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발언대]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떤 투자를 할 것인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귀족도 아니고 가톨릭 성직자 신분도 아닌 ‘새로운 상류층’이 등장했다. 이들은 주식회사와 증권거래소, 보험과 선물계약 등 전에 없던 ‘금융’이라는 것을 태동시켰고 상업과 금융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스페인 식민지였던 북유럽의 저지대 지역을 ‘네덜란드’라는 정치적 독립국으로 우뚝 세운 것도 바로 이들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당시의 암스테르담은 ‘뉴욕’과 같은 곳이었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17세기 상업자본주의를 이끌었다. 맨해튼으로 이주한 네덜란드인들이 그 땅을 괜히 ‘뉴 암스테르담’이라 불렀을까. 금융의 발전이 없었다면 현존하는 최고의 생산체제인 ‘자본주의’가 아예 없었을지도 모른다. 금융은 돈을 단순히 실물거래를 뒷받침하는 교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에 부(wealth)를 저장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재정의했다. 심지어 빚(신용)을 얻어 시세차익을 좇는 행위도 합법화했다. 투기가 제도화한 것이다. 우리 같은 ‘스타트업 투자자’들은 yes보다 no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범상치 않은 창업팀들을 만나면 그들이 그리는 미래에 설득되고 만다. 임팩트벤처펀드를 운용하는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에 금융이 ‘투기’가 아니라 ‘투자’가 될 수 있는 기준점은 간단하다. ‘짧게는 5년, 길게는 30년 후 우리 자녀가 어떤 세상에 살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투자다. 다시 말해 투자는 더 나은 미래를 내다보며 다음 세대로 돈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10여년 전 세계적 금융위기가 확산할 무렵, 금융의 새로운 역할을 찾던 일군의 투자자와 패밀리오피스, 재단이 모여 ‘임팩트투자’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지금은 채권, 부동산, 벤처투자 등 다양한 자산으로 확산해 총 규모 5020억달러 시장이 형성됐다. 임팩트투자를 목표로 2011년 설립된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는 임팩트벤처투자조합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아시아 지역의 임팩트투자자들과 함께하는 포럼인

[사회혁신발언대] SOCAP, 임팩트투자의 담론을 넘어 사례를 논하다

지난 8월 미국 주요 경영자 모임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이 내놓은 성명은 세계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아마존, 제네럴모터스(GM) 등 내로라하는 기업의 경영자들이 기업의 존재 이유를 주주의 더 많은 이익 창출이 아닌 윤리적, 사회적 책무로 정의한 것이다. 전통적 주주 자본주의의 요람으로 여겨진 미국에서 말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 최대 임팩트투자 컨퍼런스 SOCAP(Social Capital Market)의 열기는 그 어느 해 보다 뜨거웠다. 현지시각으로 지난달 22일부터 25일까지 나흘간 열린 SOCAP은 매년 전 세계 임팩트투자자, 사회적기업·비영리기관 종사자, 정부·학계 관계자, 자선가 등 3000여명이 모이는 행사다. 지난 2008년 시작해 올해로 12회째를 맞았다. 이번 SOCAP에는 전 세계 50여 개국 500명의 연사가 참여했고, 총 150개 세션이 열렸다. 특히 올해는 총 13가지의 주제를 다뤘는데, 대표적인 주제인 ‘임팩트투자(Impact Investing)’ ‘가치(Meaning)’ 외에도 ‘일의 미래(Future of Work)’ ‘임팩트 기술(Impact Tech)’ ‘이야기의 힘(Power of Story)’ 등을 추가해 다양성을 높였다. 이번 SOCAP의 특징은 대세가 된 임팩트투자에 대한 담론을 넘어 구체적 실천 사례들이 논의됐다는 점이다. 신분 증명이 어려운 개발도상국의 사회적 약자 돌봄을 위한 생체인증 기술, 학교와 일터에서 소외된 19~29세 청년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등이 그 예다. 행사 현장에서는 질의응답과 토론도 활발하게 이어졌다. 특히 정부 기관과의 협업, 로컬에서의 상생 방법, 투자 유치를 위한 전략·비법 등이 쏟아졌다. 사회적기업가(social entrepreneur) 또는 투자자로서 사회적 의미(Meaning)와 재무적 성장(Money)을 모두 추구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도 매 세션 빠지지 않았다. 특히

[사회혁신발언대] 아시아의 제3섹터 실무자들이 한자리에!

지난 7월 태국 방콕의 니다(NIDA) 대학에서 제11회 ‘아이스타 아시아(ISTR, International Society for the Third Sector Research)’가 열렸다. 아이스타 아시아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제3 섹터 연구자와 실무자가 모이는 국제 학회로, 서구 현장과 이론 중심으로 돌아가는 기존 학회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06년 처음 시작됐다. 올해는 ‘규제 변화와 제3 섹터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32개국의 145명이 참여해 나흘 동안 95개의 연구 성과를 공유했다. 아름다운재단은 ‘청소년 배분사업의 성과 연구’ 발표를 위해 이번 아이스타 아시아에 참석했다. 제3 섹터 연구는 내용이 현장에 기반을 둔 경우가 많고, 아이스타 아시아 또한 실무자 세션을 별도 마련할 정도로 현장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연구도 발표할 수 있다. 발표자가 연구 질문과 방법론을 공유하면, 세션에 참석한 사람들이 함께 의견을 나누며 질문을 발전시켜간다. 발표자는 이 과정에서 진행 중인 연구를 더 섬세하게 다듬을 수 있고, 참가자들은 연구의 기여자가 되는 동시에 자신의 연구나 실무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아시아 제3 섹터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 2017년에는 매년 네덜란드에서 개최되던 국제 모금 컨퍼런스 ‘IFC(International Fundraising Congress)’가 처음으로 방콕에서 열렸고, 제3 섹터에서 가장 저명한 국제 학회로 꼽히는 ‘아노바(ANOVA, Association for Research on Nonprofit Organization and Voluntary Action)가 중국에서 제1회 아시아 지역 학회를 진행했다. 멀리 미국이나 유럽까지 가지 않아도 전 세계 제3 섹터  연구자·실무자들을 만날 수 있는 여건이 점점 좋아지고

[사회혁신발언대] 사회적 가치, 블록체인으로 투명하게 평가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가치 평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 머물지 않고 효과를 확인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를 평가하고 적용하는 일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지표와 기준을 만드는 것도 어렵고, 평가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인력이 소모된다. 평가의 신뢰성 문제도 종종 제기되고, 합리적인 피드백도 부족하다. 물론 평가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 가치 평가의 발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신뢰기계(trust machine)’라는 별명을 가진 블록체인은 현재의 사회적 가치 평가 방식이 가진 문제를 개선하는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블록체인이 어디나 쓸 수 있는 만능 다용도 칼은 아니지만,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과업을 수행하는 데에는 꽤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방식은 이렇다. 우선 평가 지표를 프로그램으로 코딩한 다음 블록체인에 설치한다. 평가에 기초가 되는 측정 데이터만 입력하면 알고리즘에 따라 평가가 진행되는 ‘평가의 자동화’가 가능해진다. 블록체인을 바탕으로 한 프로그램은 전 세계의 네트워크를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주관이 개입할 수 없다. 악의적으로 조작하거나 수정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해진 규칙대로 작동하고, 작동 과정과 결과는 보이는 그대로 신뢰할 수 있다. 평가 결과는 중앙 관리자가 필요 없는 블록체인에 낱낱이 기록되기 때문에 정보 유지·관리의 편의성이 극대화된다. 필요한 경우에는 암호 화폐를 활용해 평가에 대한 보상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데이터가 입력되고 출력되는 모든 과정이 투명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 블록체인이 사회적 가치를 평가하는 유용한 수단이라는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사회혁신발언대] AVPN에서 ‘한국형 사회적경제 모델’ 가능성을 보다

정부와 지자체, 사회적기업, 소셜벤처, 기업, 재단, 임팩트 투자자…. 지난 10년간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일궈낸 ‘한국형 사회적경제’ 모델이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25~27일 싱가포르 센텍시티에서 열린 ‘2019 AVPN(Asia Venture Philanthropy Network) 콘퍼런스’는 이를 확인시켜 준 행사였다. AVPN은 아시아의 임팩트 투자자와 소셜벤처 플레이어들이 함께하는 네트워크의 장으로, 올해 7회째를 맞았다. 지금까지는 싱가포르, 중국, 인도 등이 주도해왔으나 이번 행사에서는 이전과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AVPN 콘퍼런스에 대해 소개하자면,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행사다. 회원 멤버십을 기반으로 2011년 설립된 AVPN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아시아 15개국에 사무국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32개국 570여 개 회원사가 가입돼 있다. 지난 한 해 동안에만 회원사가 30% 증가하며 아시아 지역을 대표하는 사회혁신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회원 수는 국가별로 싱가포르(18.5%), 인도(18%), 홍콩(9%), 미국(7%), 중국(6.5%), 인도네시아(4.7%), 한국(3.2%) 순이다. 주요 사업으로는 ‘AVPN 콘퍼런스’ 개최, 사회혁신교육을 위한 ‘AVPN 아카데미’ 운영, 소셜벤처 사업모델 공유 및 투자 유치를 위한 ‘AVPN Deal Share’ 등이 있다. 이번 AVPN 콘퍼런스에는 총 43개국에서 1254명이 참가했다. ▲임팩트 투자 ▲전략적 사회공헌 ▲기후변화 ▲교육 등 11개 주제와 관련된 50개의 브레이크아웃 세션을 개최했다. 참가자 중에는 록펠러재단,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 켈로그, 구글, 그레디트스위스, 스탠다드차타드 등 아시아권을 넘어선 글로벌 재단과 기업들도 있다. 한국에서는 크레비스파트너스, D3쥬빌리, sopoong, MYSC, 루트임팩트, 옐로우독, 함께일하는재단, 다소미재단, 아시아재단(Asia Foundation), 행복나눔재단, 한국사회투자 등 26개 단체 41명이 참여했다. AVPN 콘퍼런스에는 보통 소셜벤처는 초청되지 않는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