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의 아동노동착취 소비자 불매운동 이어져

기업 노동조건 둘러싼 사건들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둘러싼 사건은 역사가 깊다. 1996년 미국의 ‘라이프’지에는 파키스탄 시알코트 지역 아동이 나이키 축구공을 바느질하는 사진이 게재됐다. 아이들에게 꿈을 줘야 할 축구공이 제3국의 가난한 아동 노동을 착취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미국과 유럽 전역을 뒤흔들었다. 미국 소비자 단체를 중심으로 시알코트 지역 축구공 불매운동이 벌어졌고, 나이키의 주가 또한 떨어졌다. 사건 초기 “우리가 아니라 하도급 업체가 잘못한 것”이라고 발뺌하던 나이키는 결국 들끓는 비난 여론과 매출 감소에 무릎을 꿇었다. 이번 방글라데시 참사 공장을 하도급 업체로 두고 있는 글로벌 의류 브랜드 ‘갭(GAP)’은 2007년에도 인도의 하도급 공장에서 어린이를 고용해 저가 의류를 생산한 사실이 영국 옵저버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대형 인명 사고로 이어진 사례도 많다. 지난해 12월 방글라데시 다카에 있는 타즈린 패션 공장에서 불이 났다. 월마트 등에 납품하는 의류를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노동자 600여명 중 112명이 숨지고 100명이 부상을 당했다. 2010년 12월에는 미국 브랜드 갭(Gap)과 J.C. 페니 등에 의류를 납품하던 방글라데시 ‘하밈 공장’에서 화재가 일어나 130명이 사망했다. 2006년 이래 방글라데시 의류 산업 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2000여명. 모두 공장주가 기본적인 건물 안전 및 화재 수칙을 지키지 않아 일어난 참사다. 파키스탄에서는 지난해 9월 카라치 ‘알리 엔터프라이즈’ 의류 공장에서 불이 나 노동자 289명이 사망했다. 같은 날 라호르 신발 공장에서도 화재가 발생해 21명이 숨졌다. 화재가 난 두 공장 모두 비상구가 없었고 화재경보기, 스프링 클러 등

“건물 무너진다” 해도 근무 강요… 밀어내기식 하도급이 낳은 최악의 人災

방글라데시 참사 근본 원인은 “건물 벽에 커다란 균열이 보였어요. 노동자들이 공장 입구에 모여서 ‘들어가지 않겠다’며 출근을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생산관리 매니저가 ‘걱정 말라’면서 저희들을 억지로 건물 안에 밀어 넣었어요. 오전 8시 반, 일을 시작하자마자 ‘쾅’ 하는 굉음이 들렸습니다.” 지난 24일, 방글라데시 다카 메디컬 대학병원에서 만난 로지나(여·23)씨는 가늘게 떨고 있었다. “모두 거짓말이었어요.” 그녀는 감각을 잃은 왼쪽 다리를 쳐다보며 눈물을 훔쳤다. 사망자 1130명. 부상자 2500명. 방글라데시 사상 최악의 산업재해다. 지난 4월 24일 의류 공장 ‘라나플라자’가 무너져내렸다. 사고 발생 한 달이 지나도록 정확한 실종자 수가 집계되지 않을 정도다. 생존자들은 “공장주는 이미 알고 있었다”면서 ‘예견된 참사’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 ‘사고’가 아니라 ‘살인’이다? 사건 하루 전부터 건물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지난달 23일 화요일 오전, 빌딩 외벽에 금이 간 것을 발견한 노동자들이 건물 밖으로 달려나갔다. 몇 시간 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산업경찰관이 건물 상태를 점검한 후 공장 가동을 중지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공장주들은 “내일 일하지 않으면 3일치 월급을 깎겠다”며 출근을 강요했다고 한다. 참사 현장에서 만난 카디자(여·18)씨는 “사고가 이미 5년 전부터 예견됐다”면서 “라나플라자 건물이 원래 5층으로 지어진 건물인데, 5년 전부터 불법으로 3개 층을 증축했고, 건축법상 허용되지 않는 질 나쁜 콘크리트, 철근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사건 당일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발견하고 창문으로 나가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인구에 비해 땅이 좁은 방글라데시는 주로 큰 연못을 메워 그 위에 건물을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좋은 일’이 정말 좋은 일이 되려면

지난 17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나의 꿈, 사진(My Dream, photo) 개막식에서 조세현 사진작가를 만나 얘기를 나눴습니다. 조 작가는 지난 1년 동안 삼성의 후원을 받아 소외 계층 청소년을 위한 사진 교육 프로그램 ‘조세현의 그린프레임’을 통해 200명의 아이를 만났습니다. 조 작가는 개막식 인사에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때문에 고생을 좀 했다”고 말했습니다. 내막을 들어봤습니다. 조세현 작가는 삼성의 지정기탁금으로 이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조세현 작가는 “아이들에게 사진을 교육시키려면 좋은 카메라도 사야 하고 찍은 사진을 맘껏 프린트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야 하는데, 모금회는 아직도 아이들 빵 사주고 학용품 사주는 것만 복지인 줄 알고 있어서 이런 부분을 일일이 설득하기가 힘들었다”며 “유명 사진작가인 내가 이 정도인데, 이름도 없는 복지기관은 오죽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생산자나 소비자보다는 이 둘을 이어주는 ‘유통’이 권력이 되고 있습니다. 콘텐츠 생산자인 종이신문은 갈수록 사정이 어려운데, 온라인 콘텐츠 유통망을 쥔 네이버는 승승장구하듯이 말입니다. 복지 분야로 눈을 돌려봐도 비슷합니다. 개인·기업의 기부금을 많이 거둬, 꼭 필요한 복지 현장에 이 기부금이 잘 쓰이도록 도와야 할 모금회는 어느새 복지 유통망의 ‘갑(甲)’이 돼버린 것 같습니다. ‘을(乙)’인 복지기관은 어떻게 하면 모금회 규정에 따라 사업을 잘 평가받아서 다음 연도 사업이 잘리지 않게 눈치 보느라 ‘할 말’을 못합니다. 자체 모금액이 수백억이 넘는 대형 NGO에선 “모금회 사업하려면 너무 피곤해서 아예 제안서를 내지 않는다”며 배짱을 부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풀뿌리 소규모 NGO는 ‘울며 겨자 먹기’로 비현실적인

[Cover Story] 하루 14시간의 살인적인 근무… 그리고 1130명의 죽음

방글라데시 의류 공장 참사 현장 르포 아름다운가게·더나은미래 공동기획시리즈 ① 당신의 옷은 떳떳합니까 지난 24일, 방글라데시 다카 대학 병원 입구에 들어서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환자들은 복도 바닥에 누워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샤바르 지역 희생자’라고 쓰인 종이가 붙은 병실 문을 열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30개의 침대 주변으로 환자, 보호자, 의료진들이 뒤엉켜 있었다. 한 달 전 무너져내려 1130명의 목숨을 앗아간 8층짜리 의류 공장, ‘라나플라자’에서 살아남은 노동자와 그의 가족들이다. “스스로 팔을 잘라야 했어요.” 베검(여·25)씨가 왼쪽 팔에 동여맨 하얀 붕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라나플라자 뉴웨이브 공장에서 재봉사로 일하고 있었다. 건물이 무너지던 날, 베검씨는 공장 매니저와 심하게 다퉜다. “건물 외벽에 심하게 금이 간 것을 보고, 무서워서 도저히 일할 수가 없었어요. 오늘 일을 쉬고 싶다고 했더니, ‘그럼 자르겠다’고 윽박지르더군요.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3층에서 일하고 있는 여동생에게 뛰어갔어요. 동생과 함께 짐을 싸고 있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갔고, 그 이후론 기억이 나질 않아요.” 눈을 떴을 땐 사방이 컴컴했다. 건물 기둥 사이에 끼여 움직일 수도 없었다. 하루 뒤, 응급 구조대가 그녀를 발견했다. 하지만 엉킨 건물 더미 사이에서 그녀의 팔을 짓누르고 있는 기둥을 찾을 수 없어 속수무책이었다. 포기하려는 구조대에게 베검씨는 애원했다. “구조대원이 ‘혹시 칼을 주면 스스로 팔을 자르고 나올 수 있겠느냐’고 물었어요. 나가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아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틀이 더 지나서야 베검씨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잘려진 그녀의 팔은 이미 썩어들어가고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사람의 값’ 안 매기는 연습이 더 중요

차별 없는 사회는 없습니다. 경중(輕重)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선진국에도 차별은 있습니다. 미국에서 살 때, 한국의 어린이집에 해당하는 ‘프리스쿨(preschool)’ 월 보육료가 3개월째 100불씩 추가 청구된 적이 있었습니다. 첫 달에 분명 수정을 요구했는데, “알았다” 하고선 반복됐습니다. 프리스쿨 행정실에 찾아가 항의하니, 처음 듣는다는 태도로 “지역 교육청에 가서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역 교육청 담당자는 “프리스쿨에서 잘못된 정보를 준 것이니, 그쪽에서 해결하라”고 싸늘하게 말했습니다. 양측의 핑퐁을 거친 끝에 다시 프리스쿨. 도로시라는 행정담당자는 경멸하는 듯한 투로 “알았어. 해주면 되잖아”라고 했습니다. 내 잘못도 아닌 일로 하루 종일 여기저기서 무시당하고 집에 오니, ‘한국의 결혼이주 여성 심정이 이렇겠지’ 하면서 억울하고 서러워 눈물이 났습니다. 최근 포스코에너지·프라임 베이커리·남양유업 사건, 뒤이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을 지켜보면서 저는 ‘사람값’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모든 것에 값이 매겨지는 자본주의 사회에 익숙하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사람한테도 값을 매기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요. 포스코에너지 임원, 프라임 베이커리 사장,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맘속에는 ‘나는 쟤들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을 겁니다. 윤창중 전 대변인 또한 스물한 살 여성인턴에 대해 ‘좀 함부로 해도 괜찮겠지’ 하는 무의식이 있었을 겁니다. 기념식 행사 내빈소개를 할 때, 사망자 위로금이나 이혼 위자료를 산정할 때 등등 서열과 사람값이 매겨지는 건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습니다. 갑을 관계의 ‘을’만이 아니라, 아동·청소년·장애인·여성·다문화 가정·노인 등 소위 ‘돈 안 되는’ 대상에 대한 차별은 뿌리 깊습니다. 헌법 제2장에는 ‘모든 국민은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CEO가 관심 없으면, CSR 꿈도 꾸지 마라”

지난주 두산의 한 임원을 만났는데, 명함을 새로 주면서 “바뀐 걸 한번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사회공헌팀에서 CSR팀으로 이름이 바뀌었기에, 축하와 격려를 했습니다. 그는 “아직도 많은 사람은 ‘그게 그거 아냐?’라는 반응이 많다”고 웃었습니다. 두산은 지난해 박용만 회장이 10년 가까이 공들여 완성한 ‘두산웨이(Way)’를 전파하는 데 한창이었습니다. 임원의 휴대폰에 저장된 두산웨이를 한번 읽어봤습니다. ‘세계 속의 자랑스러운 두산’을 만들기 위한 아홉 가지 핵심가치를 보고 약간 놀랐습니다. 인재, 정직과 투명성, 고객, 사회적 책임, 안전과 환경…. CSR의 세계표준인 ISO 26000 일곱 가지 핵심 가치와 거의 다를 바 없었습니다. 박용만 회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직접 나서서 CSR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각 계열사 CEO들에게 CSR을 독려한다고 합니다. 지난 10일 열린 ‘더나은미래’의 콘퍼런스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CEO가 관심 없으면, 아예 CSR을 할 생각도 하지 말라”는 충고를 했습니다. CSR을 제대로 하기란 참 쉽지 않다는 걸 드러내는 대목이었습니다. 한 대기업 CSR 팀장은 “사회공헌은 그나마 부드럽지만, CSR에서 다루는 지배구조·노동 관행·공정거래·환경 등은 한결같이 예민하고 민감하지 않으냐”며 “일개 부서장이 어떻게 조직 내에서 이런 문제를 쉽게 거론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인지, 새 정부 출범 초기마다 공정거래위원회나 국세청, 사법기관 등이 나서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압박을 세게 합니다. ‘정권 말기가 되면 기업이 말을 듣지 않으니, 힘이 있을 때 밀어붙인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지난 17일, 재계 2위인 현대차가 “물류와 광고 물량의 절반을 중소기업 등 외부 업체에 개방하겠다”고 전격 발표했습니다. 이 발표를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해외 진출 기업과 NGO를 위한 윈윈은?

#1. “한국의 한 유명 선박제조업체가 인근 지역에 조선소를 지으려고 하면서 지역 주민과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지난 19일 필리핀 출장길에서 만난 존 레이 티앙고 나보타스 시장과의 인터뷰 말미에, 통역을 도와준 하트하트재단 임문희 지부장님은 “개인적으로 여쭐 게 있다”며 시장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 그건 한국 기업이 아니라 중국 기업으로 아는데요.” 알고 보니, 지역 주민과 갈등을 겪는 것은 중국 기업인데 어찌 된 일인지 현지 주민들에겐 그게 한국의 H기업이라고 소문이 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2. 내친김에 임 지부장에게 “이곳에서 활동하는 한국 기업의 CSR 활동은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최근 대형음료회사를 인수한 국내의 한 대기업 관계자와 가난한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CSR 활동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기업 관계자는 “가난한 필리핀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려고 예산을 뽑아본 결과, 너무 비싸서 포기했다”고 말했답니다. 필리핀에서 23년째 선교사로 지내고 있는 임 지부장이 이 예산 내역을 보니, 사립대학교 입학을 기준으로 뽑은 것이었습니다. 임 지부장은 “필리핀은 빈부 격차가 심해서, 사립대학 학비는 공립대학의 12~13배다”라며 “사립대학에 갈 정도의 경제적 수준이면 굳이 장학금을 줄 필요가 없는 경우도 많다”고 조언했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대기업 관계자는 “올해는 사업 계획이 잡혔으니 내년쯤 다시 의논해보자”고 했다고 합니다. 두 가지 사례를 접하며, 오는 4월 10일 ‘더나은미래’가 주최하는 ‘해외 진출 기업의 글로벌 CSR’ 콘퍼런스와도 맥락이 닿아있어서인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필리핀 빈민촌임에도, 취재를 하러 간 기자에게 이름도 잘 모르는 한류

“자녀를 학대한 부모들은 항상 훈육했다고 우기더라”

김정미 경기도 아동보호전문기관장 15년 동안 아동 학대 관련 전문 상담가로 활동한 김정미 경기도 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아동 학대는 부모가 적절한 자녀 양육 방법을 잘 모르는 데서 출발한다”면서 “부모의 생각, 생활 습관부터 차근차근 바꿔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동 학대’에 대한 국민 인식의 변화가 궁금하다. “2000년을 기점으로 아동 학대에 관한 인식 전환이 일어났다. 아동복지법에 ‘아동 학대’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부터다. 심각한 신체 손상만을 아동 학대로 인정하던 분위기에서 아동을 방치하거나 정서적으로 상처를 주는 것도 학대로 인식하게 됐다. 실제로 2000년까지는 신체 학대 신고율이 가장 높았지만 2001년부터는 방임(35.2%)이, 2009년부터는 정서 학대(36.2%)가 가장 많이 발견되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동 학대의 유형이 변화했다기보다는, 국민이 아동 학대를 인식하는 범주가 신체 학대에서 정서 학대까지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정서 학대의 유형이 궁금하다. 정서 학대는 자녀에게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좁은 공간에 자녀를 혼자 가두어 두거나, 벌거벗겨 내쫓는 행위, 잠을 재우지 않거나, 아동의 나이에 적절치 않은 과도한 일을 시키는 것도 정서 학대다. 실제로 어릴 적부터 부모의 싸움을 보면서 자란 초등학생이 심각한 원형 탈모와 학교생활 부적응을 호소한 예가 많다. 지속적인 정서 학대는 우울증, 낮은 학업 성취, 도벽, 거짓말, 타인에 대한 공격성 등 아동의 정상적인 발달을 해친다. 특히 세 살 이전에 경험한 정서 학대는 치명적인 후유증을 낳는다.” ―’훈육’과 ‘학대’를 혼동하는 부모가 많다. 자녀를 올바르게 훈육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담하다 보면 부모는 ‘아이가 도통 얘기를 하지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기업의 CSR, 윤리적 책임도 다해야 완성

5년 전, 한화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을 몇 개월 동안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 언론에 짤막하게 보도되었을 때만 해도, ‘소문’의 진원지를 후속 취재할 길이 없어 사건은 묻히는 분위기였습니다. 며칠 후 유흥주점 종업원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언론사가 이를 집중보도하면서 조직폭력배까지 동원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습니다. 로비를 받고, 늑장수사와 수사중단을 지시한 경찰 고위 간부들이 줄줄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이 사건을 접하며 ‘법치국가’ 대한민국을 비웃는 듯한, 대기업 오너의 삐뚤어진 행태에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도, 올해에도 계열사 자금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태광, SK 등 대기업 총수가 구속되는 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대한 외부의 압력이 높아지자, 일부에서는 반대 목소리도 제기됩니다. “기업의 진정한 책임은 이윤 창출을 통해 세금을 납부하고, 일자리를 늘려 고용을 잘하는 것 아니냐” “선진국은 기업 사회공헌 비율이 우리보다 훨씬 낮다” 등의 주장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최근 몇 년 사이 유독 기업의 사회적 책임 요구가 높아진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미 조지아대 캐롤 교수는 CSR의 4단계 책임론으로 유명합니다. 1단계는 경제적 책임으로, 양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판매해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단계는 법적 책임으로, 공정한 규칙 속에서 법을 준수하며 기업을 경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단계는 윤리적 책임인데, 기업 또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소비자와 종업원, 지역주민, 정부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기대와 기준, 가치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4단계 자선적 책임은 경영활동과 관계없이 기부나 사회공헌 등을 통해 사회로부터 얻은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설치하고 고장 난 채 방치… 왜 원조하나요

제가 처음 국제구호개발 현장을 가본 것은 2006년입니다. 월드비전과 함께 케냐 투르카나 지역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을 보고 난 후 병원 건물 뒤편에서 한참 눈물을 쏟았습니다. 아이는 두 손가락으로 팔을 감싸니, 한 마디가 남을 만큼 앙상했습니다. 케냐에서 또 한 번 놀란 현장은 드넓게 펼쳐진 ‘소람(Sorgho m·옥수수의 일종)’ 농장이었습니다. 수십년의 역사를 지닌 월드비전은 이들에게 농사를 가르치고, 지역개발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작년 초, 저는 태양광 전등이 필요한 라오스 현장을 취재 갔다가 다소 민망한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라오스 싸이냐부리의 한 소학교에서 수십 명의 선생님이 점심만찬을 차려놓고 저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저를 안내한 분이 2년 동안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지낼 때 지은 건물이었는데, 코이카가 이 지역의 봉사단 파견을 돌연 없애면서 컴퓨터실은 무용지물이 돼버렸습니다. 그녀는 “너무 미안하다”며 매년 자비를 들여 라오스를 찾아 자체 애프터서비스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원조하는 나라(공여국)’의 첫발을 내디딘 초보자에 불과합니다. 코이카가 생긴 지 22년 됐지만, ODA 규모가 늘어나고 개발협력과 관련한 관심이 높아진 건 10년도 안 됩니다. ODA 예산이 증가하면서 국내사업을 하던 NPO들도 너나 할 것 없이 해외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국제본부로부터 매뉴얼을 전수받을 수 있는 일부 초대형 NPO를 제외하면, 코이카와 토종 NPO, 기업, 대학, 병원 등 많은 곳에서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태양광이든, 수세식 화장실이든, 학교 컴퓨터실이든 지어주는 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라오스에 가보면 중국인들이 뿌려놓은 태양광 패널이 고장 난 채 방치된 걸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비효율, 이중규제… 이제 그만 내려놓으세요

기자 초년병 시절 가장 이해가 안 됐던 것은 공무원의 명함이었습니다. 같은 부처임에도 부서별로 명함의 모양과 디자인이 제각각이었습니다. “기관의 첫인상이나 마찬가지인데 통일하지 않으면 외부에서 어떻게 보겠느냐”고 했지만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한 서울대 교수와 식사 자리에서 이 문제에 관한 흥미로운 해석을 들었습니다.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꾸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렇게 해야 간판업자도 먹고살고, 명함 파는 업자도 먹고산다. 과학기술 R&D 예산이 다 쪼개져서 나눠 먹기식으로 배분되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정부 부처도 비효율적인 걸 알지만 그 비효율 때문에 많은 사람의 일자리가 생긴다.” 농담 반, 진담 반이었지만 꽤 그럴듯한 논리였습니다. 정부의 비효율과 중복문제는 해묵은 주제입니다. 한 NPO 고위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들어 청와대에서 ‘나눔문화를 정부 시책으로 삼겠다’며 정부 고위 관계자가 도와달라고 하기에 ‘이제 겨우 NPO가 스스로 자리잡았는데, 왜 정부가 나서느냐. 제발 관심 좀 끊어달라’고 말해서 불편한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말했습니다. 한 기업 고위 임원은 “정부가 기업 팔을 비틀어 진행하는 사회공헌은 효과성도 낮고, 장기적으로 기업이나 사회에 모두 도움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실제 현 정부에서 부처별로 경쟁하듯 기업의 손길에 기댄 사회공헌성 프로그램이 많았습니다. 지난 11일 한국NPO공동회의와 한국비영리학회가 공동주최한 포럼에서도 이 같은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입법 예고한 ‘나눔기본법’에 대해 참석자들은 “목적별·대상별·부처별로 분산된 나눔 관련 업무를 총괄하지 못하면 또 하나의 이중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반발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박두준 아이들과미래 상임이사는 “국세청에서 이미 자산 10억원 이상, 수입 5억원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고액기부 시대 만나는 비영리단체들의 고민

한두 달 전쯤, 비영리단체의 젊은 간사들과 저녁을 함께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서로 애로사항을 자연스럽게 털어놓았는데, 한 단체의 간사가 재밌는 얘기를 했습니다. “서울의 송파·강남·서초 권역의 지부를 맡고 있는데, 이 지역의 고액기부자들을 따로 관리해보려고 본부 후원관리팀에 물어봤더니 안 된다고 하더라. 본부 후원관리팀에선 그 데이터베이스 자체가 자신의 실적이기 때문에 빼앗기는 걸 싫어한다. 고액기부자 관리는 해당 지부에서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라고 하더군요. 신년을 맞아 더나은미래 팀원들은 ‘향후 5년 기부&모금 트렌드’ 전망을 듣기 위해 모금액 100억원 이상 대형 NGO 9곳의 모금 전문가들을 만났습니다. 예상대로 고액기부 시대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하지만 해외에 본부를 둔 인터내셔널NGO와 달리, 토종 NGO들은 “최신 모금 기법과 기부자 관리, 세무와 법무 등 거액 모금에 경험이 없어 고민” 이라고 했습니다. 위 사례와 같이 고액기부자 관리를 본부에서 할 지 해당 지부에서 할 지 등 디테일한 부분에 대한 논의를 아직 시작조차 못하는 상황입니다. 고액기부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면 초기에는 대학교나 병원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입니다. 모교를 발전시키고 생명을 살리는 마음이 아직은 더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영리단체 또한 곧 고액기부자를 모시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일어날 겁니다. 이 과정에서 비영리단체의 질적 전환이 또 한 번 요구될지도 모릅니다. 최영우 도움과나눔 대표는 “서울대의 외부 발전위원이 60명가량인데, 시어머니가 60명이나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조직이 열려 있지 않으면 쉽지 않다”며 “임기 제한 규정이 없는 비영리단체의 이사회 문제, 늘 제기되는 회계 투명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