 사는 한 아동의 이야기 때문이다. 영상 속 아이는 “컴패션 센터에 가면 아무도 나를 때리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이후 이들 부부는 인도, 우간다 등 현지의 컴패션 센터를 방문해 아이들을 만나는 비전트립(Vision Trip)에 동행했다. 2009년 방문한 우간다에서는 현지에서 만난 한 살짜리 아이와 그 자리에서 바로 결연을 맺었다. 

긴 기간 이어온 후원은 아이들과의 깊은 유대로 이어졌다.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 사는 레이샤가 홍수로 집을 잃었을 때, 부부는 후원금 100만원을 보냈다. 아이는 새 집을 짓고, 쌀과 닭 등을 구매해 당장의 생활고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씨는 “후원 아동이 사는 국가에 재해가 생기면 곧바로 연락이 와서,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전달할 수 있었다”면서 “경제적 상황이 나아져 후원을 중단하게 된 아이도 둘이나 있었는데, 감사하면서도 아쉽더라”고 덧붙였다. 최근 부부는 현지를 ‘깜짝 방문’해 후원 아동들의 학교 졸업식에 참석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후원 아동들이 대학 과정까지 마칠 수 있도록 교육비를 후원할 방법도 찾고 있다. 부부의 ‘나눔 DNA’는 자녀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가족’으로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것.

“엄마와 아이가 한 아이를 후원하니 아이가 세상을 보는 눈이 훨씬 커졌습니다. 자녀들도 책임감을 느끼고 후원 아동들을 돌보며 함께 크고 있어요. 한 아이에게 생명을 주는 이렇게 가치있는 일을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평생 계속하고 싶어요.”  

 

◇ 9년간 후원 지속해 대학 입학시킨 최낙훈씨 

도시계획 분야에 종사하는 최낙훈(37)씨도 9년간 후원해온 페드로(20)를 이번에 졸업시켰다. 엘살바도르에 사는 페드로는 올해 컴퓨터 관련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페드로의 성장 과정을 오랫동안 지켜본 최씨의 소감도 남다르다. 그는 “후원 초기에는 아이가 굶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이었다”며 “후원금뿐만 아니라 페드로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경험들이 다양하게 채워진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최씨가 후원을 시작한 계기는 컴패션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는 “우리나라가 2003년을 기점으로 도움을 받는 국가에서 도움을 주는 국가로 돌아섰다”며 “전쟁 후 우리나라 전쟁고아들이 도움을 받은 것처럼 도움이 필요한 이를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씨의 도움으로 페드로는 지난 2007년부터 현지 컴패션 어린이센터에 등록돼 양육프로그램과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무사히 마쳤다. 

최낙훈씨의 후원 아동 페드로의 사진첩. 컴패션에서 아동을 졸업시킨 후원자들은 모두 아동의 성장기를 담은 졸업 앨범을 받았다. ⓒ박혜연
최낙훈씨의 후원 아동 페드로의 사진첩. 컴패션에서 아동을 졸업시킨 후원자들은 모두 아동의 성장기를 담은 졸업 앨범을 받았다. ⓒ박혜연

후원자님은 뭘 좋아하세요? 저는 여행을 좋아해요. 지금 엘살바도르의 도시들을 여행 중이에요.

그동안 페드로와 최씨는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았다. 서로 여행을 좋아한다는 공통의 취미를 두고도 계속 소통했다. 최씨는 “처음에는 엘살바도르에 대해 잘 모르고 생소했는데 사진과 편지를 보다보니 친근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언젠가 엘살바도르로 여행을 가서 페드로를 만나는 것이 그의 꿈이다. 그는 “일시적인 기부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우려면 장기적인 후원이 중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동 70명의 아빠, 정형외과 전문의 허달영씨 

허달영씨의 후원 아동 칼라의 성장 기록 ⓒ한국컴패션
허달영씨의 후원 아동 칼라의 성장 기록 ⓒ한국컴패션

정형외과 전문의 허달영(52)씨는 70명이 넘는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올해는 아동 3명을 졸업시켰다. 2013년 아내와 함께 컴패션 후원을 시작한 그는 처음부터 20명의 아이들과 결연을 맺었다. 후원 아동이 살고 있는 나라를 직접 방문한 이후 허씨는 결연 아동 수를 계속 늘리기 시작했다.

“현지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가치관이 바뀌어요. 케냐 슬럼가의 아이들 대부분이 마약촌, 매춘 업소 등에서 의미 없는 삶을 보냅니다. 그런 아이들이 컴패션을 통해 후원자를 만나고, 자립해 대학에 가는 것이죠.”

허씨는 매년 1주일씩 휴가를 내 후원 아동들의 생활환경을 보고 돌아온다. 작년에는 케냐를, 그 전에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을 직접 다녀왔다. 하루 한 끼도 겨우 먹을 정도로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을 만나고 온 뒤, 허씨는 수십 명의 아이들과 추가 결연을 맺었다. 허씨는 “현지를 다녀온 뒤, 많은 돈을 벌고 높은 직책을 갖는 데 대한 욕심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할 수 있다면 한 아이라도 더 도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변에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돈 버는 것에 혈안이 돼있는 친구들 보면 ‘인생이 그런 게 아닌데’ 싶습니다. 후원 시작하고 제 삶이 많이 바뀌었거든요.

허씨는 자칭 컴패션 홍보대사다. 지인들에게 열심히 후원을 권유한다. 돕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방법을 몰랐던 이들이 흔쾌히 후원에 동참한다고 한다. 허씨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한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며 “몇 천억원 버는 것보다 훨씬 보람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18일 졸업식 당일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를 대표하는 컴패션 졸업생 4명과 한국 후원자들이 함께한 사진. 가장 오른쪽이 허달영씨다. ⓒ한국컴패션
지난 2월 18일 졸업식 당일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를 대표하는 컴패션 졸업생 4명과 한국 후원자들이 함께한 사진. 가장 오른쪽이 허달영씨다. ⓒ한국컴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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