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핵심 빠진 아세안 합의문, 미얀마 사태 해결에 도움 안돼”… 국내외 비난 빗발

미얀마 사태 해결을 위해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10개 회원국이 채택한 합의문에 대해 국제 시민사회에서 “허울뿐인 메시지”라는 비판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아세안 10개국은 지난 24일(현지 시각)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열고 ▲미얀마의 즉각적 폭력중단과 모든 당사자의 자제 ▲국민을 위한 평화적 해결책을 찾기 위한 건설적 대화 ▲아세안 의장과 사무총장이 특사로서 대화 중재 ▲인도적 지원 제공 특사와 대표단의 미얀마 방문 등 5개 사항을 담은 합의문을 아세안 의장 성명 형태로 발표한 바 있다. 이에 시민사회는 ▲정치범 석방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점 ▲쿠데타 정권에 합의문 이행 기한을 명시하지 않은 점 ▲이행하지 않을 시 제재 등이 명기되지 않은 점 등을 비판하고 있다. 미얀마 인권단체인 ‘정치범지원협회(AAPP)’는 “이번 합의가 미얀마 국민을 위한 것이라면 정치범 석방을 요구하고 이를 위한 기간을 정했어야 한다”면서 “군부가 합의 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추가로 어떤 조처를 할 것인지도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트 워치’도 성명서를 내고 “합의 내용을 실천하기 위한 명확한 시간표도 없어 아세안이 이 계획을 실행하는 데 약점이 있다는 게 가장 우려되는 점”이라고 했다. 여기에 당초 합의문 초안에 ‘정치범 석방’이 포함됐다가 이후 빠졌다는 외신 보도가 이어지면서 비판 여론에 불을 붙였다. 25일 로이터통신은 합의문 작성 관계자들을 인용해 “합의문 초안에는 정치범 석방이 포함됐으나 당초 기대와 달리 석방에 대한 강한 요구도 담지 못했고 내용도 희석됐다”고 보도했다. 아세안 의장국인 브루나이는 합의문 작성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도 답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韓日 시민사회 “미얀마 군부의 돈줄 끊어야”… 거세지는 대정부 압박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무력 진압하는 군부 세력에 대한 구체적인 제재 방안을 촉구하는 국제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7일 국내 국제개발협력 활동가 619명은 공동성명을 통해 “한국 정부가 3월12일에 발표한 제재에 따른 대응 계획을 조속히 수립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미얀마 국제개발협력 사업 재검토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참여를 보장하라”고도 했다. 정부는 지난달 12일 미얀마에 대한 신규 국방·치안 협력을 중단하고, 현재 진행 중인 유·무상 개발협력사업 중단도 검토하겠다고 독자 제재안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제재 방안이나 일정, 군부와의 연관성 판단 기준 등은 나오지 않고 있다. 시민사회에서 구체적인 제재안 촉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달부터 참여연대, 해외주민운동연대, 발전대안 피다 등이 ‘미얀마 민주주의를 위한 한국 시민단체모임(이하 시민단체 모임)’을 꾸리고 정부에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당시 시민단체모임은 “미얀마 군경과의 교류 중단, 무기 수출 중단, 개발협력사업 재검토 등은 매우 합당하다”면서도 “이 과정에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시민사회 의견을 수렴해달라”고 요구했다. 시민단체가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ODA를 포함한 경제협력 자금이 미얀마 군부의 자금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계열사인 포스코강판과 포스코인터내셔널은 각각 미얀마경제지주사(MEHL)와 미얀마국영석유가스회사(MOGE)와 협력해 사업을 벌여 왔는데, MEHL과 MOGE가 군부의 핵심적인 돈줄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국제앰네스티 조사에 따르면 MEHL은 1991년부터 20년간 배당금으로 약 20조1240억원(180억 달러)을 주주에게 지급했다. 이 중 약 17조 8880억원(160억 달러)이 미얀마 군부로 송금됐다. 쿠데타의 중심인 민 아웅 훌라잉 미얀마군 최고사령관은 MEHL의 대주주다. ODA 사업의 경우, 의료물자 지원 등 인도주의적

반군부 시위대 114명 숨진 날… 미스 미얀마 “국제 사회가 도와달라” 눈물의 호소

미얀마 군부 쿠데타 세력에 의해 시위대 114명이 목숨을 잃은 지난 27일(현지 시각), 국제 미인대회 무대에 오른 미얀마 여대생이 국제 사회의 도움을 눈물로 호소했다. 양곤대 심리학과 학생인 한 레이는 이날 태국 방콕에서 열린 ‘미스 그랜드 인터내셔널 2020’ 최종 심사 무대에서 군부에 탄압받는 “미얀마 국민을 살려달라”고 말했다. 미스 그랜드 인터내셔널은 평화와 비폭력을 주제로 한 국제 미인대회다. 그간 레이는 SNS에 미얀마 운동상황 게시물을 꾸준히 올려 왔고, 이번 대회에 참여한 이유도 전쟁과 폭력을 멈춰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라고 밝힌 바 있다. 흰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오른 한 레이는 눈물을 흘리며 “미얀마 국민이 민주주의를 외치기 위해 거리에 나설 때, 저 역시 이 무대에서 똑같이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며 “우리는 지금 당장 긴급한 국제적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마이클 잭슨의 노래 ‘힐 더 월드(Heal the World)’를 수어(手語)와 함께 부르며 연설을 끝냈다. 이날 한 레이는 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했지만,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는 대회가 끝나고 본인의 SNS에 “나는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며 “모두가 제 목소리를 들어주셨으면 좋겠다”고 썼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날 미얀마 전역 41개 도시에서 반군부 시위가 벌어졌다. 군경은 실탄과 고무탄을 시위대를 향해 발포해 최소 114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에는 길을 가던 행인을 포함해 어린이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강 더나은미래 기자 river@chosun.com

세이브더칠드런, 미얀마 아동을 위해 10만달러 긴급 지원

국제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가 최근 미얀마에서 일어난 군부의 폭력 사태로 고통받는 아동들을 위해 10만달러(약 1억1300만원)를 긴급 지원한다고 17일 밝혔다. 세이브더칠드런 현지 사무소에 따르면,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폭력 행위가 10대 청소년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고 도심 곳곳에 살포된 최루가스로 아동들이 고통받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잦은 총격과 수류탄 폭발 소리에 심리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아동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거리에서 발생하는 폭력 상황을 목격하거나 부모와 떨어지게 된 아동은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미얀마 현지 언론에 따르면, 16일 기준 민주화 시위 관련 사망자는 총 193명이다. 사망자 중에는 지난달 28일 미얀마 바고 지역에서 머리에 총을 맞아 사망한 17세 소년 등 아동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는 긴급 지원을 통해 물품·지원금 지급, 정신적 피해를 겪는 현지 아동에 대한 상담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 미얀마에 있는 아동과 가족들을 지원하는모금도 진행한다. 세이브더칠드런은 평화적 시위대에 대한 폭력적 진압을 강력히 규탄하며,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무력 사용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잉거 애싱 세이브더칠드런 인터내셔널 CEO는 “미얀마는 이미 코로나19와 무력 분쟁 등으로 아동 38만3000여 명이 교육, 보건, 영양, 심리적 건강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며 “미얀마 내 이해당사자와 국제사회는 아동의 이익과 미래를 중심으로 평화적인 해결책을 이끌어내야만 한다”고 말했다. 김지강 더나은미래 기자 river@chosun.com

미얀마 시민단체 AAPP “쿠데타 반대 시위 한 달 만에 183명 사망”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에 맞선 시위대에 총격을 가해 이틀 만에 60여 명이 사망했다. 휴일인 지난 14일 하루에만 39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튿날인 15일에도 최소 20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2월4일 미얀마 전역에서 쿠데타 반대 시위가 시작된 이래 누적 사망자는 183명에 달한다. 16일 미얀마 시민단체 ‘AAPP’(The Assistance Association for Political Prisoners·정치범지원협회)는 지난 주말 시위 참가자들의 피해 상황을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AAPP에 따르면, 군부의 무자비한 시위대 진압으로 체포·구금된 시민은 2175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풀려난 사람은 319명에 불과하다. AAPP는 하루 만에 3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지난 14일을 “민주화 투쟁 시작 이후 가장 폭력적이었던 날”로 규정하면서 “이날 발생한 사망자 가운데엔 15세 학생을 포함해 18세 미만 미성년자들도 다수 포함됐다”며 군부의 폭력적인 시위 진압을 성토했다. 이날 AAPP는 “15일에만 100여 명이 추가로 구금된 것으로 추정되며 학생과 젊은 청년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면서 “군부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미얀마 시민들은 하루하루를 위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한편 미얀마 군부는 양곤과 만달레이 내 6개 지역에 계엄령 연장을 발표한 상태다. AAPP는 “미얀마 군부가 계엄령을 통해 각종 법제도를 마음대로 바꾸며 시민의 주거지를 장악하고 폭력적인 진압을 지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AAPP에 따르면, 군부는 일부 지역에서 인터넷뿐 아니라 전기까지 차단하는 등 시민의 시위 참여를 막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AAPP는 “시민에 대한 긴급한 보호가 필요한 상태”라며 “군부가 미얀마 한 나라를 장악한 사실은 (아세안) 지역 전체에 큰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국제

“군부에 인권 빼앗긴 미얀마… 비슷한 경험 가진 한국이 도와줘야”

[인터뷰] 강인남 해외주민운동연대 코코 대표 “그래, 고생 좀 해줘. 어떻게든 돈을 보내야 하니까 몸 조심하고….” 지난 10일, 서울 이화동 해외주민운동연대(KOCO·이하 ‘코코’) 사무실에서는 조용한 첩보 작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군부 쿠데타에 맞서 싸우는 미얀마 현지 관계자들과 감시망을 피해 연락을 이어오며 현지 상황을 듣고, 한국에서 힘을 보탤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이날 만난 강인남 코코 대표에겐 미얀마 상황에 밝은 한국인과 현지인들의 연락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코코는 지난달 9일부터 한국에서 미얀마를 위한 모금을 시작했고, 매주 현지 주민과 유튜브로 인터뷰도 진행한다. 지금까지 모인 돈은 약 7200만원이다. 강 대표는 “돈은 모았지만 들키지 않고 안전히 돈을 전해줄 방법을 찾는 것도 문제”라며 한숨을 쉬었다. 안전모, 고글, 물, 마스크 등 시민들을 위한 물품 구매 비용을 대기 위해 모금을 시작했지만 누구든 시위대에게 돈을 전달하다 발각되면 위험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 군부가 자금의 흐름을 막기 위해 현지 화폐인 ‘짯’의 인출 금액을 하루 50만짯(약 5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어서 돈을 송금해줘도 뽑아 쓰기 어렵다. 강 대표는 “시민들은 군부 타도를 위해 위험한 상황에서도 모든 걸 걸고 시위에 나서고 있다”며 “비슷한 경험을 가진 한국 시민사회가 이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얀마 군부, 아이·여자·노인 무차별 폭력 강 대표는 30여 년간 국내외 빈민 운동에 앞장서왔다. 미얀마와는 지난 2008년부터 15년 가까이 이주민과 현지 마을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며 오랜 기간 인연을 맺어왔다.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신망이 두텁지만 대중에게는 그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평범한 주민들이 지역의 빈곤이나 교육 문제를 해결하도록

미얀마 쿠데타로 인도적 지원 중단 우려…국제사회 연대 촉구

UN을 비롯한 국제 사회가 지난 1일 발생한 미얀마 군부 쿠데타 사태로 인해 인도적 지원에 큰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며 경고하고 나섰다. 국제 인도적 지원 단체인 노르웨이난민위원회(NRC)는 4일 성명을 내고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가 미얀마 내에 커다란 인도주의적 위기를 발생시킬 수 있으며, 구호 활동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NRC는 “쿠데타 발생 전에도 인도적 지원 제공이 쉽지 않았던 라카인, 까친, 샨 등 분쟁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생존의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해 11월 치러진 총선거 결과를 문제 삼으면서 지난 1일 쿠데타를 공식 선언했다. 군부는 이날 새벽부터 국영방송을 통제하고 아웅 산 수치 국가고문 등 정치적 반대파를 감금하며 사실상 권력 장악에 성공했다. 국제 시민사회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미얀마 군부가 내국인을 비롯해 외국인의 지역 간 이동, 모임, 소셜미디어 접근까지 제한하면서 인도적 지원 활동에 큰 지장을 받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1300달러에 불과한 미얀마는 자국 안에서 일어난 분쟁으로 인해 살 곳을 잃어버린 ‘내국인 난민(IDP)’만 33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에 따르면, 1월 말부터 라카인 주와 친 주에서 3분의 1 이상의 내국인 난민들이 인도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미얀마의 경우 인도주의 활동가들이 개별 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주 관리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쿠데타로 인해 허가할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불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인권을위한아세안의원연합(APHR)은 “분쟁으로 살아온 땅과 생계를 잃은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분쟁으로 또다시 다른 곳으로 도망쳐야 하는 상황에

“나도 어엿한 이주민 선배… 우리가 나서 후배들 자립 도와야죠”

[우리사회 利주민] 소모뚜 주한미얀마노동자복지센터 운영위원장 소모뚜(45) 주한미얀마노동자복지센터 운영위원장이 한국 땅을 밟은 건 1995년이다. 한글 자모를 겨우 읽던 스무 살 청년은 “한국에서 강산이 두 번 넘게 변할 만큼 시간을 보냈다”며 너스레를 떨 만큼 한국어에 유창한 중년이 됐다. 그에게 일어난 변화는 한국어 실력만이 아니다. 고향 미얀마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던 그는 이주노동자 인권 운동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2003년 한국 정부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과 대대적인 강제 출국 조치에 맞선 장기 농성장 한가운데 그가 있었다. 또 ‘이주노동자의 방송(MWTV)’ 설립, 이주민들로 구성된 다국적 밴드 ‘스톱 크랙다운(Stop Crackdown)’ 활동 등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사(史)의 기념비적인 현장마다 빠지지 않았다. 이와 동시에 주한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군부 독재에 저항하는 시위를 10년간 이어갔고,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한국에 있는 미얀마인들을 모아내는 구심점 역할도 하고 있다. 지난 18일 인천 부평동에 있는 미얀마 식당 ‘브더욱 글로리’에서 만난 그는 “인권의 소중함을 한국에서 배웠다”고 했다. “한국은 시민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뤄낸 나라잖아요.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껴요. 미얀마 군부에 억눌려 주눅 들어 살던 미얀마 사람들도 자유로운 한국에서 살면서 자신감을 되찾곤 해요.” 한국인에게 의존해선 안 돼… 자립이 원칙 소모뚜 위원장은 난민이다. 지금이야 한국을 ‘참 살기 좋은 나라’로 표현하지만 한국 정착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생활하던 소모뚜 위원장은 2004년 난민 신청을 했다. 당시 법무부는 “본국에서 민주화 활동을 소극적으로 했고 귀국해도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난민 신청을 기각했다. 이후 소송을

로힝야 난민캠프 아동 10만명,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로힝야족 난민캠프 내 아동 10만명 이상이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것으로 파악됐다. 세이브더칠드런은 25일(현지 시각) 로힝야 난민 사태 3주년을 맞아 로힝야 난민의 인구 분석 자료를 발표했다. 이날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방글라데시와 미얀마 난민 캠프에 머무는 로힝야족 아동은 10만8037명으로 집계됐다. 세계 최대 규모의 난민 캠프인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는 3세 미만 아동만 7만5971명에 이른다. 모두 난민 캠프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다. 미얀마 라카인주의 실향민 캠프에 머물고 있는 7세 미만 아동도 3만2066명으로 파악됐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캠프에 머무는 로힝야 아동의 경우 교육과 기초 보건,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 환경에서 원조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콕스바자르 난민 캠프에 머물고 있는 하미다(가명)는 “현재 상황에선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아이들의 교육과 미래가 걱정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라카인주 실향민 캠프에 사는 카디자(가명)는 “이곳에 온 뒤로 제대로 먹거나 잠을 잘 수도 없고 아이들에게 약을 줄 수도 없다”고 했다. 오노 반 마넨 세이브더칠드런 방글라데시 사무소장은 “생명의 탄생은 기쁜 일이지만 아이들이 마주한 현실은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도 없고 이동의 자유조차 제한된 세상”이라며 “로힝야 아이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장기적인 관점의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정민 더나은미래 기자 hoom@chosun.com]

“세계 최대 난민촌 덮친 코로나… 감염자 파악 어려워, 매일이 아비규환”

[인터뷰] 유한나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로힝야 난민캠프의 코로나19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유한나(33) 국경없는의사회 보건증진교육활동가는 굳은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 100만명이 몰린 세계 최대 난민촌 ‘로힝야 난민캠프’에서 활동 중인 그는 “매일이 아비규환”이라고 말했다. 로힝야 난민캠프는 2017년 8월 미얀마 정부의 탄압을 피해 도망친 로힝야족이 방글라데시 남부 콕스바자르에 자리 잡으면서 생겨났다. 지난달 15일 이곳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고, 한 달 만에 확진자가 39명으로 늘었다. 사망자도 3명으로 집계됐다. 유한나 활동가는 “첫 확진자의 감염 경로조차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빽빽하게 들어선 집, 공용 수도시설 등 난민촌 특성상 감염 경로 파악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지난 5일과 16일 진행된 유한나 활동가와의 화상·서면 인터뷰를 통해 로힝야 난민캠프의 코로나19 상황을 전해들었다. 코로나 때문에 무너지는 난민촌 ―상황이 심각하다고 들었습니다. “오늘도 집집이 들러 감염병 예방 교육을 하고 왔어요. 코로나 터지기 전에는 텀을 두고 했던 교육을 지금은 매일 해요. 확진자가 나왔기 때문에 난민들도 NGO 직원들도 모두 긴장하며 돌아다니고 있어요.” ―첫 확진자가 나왔을 때는 난민촌에 동요가 있었나요? “많이 무서워했죠. 확진자 발생 한 달 전 정부에서 난민캠프 출입을 봉쇄했어요. 그래서 막연하게 괜찮을 거라는 생각도 했었죠. 근데 감염병이 퍼져버린 거예요. 기어코 올 게 왔구나 싶었어요.” ―확진자가 나온 뒤 어떤 조치가 내려졌나요? “난민캠프 출입 통제가 더 강화됐죠. 구호 단체 직원들도 대부분 자기 나라로 돌아갔어요. 저희 스태프도 2000명가량 있었는데 절반으로 줄었어요. 그나마 저희는 의료 구호 단체로

학살 피해 도망친 지 2년…로힝야족, 교육으로 ‘희망의 불씨’ 살린다

[로힝야 난민촌 이야기] 난민 100만명 육박, 여성·아동이 78%…성폭력·아동실종 등 치안 ‘빨간불’ 굿네이버스, 난민 캠프 지원사업…아동기초학습·여성직업교육 진행 아나르(40·가명)씨는 앞만 보고 내달렸다. 폭격 진동음으로 몸이 흔들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2017년 8월 25일. 동이 틀 무렵 미얀마 인딘 마을에 들이닥친 군인과 경찰들은 로힝야족을 대상으로 무차별 학살을 벌였다. 학살 피해 생존자들은 2년 전 그날을 떠올리며 “우리는 평화, 정의, 그리고 미얀마 국적을 원한다”고 말했다. 미얀마 정부군에 의한 로힝야 학살 사건으로 약 90만명이 방글라데시로 국경을 넘어 난민이 됐다. 당시 급하게 꾸려진 난민 캠프는 재난 상황만큼이나 열악했다. 구호 물품을 받으려고 몰린 인파에 여성과 아이들이 압사당했고, 성폭력과 인신매매가 횡행했다. 매년 우기가 찾아오면 토양 침식, 홍수, 산사태가 일어났다. 이들을 돕기 위해 국제구호단체들이 급파됐다. 현재 유엔을 비롯한 30여 국제구호단체가 주거, 식량, 안전, 교육, 의료 등 분야별로 난민 지원 사업을 나눠 맡고 있다. 사정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난민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기약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난민촌 10명 중 8명이 여성·아동…안전 문제 심각 방글라데시 난민 캠프에 머무는 로힝야족은 지난 7월 기준 91만2373명이다. 세계 최대 규모다. 대부분의 난민은 중부 쿠투팔롱(Kutupalong) 인근에 조성된 캠프 1~22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남부 나야파라(Nayapara) 주변에도 5개의 캠프가 있는데, 이곳에도 12만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 난민 캠프는 임시 거처다. 10㎡ 남짓한 움막에 4~8명의 한 가족이 산다. 전기는 공급되지 않는다. 화장실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식수를 길어오고 땔감도 구해와야 한다. 구호

[공변이 사는 法] ‘로힝야 학살 보고서’ 만드는 김기남 변호사…”훗날 국제재판 자료로 쓰이길”

[공변이 사는 法] 김기남 변호사 “로힝야 학살 사건이 벌어진 지 벌써 2년이 됐습니다. 문제 해결은커녕 난민을 향한 또 다른 갈등만 생겼죠. 더 늦기 전에 학살 사건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피해 생존자 320명 정도 만났어요. 1년에 네 번 정도 방글라데시 난민캠프를 오가면서 증언과 자료를 모았죠. 생존자 증언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합니다. 가끔 그분들 말씀이 머릿속을 스칠 때면 굉장히 고통스러워요. 전해 들은 이야기인데 말이에요.” 김기남(42) 변호사는 ‘로힝야 학살 기록사업’의 선봉에 있다. 지난 2017년 미얀마 정부군에 의한 로힝야 학살 사건 이후 9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UN은 사망자만 1000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지난 3년간 국제분쟁 전문 비영리단체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이하 아디) 소속으로 활동하며 피해 생존자 증언과 자료를 모아 마을 단위의 학살 보고서를 만들고 있다. 로힝야 사건에 대해 마을별로 기록사업을 벌이는 건 세계적으로도 처음 이뤄지는 작업이다. 지금까지 8개 마을에 대한 학살 보고서를 완성했고, 올해 20개 마을을 목표로 추가 작업을 진행 중이다. ‘2017년 8월’ 로힝야 비극의 시작…”증거 소멸 전에 기록으로 남겨야” 김기남 변호사에 따르면, 2017년 8월말 로힝야 집단학살은 마치 군사작전 펼치듯 동시다발로 일어났다. 미얀마 라카인주 북부의 로힝야 집단 거주마을에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한 건 25일. 시작은 인딘과 쿠텐콱 마을이었다. 군인을 태운 트럭이 마을에 몰려왔고, 무차별 학살이 벌어졌다. 다음 날인 26일에는 돈팩, 27일에는 춧핀에 총알이 쏟아졌다. 사흘 뒤 뚤라똘리에서는 단 하루 만에 약 400명의 주민이 학살됐다. 김

더나은미래 특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