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밀알학교와 봉사자가 만든 20년의 기적, “우리 아이들과 마을이 함께 성장했습니다.”

20년 장기봉사자 김영희씨가 말하는 ‘밀알학교’    “처음엔 녹록지 않았죠. 간혹 아이들이 할퀴고,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서 한의원에서 침을 맞기도 했죠.”  지난 12일 서울 일원동 밀알학교에서 만난 김영희(64) 봉사자가 손가락으로 머리를 문지르며 말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듯 했다. 아프지 않았느냐고 묻자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밀알학교(교장 최병우)는 밀알복지재단(이사장 홍정길)이 운영하는 특수학교다. 김씨는 홍정길 밀알복지재단 이사장과의 인연으로 밀알학교 봉사를 시작했다. 그가 다니던 교회의 담임 목사였던 홍 이사장은 1994년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를 세우겠다고 했다. 3년 후 학교 설립 소식을 들은 김씨는 홍 이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목사님의 봉사에 저도 함께하고 싶어요.” 봉사를 시작하고 처음 한 달은 특히 힘들었단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울거나 뛰는 등의 행동을 자주 보인다. 초창기에는 봉사 후 집에 돌아가면 머리가 지끈거려 누워있곤 했다. 아이들이 울고 고함치는 소리가 귀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아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몰라서 하는 행동이라 서운하지 않다”면서 이제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정말 소중하다”고 미소지었다. 전화 한통으로 시작된 김씨의 선행은 올해로 20년째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아이들을 향한 그의 애정은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지난 12일, 김씨의 나눔이 세상의 빛을 보았다. 밀알학교 20주년 기념행사에서 졸업생과 학부모 43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우수봉사자로 선정돼 감사패를 수여 받은 것이다. 그는 “오히려 봉사를 함으로써 아이들에게 얻는 게 더 많은 것 같다”면서 “나를 엄마처럼 잘따르고 사랑해주는 아이들의 순수한 눈을 바라볼 때면 너무

[공감펀딩 그 후] ‘코끼리센터’ 김영희 선수가 전하는 감사메시지

‘코끼리센터’ 김영희 선수…“제 인생의 연장전은 나눔으로 시작됩니다”   “저를 잊지 않고 찾아주시고, 이렇게 도움을 주시니 정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5평 남짓한 공간엔 웃음이 가득했다. 지난 12월 16일, 거인병을 앓는 농구선수 김영희 선수를 돕기 위해 ‘더나은미래’와 네이버 해피빈재단과 함께 시작한 첫번째 ‘공감펀딩’ 현장. 더나은미래는 경기도 부천시에 위치한 김영희씨 자택을 찾아 기부금을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9월 2일 네이버 모바일 뉴스 메인, 네이버 해피빈, 더나은미래 온오프라인 지면에 오픈된 김영희씨를 위한 ‘공감펀딩’은 4시간만에 100%(목표액 300만원)을 달성, 30일간 총 2504만9700원(834%)이 모금됐다. 십시일반 후원에 동참한 이들은 총 1787명에 달한다. 박란희 더나은미래 이사는 “미디어로서 인터뷰 보도 외에도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네이버 해피빈재단과 공감펀딩을 시도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의 뜻이 모였다”면서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한 분들의 사례를 발굴해 실질적인 지원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전달식에는 공감펀딩에 참여한 한미글로벌, KGC인삼공사 관계자도 함께했다. 지난 9월, 더나은미래 지면을 통해 김영희씨 소식을 접한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이 100만원을 선뜻 기부했고, KGC인삼공사는 “앞으로 더나은미래의 공감펀딩에 소개되는 도움이 필요한 분들께 정관장 홍삼을 후원하겠다”는 뜻을 전한 바 있다.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을 대신해 전달식에 참석한 이세형 사회복지법인 따뜻한동행 부장은 “작게나마 나눔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전했고, 정관장 홍삼 4박스를 들고 김영희씨 자택을 찾은 김경옥 KGC 인삼공사 홍보부 과장은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되시길 바란다”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을 돕기 위한 사회공헌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김영희씨는

[공감펀딩]4시간 만에 목표액 달성, 나눔 동참 줄이어

김영희씨 ‘공감펀딩’ 그 후 거인병을 앓는 농구선수 김영희씨를 돕기 위해 ‘더나은미래 ’와 네이버 해피빈재단이 시작한 첫 번째 ‘공감펀딩 ’이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   지난 9월 2일 네이버 모바일 뉴스 메인 , 네이버 해피빈 ,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온오프라인 지면에 오픈된 김영희씨를 위한 공감펀딩<사진>은 4시간 만에 100% (목표액 300만원)를 달성, 30일간 총 2504만9700원(834%)이 모금됐습니다. 십시일반 후원에 동참한 이들은 총 1787명에 달합니다. 김영희씨 공감펀딩에 참여한 분들 중에는 남자가 51%로 여성(48%)보다 많았고, 연령별로는 30대(36%), 40대(36%), 20대(13%), 50대(11%) 순으로 참여율이 높았습니다. 더나은미래 지면을 통해 소식을 접한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은 100만원을 별도로 기부해주셨고, KGC인삼공사는 “앞으로 더나은미래의 공감펀딩에 소개되는 도움이 필요한 분들께 정관장 홍삼을 후원하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김영희씨는 “나를 이렇게 기억하고 격려해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면서 “기부금의 일부를 희귀 난치병 환아와 장애인 시설에 기부하고 싶다”는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더나은미래는 11월 중, 기부금을 김영희씨에게 직접 전달하고 그녀의 ‘기부 그 후’ 스토리를 전할 예정입니다.   

[공감펀딩]거인병으로 쓰러진 나를 일으킨 건 ‘나눔’

前 국가대표 농구선수 김영희 인터뷰  “너무 커서 무섭죠?” 커다란 손이 불쑥 눈앞에 나타났다. 키 205㎝. 국내 최장신 여자 농구 선수이자 전 국가대표인 김영희(52·사진)씨가 악수를 청하며 건넨 첫 인사였다. “우리 동네에선 ‘거인 아줌마’로 불려요(웃음). 처음엔 아이들이 매일같이 저희 집 앞에 몰려와서 ‘거인, 나와라~’ 하고 놀려댔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집으로 아이들을 불러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죠. ‘아줌마 착한 사람이야. 농구선수 아줌마야. 아줌마 놀릴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앞으로 아줌마 안 놀리면 나갈 때마다 맛있는 것 줄게’ 하고요. 그때부터 주머니 가득 사탕, 과자를 넣고 다녀요. 이젠 절 모르는 사람들이 ‘거인이다~ 남자야? 여자야?’ 하고 수군대면, 아이들이 먼저 나서서 ‘아니야, 마음씨 착한 거인 아줌마야. 농구선수 아줌마야’라고 말해줘요. 얼마나 예쁘고 고마운지 몰라요.” 김씨는 80년대 명실상부한 농구계 스타였다. 그녀가 세운 한 경기 최다 득점(52점) 기록은 깨지지 않는 전설로 남았고, 1984년 농구대잔치에선 득점왕·리바운드왕·자유투상·인기상·최우수상 등 5관왕을 차지할 정도로 코트 위를 주름잡았다. 구기 종목 최초로 우리나라가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1984년 LA 올림픽에도 출전해 은메달리스트가 됐다. ‘코끼리 센터’라 불리며 사랑받던 그녀의 삶은 그로부터 3년 뒤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거인병(말단비대증)’으로 쓰러져 선수 생활을 마감해야 했던 것. 그 후로 생사를 넘나드는 투병생활이 이어졌다. 거인병은 성장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돼 손·발·턱·코·귀·혀 등 인체의 말단 부위가 비정상적으로 커지고, 신체의 장기가 커지는 병이다. 한동안 ‘거인병을 앓는 농구선수’로 알려지면서 주변의 도움이 이어졌지만, 그 후로 10년 넘게 그녀의 이름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Cover Story] 나는 대한민국 1%입니다

[Cover Story] 더나은미래가 만난 50人의 특별한 이웃 前 농구 국가대표 김영희 “거인병으로 쓰러진 나를 일으킨 건 나눔” 5152만9338명.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 이웃의 숫자입니다(2015년 12월 기준). 아파트에선 경비원 아저씨, 회사에선 청소부 아줌마, 식당에선 아르바이트생을 쉽게 마주칩니다. 요즘엔 얼굴색이 다른 이들도 지하철에서 자주 보입니다. 이들이 ‘나와는 다르다’고 생각되지는 않나요. ‘더나은미래’는 청년 기자들과 함께 ‘좀 다를 것 같은’ 우리 이웃 50명을 만났습니다. 거인증을 앓는 전(前) 농구 국가대표 김영희 선수의 이야기를 커버 스토리에 담았고, 존중받지 못하는 노동으로 힘겨워하는 사람들, 한국이 낯선 사람들, 놓아버리기엔 너무 안타까운 미래 세대를 찾아갔습니다. 더불어 행복한 삶을 위한 1%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입니다. 편집자 주 “너무 커서 무섭죠?” 커다란 손이 불쑥 눈앞에 나타났다. 키 205㎝. 국내 최장신 여자 농구 선수이자 전 국가대표인 김영희(52·사진)씨가 악수를 청하며 건넨 첫 인사였다. “우리 동네에선 ‘거인 아줌마’로 불려요(웃음). 처음엔 아이들이 매일같이 저희 집 앞에 몰려와서 ‘거인, 나와라~’ 하고 놀려댔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집으로 아이들을 불러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죠. ‘아줌마 착한 사람이야. 농구선수 아줌마야. 아줌마 놀릴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앞으로 아줌마 안 놀리면 나갈 때마다 맛있는 것 줄게’ 하고요. 그때부터 주머니 가득 사탕, 과자를 넣고 다녀요. 이젠 절 모르는 사람들이 ‘거인이다~ 남자야? 여자야?’ 하고 수군대면, 아이들이 먼저 나서서 ‘아니야, 마음씨 착한 거인 아줌마야. 농구선수 아줌마야’라고 말해줘요. 얼마나 예쁘고 고마운지 몰라요.” 김씨는 80년대 명실상부한 농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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