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엄마 3人의 창업 성공 히스토리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그 때 /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 물 한 방울 없고, /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중략) 담쟁이 잎 하나는 /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도종환 <담쟁이>
말없이 벽을 넘는 담쟁이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이들이 있다. 홀로 아이들을 키워낸 엄마로서,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한부모가정 여성가장들이다. 그중에서도 ‘희망가게’를 통해 창업에 성공해 오랜 기간 성공적으로 유지해온 사장님들이 있다. 희망가게는 저소득 한부모가정 여성가장들에 무보증 신용대출(마이크로크레딧)로 창업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2004년 1호점을 시작으로, 2017년 현재 총 303호점이 문을 열었다. 아름다운재단이 아모레퍼시픽과 손을 잡고 시작해, 13년째 지원하고 있다. 불굴의 의지와 생명력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그들. 어느덧 37차 창업주를 모집 중인 희망가게에서 새로운 희망을 피워낸 세 명의 창업주들을 소개한다.
◇3평 가게를 매출 2000만원으로…주옥자(50) 사장 이야기
10년 전, 주옥자씨는 서울 봉천동 한 홍삼 판매점의 직원이었다.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일할 수 있게 해준 곳이 그 곳뿐이었다. 영업 수완이 좋은 사장 덕에 가게는 1년 남짓 불황을 몰랐다. 그러던 중 사장이 이사를 가며 갑작스럽게 가게를 내놓았다. 주씨는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을 상황에 처했다.
그녀는 황망한 마음으로 인터넷 검색창에 ‘무담보 대출’을 검색했다. 그때 발견한 것이 아름다운 재단의 희망가게. 2006년, 주씨는 사장이 내놓은 가게를 그대로 인수하는 ‘인수창업’으로 희망가게 39호점의 문을 열었다. 홍삼을 사려는 손님이 긴 줄을 늘어설 정도로 바쁜 가게이기에 작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사장이 바뀐 후 기존의 단골손님이 전부 떨어져 나간 것. 주씨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매일같이 가게 인근 봉천역 앞에 나가 행인들에게 명함과 사탕을 나눠줬다. 상품 매입 단가를 낮추기 위해, 근처 홍삼 매장을 찾아가 공동구매를 제안하기도 했다. 아름다운재단 측의 사후관리 교육도 적극 활용했다. 주씨는 재단 내 ‘희망 경영 학교’의 영업‧마케팅 수업, 블로그 교육 등에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그 후로 4년, 주씨의 성실함은 결국 가게를 다시 일으켰다. 3평짜리 작은 가게가 전체 매출만 2000만원에 달하는 탄탄한 가게로 성장한 것. 그녀는 창업 7년째, 희망가게 창업주들 중 가장 먼저 대출을 상환한 사장님이 됐다. 가게가 자리를 잡은 뒤엔 부업으로 액세서리 조립도 시작했다. 직원이 40여명까지 늘면서 ‘스톤아트’라는 이름의 사업장도 냈다.
“이혼 후 처음으로 딸들에게 ‘엄마가 혼자인 게 언론에 공개돼도 괜찮겠냐’고 물어봤어요. 근데 애들이 말하더군요. ‘괜찮아. 우린 엄마랑 살아서 단 한 번도 불편했던 적 없어. 엄마가 당당하게 하고 싶은 것 해’라고.”
지난 2013년 아름다운재단 10주년 행사 당시, 주씨는 많은 창업주들 앞에서 스피치를 했다. 누구에게도 한부모 가장임을 밝히지 않았던 그녀가 난생 처음 용기를 내 수많은 사람 앞에 선 것.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일이 “죄도 아니지만 당당한 일도 아니다”고 생각했던 주씨는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내놓는다.
“당당하게 내가 할 일이 있고, 아이들이 그런 엄마를 자랑스러워한다면 성공한 삶이 아닐까요. 남들이 봤을 때는 거창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스스로 매일 만족하며 살아요.”
◇간호사에서 문화예술 사업가로…한명숙(41) 사장 이야기
이혼 이후 한씨에겐 세 살, 다섯 살 두 아이뿐이었다. 당시 그녀 나이 32세, 간호사로 일하던 한씨는 일순간 가장의 역할을 도맡아야 했다. 2년에 걸친 이혼 소송으로 생활고가 찾아왔다. 그녀는 생계를 위해 ‘크리스털 공예’ 업종으로의 창업 준비를 시작했다.
“당시 아이들이 많이 어렸어요. 앞으로 꾸준히 할 수 있고, 아이들한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씨는 직장 생활과 병행하며 창업을 준비했다. 낮에는 병원 근무를 하고, 밤에는 아이들이 모두 잠들고 나면 창업 정보를 찾아가며 일을 했다. 2년간 매일 3시간씩, 쪽잠을 잤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되자 직접 발품을 팔며 체계적으로 사업 구상에 나섰다. 다니던 병원도 그만두고 ‘보따리’ 싸들고 마트, 휴게소를 다니며 공예품을 납품했다. 크리스탈 공예로 창업하겠다는 목표가 뚜렷했기에, 힘들지 않았단다.
그러던 중 한씨는 지인을 통해 우연히 희망가게의 한부모가정 여성가장 대출을 알게 됐다. 그녀는 그동안의 경험을 녹여 사업기획서를 쓰고 몇 차례의 면접을 통과했다. 그렇게 4년간의 준비 끝에, 그녀는 강원도에서 처음으로 모집한 희망가게 사업에 선정됐다. 강원 1호점이었다. 한씨는 희망가게를 통해 가게 보증금 2000만원과 창업준비금 2000만원을 지원받았다.
불경기에도 한씨의 가게는 차근차근 성장했다. 특히 그녀는 공예품 판매뿐 아니라 가게에서 수공예 교육도 함께 진행했다. 고객들이 자기가 원하는 수공예품을 직접 제작할 수 있는 장소로 인식시킨 것. 그 결과, 달랑 300만원의 자기 자금만 들고 시작한 가게는 한 달에 평균 약 400만원의 매출을 올릴 만큼 탄탄하게 성장했다. 입지 여건이 나빠, 1년 이상 사업을 이어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이룬 쾌거다.
한씨는 발을 넓혀 외부 강의와 문화예술 기획 프로젝트도 병행하고 있다. 최근 2년간은 원주 소상공인진흥원의 창업학교에서 강의를 했고, 교육청의 진로교육 멘토로 선정돼 근교 학교로 강의도 나간다. 최근엔 생활예술 시민단체 ‘시민예술 창작소 수작(手作)’의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가장 힘들 때 도움을 받고 나니 마음이 바뀌더라구요. 저는 티셔츠도 만 원 이상이면 안사요. 차라리 그 돈으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재료 싸들고 가서 재능기부를 합니다.”
어려울 때 내미는 손길의 소중함을 경험한 한씨는 수익을 창출하는 데만 집중하지 않는다. 그녀는 근처의 복지관, 한부모지원센터, 다문화센터 등을 주기적으로 찾아가 공예 강의를 하는 등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강원도의 청년 예술인들과 협동조합을 만들어 사회공헌 활동도 준비 중이다. 오는 4월에는 이름을 건 공예품 개인 전시도 연다.
“아무도 우리 아이들이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것을 몰라요. 그만큼 열심히 살았어요. 앞으로도 내 이름 석자 걸고 ‘나로서’, ‘엄마로서’ 충실하게 살 겁니다.”
◇창업 멘토링 도맡은 8년차 사업가…윤정희(49) 사장 이야기
지난 2009년, 초등학생인 두 아들을 홀로 돌보던 윤정희씨 수중엔 한 푼도 없었다. 가진 것이라곤 젊은 시절 따놓았던 피부관리사 자격증뿐. 생활고에 시달리며 절실히 방법을 찾던 중, 희망가게 대출 공고를 발견한 그녀는 창업을 떠올렸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면서 윤씨는 장소 물색에 나섰다. 부동산을 다니며 동네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을 수소문했다. 그 해 12월, 윤씨는 희망가게 51호점으로 피부관리실을 창업했다. 사업 구상부터 실제 창업까지, 불과 세 달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저한테는 희망가게가 든든한 백그라운드였죠. 신용등급도 없고 자기 자금도 없는 제게 손을 내밀어 줬으니까요.”
처음 시작한 사업이다보니 어려움도 많았다. 살과 살을 맞대는 스킨십이 있는 업종이라 메르스 등 국가적 재난 때면 손님이 뚝 끊겼다. 경쟁도 치열했다. 윤씨는 그럴 때면 필요한 교육을 찾아다니며 전문성을 쌓았다. 경영교육 및 법률, 세무 컨설팅을 꾸준히 접하고, 블로그 개설과 인테리어 보수 등 각종 도움도 받았다. 젊은 시절 쌓은 피부관리사 경력도 큰 도움이 됐다. 그녀는 피부과 병원 등 의료 산업, 유통구조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전략적으로 사업을 꾸려나갔다.
윤씨는 사람을 고용하는 데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내가 피곤하면 고객도 그걸 느낀다’는 신조로 직원을 넉넉히 고용했다. 고객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 그녀의 사업 철칙 1번이었다. 윤씨는 “사업이 어려울 때나 좋을 때나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면서 고객에게 신뢰를 주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올해로 창업 8년차, 윤씨는 희망가게에서 받은 대출금을 모두 갚았다. 근처에 임대아파트도 얻었다. 초기 들쑥날쑥하던 매출도 이제 자리를 잡아 연 평균 5000만원을 번다. 어렸던 두 아들은 모두 자기 길을 찾아 대학교에도 진학했다. 이제 그녀는 선배 창업주로서 다른 이들을 돕는다. 윤씨는 창업주들의 모임인 ‘희망보따리’에서 계속 소통하며 창업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상황을 벗어나겠다’는 각오로 철저히 준비하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대신 초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해요.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한부모 여성 가장에게 피부 미용 기술을 가르치고 일자리를 나눌 생각입니다.”
창업주 3人이 말하는 창업 성공 TIP
첫째, 경험과 커리어를 쌓아라
“만약 음식점 창업을 한다면, 적어도 주위의 식당 여러 곳을 가보고 장단점을 분석하세요. 다양한 정보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합니다.” (윤정희 아름다운피부·체형 대표)
둘째, 창업 지원 기관을 적극적으로 찾아가라.
“소상공인진흥원, 지자체 창업학교 등 창업에 대해 가이드 주는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이용해보세요. 놓치고 있던 점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명숙 한스톤갤러리 대표)
셋째, 주눅들지 말고 당당해라. 엄마가 당당해야 아이가 당당하다
“아이들을 위해 나를 숨겨야한다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엄마가 당당해야 아이도 당당합니다. 엄마들이 열심히 살면 아이들도 잘 자란답니다.” (주옥자 모든홍삼 대표)
넷째, 일할 때는 CEO로서, 집에 와서는 엄마로서 충실하라
“퇴근해서 아이들이 자기 전까지는 오로지 엄마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합니다. 아이들은 엄마의 모습을 보며 성장하는 스펀지거든요. CEO와 엄마로서의 모든 역할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세요.” (한명숙 한스톤갤러리 대표)
다섯째, 창업 후엔 사업을 유지하는 것이 능력이다
“창업 후엔 몸과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고, 안하고 싶은 것들도 많습니다. 초심을 잃지 말고 끊임없이 관련 교육 찾아다니며 자기계발을 해야합니다. 노력하는 만큼 사업이 유지됩니다.” (윤정희 아름다운피부·체형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