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난민 신청자, 법 지키고 굶어 죽든지… 법 어기고 살든지

UN난민협약 60주년 앞둔한국의 난민보호 실태
김구 선생·김대중 前대통령 망명도 현대적 개념의 ‘난민’에 속해
까다로운 심사절차에 생활고 시달려 불법취업 현장으로 몰아가는 현실

2011년은 UN난민협약이 마련된 지 60년이 되는 해다. 이 협약은 난민을 인종이나 종교, 정치적 견해 등의 이유로 박해를 받아 모국을 떠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한 후 2001년 첫 난민을 받기 시작했으며, 현재까지 총 210명을 인정했다. UN난민기구 등은 국내 난민의 지위와 처우에 관한 법률이 없음을 지적해 왔다. 더나은미래 팀은 협약 체결 60주년을 앞두고 한국의 난민보호 실태를 점검해봤다. 편집자 주


한국에 살고 있는 난민들이 시민들에게 취업을 할 수도, 생계 지원을 받을 수도 없는 자신의 처지를 알리는 공연을 하고 있다.
한국에 살고 있는 난민들이 시민들에게 취업을 할 수도, 생계 지원을 받을 수도 없는 자신의 처지를 알리는 공연을 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출신 기독교인 니키(가명·44)씨는 1990년 무슬림 가정의 남편과 결혼했다. 남편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니키씨는 세 명의 아이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렸고, 남편은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러던 중 2002년 북부도시 카두나에서 기독교인과 무슬림 사이의 유혈 충돌이 일어나 200명이 죽고, 600명이 다쳤다. 당시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던 남편은, 자신의 가족들이 불을 지른 차 안에서 아이와 함께 숨졌다. 니키씨 역시 친척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았다. 결국 그녀는 언니의 도움을 받아 케냐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거쳐 2007년, 한국으로 도망왔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한 아이는 언니에게 맡겼고 나머지 한 아이는 피신하던 중 죽었다.

한국에 온 니키씨가 난민 인정을 받는 데까지는 무려 2년이 걸렸다. 그동안 우리나라 정부는 취업을 금지했다. 생계가 막연했던 니키씨는 결국 ‘몰래’ 영어 과외를 했다. 니키씨는 “언제 결정이 날지 모르는 난민 심사를 기다리며 가족 걱정과 생계 때문에 너무 괴로웠다”고 말했다.

일본 역시 난민심사 기간 동안은 취업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심사가 이뤄지는 4개월 동안 하루 생활비 1500엔(2만원)과 월 주거비 4만엔(56만원)을 지원한다. 또 심사 기간이 6개월을 넘기면 취업을 허용한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지난해 출입국 관리법 개정 이후 심사가 1년 이상 길어지면 일을 하도록 열어놓기는 했지만 실제 취업은 불가능하다”며 “현행 제도는 난민 신청자가 법을 지키고 굶어 죽을 것인지, 법을 어기고 살 것인지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난민신청자 카티(가명·33)씨는 난민심사기간인 3년 동안 집 근처 가구공장에서 불법 노동을 했다. 야간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하는 2~3일짜리 임시직 일이었다. 종로의 무료 그룹홈과 의정부의 반지하 방을 전전했다. 카티씨를 괴롭힌 것은 가난보다는 자존심이었다. 콩고 최대 야당인 민주사회연합(UDPS)의 일원으로 반정부학생운동을 조직했다는 이유로 박해받은 카티씨는 콩고에서는 드물게 대학을 나온 인재였다. 그는 “젊은 정치지도자였던 내가 이곳에서는 ‘원숭이’라는 놀림을 받아가며 일해야 하니 인간적 모멸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2008년 12월 발표된 국가인권위의 ‘국내 난민 등 인권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난민신청자들의 49.5%가 대학·대학원 이상의 학력을 갖고 있다.

콩고에서 반정부 방송을 하다 고문을 당한 후 한국으로 온 리나(가명·31)씨는 “한 나라의 대통령도 정치적 이유로 난민이 될 수 있는데, 한국 사람들은 우리를 단순히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로 생각해 빨리 쫓아낼 생각만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난민심사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난민심사는 신청자가 정말 본국에서 박해 위험에 처할 수 있는지를 면밀히 검토하는 과정인데, 이런 자세한 사정을 들어보기 위한 기본 통역 서비스조차 미비한 것이다. 국제난민지원단체인 피난처 김제원(32) 간사는 “특히 아시아 국가 언어는 통역이 잘 안 된다”며 “무슬림 국가인 방글라데시 기독교인이 종교 박해를 이유로 난민지위신청을 했는데 통역하러 온 사람이 무슬림이어서 솔직한 얘기를 할 수 없었던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 국적난민과 박재현 사무관(36)은 “난민들은 출신국이 다양해 많은 언어를 통역해야 하는데 신청자의 절대 수는 적어서 통역관을 상시고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난민심사 과정에 지원되는 통역서비스 예산은 시간당 3만원으로 전문적인 통역 인력을 고용하기 힘든 실정이다.

난민 신청자들과 지원 단체들은 난민인정심사의 공정성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난민인권센터 최성근(30) 팀장은 “한 단체에서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 중 단체장은 인정이 되고 부단체장은 인정이 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며 “노르웨이·영국 등 난민보호 선진국에서는 독립적인 위원회가 난민심사 결정을 축적한 보고서를 내 공정한 심사를 도모한다”고 말했다.

난민 지원단체들은 이 때문에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난민 등의 지위 및 처우에 관한 법률’이 하루속히 통과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법안은 국제법에 근거해 강제송환 금지의 원칙의 예외를 없애고, 공항 및 항만 등에서의 난민 인정 신청절차를 명문화해 원칙 없이 난민 인정이 거부되는 상황을 방지하도록 했다. 유엔난민기구 앤 메리 캠벨(Anne Mary Campbell) 한국대표는 “독립적인 난민법이 통과되면 출입국관리법 등으로 박해의 위협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난민들과 다른 이주민을 같은 범주로 다루는 것을 막을 수 있어 한국의 난민보호가 한걸음 진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2차 세계대전 때문에 국경을 넘었던 숱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난민협약이 만들어진 지 60년. 지난해 말 집계된 종교·인종 차별 등으로 생긴 전 세계 난민 수(4330만명)는 협약제정 당시(2100만명)의 두 배가 넘는다. 일제 식민통치와 6·25전쟁, 독재와 민주화 운동을 경험했던 우리나라 역시 최근까지 난민을 내보내는 나라였다. 이승만 대통령과 백범 김구 선생, 김대중 대통령의 망명 경험도 현대적 개념의 ‘난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최성근 팀장은 “한국도 이제 국제법에 따라 난민들을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한국의 난민신청자들을 후원할 분들은 피난처(02-871-5382, www.pnan.org)나 난민인권센터(02-712-0620, www.nancen.org)로 연락하면 됩니다.

류정화 기자

황세원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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