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노동
[돌봄의 재발견] 밥은 밥솥이 하지만, 돌봄은 머리가 한다

그날도 머리를 너무 덜 쓴 게 문제였다.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이던 13개월 아이를 두고 출근한 날이었다. 절대 빠질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미팅을 마치고 나서야 아이의 열이 높아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급히 동네 소아청소년과로 향했다. 북새통인 대기실에서 울며 보채는 아이를 안고 한 시간 넘게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결국 열경기를 일으켰다. 공포에 휩싸인 그 순간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아이를 겨우 안정시킨 뒤에서야, 병원에 오기 전 해열제를 먹였어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모든 결정이 안일했다. 미팅이 정말 중요했을까. 조금 멀더라도 더 한산한 병원을 찾아갔어야 하지 않았을까. 친정엄마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는데. 돌봄이란 거창한 단일 결정이 아니라, 크고 작은 판단의 연속이다. 그 긴장이 풀리는 순간 후회는 언제든 찾아온다. ‘머리를 덜 썼다’는 자책은 육체적 피로보다 오래 남는다. ◇ 밥보다 힘든 건, 머리로 하는 돌봄 돌봄을 단순한 신체 노동으로만 인식한다면, “밥은 밥솥이 하지 않느냐”는 말도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니다. 문제는 돌봄 노동자의 머릿속이다. 냉장고에 어떤 식재료가 있는지, 누가 무엇을 먹고 싶어하는지, 언제 장을 볼 수 있을지, 식사 시간을 어떻게 조율할지, 업무 스케줄과 식사 준비를 동시에 고려하며 움직이는 ‘인지적 노동’이야말로 돌봄의 본질이다. 조직과 사회는 돌봄의 복잡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루트임팩트는 이 복잡한 머릿속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정량 지표나 단편적 현상 이면에 있는 돌봄의 서사를 파악하고, 돌봄이 우리의 심리와 정서에

[돌봄의 재발견] 돌봄, 멈출 수 없는 일에 대하여

2018년생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식은 조용하고 단출했다. 백 명 남짓한 아이들과 가족들이 모여 치른 짧은 환영 행사였다. 운동장이 가득 차도록 어린이들이 모였고,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마이크를 타고 메아리치던 ‘국민학교’ 시절을 기억하는 내게는 낯선 풍경이었다. 전국 초등학교 입학생 수가 역대 최저를 기록한 올해, 폐교가 결정된 학교만 49곳에 이른다고 한다. 아이 수가 줄면 오히려 더 나은 교육 환경이 펼쳐질 줄 알았다. 작은 교실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 우리 세대보다 더 행복해질 것이라 기대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 아동·청소년의 행복지수는 여전히 OECD 최하위권이다. 교사들의 직업 만족도는 중간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24년 기준 사교육비 총액은 39조 원. 역대 최고치다. 아이들은 줄었는데, 현장은 왜 더 힘들어졌을까. 우리는 지금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 ‘돌봄’의 정의부터 다시 전문가들은 초저출산의 주된 원인으로 ‘돌봄 공백’을 지목한다. 특히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는 반복적으로 지적돼 왔다. 정부는 ‘빈틈없는 돌봄’을 표방하며 각종 정책을 확대 중이다. 육아휴직 기간과 급여는 꾸준히 늘었고, 배우자 출산휴가 의무화, 가족돌봄휴가 도입 등 일·가정 양립 지원도 강화됐다. 2025년부터는 ‘늘봄학교’가 본격화됐다. 이제는 아동 돌봄을 넘어 노인, 일상 돌봄까지 정책의 외연이 넓어지고 있다. 사단법인 루트임팩트도 이 과제에 발맞춰 움직여왔다. 2017년에는 샤넬재단과 함께 ‘임팩트 커리어 W’를, 2020년에는 하나금융그룹과 함께 상생형 직장어린이집 ‘모두의숲’을 시작했다. ‘임팩트 커리어 W’는 육아로 유급노동시장을 떠났던 여성들이 다시 경력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2024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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