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네이버스
[나눔 교육 시리즈] ④ NGO에게 배우는 ‘나눔의 전문가’ 세계

혼자만의 기적?… 현장·교육·미디어 전문가 힘 모여야 가능하죠 국제 구호단체 굿네이버스와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함께 진행하는 ‘세계시민교육’ 시리즈 중 두 번째 파트 ‘나눔 교육’편이 오늘로 마지막입니다. 다음 주부터는 부모교육 편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시리즈가 진행되며 ‘국제구호단체에서 일할 수 있는 방법’과 ‘어떤 공부를 해야 나눔 전문가가 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굿네이버스 나눔 전문가들의 일상을 세밀히 들여다보고, ‘직업’으로서의 나눔 전문가의 세계를 살펴봤습니다. 글로벌 나눔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은 청소년 여러분들께 많은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편집자 주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이 말라가고 있다. 강은 갈라진 강바닥을 드러냈고, 농작물은 일찌감치 메말라 버렸다. 60년 만에 찾아온 동아프리카 대기근. 그곳엔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다.’ 동아프리카에 사상 최악의 가뭄이 찾아왔다는 소식에 굿네이버스 나눔 전문가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국제협력본부의 진두지휘하에 상황실이 꾸려집니다. 미디어팀, 총무팀, 해외사업팀 등 각 본부에서 선발된 대표들이 상황실에 모여 재난 상황을 파악한 뒤 긴급구호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미 해외 25개 지역에 사업국을 두고 있는 굿네이버스는 재난 현장과 가장 근접한 지부를 연결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교환하며 현지 상황을 파악합니다. 가뭄의 규모, 피해상황 등 아프리카 지부가 전달한 정보는 긴급구호 전반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국제협력 본부는 각 팀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통해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물적, 인적 자원을 마련해 전달합니다. 국제협력사무소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국내 최초로 UN으로부터 포괄적 협의 지위를 부여받은 굿네이버스는 뉴욕과 제네바에 UN연락사무소를 두고 있습니다.

“새마을운동, 개도국에 전파… 스스로 일어날 의지 심는다”

성하은 제네바 국제협력사무소 대표 “지구촌 빈곤 문제 해결의 키워드는 ‘협력’입니다. 각기 다른 전문성을 가진 단체가 하나로 뭉칠 때 그 힘은 배가 됩니다.” 제한된 재화를 가지고 최대한의 원조효과성을 거두는 것, 전 세계 국제구호 NGO가 가진 공통된 비전일 것이다. 한국 국적의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는 UN과의 협력에서 그 해답을 모색하고 있다. 제네바 국제협력사무소 성하은<사진> 대표가 ‘국제협력’을 강조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성 대표는 UNHCR(유엔인권고등판무관), UNEP(유엔환경계획), UNDP(유엔개발계획) 등 UN 기구가 주최하는 회의에 참석해 새롭게 채택되는 국제조약을 모니터링하는 등 국제 동향을 파악한다. UN NGO 자문회의에 참석해 국제구호 NGO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그는 “이는 굿네이버스가 UN 공인기구로 인정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굿네이버스는 지난 1996년 국내 최초로 UN 경제사회이사회(ECOSOC)로부터 NGO 최상위 지위인 포괄적 협의지위를 부여받았다. 2009년 기준으로 UN에 등록된 3289개의 NGO 중에서 최고 지위를 가지고 있는 단체는 전체의 약 4%(141개)에 불과하다. 굿네이버스와 UN과의 협력이 긴밀해지면서 성 대표의 하루는 더욱 바빠졌다. 굿네이버스가 WFP(세계식량계획)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FFNV(Food-for-New-Village·식량 배분과 지역개발을 결합한 사업형태)의 사업실행 파트너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FFNV는 WFP의 식량 지원 및 안보 강화 사업에 지속가능개발사업 개념을 입힌 것으로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개발도상국에 전파하는 사업이다. 계기는 지난해 11월 개최된 WFP NGO 자문회의였다. “WFP 부사무총장의 초대로 자문회의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그때 한국 정부와 WFP, 굿네이버스의 만남이 이뤄졌어요. 외교부는 WFP와 FFNV 관련 MOU를 체결하면서 ‘한국 NGO가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20년 만에 해외원조 360억원 구호단체로 우뚝

굿네이버스 해외지부장 4인방 무작정 기술 전달보다 현지인 삶 존중하며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 지원금 예산 공개해 주민이 직접 투자 결정 “끊임없는 소통과 헌신본부의 지원과 신뢰 어우러져 가능했던 일” 굶주림 없는 세상,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설립된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가 해외원조를 시작한 지 벌써 20년이 됐다. 1992년 방글라데시를 시작으로 꾸준히 원조 국가를 확대한 굿네이버스는, 2011년 10월 현재 전 세계 25개 사업국에서 전문사회복지와 국제구호개발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한국인에 의해 한국에서 설립된 ‘토종’ NGO가 20년 만에 연간 약 3000만달러(360억원)에 달하는 해외원조가 가능해진 비결은 무엇일까.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빈곤 현장의 긴급구호를 책임지고 있는 4명의 국제본부 및 해외지부장을 만나봤다. 편집자 주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7년 넘게 재난 현장에서 동고동락했기 때문일까. 입을 열 때마다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전역에 걸친 생생한 현장 이야기가 그칠 줄 몰랐다. “에티오피아에서 보낸 4년은 현지인들에게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식사하고, 일하고, 뛰어다니면서 현지인의 특성과 문화를 이해하려 했죠. 해답은 그들 안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단지 거들 뿐이었죠.” 아프리카 권역본부장 장수영씨가 꼽은 굿네이버스의 원동력은 ‘섬김’이었다. 현지인의 삶을 존중하고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하자, 해당 국가와 굿네이버스가 시너지 효과를 내며 함께 성장하기 시작했다. 장 본부장이 에티오피아 땅을 밟은 2003년만 해도 상황은 열악했다. 주민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포기한 채, 국제단체들의 지원에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굿네이버스 역시 해외원조에 있어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였다. 해외지원 규모도 작고, 파견

[나눔 교육 시리즈] ③ 찾아가는 나눔 교육, 학교에서 배워요

내가 돕는 친구 역할극 하며 “이웃 사랑 깨쳐요” 신용산 초등학교가 모은 사랑의 저금통 1723개로 캄보디아 11살 채소장수… 이제는 어엿한 학생 돼 “나보다 우리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 갖게 됐어요” 작은 나눔이 일궈낸 또 하나의 기적이 캄보디아 어린 채소 장수, 스레이뻐우(11)에게 일어났다. 매일 아침, 자기 몸보다 더 큰 채소꾸러미를 안고 시장으로 향하던 스레이뻐우도 이제 또래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다. 이는 지난 3월, 신용산 초등학교 학생들이 모은 ‘사랑의 저금통’ 1723개 덕분이었다. 지구촌 반대편에서 보낸 친구들의 따뜻한 응원으로 스레이뻐우는 잃어버린 꿈을 되찾았다. 신용산 초등학교는 ‘아이들에게 더 따뜻한 세상을’이란 비전을 실천하고자 전문 나눔 강사를 초빙해 나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빈곤으로 고통받는 지구촌 이웃의 모습을 보여주고, 학생들이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박찬숙 교감은 “나만 생각하던 아이들이 나 외의 친구들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됐다”면서 달라진 학교 분위기를 전했다. “나눔 교육에서 쓰이는 피드백 영상이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 깊은 뜻 없이 저금통을 채웠던 아이들도 내 도움을 통해 달라진 친구의 모습을 접하고 나면 나눔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됩니다.” 학교에서 출발한 나눔 교육은 가정으로까지 이어졌다. 나눔에 대한 학부모들의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서리경(12) 학생은 “희망편지쓰기 이후 부모님이 많이 달라지셨다”며 눈을 반짝였다. “캄보디아 친구 락스미(10)의 사연이 담긴 영상을 가족이 함께 보고 있었어요. 락스미는 저보다 어린 나이인데도 아픈 엄마를 위해 일하고 있었어요. 영상을 보고 나서

여름내 쓴 카드 든든한 밥으로 따뜻한 쉼터로

착한카드 여름 캠페인 결산 민정이 눈 수술, 수빈이 언어치료, 디마시 혹 제거 수술 착한카드 포인트 NGO 사업에 쓰여 물품기부·공연 등으로 기업·연예인도 동참 착한카드 캠페인(goodcampaign.net)이 지난여름을 맞아 참여자 2000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동안 착한카드를 통해 모인 기부금들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그 현장을 돌아봤다. 초등학교 2학년 민정이는 돌이 막 지났을 무렵 침대에서 떨어졌다. 머리에 충격을 받았는데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해 집으로 돌아왔지만 눈동자의 위치가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두 눈이 사시가 되었다. 민정이는 학교에서 아이들의 놀림을 받는 게 싫어 쉬는 시간이면 엎드려 자는 척을 했었다. 부모님은 민정이의 눈을 치료해주고 싶었지만 새벽에 우유와 신문을 배달하고 중국집에서 꼬박 일해 버는 한 달 수입 130만원으로는 민정이의 두 눈을 수술해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던 민정이의 집에 요즘 활기가 돈다. 지난 7월 28일에 민정이의 한쪽 눈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다. 월드비전의 김승열 간사는 “이제 개학을 하면 민정이는 한쪽 눈을 수술한 상태에서 학교에 가게 된다”며 기뻐했다. “거울을 못 보던 민정이가 거울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부터가 김승열 간사에겐 내 일처럼 행복한 일이다. 수빈이는 어려서부터 필리핀인 어머니가 한국인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는 것을 지켜봐 왔다. 이 과정에서 수빈이도 아버지의 폭언과 폭력에 노출되었다. 급기야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2010년 9월 수빈이와 수빈이의 누나를 데리고 집에서 나왔다. 갈 곳 없는 수빈이네를 맞아준 곳은 (재)바보의 나눔이 운영하는 시설이었다. 수빈이가 처음 시설에 들어왔을

[날아라 희망아] 흙탕물 마시고·썩은 쌀 먹고 “굶어 죽지 않는 게 소원이에요”

필리핀 11살 소년 존 폴 공사장으로 대형 트럭 한 대가 들어왔다. 뿌연 모래 바람이 일었다. 황량한 채석장 구석엔 나무 조각과 고철로 지은 집 한 채가 위태롭게 서 있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고작 한 평 남짓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11세 소년 존 폴(John Paul·사진)과 그의 가족이 사는 집이다. 필리핀의 수도 ‘메트로 마닐라’에 불어 닥친 태풍으로 모든 것을 잃고, 쫓기듯 이곳에 온 지 벌써 2년이다. 도심 빈민으로 골치를 앓던 정부는 살림살이를 모두 잃은 사람들을 이곳 산이시드로 로드리게스 리잘(San Isidro, Rodriguez, Rizal)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존의 가족은 인근 채석장 한편에 집을 지었다. 극심한 가슴 통증으로 누워 있는 의붓아버지(60)와 뇌 낭종 제거 수술 이후 심각한 두통을 앓고있는 어머니를 대신해 존이 가장 노릇을 한다. 아침 일찍부터 존은 부산했다. 땔감을 구하고 장작을 팼다. 채석장 한가운데 있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와 밥을 했다. 폐타이어로 만들어진 우물 안을 들여다보니 누런 흙탕물이다. “이 물을 어떻게 먹느냐”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 가족에게는 그나마 유일한 ‘생명수’다. “굶어 죽지 않는 게 유일한 소원”이라는 엄마는 “이 물이라도 있어 다행”이라고 눈물을 훔쳤다. 해가 땅 위로 내려앉을 무렵 존이 집 한편에서 쌀을 들고 나왔다. 사정을 딱하게 여긴 마을 주민이 가져다준 쌀이라고 했다. 형편이 비슷한 이웃이 가져온 쌀에는 벌레가 득실거렸다. “그 가족도 어려운데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흙탕물로 쌀을 씻어가며 가족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던 존이 말했다. 이렇게

“어려운 이들 도울수록, 내 인생 바뀌고 뭐든 할 수 있는 힘 생겨”

자원봉사 365일… “우리에겐 최고 선물” 해외자원봉사단 5인을 만나다 _ 필리핀·이집트 등 1년간 자원봉사 아프리카에서 마을 축제 기획하고 _ 필리핀에서아이들 교육 봉사해 “우리가 그들보다우월하다 생각 말고 초심 잃지 마세요 자신 돌아보는 기회자원봉사, 도전하세요” 소외된 이웃을 찾아 떠났던 지난 1년. 나누고자 갔던 그곳에서 마음 가득 선물을 받고 돌아온 해외 자원봉사단원 5명을 만났다. 진로 고민, 취업 걱정을 뒤로하고 탄자니아, 이집트, 필리핀, 인도에서 뜻깊은 경험을 하고 돌아온 이들이 낯선 땅에서 시간을 보낸 이유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작은 씨앗’이 되기 위해서였다. 단원 5명 모두 어릴 때부터 노인·아동·장애인 봉사는 물론, 짧게는 2주 길게는 6개월까지 네팔·캄보디아·태국·말레이시아·베트남 등 해외 자원봉사를 다녀온 경험이 있다. 이들은 “국내부터 시작해 해외 단기·중기 봉사를 하고 나니 더 오랜 기간 새로운 땅에서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8월부터 1년 동안 인도에서 자원봉사를 한 조아라(24)씨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뉴델리역 첨단 시설 뒤편에서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이 지내는 사람들을 만났다”며 “외국인인 나를 보고 도망다니던 아이들이 조금씩 마음을 여는 것을 보면서, 인도의 지역사회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아라씨처럼 우리 젊은이들은 인생을 바꾸는 다양한 경험을 해외 자원봉사에서 찾고 있다. 2010년 기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해외에 파견되는 자원봉사자 수는 1000명에 달한다. 10년 전(126명)의8배에 이르는 수치다.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를 통해 해외 봉사를 경험한 사람도 2000년 16명에서 지난해 619명으로 약 38배가 늘었다. 특히 아프리카로 향하는 청년 수가 크게

청소년 250명 한자리… 국제 문제 해결 머리 맞대다

청소년 세계개발원조총회 UCC공모전·바자회 개최… 구체적 실천방안 쏟아져 “각 학교마다 활성화돼 있는 교내 동아리를 활용합시다. 각 동아리 특성에 맞는 빈곤 퇴치 운동을 전개하는 겁니다.””교내 동아리 활동만으론 부족합니다. 모든 학생이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학생회가 각 동아리를 도와 전교생이 함께하는 ‘지구촌 빈곤 퇴치 캠페인’을 기획하는 건 어떨까요.” 지난 4일 오후 1시 반. 대한민국 차세대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여 아이디어를 냈다. 지구촌 상생,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내가 속한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곧바로 실천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일까. 한 명이 의견을 내자 이에 대한 질문과 반박이 쏟아진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자 이에 질세라 더욱 다양한 아이디어가 줄을 잇는다. 250명이 머리를 맞대 2시간 가까이 열띤 토론을 벌이자 지구촌 빈곤, 그 풀리지 않던 문제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연세대학교 송도 국제캠퍼스에서 개최된 ‘청소년 세계개발원조총회’의 모습이다. 오는 11월에 열리는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 개최에 맞춰 전국의 고등학교에서 250여명의 학생회장과 부회장이 모였다. 이번 총회는 25명 내외로 구성된 9개 조가 토론을 통해 결의안을 작성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UCC 공모전 참여, 바자회 개최, 전교생 릴레이 서명, 캠페인 기획 등 지구촌 빈곤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청소년 세계개발원조총회’는 굿네이버스와 연세대학교가 함께하는 2박 3일 ‘청소년 글로벌 리더십 캠프’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이웃사랑과 지구촌 빈곤 퇴치에 기여할 글로벌 리더 육성을 위해 기획된 ‘청소년 글로벌 리더십 캠프’는 올해로 2회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캠프에

가까운 친구 세 명 돕기부터 시작해 볼까요

어린이·청소년들이 방학 동안 실천해볼 만한 5가지 나눔의 방법 하나, 가까운 복지관이나 사회복지단체를 방문해 봉사활동을 해요!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규칙적으로 봉사하도록 합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활용하면 더욱 좋고, 간단한 활동도 괜찮습니다. 둘, 아주 적은 금액이라도 기부해 보세요! 우리 돈 100원이면 르완다 친구들에게 바나나 3송이를, 500원이면 아프리카 차드 친구들에게 슬리퍼를, 1000원이면 방글라데시 친구들에게 한 끼 식사를 선물할 수 있습니다. 셋, 주변의 친구 세 명에게 도움을 줘 보세요! 세상을 바꾸는 긍정적인 변화는 작은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바로 내 이웃, 내 친구를 돕는 일부터 시작해 보세요. 내가 도운 세 명의 친구들이 또다시 세 명씩을 돕고 그 활동이 계속해서 퍼져 나간다면 그 힘은 엄청나겠죠? 넷, 착한 상품을 구입해 봅시다. 필요한 물품이 있다면 가난한 나라의 원료 또는 제품을 정당한 대가를 주고 구입하는 공정무역 상품이나 수익금의 일부가 자동으로 기부금으로 적립되는 기부 지원 상품을 이용해 보세요. 다섯, 가족과 함께 해외의 빈곤 아동과 결연을 맺어 보세요. 하루 1000원 미만의 돈으로 살아가는 지구촌의 어려운 친구들을 위해 가족의 이름으로 1:1 결연 후원을 해봅시다. 아동의 사진과 성장보고서, 친필편지 등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굿네이버스 1대1 결연 신청 1599-0300, www.gni.kr)

[지구촌 희망편지쓰기] “나도 어려운 시절 겪어 함께 큰 꿈 키워 가자”

방글라데시에서 온 소녀 조안나양 교과부장관상 3년 전 한국으로 입양된 조안나가 캄보디아 소년에게보낸 편지 안타까움 이상의 공감 큰 울림 자아내 굿네이버스 나눔교육은 지구촌 현실과 빈곤아이들이 직접 이해해 가는 기회 지난 12일 서울시교육청 11층 강당 단상 위에 서울시 신상도초등학교 6학년 박조안나 학생이 올랐다. 박양은 올해 ‘굿네이버스 지구촌 희망편지 쓰기대회’ 교육과학기술부장관상 수상자다. “락스미! 생활 속에서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는 네게 배울 것이 참 많은 것 같아. 다만, 네가 하루 종일 배고프게 일하는 것이 마음이 아팠어. 나도 어린 시절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보고 살았기 때문에 네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긴장한 듯,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침을 꼴깍 삼키며 박양이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수상식 끝 무렵 진행된 낭독식인 탓에 행사 시작 때와 달리 몇몇 자리들이 비어 있었지만, 강당 안은 박양의 목소리만으로도 꽉 찬 느낌이었다. 176만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최고의 영예를 안은 박양의 편지는 다른 때보다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박양은 2008년 방글라데시에서 우리나라로 입양돼, 올해 4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소녀다. 방글라데시는 작년 지구촌 희망편지 쓰기대회 대상이었던 ‘수존(9)’이 살았던 나라이기도 하다. 박양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방글라데시에 살았을 때,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10분 동안 지나야 하는 그 거리에서 굿네이버스 나눔 교육 영상에 나오는 친구들처럼 오리를 돌보는 가난한 아이들을 많이 많이 봤다”고 했다. 박양의 편지는 멀기만 한 다른 나라의 안타까운 사연에 대한 동정이 아닌, 그 이상의

나이에 맞게 역할극… 상황대처 능력 ‘쑥쑥’

굿네이버스 ‘찾아가는 아동권리 교육’ 4~7세 어린이엔 인형극 성교육 유괴 상황은역할극으로 숙지 초등 저학년 ‘놀이’ 고학년은 ‘참여활동 ‘연령별로 특화해 프로그램 구성 지난 6월 30일 오전 10시, 서울시 구로구 항동에 위치한 ‘구립 항동어린이집’에 박하나(30)씨가 큰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하나씨가 3층 우주반으로 들어가 준비된 자리에 앉자, 하나씨를 중심으로 빙 둘러앉은 일곱 살 어린이 15명이 모두 함께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하고 반갑게 맞이했다. “선생님은 굿네이버스에서 왔어요. 왜 왔을까요?” 하나씨가 첫 질문을 하자, 아이들이 낯을 가리는지 대답 없이 조용했다. 아랑곳없다는 듯 하나 씨가 두 눈을 반짝이며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정성스레 눈을 맞춰 나가자 한 남자 아이가 “소중한 몸!”이라 답했고, 이어 다른 아이들도 하나 둘 저마다의 대답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하나씨는 가져온 큰 가방에서 4절지 크기의 큰 그림책을 꺼냈다. 제목이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 만들기’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철수한테 어머니가 말했어요. ‘철수야, 간식 먹고 나서 피아노 연습하고, 태권도 다녀와서, 논술 공부를 해. 그러고 나서는 그림 그리고, 엄마랑 영어 단어 시험을 보자. 그리고 줄넘기 100번 하고, 일기 써야지.’” 숨이 넘어갈 듯 줄줄줄 계속되는 이야기에 아이들이 “아하암…”하고 가느다랗게 한숨을 내쉬었고, 이 반응을 받아쳐 “철수 형님이 힘들겠죠?” 하나씨가 말을 건네면서 본격적으로 ‘굿네이버스의 찾아가는 아동권리 교육’이 시작됐다. 교육 내용은 아동권리 교육, 나눔교육, 성교육, 유괴 예방교육 순으로 이뤄졌다. 성교육을 할 때는 실제 사람의 신체를 그대로 본 뜬 헝겊 인형 ‘별님이’네 가족을

[날아라 희망아] “심장병으로 고통받는 내 동생 훌륭한 기술자 돼서 고쳐줄 거예요”

방글라데시 11살 소년 코림 방글라데시 다카의 한 철공소, 매캐한 냄새와 쇳소리가 끊이지 않는 그곳에서 하루 12시간 일하고 있는 소년 코림을 만났다. 5년 전,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후 코림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일해오고 있다. “내 이름은 코림이고, 열한 살입니다. 배를 만들기 위한 부품을 다듬고 붙이는 일을 합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하는 코림에게, 철공소에서 얼마나 일했냐는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는 1년쯤 됐어요. 가끔씩 다치기도 합니다.” 옆에 있던 어른 동료가 “1년 동안 지켜봐 왔는데 아주 열심히 한다”며 “아주 성실한 아이”라고 말을 거든다. 일곱 살이 됐을 때, 코림도 다른 아이들처럼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간 적이 있다. 잠시였다.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는 일을 할 수 없었고, 두 누나가 온종일 바느질 일을 했지만 그것으로는 가족이 먹고살 수 없었다. 결국 남자인 코림이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해야만 했다. 코림의 누나는 “코림이 정말 학교에 가고 싶어했다”며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어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현재 코림의 꿈은 ‘기술자’다. 가족의 생계를 든든하게 책임지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코림의 노동은 아침 8시에 시작된다. 철공소로 출근하기 전, 집에서 코림은 늘 열 살 남동생을 꼭 챙기며 인사말을 잊지 않는다. “로힘, 네가 힘들지 않도록 형이 널 위해서 열심히 일할게. 사랑해.” 한 살 아래 동생 로힘은 3년 전 심장판막의 문제가 발견됐다. 지금은 숨이 차오르며 찌르는 듯한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증상을 보이는 게, 거의 매일이다. 코림은 “내가 고생을 하더라도 동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