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점수 너머
김세권 썸네일
[신용점수 너머] 한 사람을 이해하면, 금융은 무엇이 달라질까

코끼리를 보지 못한 채 서로 다른 부분을 만져본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다리를 만진 사람은 기둥 같다고 했고, 코를 만진 사람은 뱀 같다고 했다. 귀를 만진 사람은 부채 같다고 했다. 각자의 설명은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코끼리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금융도 한 사람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살핀다. 신용점수, 소득, 부채, 연체 이력. 모두 필요한 정보다. 지금까지 돈을 어떻게 빌리고 갚아왔는지, 부채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다만 그 기록만으로는 충분히 알기 어려운 것도 있다. 왜 빚이 생겼는지, 그 뒤로 무엇을 해왔는지, 지금 필요한 돈으로 무엇을 바꾸려는지다. 그런 사정까지 금융이 알아야 할까.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는 일에, 한 사람을 이해하는 시간이 왜 필요할까. 필자가 일하는 사회연대은행은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대출과 자립 지원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비영리 사회적금융기관이다. 이곳을 찾아온 한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신청자는 미성년 자녀 둘을 키우는 한 부모 가장이었다. 이혼 후 5년 동안 평일에는 회사에 다니고, 주말에는 녹즙과 우유를 배달했다. 그러던 중 예상하지 못한 빚 문제로 급여 통장이 지급 정지됐다. 비슷한 시기, 장마에 살던 반지하 집이 물에 잠겼다. 보호시설에 들어갔지만, 가족이 모두 함께 지낼 수는 없었다. 시설의 특성상 큰아들은 지인의 집에서 따로 지내야 했다. 이듬해 LH 임대주택 입주 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입주에 필요한 본인부담금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개인회생 절차를 밟고 있던 그는 은행과 저축은행, 정책금융 창구를 찾았지만 대출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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