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는 ‘아주 특별한 투자’ 온다

서울시, 경계선지능 아동 위한 ‘사회 성과 연계 채권’ 도입

“가정에서 소외된 아이 5~7명이 모여사는 공동체인 그룹홈에는 경계선지능(IQ 71~84)아동의 비율이 높은 편입니다. ‘느린 학습자’라고 불리는 아이들이죠. 하지만 그 아이의 속도에 맞춰서 교육을 진행하면, 일반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그룹홈에서 생활하는 어린아이들이 언어, 정서교육 등을 통해 사회성을 제대로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면 10년 후 미래가 달라질 겁니다.”

한은교 서울시 아동공동생활가정지원센터장의 말이다. 만약 그룹홈 아동 한 명이 자립하면, 얼마의 예산이 줄어들까. 연간 기초생활수급비와 복지시설 운영비 등만 따져도 최소 1억5000만원이 될 것으로 서울시는 분석한다. 현재 서울 지역 내 그룹홈은 60여곳. 이곳에서 생활하는 아이는 300명이 넘는다. 이들 중 100명이 자립에 성공한다면, 최소 100억이 넘는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더구나 경계선지능 아이들은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 사이에 끼여있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경계선지능 아동의 경우 아동복지시설을 퇴소할 때,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비율이 일반아동의 15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2013년 기준).

서울시는 그룹홈 내 경계선지능 아이들을 대상으로 예방 차원 복지 사업의 첫 신호탄을 올렸다. 지난 4월, 서울시가 아시아 최초로 ‘사회 성과 연계 채권(Social Impact Bond·이하 SIB) ‘을 도입하기로 한 것. SIB는 민간 투자로 공공 정책 사업을 수행한 후, 성과 목표를 달성하면 정부가 사업비에 이자를 더해 민간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제도다. 정부는 성공한 사업에만 예산을 집행하게 되어, 예산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서동록 서울시 경제진흥본부장은 “SIB를 통해 성과 중심 행정으로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민간과 공공이 협력하여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며 취지를 밝혔다.

민간 투자자 입장에서도 사회공헌의 한 방법으로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 사회공헌 자금의 경우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SIB 방식으로는 임팩트 있는 사업을 펼칠 수 있는 강점이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서울지역 62개 그룹홈 경계선지능 아동 100여명에 대해 3년 동안 교육 사업을 진행한 뒤, 대상자의 34% 이상이 정상 범주로 올라오면 투자자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는 방침이다.

사회 성과 연계 채권(SIB) 구조 : SIB는 민간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공공 정책 사업을 수행한 후, 정부가 성과 달성에 따라 사업비와 이자를 더해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제도다.
사회 성과 연계 채권(SIB) 구조 : SIB는 민간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공공 정책 사업을 수행한 후, 정부가 성과 달성에 따라 사업비와 이자를 더해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제도다.

투자자가 최대 성과 목표(42% 이상 성공)를 달성했을 때는 3억2100만원까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으며, 성과 목표의 최저기준(10% 이하)을 달성하지 못하면 원금은 손실된다. 단, 손실된 원금은 기부금으로도 처리할 수 있다.

지난 7월, 서울시의 SIB 운영기관으로 선정된 ‘팬임팩트코리아’의 곽제훈 대표는 “SIB를 도입하면 사회공헌과 투자를 동시에 실행할 수 있어 효율적으로 자금 활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현재 팬임팩트코리아를 통해, 11억1000만원 규모의 투자금을 모집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SIB 사업의 효과성이 증명되고 있다. 2010년 영국에서 처음 시작된 SIB는 5년 만에 미국, 호주, 네덜란드 등 11개국, 45개 프로젝트로 확대됐다(2015년 11월 기준). 평균 사업 기간은 4~5년이며, 주제는 범죄율 감소, 아동교육 및 복지, 청년 취업 등 다양하다. 세계 최초 SIB 사업은 영국 피터버러시(Peterborough) 교도소 단기 재소자들의 재범률 감소를 목적으로 실시됐다. 2013년 중간 평가 당시 영국의 평균 재범률이 10% 상승하는 동안 피터버러시 SIB 프로그램 대상자들의 재범률은 11%나 감소하는 성과가 도출됐다.

이듬해 실시한 평가에서도 비교집단 대비 재범률이 8.4% 감소했다. 이 사업은 2014년, 영국 정부가 재소자를 위한 사회복귀 프로그램을 전국적으로 확대함에 따라 조기 종료됐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는 2013년 가정외보호 아동의 원가정 복귀를 위한 SIB를 실시했는데, 중간 평가 결과 복귀 비율이 60%에 도달해 투자자에게 7.5%의 인센티브 지급도 완료됐다.

전세계 SIB의 주요 투자자 중 한곳인 골드만삭스의 안드레아 필립스(Andrea Philips) 부사장은 “SIB는 사회적 임팩트와 재무적 수익 창출의 두 가지 목적을 추구하는 투자”라고 말했다.

2016년 복지 예산은 122조9000억원. 이는 2015년에 비해 6% 이상 증가한 수치, 전체 예산 중 비중은 31.8%로 사상 최고치다. 이처럼 매년 복지 예산은 늘어나지만 현장에서는 재원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곽제훈 대표는 “사회문제가 복잡, 다양해지면서 ‘돈을 쏟아붓는 복지’만으로는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며 “재원이 선순환될 수 있는 ‘투자적 복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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