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을 보(普)에 공 훈(勳), ‘우리’를 뜻하는 영어단어 US 가 결합된 ‘보후너스’는 청년들이 함께 사는 쉐어하우스(공동체주택)를 만든다. 서울 한복판에 숨겨진 공간을 찾아내 직접 보수공사를 하고, 함께 살 청년 입주자를 모집한다. 월세는 한 달에 30만원선, 보증금은 한 달치 월세면 충분하다. 2013년 석관동에 첫 번째 쉐어하우스를 오픈한데 이어, 올해 신림동과 길음동에도 공간을 마련했다.
보후너스를 세운 이들은 배정훈(33)·지훈(32)형제. 청년 당사자가 스스로를 널리 이롭게 하겠다는 보후너스의 뜻처럼, 두 사람 역시 자취를 하는 대학생이다. 2012년 지훈씨가 대학에 들어가고, 정훈씨와 함께 서울에 살게 되면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주거’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훈이 학교가 안암에 있는데, 근처 월세가 40~60만원선이더라고요. 좀 더 싼 방을 찾아서 점점 학교랑 먼 곳을 파고들다가(웃음) 석관동에서 2층짜리 빈 주택 하나 발견했어요.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가 80만원이었어요. 제가 지금은 교대를 다니고 있지만, 28살까지는 부모님과 함께 인테리어 일을 했거든요. 동생도 리모델링을 할 줄 아니까 품을 좀 들이더라도 수리를 직접 해서 친한 사람들이랑 같이 살면 좋겠다 싶었죠. 친구들이랑 돈을 모아 공사비랑 보증금을 마련하고, 주인분의 허락을 얻어 집 여기저기를 손보기 시작했어요. 그게 2013년 문을 연 ‘석관동 쉐어하우스’입니다.” (배정훈)
리모델링을 마친 집에서 7명의 청년들이 모여살기 시작했다. 한 달 월세를 30만원 안팎으로 정하고 집수리에 들어간 비용을 찬찬히 채워갔다. 그마저도 입주 1년이 지나면 5만원씩 낮췄다. 애초에 직접 살기 위해 손 본 집인데다, 임대사업을 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비용을 처리하고도 돈이 조금 남는 달에는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소풍도 가고 고기도 구워먹었다. 이해관계가 없다보니 집 안에서 눈치를 보거나 상하관계가 생기는 일도 없었다.
삶의 변화는 작은 것에서부터 찾아왔다. 혼자 먹던 밥을 나눠 먹고, 식재료나 남아 버리는 일이 줄어들었다. 서울에서 타향살이 하며 말 못할 서러움에 시달리던 이는 마음을 터놓을 형이 생겼다. 평소 환경 보호 활동에 깊은 관심이 있던 홈메이트 친구의 손에 이끌려 다 같이 광화문으로 캠페인을 나가기도 했다.
지훈씨는 “함께 사는 친구들이 꼭 군대 동기 같았다“면서 ”어울려 사는 데 피해만 주지 않으면 2년마다 재계약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공간이 생겨 모두 기뻐했다“고 말했다. 처음 입주했던 친구 중에는 취업에 성공하거나, 결혼을 하는 등 기쁜 일로 공간을 ‘졸업’하는 일도 생겼다.
◇형제, 청년들의 보금자리를 만들다…“함께 살며 꿈 찾고, 더 넓은 세상 나가길”
형제의 ‘석관동 살이’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형제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인 청년들에게 살 곳을 양보하기 위해서다. 주거난을 겪는 청년은 넘쳐나는데, 석관동 집이 품을 수 있는 청년은 채 10명도 되지 않았다. 한 번 해봤으니 다른 지역에도 쉐어하우스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지훈 씨는 “처음엔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같이 살면서 주거비를 아껴보자고 시작했지만, 지내보니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서로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알았다”면서 “더 많은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는데, 청년 당사자인 저희로서는 초기공사비나 보증금을 마련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방법을 찾아 여기저기 발로 뛰던 중 서울시의 사회주택(민·관 공동출자로 주거 취약계층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내놓는 임대주택) 프로그램을 알게 됐어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혁신가들에게 저금리로 대출을 해주는 한국사회투자도 소개받고요. 조직이 아닌 프로젝트 단위로 융자를 주니까, 마땅한 공간만 있으면 쉐어하우스를 늘리는 것도 어렵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배지훈)
자금과 행정지원 문제가 해결되자 거칠 것이 없었다. 두 사람은 새로운 쉐어하우스 공간을 찾았고, 길음동과 신림동에서 적절한 주택을 발견해 공사에 돌입했다. 집주인이 특별한 수요를 느끼지 못해 방치하고 있던 길음동 공간, 막대한 수리비용에 보수공사 엄두를 못 내고 있던 신림동 공간이 형제를 만나 대변신에 성공했다.
정훈씨와 지훈씨가 집을 리모델링 할 때는 하루에도 14~15시간씩 공사에 매달린다. 눈에 보이는 장판, 화장실, 벽지 작업뿐만 아니라 바닥 보일러 배관 작업까지 모두 새로 한다. 야간작업을 자주하다보니 아예 방 한 칸 치워놓고 거기서 먹고 자며, 좁은 공간에 딱 맞는 맞는 가구도 직접 짜 넣는다. 보통 정성으로는 힘들지만, 이들에게는 쉐어하우스가 곧 ‘내가 살게 될 집’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작은 일도 허투루 할 수 없다.
“석관동에 같이 1년 반 정도 살면서 쉐어하우스에 지내는 동안 함께 사는 청년들에게 뭐가 제일 불편하고, 뭐가 제일 간절한지를 잘 알게 됐어요. 새로 만든 길음동 하우스에 방마다 ‘개인 화장실’을 설치한 이유죠. 에어컨도 각각 설치하고요. 단열작업도 전부 새로 했어요. 겨울에 보일러때는 비용이 만만치 않거든요. 쉽게 만들고, 싸게 지으려면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저희는 임대사업자가 아니잖아요. 무리해서라도 더 편안하고 안락한 집을 만들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죠.”
서울시 사회주택 사업의 일환으로 문을 연 신림동과 길음동 주택은 석관동 쉐어하우스와 다르게 도시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액의 70% 이하인 청년(만 19~35세)을 대상으로 운영된다. 길음동 건물은 11명, 신림동 건물은 5명의 입주자가 함께할 예정이다.
◇‘걱정 없이 살다가 졸업할 수 있길’…보후너스의 꿈
쉐어하우스를 늘린 것은 기쁜 일이지만, 고민은 아직 남아있다. 집주인과의 계약에 따라 임대기간이 정해지는 만큼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배정훈 씨는 “신림동 공간은 6년, 길음동 공간은 8년 임대 계약을 맺었고 맨 처음 만든 석관동 공간은 4년 계약으로 내년에 만기가 된다”면서 “약속된 기간 이후에는 집주인 분과 이야기가 잘 돼야 청년 쉐어하우스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계약기간이 길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운영을 할 수 있으니 월세도 더 낮게 책정할 수 있고, 청년들도 지금보다 훨씬 오랜 기간 함께 살 수 있을겁니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서울시가 소유한 땅을 최장 40년간 연이율 1%에 빌려 민간이 지은 임대주택)’을 지어보려고 합니다. 주거문제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안정성이니까요. 수십 년 단위로 임차한 땅 위에 임대주택을 운영할 수 있다면 지금 같은 고민은 많이 해소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부족한 저희가 쉐어하우스를 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었듯, 저희만 진정성을 갖고 한다면 앞으로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배지훈)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프로그램도 꿈꾸고 있다. 모든 청년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인 ‘밥벌이‘를 함께 준비하는 것. 보후너스는 장이동에 새로 생길 주거공간을 중심으로 전문가들과 청년을 연결하는 멘토링 프로그램, 취업 준비 프로그램 등을 운영할 예정이다. 정훈 씨는 “살 곳이 정해지고 주거비가 절약되니 친구들이 꿈을 꾸기 시작하더라”면서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를 연결시켜주면, 함께 사는 청년들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기획의 이유를 밝혔다.
“청년들이 함께 살며 연대하는 것도 좋지만, 이곳에서 졸업해 경제적으로 안정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쉐어하우스는 ‘평생 살 곳’이 아니잖아요. 주거비를 아껴서 미래를 대비할 힘도 기르고, 우리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발판이죠. 보후너스의 의 핵심 가치는 ‘청년을 위한 저렴한 공간’이에요. 아직은 함께 공간을 만드는 모임이지만, 앞으로는 사회적기업 등 목적에 적합한 조직의 형태도 갖춰갈 생각입니다.”
※보후너스가 신림동, 길음동 쉐어하우스의 입주자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주택에 관심있는 청년은 전화(010-4415-2310)또는 카카오톡(@드림큰하우스)으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