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
아모레퍼시픽재단이 지원한 연구들
“몸뻬부터 레깅스까지”… 여성은 100년 동안 ‘이런 옷’을 입었다

아모레퍼시픽재단이 지원한 연구들 아모레퍼시픽재단은 50년 동안 800편이 넘는 연구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일반적으로 ‘학술논문은 지루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막상 읽어보면 공감을 자아내는 대목도 적지 않다. 그중 흥미로운 연구 세 개를 뽑아 소개한다. 언어로 보는 한·중·미의 美 의식 모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멋진 외모를 동경한다. 다만 아름다움의 기준이나 이를 추구하는 방식은 사회마다 다르다. 특히 언어에는 미(美)에 대한 사회의 사고 체계가 반영돼 있다. ‘뷰티언어와 여성문화의 전이와 변이(김성제·2011)’ 연구에서는 한국과 미국, 중국의 언어에 녹아 있는 미에 대한 인식을 비교했다. 가장 두드러진 점은 ‘노화’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세 나라 모두 노화를 싸워야 할 대상으로 봤다. 인류 보편적 경험인 ‘전쟁’으로 묘사하는 식이다. 얼굴에 팬 주름, 건조한 피부를 ‘적’으로 표현하고, 화장품은 적을 물리치는 ‘아군’에 빗댔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식은 달랐다. 인종이 같은 한국과 중국은 피부를 표현할 때 색채어를 자주 쓴다. ‘흰 피부’는 긍정적 의미로 통용된다. 반면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는 피부를 묘사할 때 색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더 밝은(lighter)’ ‘더 어두운(darker)’ ‘더 창백한(ashier)’ 등 색의 스펙트럼을 나타내는 표현을 사용한다. 여성들이 ‘파워숄더룩’을 입은 이유 패션만큼 유행에 민감한 분야가 있을까. 이런 유행에도 사회문화적 메시지가 있다. ‘근·현대 한국 여성 복식에 나타난 여성 성역할 변화 연구(이지현·2009)’에서는 1910년부터 2000년대까지 시대별 패션에 반영된 ‘여성이 보내는 성평등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대에는 남성들이 전쟁터로 나가면서 여성은 ‘가족을 책임지는 강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졌다. 여성들은 한복을 벗어 던졌다.

여성의 힘으로 큰 화장품 기업... '여성의 역사'를 연구하다
여성의 힘으로 큰 화장품 기업… ‘여성의 역사’를 연구하다

아모레퍼시픽재단 50주년 50년간 1509명 지원인문학 연구에 초점 선대회장 뜻 따라여성 문화복지 등 연구 앞으로 문화사업에 집중한국 위상 높일 것 1924년 황해북도 개성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소년은 어릴 적부터 어머니 옆에서 장사를 배웠다. 어머니는 도매상에서 등잔 기름, 머릿기름 등을 떼다가 시장에 내다 팔았다. 장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어머니는 여성들이 머리 손질할 때 쓰는 동백기름을 직접 만들어 매대에 내놨다. 제품은 입소문을 타고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소년은 품질과 신용을 강조하는 어머니 곁에서 이른바 ‘기업가 정신’을 배웠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1945년, 소년은 화장품 회사를 설립했다. 스물한 살 되던 해다. 아모레퍼시픽그룹 창업주인 고(故) 서성환(1924~2003) 선대회장의 이야기다. 서 전 회장은 생전에 “회사의 모태는 어머니이며, 여성들이 회사를 키웠다”고 자주 말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여성용 화장품을 만드는 데서 출발해 여성 일자리와 복지 등을 지원하는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1973년에는 아모레퍼시픽재단(이하 재단)을 설립하고 여성 인재 육성과 학술 연구를 지원했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재단이 지금껏 지원한 연구자와 장학금 수령자는 1509명에 달한다. 여성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재단의 관심은 줄곧 ‘인문학’에 있었다. 급속한 경제 발전이 이뤄지던 1970년대에는 이공계에 대한 지원도 병행했지만, 1995년 재단 정관에서 ‘과학기술 개발을 위한 교육·문화사업을 편다’는 문장을 삭제하면서 사학과 철학, 사회과학 등에 대한 지원을 본격적으로 확대했다. 김태우 아모레퍼시픽재단 사무국장은 “인문학은 중요한 연구 분야지만,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고유명사처럼 사용될 정도로 오랜 기간 홀대받았다”며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는 나타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정신적 국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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