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낭만의 시대는 저물었는가?

“이제 낭만이 없어졌군요.” 성수동의 과거 분위기를 잘 아는 어느 지인이 대화 중에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최근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성수동도 그 파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사회적·경제적으로 스스로를 증명해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한 소셜벤처들과 임팩트 투자 생태계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낭만의 시대가 저문 거죠’라고 말했지만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다. 성수동을, 우리가 하는 일을, 낭만이라 생각한 적이 었었던가를 떠올리면서. 낭만.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처음으로 인터넷에서 낭만이라는 단어 뜻을 검색해봤다. 임팩트투자사와 소셜벤처, 시민사회단체 등 사회 혁신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들이 성수동에 터를 잡은 지 7년이 훌쩍 지났다. 그 사이 성수동은 현대식 마천루가 즐비하고 각기 다른 디자인과 매력을 뽐내는 크고 작은 식당과 편집 매장이 골목마다 들어선 곳이 되었다. 나날이 높이를 더해가는 성수동 빌딩들을 바라보며 우리의 이상은 얼마나 쌓여가는지를 생각한다. 성수동을 대표하는 기관 중 상당수는 설립 10주년을 맞이하거나 이미 20주년을 바라보고 있다. 2008년에 설립한 소풍 역시 성수동에 터 잡은 지 7년째이자, 설립 13년 차를 맞이하고 있다. 그간 텀블벅, 스페이스클라우드, 동구밭, 비플러스, 자란다, 스티비, 뉴닉 등 국내를 대표하는 소셜벤처의 성장에 기여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임팩트투자 생태계도 몰라보게 커졌다. 2018년도부터 연간 2000억원 규모의 투자 조합을 계속 결성해내며 총액만 해도 1조원을 내다보는 시대가 되었다. 그 사이 협력보다는 경쟁이, 연대보다는 자기 증명이 더 중요해졌다. 축적하는 경험, 양적 규모는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하루 세끼, 농업의 임팩트

매일 아침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 집의 아침 향기와 맛을 책임지는 커피는 강원도 속초의 칠성조선소에서 로스팅한 원두다. 콜롬비아와 브라질에서 건너온 이 원두를 전동 그라인더에 갈아내린 뒤 아내에게 진상하듯 올리며 마틴 루서 킹의 말을 떠올린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탁자에 앉아 남아메리카 사람들이 수확한 커피를 마시거나 중국 사람들이 재배한 차를 마시거나 서아프리카 사람들이 재배한 코코아를 마신다. 일터로 나가기 전에 벌써 세계의 절반이 넘는 이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먹고 마시는 것과 관련된 일들은 오늘날 복잡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근래 소풍벤처스가 가장 관심을 갖고 투자하고 있는 영역도 농수축산업과 식품 분야다. 이 분야는 생산, 운송, 유통, 소비, 그리고 폐기에 이르기까지 워낙 넓고 세분화되어 있어 전체의 가치 사슬을 이해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전 세계 인구 70억 명이 하루 3끼를 먹고 있으니 이보다 큰 산업이 과연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가 촉발한 언택트 시대에도 농식품산업은 성장하고 있다. 온라인 농식품 시장은 2019년 대비 2배 정도 성장하며, 온라인 거래 품목 중 1~2위를 다투고 있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을 순 있어도, 먹는 것을 멈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농업이나 식품 분야는 소풍벤처스뿐 아니라 전 세계의 임팩트투자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다. 지난 5년간 연평균 20% 이상의 성장률을 보여 온 시장이자, 약 90%에 달하는 임팩트투자자들이 향후 5년간 농식품분야 투자를 늘리거나 유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생산되는 식품의 3분의 1이 폐기되고 있고,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몰라 봐서 미안하다

5년 전 투자한 회사에 이어 작년에 투자한 회사에서도 얼마 전 우리 소풍벤처스로 배당을 하겠다고 알려왔다. 사업 성과가 뛰어난 두 기업의 배당 통지를 받아 들고 조언을 받아야 하는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창업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시드 투자사이자 액셀러레이터이다 보니 배당을 받는 경우가 이례적이라서 배당에 따른 세금과 배분 문제 등이 우리에게 생소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소풍이 투자한 소셜벤처는 80곳을 돌파했다. 이 중 95%는 소풍이 첫 투자자였고, 50%는 법인조차 설립되지 않은 곳이었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예 없거나 검증이 안 된 초기 팀들을 마주하는 것이 액셀러레이터의 일상이다. 아무리 좋은 팀, 비즈니스라도 초기 모습은 대부분 엉성하다. 여러모로 부족한 모습으로 만나 투자사와 피투자사로서 인연을 맺은 기업이 어느새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하여 배당하는 상황은 금액 크기를 떠나 그저 뿌듯하기만 하다. 배당이 가능한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한 이들을 보며 떠오른 곳들이 있다. 바로 소셜미션과 진정성에는 크게 공감하지만 비즈니스 모델이 없거나 지속 가능하지 않은 창업팀이다. 의외로 자주 찾아오는 이 안타까운 순간을 마주할 때면 복잡한 감정이 밀려든다.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이지만 이를 비즈니스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한계점을 대면하는 것이기도 하고, 더 괴로운 것은 창업가에게 투자 거절이라는 모진 말을 해야 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언해 줄 방향이나 아이디어조차 전혀 생각나지 않는 경우에는 자괴감까지 더해져 힘이 쭉쭉 빠진다. 액셀러레이터로서, 진정성 있는 창업자와 역량이 좋은 구성원들이 엄청난 비즈니스를 가지고 스스로 찾아오는 행운을 앉아서 기다릴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유니콘·VC도 ‘ESG’를 피할 수 없다

환경(Environmental)·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하는 ‘ESG’가 기업의 전략과 운영에 있어서 필수적인 접근으로 여겨지고 있다. ESG의 확산은 어느 정도 예견된 미래였지만, 이렇게 빨리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코로나로 인한 2020년의 위기감이 일종의 ‘가속 페달’ 역할을 한 셈이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Venture Capital)로서 최근 ESG의 폭발적인 확산을 지켜보고 있자니, 지난 십여 년간 급성장한 ‘임팩트투자’와 2006년 UN이 발표한 ‘책임투자(Responsible Investment)’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ESG는 책임투자의 한 가지 방법 혹은 고려해야 하는 요소로 ‘비재무적(non-financial) 정보’라고도 불린다. 임팩트투자는 특정한 사회문제 해결 및 가치창출을 위해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의 방식이다. 투자 대상 기업의 ESG 요소를 검토하고 분석하는 게 자본 투자 과정의 필수적 절차로 자리 잡아가는 상황에서, 얼리 스테이지(Early Stage)에 있는 기업들도 ESG를 수용하게 할 수 있을까. 나아가 임팩트투자의 대상 기업으로 바뀌게 할 수 있을까. 몇 년 전부터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사회적 가치’를 고려한 자본 투자를 선언하며 기업들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지만, 전체 자본 투자에서 임팩트투자의 비중은 여전히 소수다. 대부분의 자본이 여전히 수익률만을 기준으로 투자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은 마치 과거 ESG가 처했던 상황과 비슷하다. ESG 역시 오랫동안 기업들의 자율에 맡겨져 왔다. 지속가능성보고서 혹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으로 불리는 문서를 통해 자본 시장 및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은 소수였다. ESG가 폭발적으로 확산된 데에는 기업을 둘러싼 여러 위험들을 평가하는 데 있어 환경·사회와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기업은 물론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궁극적으로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너무 많아서, 너무 적어서

“안에 들어가면 비 오는 소리가 쏴 하고 들릴 거예요.” 안내인의 설명과 함께 20평이 채 되지 않는 사육장에 들어섰다. 암실 안에서 서로 다른 조도 아래 푸르스름한 빛을 내고 있는 데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들려오는 힘찬 빗소리. 식용으로 쓰이는 쌍별귀뚜라미 수백만 마리가 만들어내는 그 소리는 한여름 소나기같이 우렁차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청아했다. 곤충 수백만 마리를 한 방에서 마주하는 생경한 경험을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바로 작년 여름, 곤충 스마트팜 설루션을 만드는 ‘반달소프트’라는 회사에 투자하면서다. 식용 곤충 산업은 새로운 단백질 영양원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존 축산업 대비 토지와 물을 적게는 20배, 많게는 50배까지 절약할 수 있어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양질의 단백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성장세도 무섭다. 연평균 25% 이상 성장하고 있고, 만약 곤충 단백질을 축산(소·돼지·닭 등) 사료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된다면 더 큰 산업적 성장이 담보된다. 식용 곤충 산업이 환경적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는 우리 투자 회사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국내 임팩트투자를 이끌고 있는 성수동의 투자사들이 가장 집중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단연 ‘기후 위기’다. 태양광 등의 신재생에너지 산업이나 재활용 산업은 이제 너무나 익숙한 투자처가 되었다. 원소재를 재활용품에서 뽑아내거나 심지어 연구실에서 배양해 패션 산업의 혁신을 꾀하는 기업들, 대체육·배양육 등을 통해 축산업이나 수산업의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푸드테크 기업들, 유통·판매 과정에서 버려지는 음식 폐기물을 줄이려는 기업들은 이미 임팩트투자사들의 포트폴리오에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후회 없는 실패

월요일 저녁이면 우리 집에서는 아이를 일찍 재우기 위한 작전이 진행된다. 그래야 저녁 10시 30분에 시작하는 음악 경연 프로그램의 본방을 사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매회 놀라곤 하는 것은 노래 잘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치열한 예선을 치르고 방송 출연의 기회를 얻은 분들이니 실력이야 검증받은 셈이지만 경이롭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 시청을 멈추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를 꼽으라면 경연 과정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 참가자들을 볼 때의 감동 때문이다. 매주 경쟁과 탈락이라는 긴장의 순간을 마주하면서도 기어이 더 발전한 모습을 선보이는 참가자들에겐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그간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 실력자들이 탈락하는 때다. 노래를 잘하는 것만으로 유명한 가수가 될 수는 없다는 현실은 뼈아프다. 그래서일까,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아 든 순간에 보여주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유심히 보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경연 프로그램에서 가장 멋진 순간이 아닌가 싶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며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황하는 표정, 경쟁자를 축하하거나 고마움을 전하는 모습, 하염없이 눈물을 보이는 사람들…. 살면서 내가 하는 일들의 성적표를 바로바로 받아볼 기회는 적다. 그것도 한 번의 무대에서 운명이 판가름 나는 결과라니. 마치 매주 수능을 보는 기분이 아닐까? 하지만 이렇게 괴로운 탈락의 순간에도 ‘후회 없는 무대’였다는 소감을 전하는 참가자들이 있다. ‘후회 없다’는 이 네 글자가 주는 울림은 상당히 크다. 다른 사람의 평가로 매겨진 결과에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임팩트투자사 공략법

코로나 때문에 정신없이 지나가버린 2020년이지만, 어쨌든 한 해의 마지막인 12월이 찾아왔다. 한 해를 돌아보며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봤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바로 ‘임팩트투자 유치 노하우’에 대한 것이었다. 사실 투자 유치에 대한 이야기는 소풍과 같은 임팩트투자사뿐 아니라 일반 벤처나 투자 관련 기사, 스타트업 관련 글의 단골 주제다. 그럼에도 매년 이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 이유는 아마 임팩트투자사에 대한 또 다른 기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임팩트투자사들은 과연 어떤 벤처기업을 찾고 있을까? 임팩트투자를 고려하는 창업가들에게 추천하는 방법은 임팩트투자사를 ‘자금(Money)’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규모(Scale)’ 등 세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라는 것이다. 첫째, 임팩트 자금(Impact Money)을 들여다봐야 한다. 임팩트투자사의 자금 성격과 철학부터 파악하고 접근하라는 뜻이다. 회사의 철학과 회사에서 운영하는 개별 투자 조합의 철학은 다를 수 있다. 투자사의 자금원과 자금의 목적·성격을 살펴봐야 한다. 정부 등 외부로부터 자금을 모아 투자를 하는 곳인지, 아니면 자기 자본을 갖고 투자를 하는 곳인지, 자선 성격의 자금을 제공하는지에 따라 투자 대상이나 기간이 다르다. 둘째, 임팩트 커뮤니케이션(Impact Communication)으로 임팩트 창출에 대한 의지와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어떤 임팩트를 창출할 것인지,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측정하고 평가하고 유지해 나갈 것인지를 명확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창출하는 임팩트가 적다고 해도 앞으로의 계획이나 지향점을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나아가 임팩트 리포트 발간 등을 통해 사회적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영감들과의 휴식

사회를 바꾼다는 것. 참 무겁고 거창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혁신’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업(業)으로 삼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장작으로 삼아 불을 지펴 밝은 빛을 만드는 걸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가장 가까이에서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들이 내는 밝은 빛 아래에 감춰진 고독의 그림자를 느낄 때가 있었다. 혼자 고군분투하는 듯한 고립감, 노력해도 안될 것 같은 무력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여러 감정으로 지쳐가는 혁신가들에게 필요한 게 있다면 한 인간으로서 갖는 재충전의 시간일 것이다. ‘인스파이어드’는 매년 전국 각지에 있는 100명의 사회혁신가들을 제주로 초청해 2박 3일 동안 영감과 휴식의 시공간을 제공하는 행사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제물로 바친 사회혁신가들이 스스로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바라보고, 또 그런 서로 마주하며 연대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그 원동력이었다. 씨프로그램과 루트임팩트, 소풍, 씨닷이 함께하는 인스파이어드는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은 언컨퍼런스다. 언컨퍼런스란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연사가 청중에게 일방적으로 강연을 하는 기존의 콘퍼런스를 뒤집는다는 뜻의 단어다. 언컨퍼런스에서는 모두가 호스트이며 동시에 참가자다. 이 행사에서는 누구나 즉흥적으로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만들어낼 수 있다. 인스파이어드에서는 서로를 ‘영감(靈感)’이라고 지칭한다. 혁신가로서 지고 있던 짐을 모두 벗어 던지고 온전히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하나의 영감으로서 서로를 마주하자는 약속이자 문화다. 2020년의 인스파이어드는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최초로 온라인으로 진행됐고, 카카오임팩트재단이 처음으로 합류했다. 온라인으로 열리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시작되자마자 우려는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온라인 회의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임팩트 투자에 ‘마법 모자’가 필요할 때

얼마 전 ‘로컬 브루어리(지역 양조장)’에 대한 투자 건으로 구성원 간에 진지한 토론이 있었다. 한쪽에서는 술은 웰빙을 해치기 때문에 임팩트 투자 대상은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다. 반대쪽은 전통주와 같이 지역 문화나 지역 공동체적 측면이 강조되는 경우에는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논리로 맞섰다. 쉬이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논의는 ‘건강 디저트’로 이어졌다. 더 건강하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디저트 제품이라면 사회적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디저트는 영양 등 생존의 필수재도, 식량 문제와 연결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투자 우선순위에서는 떨어진다는 주장이 충돌했다. 임팩트 투자사 내부에서는 종종 사회적 가치 판단을 둘러싸고 열띤 논쟁이 펼쳐진다. 환경, 장애, 의료, 교육, 여성 분야의 경우 사회적 가치에 대한 논의가 쉽게 끝나는 편이다. 하지만 모호한 지점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영역도 많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해야 ‘이것은 사회적 가치고, 이것은 아니다’라는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는 ‘마법의 분류 모자(sorting hat)’가 등장한다. 학생의 머리에 모자를 씌우면 기질과 성격을 읽어 특성에 맞는 기숙사를 배정해주는 마법 모자다. 투자 결정 건으로 토론이 격렬해지다 보면 우리에게도 그런 마법 모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임팩트 투자계에 분류 모자 같은 역할을 하는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임팩트 투자 기관은 지난 2015년 UN에서 선정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사회적 가치의 판단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다. 투자 결정 과정에서 재무적 요소와 더불어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고려하는 ESG 역시 널리 활용되는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이번 정차할 곳은 성수동입니다

십수 년 전, 현장 연구를 위해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을 방문하고 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막 몸을 실었을 때다. 똑같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 한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림잡아 100여 명쯤 되어 보이는 그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명찰을 목에 걸고 노란색 서류 봉투를 품고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호기심이 일었다. 그들이 처음 비행기를 타보는 사람들임을 알아차리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무리 중 한 명인 40대 방글라데시 남성의 옆자리에 앉게 됐다. 세 아이의 아빠라는 그에게 비행기 좌석의 안전벨트 매는 법을 알려주다 대화가 이어졌다. 그가 두 손에 꼭 쥐고 있던 노란색 서류 봉투를 건넸다. 봉투 안의 서류를 확인하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들은 가족 품을 떠나 일자리가 있는 태국의 농장으로 향하던 방글라데시 농민이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 갑작스레 떠오른 것은 출근길 집을 나서기 전 마스크를 챙기면서였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는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것도 금기시된 요즘, 다른 나라로 떠나는 일은 언감생심이다. 그러다가 집을 떠나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로 생각이 이어졌다.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단절된 지금, 국경을 넘어야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던 그들은 어떻게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 활기찬 목소리로 가득하던 카페도, 식당도, 공장도 문을 닫고 있다. 일자리를 잃은 프리랜서들은 사회 안전망에서 벗어나 불안한 삶을 산다. 가정이나 사무실을 방문해 일하던 사람들이 휴업 상태에 놓인 것도 수개월째다. 코로나가 확산과 소강, 그리고 다시 확산을 반복하는 사이 그간

임팩트를 명확히 표현할 순 없을까?… 소셜벤처 중심 측정 지표 만들었죠

지난 2008년 설립된 에스오피오오엔지(sopoong·이하 ‘소풍’)는 국내 최초의 임팩트투자사다. 소셜벤처가 우리 사회에 확산하기 시작한 때부터 생태계를 이끌어온 셈이다. 지금은 D3(디쓰리)쥬빌리, 옐로우독 등 다양한 임팩트투자사가 생겨났지만, 창업 초기 단계 소셜벤처 전문 액셀러레이터는 소풍이 유일하다. 지난달 소풍이 발표한 ‘임팩트 액셀러레이팅 리포트’에는 10년간 소풍의 경험이 모두 담겼다. 자체적으로 개발한 임팩트 측정 방식을 통해 내놓은 이 리포트는 ▲소풍의 피투자사 임팩트 측정 결과 ▲소풍의 임팩트 측정 결과 ▲임팩트 담론 분석 ▲임팩트 액셀러레이팅 매뉴얼 등으로 구성됐다. 2018년 5월 리포트 제작에 돌입해 지난해 12월에 마무리됐으니 1년 반이나 걸렸다. 지난 6일 서울 성수동 카우앤독에서 한상엽(37) 소풍 대표와 연구를 총괄한 이은선(38) 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10년간의 소셜 임팩트 분석한 리포트 펴내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임팩트 액셀러레이팅 리포트’를 펴낸 이유부터 듣고 싶다. 한상엽(이하 ‘한’): 소풍 10주년을 맞이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10년 차가 된 소풍이 생태계에 의미 있는 존재로 남을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무엇보다 소풍이 지금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소셜벤처 생태계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으로 이은선 교수와 함께 임팩트 액셀러레이팅 리포트를 기획하게 됐다. 이은선(이하 ‘이’): 나도 비슷했다. ‘보은’의 마음이랄까. 석·박사 학위 모두를 사회적기업 연구로 받은 연구자는 내가 국내 최초다. 당시 선행 연구가 부족해 전국의 현장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연구를 해왔는데, 초보 연구자였던 나에게 기꺼이 시간과 경험을 나누어준 소셜벤처들에 대해

한상엽 대표, 에스오피오오엔지-메디아티 겸영한다

한상엽(35·사진) 에스오피오오엔지 대표가 미디어 스타트업 투자사 메디아티를 이끌게 됐다. 5일 메디아티는 “신임 대표에 에스오피오오엔지 한상엽 대표를 선임했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앞으로 두 회사의 경영을 책임진다. 한상엽 대표는 소셜벤처 창업가 출신의 임팩트 투자자다. 지식 공유 플랫폼 ‘위즈돔’를 창업했고, 지난 2016년 에스오피오오엔지 3대 CEO로 취임했다. 메디아티는 지난 2016년 설립된 미디어 스타트업 분야 전문 투자사로 닷페이스, 긱블, 뉴닉 등에 투자하고 액셀러레이팅을 제공해왔다. 메디아티는 한상엽 신임 대표 선임을 기점으로 액셀러레이팅 전문성을 강화하고 미디어 창업팀 발굴을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올 하반기에는 에스오피오오엔지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시드 단계 스타트업에 공동 투자와 액셀러레이팅을 제공할 예정이다. 한상엽 대표는 “미디어 스타트업은 태생적으로 공공성을 가지고 있어 사업 성장과 더불어 사회적 영향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재무적 성과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키우는 임팩트 액셀러레이팅을 통해 사회를 혁신하는 미디어 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라고 말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