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청년, 청년을 만나다] ① 청년 투자가의 기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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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기부왕’ 박철상(32)씨가 더나은미래 청년 기자들을 찾았습니다. 지난 8월, 경북대학교 캠퍼스에서 더나은미래와 만난 지 1년만의 재회입니다. (관련기사 ‘청년 기부왕’ 박철상 바로가기)

그동안 그는 운영하는 장학기금을 6개에서 9개로 늘렸고, 장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치과치료 지원 사업도 시작했습니다. 현재 1년에 약 7억원의 정기 기부를 진행 중입니다. 해외 아동 교육 및 저개발 국가 지원 등 비정기 기부에도 연 2억원 가량을 쏟고 있습니다.

계획했던 유학길도 미뤘습니다. 직접 설계한 장학기금을 안정화시키고, 자신이 없어도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적임자를 찾아 맡은 일을 하나하나 넘기자니 시간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이번 청년 기자와의 만남에서는 30대 청년이 기부에 꽂힌 이야기, 다독으로 유명한 박씨의 책 이야기 등 다양한 에피소드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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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철상의 이야기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울산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 고등학교에 들어갔더니 평준하가 돼버렸습니다. 그간의 노력이 무산된 것 같아서 화가 났어요. 그래서 농구만 열심히 했습니다. 아침 먹고 농구하고, 점심 먹고 농구하고. 고등학교 2학년이 돼서 정신을 차리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는데 수능 때 실력 발휘를 못해 재수를 했습니다. 그 때쯤 가세도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수능 성적에 맞춰서 학교를 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나는 치열하게 했는데, 결과물이 좋지 않으니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온갖 불평불만을 했었죠.

그런데 군대 가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여기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군대 가서 할 게 생각밖에 없습니다. 초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일기를 썼다. 수첩으로 8~9권쯤 일기를 쓰다 보니 그동안 내가 엄청난 착각 속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건강한 몸, 좋은 머리, 체력 등 저는 제가 노력해서 얻지 않은 행운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반면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어려운 환경 속에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걸 깨닫고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그 때 마음의 빚이 생겼습니다. 경제적 능력이 생기면 어려운 친구들을 돕겠다고 다짐한 시기입니다.

주식투자로 번 돈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중3때 생일선물로 아버지께서 0원짜리 계좌를 만들어주셨는데, 그 때부터 모의 투자를 하며 투자관을 정립했습니다. 25살 때 평생 먹을 것과 부모님 노후자금까지 마련해 놓고, 그 이후부터는 남을 살필 수 있는 재원을 마련했습니다. 40년 정도 기부할 수 있는 돈을 목표로 투자했고, 지난해 목표액을 채워 이제는 주식투자를 그만 둔 상태입니다. 전 물욕이 없는 편입니다. 어렸을 때도 무엇을 사달라고 떼를 쓴 적이 없었고, 어머니도 저를 방목형으로 키우셨습니다. 이것이 투자에 있어 저의 강점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머리 좋고, 실력 좋은 분들이 많은데 과욕으로 실패하는 분들이 있으니까요.

제가 아이들을 정말 좋아해서 처음엔 보육원에 기부를 했습니다. 다달이 50만원씩 4~5군데 정도 부쳤고 거기서 조손가정, 소년소녀 가장 등 점차 대상을 늘렸습니다. 그러다가 2013년에 장학기금을 만들었습니다. 기존 지원체계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서 시스템 자체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9개의 장학기금, 1개의 의료기금을 운영 중입니다. 위안부 할머님들을 살펴드리고 공익활동가를 양성하는 등 전체 정기 기부금을 합하면 7억 정도 됩니다. 대부분 순수하게 봐주시는데, 20대 어린 나이에 장학기금을 만드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보니 일부에서는 사기꾼이라는 소리까지 들으니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습니다. 역사책을 읽다보니 결국 사람들의 평가는 시대에 따라, 기록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더군요. 많이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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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 ‘재테크 책은 읽지 않는다’고 이야기 했는데 이유가 뭔가요?

“중3 시절 처음 모의투자를 시작할 때는 대학 전공책 등을 보며 투자 메커니즘을 공부했었습니다. 제가 말한 재테크 책은 일반적인 주식 책이나 부동산 책입니다. 차트나 그래프는 지엽적적입니다. 그런 식으로 투자관이나 세상 접하는 눈을 키우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국제정세, 철학, 경영, 정치 등 모든 분야가 맞물려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야에 양서를 접해야 세상을 보는 눈, 투자를 할 수 있는 실질적인 눈을 기를 수 있습니다. 투자에 성공하는 건 타고난 요인도 큰데, 후천적인 요인을 찾자면 저의 경우 90%가 독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교 들어와서 1년에 100권정도 책을 봤고 7년 전에 회사에 입사한 이후로는 양을 더 늘려 1년에 130~150권을 읽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안 보이는 것이 보이더군요.”

-많이 바쁘실 텐데 책은 어떻게 보나요? 독서하는 방법이 있다면?

“중요한 건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1시간 일찍 일어나고 1시간 늦게 자서 2시간을 확보했습니다. 또 쉬는 시간 15분 중 강의실로 이동하고 남은 10분 동안 책을 봤습니다. 수업을 시작하면 교수님이 출석부를 부르는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 동안 또 책을 봤습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단 시간에 집중하기는 힘듭니다. 예열이 필요한데, 계속 훈련하다보니 예열하는 시간이 상당히 짧아지더라고요. 결국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 같습니다. 독서에서 중요한 건 곱씹는 과정입니다. 저는 기부든, 독서든 행위 자체에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보는 게 1이면, 반추가 99입니다. 그래서 저는 버스를 타거나 이동하는 시간 등을 활용해 책을 반추했습니다. 제 독서하는 방법 중 하나는 한 분야에 천착하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고 궁금한 걸 못 참아서 책을 읽고 나면 궁금증이 생기는 부분을 관련 서적도 찾아보고 다큐멘터리도 보면서 하나씩 지워나갔습니다. 이처럼 치열하게 부족한 부분을 분석하고 채우려고 노력한 것이 11년 간 수익을 내는 데 가장 큰 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독서는 그물 같아서 촘촘하게 엮을수록 남에게 걸리지 않는 것이 나에게 잘 걸리더라고요. 많이, 깊이 엮어나갈 수록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남들보다 더 넓은 사고를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책은 어떻게 찾나요?

“보편적으로 추천 도서를 이야기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각자의 관심분야나 필요한 수준을 알 수 없으니까요. 저는 중·고등학교 땐 학교 선생님을 찾아가서 저에게 맞는 책을 추천받고 내용에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대학에서도 좋은 교수님들께 책 추천을 많이 받았고요. 그러다보니 책을 보는 나름의 눈이 생기더라고요. 좋아하는 학자의 책을 쭉 읽는다거나, 읽은 책에서 읽을 책을 찾기도 했습니다.”(박철상씨가 후배들을 위해 정리한 추천도서 목록은 페이스북 ‘경북대학교 대신 말해드려요 https://www.facebook.com/knuspeaker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최근 가장 관심 있게 읽고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요.

“역사와 철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역사책을 보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극복했습니다. 이회영 선생 일가는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중국 허허벌판에 나가 독립운동을 하셨습니다. 그런 분에 비하면 저는 한 없이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앞선 세대의 노력과 피땀으로 얻은 것이고, 전 운이 좋아 그 분들의 공(功)에 무임승차한 사람입니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뿌리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근원적인 고민을 다룬 학문이기 때문에 저의 생각과 고민도 그곳에서 출발합니다. 좋은 책이란 정말 고마운 존재입니다. 누군가가 평생 고민한 결과물을 도서관만 가면 공짜로 볼 수 있는데, 이를 도외시 하면 안 되겠지요.”

-평소 친구와 가족에게 어떤 사람인가요?

“보기보다 재밌는 사람입니다. 장난기도 많고요. 하는 일 때문에 고정 관념이 있는데, 하는 말의 80~90%가 농담일 정도예요. 유쾌한 부모님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운동도 좋아합니다. 농구, 야구, 볼링, 탁구, 테니스를 하고 바둑도 둡니다. 한 가지에 꽂히면 계속 파는 습관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본인의 삶에 영향을 준 인물이 있나요?

“존 롤즈(1921~2002, 하버드대 철학과 교수로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저술했다)의 철학과 생각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미셸 푸코(1926~1984, 프랑스의 철학자)와 위르겐 하버마스(프랑크푸르트대 명예교수) 등에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정조대왕(조선의 22대왕, 1752 ~1800)에게서도 절제와 만족을 배웁니다. 이렇게 배운 것들을 삶의 전반에 적용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꿈이 무엇인가요?

“향후 10년 정도는 공부를 할 예정입니다. 현재 미국의 한 대학에서 MBA 입학허가를 받은 상태고, 경영과 공공정치를 함께 공부하는 방향도 고민 중입니다. 유럽에서는 철학을 공부하고 싶고요. 사회에서 완전히 잊히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은 저를 도구삼아 나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지금 제가 겪는 고통이나 불편함을 가족에게까지 주고 싶지는 않아요. 또 한 가지는 어린 친구들에게 위안이 되는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저는 후배들의 눈이 무섭습니다. 4살 차이나는 친동생이 제 습관을 많이 닮았는데, 지금 제게는 그런 동생이 수백, 수천 명 생겼으니까요. 저를 보고 삶이 바뀌었다는 친구들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욕심 없이 살아야할 것 같습니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어요.”

[청년, 청년을 만나다] ② 주식에 투자했다, 사람에 투자한다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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