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우리의 여행으로 세상을 바꿉니다

공감만세

“여행이 세상을 바꿀 순 없을까?”

열댓명 청년이 질문을 붙잡고 늘어졌다. 문화와 자연을 파괴하는 소비 위주의 ‘관광’ 대신, 새로운 방식의 여행이라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도 같았다. 2009년, 뜻 맞는 청년들이 모여 시작한 활동이 해를 거듭하며 형태를 갖춰갔다. 올해로 7년, ‘공정여행’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대전 사회적기업 ‘공감만세’의 이야기다. 그들이 말하는 ‘공정여행’이란 무엇일까. 고두환(33·사진) 공감만세 대표는 “지역과 사람, 여행자와 현지인이 소통해, 모두가 행복하게 공존하는 길을 찾는 여행 방식”이라고 했다.

공감만세 제공
공감만세 제공

“우리나라에서 제주도나 명동 사례를 생각하면 쉬워요. 제주도로 오는 관광객이 급증했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관광객이 늘면 자연히 지역에도 도움이 되겠거니’ 생각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사실 정 반대예요. 관광객으로 돈을 버는 건 면세점이나 렌터카, 쇼핑센터 처럼 관광객을 찾아 따라온 자본 정도예요. 중국 사람들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페리 타고 와서, 중국인이 소유한 호텔에서 머물다 떠나니 세금을 내서 기여하는 것도 없어요. 반면에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에겐 환경 오염, 늘어난 쓰레기, 교통 체증 등 ‘관광’이 남기고 간 부정적인 면이 훨씬 커요. 이런 방식의 관광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새로운 방식의 여행을 이야기하는 게 ‘공정여행’ 입니다.”

‘여행을 통해 지역사회가 건강하고 지속 가능하게 하자’. 고 대표가 ‘공정여행’이란 방식을 생각하게 된 것도 여행자들로 인해 자연이나 문화가 파괴되는 불편한 모습들을 보고 나서였다.

필리핀 이푸가오 지역의 계단식 논. 이곳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급격한 관광화 및 개발, 이촌향도 현상 등으로 파괴되고 있었다. 공감만세의 '공정여행' 프로그램은 참가자들과 함께 계단식 논을 복원하고 도시빈민지역의 사람들과 만나 어울리며, 해발 2천미터를 넘나드는 이푸가오 지역 트레킹 및 홈스테이를 하는 등 지역과 사람을 중심에 두고 설계됐다. 공정여행 과정에서 사용되는 비용은 지역의 원주민 및 공익단체에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있으며, 수익금 중 일부를 통해 필리핀 아이들에게도 여행 기회가 제공된다. / 공감만세 제공
필리핀 이푸가오 지역의 계단식 논. 이곳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급격한 관광화 및 개발, 이촌향도 현상 등으로 파괴되고 있었다. 공감만세의 ‘공정여행’ 프로그램은 참가자들과 함께 계단식 논을 복원하고 도시빈민지역의 사람들과 만나 어울리며, 해발 2천미터를 넘나드는 이푸가오 지역 트레킹 및 홈스테이를 하는 등 지역과 사람을 중심에 두고 설계됐다. 공정여행 과정에서 사용되는 비용은 지역의 원주민 및 공익단체에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있으며, 수익금 중 일부를 통해 필리핀 아이들에게도 여행 기회가 제공된다. / 공감만세 제공

“필리핀 이푸가오 주에는 바이니난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어요. 그곳에 있는 ‘계단식 논’은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됐을 만큼 아름다워요. 그런데 계단식 논이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너무 많이 몰려왔어요. 그러자 외부인들이 들어와 관광객 입맛에 맞는 가게나 숙박업체를 지었고, 지역 주민들도 계단식 논 팔기에 나서면서 결국 폐허가 됐어요. 여행자들이 몰려온 것이, 결과적으로는 이푸가오 공동체를 파괴한 거죠. 저희는 현지 청년 단체랑 협력해서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참가자들은 현지인들과 어울리면서 논에서 모내기도 하고, 계단식 논 복원에도 손을 보태고, 전통 축제에도 참가합니다. 여행자는 지역에 기여하고, 지역은 여행자에게 배움의 터가 되어주는 것이죠.”

깃발 든 가이드 대신 마을에서 살아온 이들이 ‘문화 전도사’가 되고, 대형 호텔 대신 마을 사람들의 집이나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관광객을 위한 식당보단 현지인을 위한 맛 집을, 대형 쇼핑센터 대신 작은 상점을 고집한다. 해외만 여행하는 건 아니다. 제주도, 서울 북촌, 대전 곳곳도 ‘공정여행’ 방식으로 풀어낸다. 상업화 된 거리 대신 역사가 남아있는 박물관과 상점을 들르고, 마을기업이 만든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를 보낸다. 대전의 37년 된 풀빵집 사장님, 수십 년의 바다를 몸에 아로새긴 제주도 해녀 할머니들은 공정여행 코스에서 빠질 수 없는 주인공이 된다. 여행 안에 사람과 지역을 녹아내는 것. 불편하기만 한 여행일 것 같아도, 참가자들의 만족도는 높다. 지난 7년간, 공감만세를 통해 공정여행을 다녀온 이들만도 3만 5000여명. 한번 참가했던 이들의 재구매율도 70%에 달한다.

“한번 참가한 분들의 재구매가 높아서 지금까지 망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웃음). ‘공정여행’이란 게, 그만큼 한 번 경험하면 만족도가 커요. 공정여행 안에는 현지인과의 관계가 있어요.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환경과 구조에 대한 고민과 배움이 있고요. 소비를 통해서 채워지는 만족감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여행으로 사람과 지역을 엮어내기. 이들의 일은 ‘여행 상품’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학 산학협력단과 함께 지역기반 여행 관련 정책이나 전략을 연구하고, 전국을 다니며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공정여행가를 양성하는 것도 ‘공감만세’의 주요 업무다.  천안, 안산, 대부도, 수원 등 이미 공정여행가 양성과정을 거쳐 협동조합이나 공정여행 사업을 시작한 곳도 생겨났다. 필리핀, 태국의 소수민족이나 도시 빈민지역 사람들을 대상으로도 공정여행가 양성과정을 실시해, 이들 스스로 지역을 기반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 2년전에는 비영리단체인 사단법인 ‘공감만세 인터내셔널’도 설립했다. 여행을 다녀온 이들을 중심으로, 자신이 다녀온 지역을 돕고 싶다는 이야기가 이어졌기 때문. 여행자의 발걸음으로 현지 지역엔 공정여행가가 양성되고, 마을엔 아이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이 생겼다. 10명이 여행을 할 때마다 국내 저소득층 아동 1명에게 여행을 보내주는 ‘여행 나눔’도 7년째 이어지고 있다.

필리핀 대중교통 수단 지프니를 탄 참가자들의 모습. 공감만세 여행 프로그램의 재구매율은 70%에 달한다. / 공감만세 제공
필리핀 대중교통 수단 지프니를 탄 참가자들의 모습. 공감만세 여행 프로그램의 재구매율은 70%에 달한다. / 공감만세 제공

‘지역을 살리자는 활동이니, 서울이 아닌 지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무턱대고 연고 없는 대전에 내려와 ‘공감만세’ 활동을 시작했다는 고 대표. 그는 “여행은 사람들, 특히 아이들에게는 필수 교육 같은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과거 유럽에서는 귀족 자제에게 여행을 떠나도록 했어요. 괴테나 베르테르크도 여행을 다녀온 뒤에 독일에서 정치를 시작했고요. 우리가 아는 많은 유명한 철학자들은 유라시아나 이탈리아로 2~3년간 여행을 보내면서 고민과 성장의 기회를 가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이유로 여행이 그저 ‘돈을 쓰고 즐기다 오는’ 소비의 시간으로 인식되지만,  사실 여행은 훨씬 더 큰 힘이 있어요. 여행 방식에 대한 고민 이상으로, 여행이 또 하나의 빈부 척도가 되지 않도록, 사회의 많은 이들에게 ‘여행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져야 한다고 봐요.” 

그는 ‘공정여행이 비싸다’는 인식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공동구매로 산 양복의 가격이나 질을 맞춤 제작한 양복과 비교하지 않잖아요. 공정여행 상품은 기존 여행과는 출발선상이 다릅니다. 기존의 여행 상품은 여행사의 공동구매 제품이에요. 여러 여행사가 참여해서 가격을 떨어뜨리는 구조다 보니, 숙박이나 식사에서 추가비용을 요구한다거나 과도할 정도로 쇼핑센터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사도록 요구하고 뒤에서 수수료를 받는 경우도 다반사잖아요. 공정여행은 어떤 사람들이 어떤 시기에 어떤 목적으로 그 나라에 가는지에 따라 미리 현지를 답사하고, 특정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획된 프로그램입니다. 공정여행은 기존의 여행과는 출발선상이 다르다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대전=주선영 더나은미래 기자

* 이 콘텐츠는 더나은미래와 열린책장의 ‘대전 사회적기업 현장 탐방기’ 프로젝트로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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