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공익 향한 4년의 길… 이제 그 내비게이터로

100장 가까운 원고를 읽다가 그만 울어버렸습니다. 창간 4주년을 맞아 공익 분야 전문가 100명에게 설문을 부탁했고, 마지막 질문에 ‘더나은미래에 바란다’를 슬쩍 집어넣었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정성스러운 코멘트가 고맙고, 따끔하고, 힘이 났습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겁도 납니다. “해외에서 정부, 기업, 비영리 섹터가 함께 사회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가는 우수한 사례들을 더 많이 소개해줬으면.” “공익 분야 롤모델 리더들을 발굴해 우리 사회의 영웅으로 만들어주길.” “정책과 제도가 커버할 수 없는 사각지대의 현실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기사가 많아지길.” “규모는 작지만 변화를 이끄는 작은 NGO를 많이 소개해주길.” “보수 진보를 넘어 사회 혁신가를 발굴하고 서로 연결해주는 장을 마련해주길.” “NGO가 자칫 매너리즘에 빠져 사회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때 자극받을 수 있는 NGO의 거울이 되어주길.” “우리 사회에 도움이 필요하지만 스스로의 목소리가 약한 계층에 대한 권리 옹호에도 힘써주길.” “공익 활동과 활동가를 지나치게 미화하지 말고, 언론으로서 건강한 감시와 견제 기능을 해주길.” “시민사회단체들이 정부 및 기업과 협력할 수 있는 네트워크이자 브리지 역할을 해주길.” “복지에 치우치지 말고, 사회·경제·환경 등 주제별로 균형 있게 접근해주길.” “자선적 관점의 접근보다는 권리의 관점에서 이슈를 다뤄주길.” “공익 분야의 의제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중장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공익 분야 전문기자들을 지속적으로 양성하는 등 네트워크와 인적·물적 DB를 구축하길.” 이처럼 많은 분이 “더나은미래가 공익 분야의 내비게이터가 되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지금도 진행 중인 ‘세월호 참사’를 보며, 저는 사실 ‘언론은 뭘 할 수 있을까’를 되물었습니다.

“아동학대 예방 위해 서명해주세요”

아동보호 전문단체 3곳, 공동 캠페인 시작 아동보호 전문기관을 운영해 온 민간 단체 3곳이 정부의 ‘아동 학대 예방 전달체계’ 지원을 촉구하기 위해 모였다. 굿네이버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세이브더칠드런 등은 지난 11일부터 아동 학대 예방을 위한 제도 개선 캠페인 ‘대한민국이 미안해, 약속해’를 공동으로 진행키로 했다. 현재 전국 50곳 아동보호 전문기관 중 굿네이버스는 25곳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7곳, 세이브더칠드런은 5곳을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 아동보호 전문기관은 전국 244개 지자체 중 50개만 설치돼 있어 50개 기관이 평균 5개 지자체의 아동 학대 사건을 담당한다. 이순기 굿네이버스 복지사업부장은 “지역에 따라 상담원이 출동하는 데만 3~4시간씩 걸리는 등 어느 지역에 거주하느냐에 따라 아동보호 체계가 달라진다”며 “미국, 영국 등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아동 학대 전문 상담원 또한 10분의 1에 불과해 아동 학대 예방 및 보호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올해 9월 29일부터 시행 예정인 ‘아동학대특례법’에 근거해 책정됐던 예산은 기획재정부에 의해 전액 삭감됐다〈4월 8일자 더나은미래 C1·C3면(http://futurechosun.com)〉. 민간 단체들은 공동 캠페인을 통해 ▲지자체에 맡긴 아동 학대 예방사업을 국가 사무로 환원하고 ▲전 지역 시·군·구 단위에 아동보호 전문기관을 설치하고 상담원 인력을 확충할 것을 촉구할 계획이다. 민간 단체들은 100만명의 서명을 모아 관련 정부 부처에 전달키로 했다. 온라인 서명은 각 단체 홈페이지에서 참여할 수 있다. 5월 어린이 주간에는 전국에서 집중 서명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온라인 서명에 참여하려면 굿네이버스(www.goodneighbors.kr), 초록우산어린이재단(www.childfund.or.kr), 세이브더칠드런(www.sc.or.kr) 홈페이지를 클릭.

폭언·폭력·조폭 대동 협박·트라우마… 정작 보호 받아야 할 사람은 그들입니다

아동보호기관 상담원 20명의 목소리 정부 대신 민간이 학대 보호 사업 맡아 상담원 보호는커녕 책임 전가·비난만 “몇 년 전 한 부인이 남편을 아동 학대와 가정 폭력으로 신고하기 위해 기관을 찾아왔어요. 칼을 들고 뒤쫓아온 남편은 부인을 찔렀어요. 같이 상담하시던 관장님이 급히 의자로 칼을 쳐 떨어뜨렸지만, 부인은 그 자리에서 과다출혈로 죽고 남편도 결국 자살했어요. 너무 충격적이어서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충청 지역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서 만난 한 상담원의 말이다. 우리나라에선 하루 18건의 아동 학대가 발생하고, 매달 아동 학대로 인해 아동 한 명꼴로 사망한다. 아동 학대 발생 건수도 2001년 2105건에서 2012년 6403건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아동 학대 상담원 수는 전국 338명(중앙 13명 포함)이다. 고작 338명의 상담원이 933만명 아동을 대상으로 한 학대 사건을 모두 커버하는 셈이다. ‘더나은미래’가 만난 20명의 상담원은 “아이들을 제대로 보호할 여건도 안 되고, 아이들 죽음에 가장 상처받는 건 상담원 본인인데, 비난만 퍼부으니 답답하다”는 반응이었다. ◇상담원 신체적·심리적 위험 노출 커 2011년 11월 아동 학대 가해자인 부모가 경남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 건물에 불을 지른 사건이 발생했다. 사무실은 완전히 불타버렸다. 이를 운영하던 민간 법인은 이후 “이 지역의 아동 학대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며 기관 운영을 반납했다. 당장 경남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이 관할하는 시·군·구는 거창군, 함양군, 산청군, 진주시, 하동군, 사천시, 남해군의 아동 학대 사건을 맡을 곳이 없어진 것. 경상남도는 이후 아동 학대 사업을 할 기관을 공개 모집했지만 나서는 민간 단체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아동학대 예방정책, 이대로 괜찮은가] ② “인력 턱없이 부족, 기존 사례만 관리해도 더 많은 학대 막을 텐데…”

[아동학대 예방정책, 이대로 괜찮은가] (2)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동행취재 울주와 칠곡의 아동 학대 사망 사례로 인해 전국이 떠들썩하다. 아동 학대 현장의 최전선에 있는 전국 50개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선 매일 이 같은 사건을 접하지만, 정작 아동 한 명이 죽기 전에는 주목조차 받지 못한다. 지난 11일 더나은미래 주선영 기자는 경기 지역의 한 아동보호 전문기관 상담원의 하루를 동행 취했다. 편집자 주 “근래 아슬아슬한 현장이 많았어요. 며칠 전 한 초등학생이 아버지로부터 온몸에 멍이 들 정도로 심하게 맞아 긴급 분리한 사건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내 아이 돌려주지 않으면 농약 먹고 자살하겠다’고 난리였고요. 오늘 현장에선 어떤 돌발 상황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오전 10시. 간단한 브리핑이 끝나자 김정환(가명·30) 상담팀장이 이날 동행할 신고 사례를 설명했다. “할머니가 중학생, 초등학생 남매를 돌보는데, 아이들끼리만 지내서 보호가 안 되는 상황이라고 엊그제 신고가 들어왔다”고 했다. 우선 학교에서 해당 아동을 만나기로 하고, 김 팀장과 올해 경력 4년차인 박민주(가명·27) 상담원이 2인1조로 함께 차에 올랐다. 아동보호 전문기관을 출발한 차는 고속도로로 내달렸다. 이 기관에서 담당하는 시(市)는 총 4곳이다. 서울시의 3배에 달하는 면적을 상담원 9명이 담당한다. 지자체 담당 공무원에게 “아동 학대 사건이 이렇게 많으니 인력 예산을 지원해달라”고 몇 차례 설득한 끝에 그나마 올해 계약직 상담원 1명을 늘린 것이라고 했다. 신고 현장까지는 2시간 넘게 걸렸다. 학교 담당 교사의 도움을 받아 정예솔(가명·11)양을 상담실에서 만났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정양은 “할머니가 가끔 다녀가시고, 중학생인 오빠는 집에 잘 안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수학여행, 꼭 필요한가요”

세월호 참사가 터진 다음 날인 17일 다음 아고라에는 ‘초중고 수학여행, 수련회 없애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하루 만에 2만명이 넘게 서명했습니다. 청원 제안자는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80년대처럼 경제가 어려워 가족 여행이나 캠핑 등이 드문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수학여행과 수련회 등 단체 이동으로 인한 사고 위험 노출과 행사 이후 후유증(요즘 초딩들도 수학여행 후 왕따, 폭력 등에 시달린다고 합니다)이 있는 관행적인 행사를 수십년째 없애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우리 주위에는 이런 관행이 참 많습니다. 외국인들의 눈에는 좀 이상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한 NGO 사무국장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외국계 기업 CEO에게 이메일을 보내면 대부분 피드백을 하지만, 국내 기업 CEO는 절대 피드백을 하지 않는다. 외국계 기업 사회공헌 담당 임원은 협의할 일이 있으면 아무 거리낌 없이 우리 사무실로 찾아오지만, 국내 기업 임원은 바로 코앞에 사무실이 있어도 반드시 우리가 그 사무실을 찾아가야 한다.” 기업뿐 아니라 정부도 비슷합니다. 아동 학대 문제를 애초에 정부에서 주도권을 쥐고 담당했더라면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요. ‘다문화가족지원센터’나 ‘드림스타트센터’와 같이 200개가 넘는 센터를 지정하고, 담당 인력과 인프라 예산을 확보했을 것입니다. 민간단체가 아동 학대 사업을 해왔다는 이유로 정부는 이 사업의 우선순위를 낮게 책정해왔습니다. 이번 ‘더나은미래’ 인터뷰에서 유명 석학인 기 소르망도 말하듯 이제 정부와 시장(기업)이 모든 걸 할 수 있는 시대는 갔습니다. 이 흐름은 앞으로 더 강화될 겁니다. 우리는 과연 준비가 돼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역 내 전문성·네트워크 다 무시… 乙이 모든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이상한’ 계약

“‘을'(운영법인)은 사업을 수행함에 있어 발생하는 모든 사고에 대하여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 ‘갑'(지방자치단체)은 ‘을’이 사업을 수행함에 있어 다수의 민원을 야기하거나 각종 사건·사고에 연루되어 사업수행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한 경우 계약의 해지 등을 할 수 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올해 초 각 지자체로부터 받은 ‘아동보호전문기관 운영 위탁 표준계약서’의 일부다. 보건복지부는 지금까지 ‘지정’ 형태로 운영해온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올해 3월 안에 ‘위탁’으로 전환하라고 지시했다. 위탁은 계약 기간이 끝난 이후엔 평가 및 경쟁을 통해 위탁 기관을 재선정하게 되어 있다. 이를 두고 한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아동학대 문제는 일반 복지사업과 다르게 위기 상황에 개입하는 전문성이 필요하다”며 “2000년부터 길게는 15년 동안 한 민간 단체가 지역 내에서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쌓아왔는데, 이제 와서 관에서 민간 단체를 ‘갑을 관계’로 규정해 단체끼리 경쟁체제를 만드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위탁 방식 자체도 을이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불공정 계약’이다. 지자체마다 위탁 기간도 다르다. 사회복지사업법 제34조에 의하면 복지기관의 위탁 기간은 ‘사례 관리 지속성’ 등을 위해 통상 5년으로 되어 있지만, 지자체에 따라 ‘지자체별 위탁조례’를 들이밀며 짧게는 3년마다 위탁 기관을 재선정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법상 ‘사회복지시설’이 아닌 ‘아동복지전담기관’으로 되어 있으니 사회복지사업법을 적용해줄 수 없다는 지자체도 있다.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민간 단체가 아동보호전문기관 하나를 맡으면 많게는 기관당 2억원 이상씩 자부담을 해야 하기 때문에 위탁으로 변경됐다고 해도 경쟁이 치열하거나 쉽게 이 사업을 수행할 단체가 많진 않다”면서도 “잇속 챙기는 사업 하는 것도

학대받는 아동 놓고 중앙정부·지자체 책임 떠밀어

아동정책조정위원회, 6년 만에야… 돈줄 쥔 기재부 요지부동 보건복지부 종합 대책 발표했지만 예산 알맹이 빠져 있어 신고 의무자 교육·가해 부모 상담 민간 위탁 기관 부담만 가중 예산 지자체마다 들쑥날쑥 지방 이양 후 학대 아동 141명 사망 지난 2월 28일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제5차 아동정책조정위원회’가 열렸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 번도 열리지 않은 회의였다. 2007년 제4차 위원회 이후 6년 만이었다. 이날 위원회에는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 이영찬 보건복지부 차관, 이복실 여성가족부 차관, 서남수 교육부 장관 등 아동 관련 단체의 장관 및 아동 분야 민간 전문위원 10명이 참석했다. “아동학대 예방 및 보호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보자”는 자리였다. ‘예산’ 문제가 제기되자 자리는 민감해지기 시작했다. 민간위원 측에서 “(아동예산이) 지방으로 이양된 이후 지난 10년간 아동 141명이 학대로 숨졌다”며 “아동학대 사안의 경우 중앙으로 국고 환수해서 아동보호전문기관 개수도 늘리고 지원을 체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기관당 3억원씩 최소 100곳 정도로 300억원의 국비를 아동학대 분야로 배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현오석 기재부 장관은 “지방으로 이양했을 때는 다 이유가 있지 않았겠느냐”며 “아동이 학대로 사망한 수가 지방으로 이양해서 더 많은지 아닌지는 데이터를 갖고 와서 이야기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박하며 분위기가 싸늘해졌다고 한다. 2015년 ‘노인’과 ‘장애인’ 예산은 국고 사업으로 환수되는 데 반해 아동예산이 지자체 사업으로 남은 데 대한 이유를 묻자 현 장관은 “충북 음성에 있는 꽃동네는 전국에 있는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라 국고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이서현 보고서’

이번호 커버스토리를 다루면서 울산 울주에서 계모의 학대로 사망한 8세 소녀 ‘이서현 보고서’를 읽었습니다. ‘제2의 이서현 사건’을 막기 위해 사건의 전개 과정, 제도적 문제점, 개선 방향을 정리한 한국판 클림비 보고서입니다. 2000년 빅토리아 클림비라는 아이가 아동학대로 숨졌을 때 영국 정부는 2년에 걸쳐 전문가들의 체계적인 조사 활동을 토대로 한 보고서를 만들고 이를 국회에 제출해 승인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서현 보고서는 2개월 동안 민간위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보고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왜 우리는 서현이를 살려내지 못했을까’를 짚어내는, 이른바 실패 연구집입니다. 사건 개요를 읽다 눈물과 분노, 안타까움이 일었습니다. 최초 신고를 받은 포항아동보호전문기관, 서현양 가족이 급히 이주했던 인천아동보호전문기관에 대해 “왜 아동을 격리 조치하지 않았느냐” “왜 적극 개입하지 않았으냐”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학교, 유치원, 병원 등 신고 의무자에 대해 “왜 신고하지 않았느냐”고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최선을 다해 서현양을 돌봤던 상담원 A씨는 사건 이후 경찰에 불려가고 각종 진상보고서를 만드느라 시달리는 등 갖은 고초를 치렀다고 합니다. 신고 의무자들 중 신고 의무자 교육이나 아동학대 예방교육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의사는 의과대학 시절 소아과 과목에서 학대 예방교육을 들은 게 전부요, 교사는 교사 양성 과정에서 학교폭력에 초점이 맞춰진 교육을 받았을 뿐 아동학대 인지 교육은 받지 못했고, 민간 학원은 본인이 신고 의무자인 줄도 몰랐다네요. 궁금해졌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연 이 보고서를 읽었을까요. 역대 정부에서 아동정책은 늘 후순위였지만, 여성 대통령인 박 대통령은 좀 다를 걸 기대했습니다. ‘투표권이

[Cover Story] [아동학대 예방정책, 이대로 괜찮은가] ① 아동학대 특례법, 이대로라면… 실효성 없는 법조문으로 끝날 가능성 크다

[아동학대 예방체계, 이대로 괜찮은가](1)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 전수조사 작년 12월, ‘아동학대 범죄 및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아동학대 특례법)이 제정됐다. 울산에서 계모의 학대로 갈비뼈 16대가 부러져 사망한 ‘울주군 서현이 사건’이 계기가 됐다. 2000년 아동학대 예방 사업이 시작된 지 13년간의 숙원 사업이 풀린 셈이다. 아동학대 사건에 개입할 법적 기반은 확보됐지만, 과연 대한민국 아동보호 체계는 바뀌게 될까. 조선일보 더나은미래는 오는 9월 아동학대 특례법 시행을 앞두고 아동학대 예방정책을 긴급 점검해봤다. 편집자 주 “사실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와 서현이를 돌봐주던 상담원, 많은 분에게 이 사건은 여전히 큰 아픔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당시 서현이 사례 상담 팀장이었던 김지수(가명)씨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사건 발생 3년 전인 2011년 5월 13일, 포항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서 상담팀장으로 근무하던 김씨는 “동네 유치원에 다니는 한 아이의 몸에서 멍이 발견됐다”는 신고 전화를 받고 상담원 2명을 현장에 파견했다. 긴 옷 차림의 서현이 옷을 벗기자 발바닥, 배와 등에 심한 멍 자국이 발견됐다. “학대 행위자였던 박씨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자신의 행위가 학대인지는 몰랐다고 말했지만, 폭행 사실은 순순히 인정하면서 앞으로 절차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습니다.” 5일간 현장 조사와 면담을 마친 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전체 회의를 소집해 서현이를 ‘원가정에서 보호하되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서비스 개입을 진행하자’고 결정했다. 사례를 전담하는 상담원으로는 A씨가 선정됐다. “직접 현장조사를 했던 터라 서현이 사례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일을 하더라고요.” 이후 두 달 동안 가해자인 박씨(13회)와 친아버지(1회), 유치원 교사를

[희망 허브] [기업, 철학이 바뀐다] ③ 환경·지역과 상생… 세계 100개국 뻗어나간 힘

기업, 철학이 바뀐다 티라윗 리따본 태국 더블에이 부회장 산에서 나무 베지 않도록 논 옆 자투리땅에 나무 심어 연간 670만t 이산화탄소 감축 가공하고 남은 폐기물들 최대한 재활용해 원료 활용 지역 농가도 살려 일석이조 친환경적 상생 가능한 모델 한국에도 널리 알리고 싶어 최근 탄소세 도입을 두고 환경부와 자동차 업계의 날 선 공방이 있었다. 탄소세 제도는 탄소배출량이 많은 차에 부담금을 부과하고 배출량이 적으면 보조금을 주는 제도인데, 재계에선 “우리 실정에 안 맞는 지나친 규제”라는 반응이다. 이런 상황에서 친환경을 규제가 아닌, 기회로 여긴 철학을 가진 기업이 있어 눈길을 끈다. 복사용지로 유명한 태국의 ‘더블에이(DoubleA)’ 이야기다. 티라윗 리따본(57·Thirawit Leetavorn) 부회장에게 그 특별한 철학을 들어봤다. 티라윗 리따본 부회장은 유니레버, 시그램 등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며 신시장 개척을 담당했던 마케팅 전문가로, 지난 2005년 더블에이에 합류했다. ―복사용지를 만들려면 당연히 산림목을 벨 것으로 예상하는데, 산에 있는 나무를 베지 않는다는 게 사실인가. “제지회사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종이의 원재료인 나무다. 우리는 태국의 특수한 환경에 주목했다. 태국은 세계 최대의 쌀 생산국으로, 전체 인구의 40%가 농업에 종사한다. 대부분 영세하다. 전통적으로 태국 농가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농지를 물려주는데, 이 과정에서 유실이 생기며 토지 규모가 점점 작아진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가난해지는 거다. 우리는 산이 아니라, 논과 논 사이 자투리땅에서 키우는 나무 ‘칸나(KHAN-NA)'(유칼립투스 수종) 모델을 도입했다. 산의 나무를 베지 않으면서, 지역 농가도 살릴 수도 있는 방법이다. 농촌 주민들과 협의를 통해 작은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이젠 진짜 복지 개혁을 시작할 때

박근혜 정부가 ‘규제 개혁’에 한창입니다. MB 정부 초반에도 대불산단의 ‘전봇대 규제’가 대표 사례로 제시되면서 “규제를 없애자”고 나라가 들썩들썩하던 게 떠오릅니다.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 이슈가 되자, 최근 사회복지 관계자 한 분이 저희에게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이명박 정권 때 방송에 보도된 ‘공원 공중 화장실에서 기거하는 3남매’ 때에도 소외 계층 찾아내기 총력전이 벌어져 한 달여 호들갑을 떨었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방법이 현장에서 반복돼 너무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지금보다 더했습니다. 동사무소뿐만 아니라 세탁소협회, 목욕탕협회, 음식점협회, 사회복지 관련 단체들까지 모두 나서 띠를 두르고 “사각지대를 찾자”고 나섰지요. 하지만 찾는다고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100명을 찾았으면, 이 100명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 이뤄질 대책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대책이란 게 대개 이런 식입니다. 시·군·구, 지역사회에 흩어져 있는 복지 서비스망을 통합 지원하는 시스템 ‘○○센터’가 만들어집니다. 정부 부처나 지자체는 그곳에 3년 정도 사업비를 주고, 민간단체에 입찰을 통해 운영을 맡기거나 퇴직 공무원을 센터장으로 내려보냅니다. 흩어진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엮는 초특급 전문적인 일은 월 100만원짜리 단기계약직들이 맡게 되고, ‘○○ 시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기존에 해왔던 비슷한 종류의 일을 반복합니다. 만약 이 와중에 이번 송파 사건과 같은 대형사건이 나면, 언론과 정치권, 시민단체 등은 “정부는 왜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않느냐”고 질타합니다. 그러면 정부는 또다시 예전의 써먹었던 대책을 이름과 콘텐츠만 약간 바꾼 채 발표합니다. 이러다 보니 지역사회의 복지 서비스망을 들여다보면, 정부로부터 일정한 사업비를 받아 운영하는 고만고만한 중간지원조직이나 종합지원센터 등이

[기업, 철학이 바뀐다] ② 황제 경영? 이 회사는 직원이 황제랍니다

기업, 철학이 바뀐다 ② 주성진 여행박사 대표 정년·비정규직 없는 회사 간부는 선거 통해 뽑아 3년 차부터 승진하려면 70% 넘는 지지율 필요 직원들 주인의식 생기니 파산선고 받았던 위기도 십시일반 23억 모아 탈출 전 직원이 볼 수 있도록 법인카드 내역 공개 “이익 10%는 사회 환원” 복지기관에 여행 지원도 매년 가을이 되면, 팀장급 이상 간부를 직원 투표로 뽑는 회사가 있다. 2013년 총매출액 2000억원에 달하는 중견 여행업체 ‘여행박사’ 이야기다. 사장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말, 여행박사 신창연(51) 창업주는 79.2% 지지를 받아 대표직을 물러났다(그는 선거 공약으로 80%의 지지율을 내걸었다). 대신 당시 주성진(30·사진) 일본팀 패키지팀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사장이 직원을 뽑는 것이 아니라 직원이 사장을 뽑는 것이다. ‘오너의 황제 경영’에 대한 부작용이 세간의 이슈가 되는 지금, ‘기업, 철학이 바뀐다’ 시리즈 2번째 주인공은 ‘여행박사’다. 지난달 27일,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에 있는 여행박사 사옥에서 대표 취임 2개월 차에 접어든 주성진 대표를 만났다. 그는 19세라는 젊은 나이에 입사, 12년 동안 여행박사의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회사 경영 상황이 나빠져 연봉 1원 계약을 한 적도 있고, 1억원의 인센티브를 받은 적도 있다. 주 대표가 말하는 여행박사의 경영 철학은 ‘직원의 만족을 우선시한다’이다. 투표제도 여기서 출발했다. “설립된 지 3년쯤 됐을 때 사원 한 명이 팀장으로 승진했는데 직원들 사이에 불만이 있었습니다. 창업주가 ‘너희랑 일할 사람은 너희가 뽑아라’고 시작한 것이 간부 직선제의 계기죠.” 여행박사에서는 간부(팀장, 본부장,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