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난민 신청자, 법 지키고 굶어 죽든지… 법 어기고 살든지

UN난민협약 60주년 앞둔한국의 난민보호 실태 김구 선생·김대중 前대통령 망명도 현대적 개념의 ‘난민’에 속해 까다로운 심사절차에 생활고 시달려 불법취업 현장으로 몰아가는 현실 2011년은 UN난민협약이 마련된 지 60년이 되는 해다. 이 협약은 난민을 인종이나 종교, 정치적 견해 등의 이유로 박해를 받아 모국을 떠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한 후 2001년 첫 난민을 받기 시작했으며, 현재까지 총 210명을 인정했다. UN난민기구 등은 국내 난민의 지위와 처우에 관한 법률이 없음을 지적해 왔다. 더나은미래 팀은 협약 체결 60주년을 앞두고 한국의 난민보호 실태를 점검해봤다. 편집자 주 나이지리아 출신 기독교인 니키(가명·44)씨는 1990년 무슬림 가정의 남편과 결혼했다. 남편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니키씨는 세 명의 아이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렸고, 남편은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러던 중 2002년 북부도시 카두나에서 기독교인과 무슬림 사이의 유혈 충돌이 일어나 200명이 죽고, 600명이 다쳤다. 당시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던 남편은, 자신의 가족들이 불을 지른 차 안에서 아이와 함께 숨졌다. 니키씨 역시 친척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았다. 결국 그녀는 언니의 도움을 받아 케냐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거쳐 2007년, 한국으로 도망왔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한 아이는 언니에게 맡겼고 나머지 한 아이는 피신하던 중 죽었다. 한국에 온 니키씨가 난민 인정을 받는 데까지는 무려 2년이 걸렸다. 그동안 우리나라 정부는 취업을 금지했다. 생계가 막연했던 니키씨는 결국 ‘몰래’ 영어 과외를 했다. 니키씨는 “언제 결정이 날지 모르는 난민 심사를 기다리며 가족 걱정과 생계 때문에

韓·美·英 3국의 공정무역 예찬론 ①한국 – 김송이

“내가 산 단 하나뿐인 제품그들에겐 삶을 바꾸는 힘” 오는 8일은 세계 공정 무역의 날이다. 공정무역(Fair Trade)은 제3세계의 가난한 생산자를 ‘시장’에서 돕기 위한 사회적 운동이다. 생산자에게는 정당한 대가를 주어 물건을 사고, 소비자에게는 유통 과정을 최대한 생략해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하도록 노력한다. 공정무역 제품은 일반 상품에 비해 10~20% 정도 비싸지만, 프랑스에서는 바나나 판매량의 80% 이상을 공정무역 상품이 차지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공정무역 시장은 매년 20%가 넘는 성장을 기록하며, 2008년 기준 40억달러(약 4조5000억원)의 거래를 기록하고 있다. 공정무역으로 인해 750만 명의 생산자와 그 가족들이 좀 더 나은 집에서 살고 교육을 받으며 일자리를 얻고 있다. 한·미·영 3개국의 공정무역 예찬론자를 통해 실제 공정무역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 들어봤다. 편집자 주 김송이(29세)씨는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 사업을 펼치려는 꿈이 있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난 2004년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대학 국제경영 학과에 입학했다. 영어 수업은 쉽지 않았지만, 꿈을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이라 생각하니 신나기만 했다. “그때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매 순간 생각한 셈이나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학교는 그저 돈을 잘 버는 방법만 가르치지는 않았다. 수업 중간, 제3세계 사람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주고 물건을 거래하는 ‘공정무역’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우게 됐다. “갑자기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했어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더 적은 임금을 주고 더 많이 일하도록 할까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임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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