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혼을 찾아서③] 인터뷰_ 신국악단 ‘소리아’ 류문 프로듀서

“국악, 전통을 바탕으로 하되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어야” “우리가 만든 新국악이 온 세상에 울려 퍼질 때까지 내인생 모두 바칠 것” 미국 공영방송 PBS가 만들고 있는 한국 특집 다큐멘터리 ‘김치연대기(Kimchi Chronicles)’를 보면 해금, 대금, 가야금 등 한국 전통 악기를 사용한 음악이 나온다. 하지만 지금까지 들어왔던 국악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훨씬 빠르고 젊은 분위기다. 이런 스타일의 음악은 지난 2009년 미국 NBC 방송에 나갔던 독도 홍보영상에도 사용돼 많은 사람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번 PBS의 다큐멘터리와 NBC의 독도 홍보영상에 사용된 음악은 둘 다 국악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목표로 만들어진 신국악단 ‘소리아’의 음악이다. 소리아(SOREA)는 한국의 소리(Sound of Korea), 한국의 영혼(Soul of Korea)이라는 뜻으로 2005년에 결성됐다. 데뷔 직후인 2006년 국악 분야를 넘어 대중음악 분야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하며, 창작곡 ‘뷰티풀 코리아(Beautiful Korea)’가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2006년 독일 펜페스트(Fan Fest) 공식 초청 독일 5개 도시 순회공연, 2009년 영국 템스페스티벌 공식 초청 특별공연, 2010년 프랑스 샹리브르페스티벌 공식 초청 특별공연 등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고 외치지만 막상 국민들은 외면해 왔던 국악으로 소리아가 국내외 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소리아의 류문 프로듀서는 “음악은 특히 공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처음부터 전 세계 청중과의 소통을 염두에 두고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보사노바, 탱고 등의 음악도 원래는 한 지역의 음악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유럽 등의 유명 아티스트들과 교류하고

[한국의 혼을 찾아서③] 전통문화, 잊혀지지 않게 다함께 즐겨요

LG U+ 후원, 복지시설·다문화 아이들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 경복궁 관람… 미니장구 제작체험 신국악단 ‘소리아’의 소녀시대 GEE 연주로 공연 시작 비보이 댄스와 상모돌리기도 함께 어울어져 신난 아이들 “지루할 줄 알았는데 오길 잘했어요” 연초록 새싹들이 푸르름을 발산하는 경복궁 주차장이 아이들의 설레이는 조잘거림으로 싱그러움을 더해가기 시작했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5월 4일, LG U+ 후원으로 진행된 ‘신국악단 소리아와 함께하는 전통문화체험교실’에 참여하는 성동구 생활지원가정 아이들은 도착하자마자 “오늘 점심메뉴는 뭐예요?”, “밥은 언제 먹나요?” 등의 질문을 쉴새 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강원도 원주의 3개 아동복지시설에서 온 아이들의 설렘 가득한 맑은 눈들은 광화문의 시내 전경과 경복궁 뒤편으로 보이는 청와대 등 인솔교사가 짚어주는 주위 경관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바쁘게 움직였다. 경복궁에 들어선 아이들은 종로 시니어클럽 문화해설가의 안내로 우리 조상의 지혜와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담긴 바닥 돌, 지붕, 굴뚝 등 사소하게 지나쳤던 작은 부분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단연 인기는 근정전의 용상(龍床)이었다. 임금님께서 앉으셨던 의자라는 설명에 아이들은 출입이 제한된 문 앞에서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일제히 고개를 삐죽이 내밀었다. 키가 작아 앞이 보이지 않았던 막내 6살 영하가 막 울음을 터뜨리려는 순간, 인솔교사가 재빨리 번쩍 들어 올려 주자 영하의 얼굴은 금세 환한 웃음으로 가득해졌다. 세종대왕 시절 집현전으로 사용되었던 수정전 앞에서 문화해설가 엄화자씨가 “세종대왕이 누구와 함께 한글을 만드셨을까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아이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조용해진 가운데 “주변 신하요!”라는 한 아이의 재치 있는 대답에

[한국의 혼을 찾아서②] “궁중음식은 ‘맛과 멋’이 있는 우리의 식문화”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 이사장 무형문화재회관서 궁중음식 전시… ‘조선왕조의궤’ 속 잔치 장면 재현 궁중잔치 음식·식문화 알리고 의궤 가치도 알릴 수 있을 것 봄 햇살이 내려앉은 오후. 창덕궁 서편 서울 종로구 원서동 골목 끝에 있는 (사)궁중음식연구원 안마당 장독대에는 된장·고추장이 익어가고 있었다. 연구원은 중요무형문화재 38호인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 보유자 한복려씨가 궁중음식의 명맥을 이어가는 곳이다.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이사장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주방상궁이었던 고(故) 한희순 상궁과 한 상궁에게 궁중음식을 전수받은 어머니 고(故) 황혜성 선생에 이은 3대 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이다. 아담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한옥 건물인 궁중음식연구원 안채에서 만난 한 이사장은 고운 한복을 입고 기자를 맞았다. 한 이사장은 궁중음식의 가치를 단순히 ‘맛있는 먹거리’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식문화’로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요리한다’는 말 대신 ‘음식한다’고 표현해달라고 부탁했다. ‘요리’가 일본식 단어이기도 하지만, 음식을 단순히 ‘조리법’과 같은 기능적 측면으로만 이해하게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드라마 ‘대장금’이 인기를 끌면서 몇 가지 궁중음식이 유행하고 한식세계화 바람이 불기도 했지만, 레시피(조리법)만 익힌다고 음식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거든요. 궁중음식에는 충효 사상을 바탕으로 음식을 궁에 ‘올리고’, 백성을 사랑하는 왕이 궁중음식을 ‘내리는’, ‘올림과 내림’의 미학이 있습니다. 음식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을 봐야 ‘문화재’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거죠. 궁중음식을 ‘맛’뿐 아니라 ‘멋’으로 이해해야 세계인들에게도 더 높게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궁중음식의 ‘멋’을 알리고 싶은 한복려 이사장은 오는 29~30일 서울 삼성동 무형문화재회관에서 궁중음식 ‘전시’를 연다. 단순히 음식을 해서 맛을 보이는

[한국의 혼을 찾아서] 위기의 무형문화재

생활고… 전수자가 없다 고령화… 맥 끊길 위기 한국에는 114개 종목의 중요무형문화재가 있으며 이 종목의 기능을 보유한 기능 ‘보유자’ 184명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는 음악·무용·연극 등 예능 분야와 공예기술·요리의 기능 분야와 같이 일정한 형태가 없는 ‘무형문화재’ 가운데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국가가 인정한 문화재로 ‘인간문화재’라고도 한다. 중요무형문화재는 전통문화를 옛 방식으로 재현할 수 있는 기능을 보유한 사람들로 ‘한국의 얼이자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문화재 전승의 맥이 끊길 위기에 처해 있다. 인간문화재의 고령화가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체 인간문화재의 절반 이상이 70대 이상이고, 네 명 중 한 명만이 65세 미만이다. 상대적으로 전승이 어려워 문화재청이 지정한 전승 장려 종목 28개 중 4개 종목은 인간문화재인 기능 보유자가 없으며, 10개 종목은 이들의 대를 이을 전수교육 조교가 없다. 특히 베를 짜는 베틀의 일부분인 ‘바디’를 만드는 중요무형문화재 88호 바디장의 경우 기능 보유자도, 전수교육 조교도 없는 실정이다. 인간문화재 전승이 어려운 이유로 전문가들은 인간문화재가 우리 사회의 문화로 흡수되지 못하고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옛것’으로 치부되는 현실을 꼽았다. 사단법인 한국중요무형문화재기능보존협회 박성찬 기획실장은 “정부가 중요무형문화재를 지정하고 이들에게 일정한 전승지원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들의 작품을 향유하고 구매하는 ‘시장’이 생기지 않으면 중요무형문화재의 위기는 해결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인간문화재에게 월 100만~130만원, 인간문화재의 대를 잇는 전수교육 조교에게는 월 70만원의 전승지원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인간문화재가 작품활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경우는 일부에 불과하다. 전승지원금은 생계유지비로 둔갑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혼을 찾아서①] 무형문화재 최기영 대목장

“후대에 전할 기술·기법하나라도 더 남겨야지” 인간문화재는 어떤 모습일까? ‘한국의 혼을 찾아서’ 시리즈를 시작하며, 인간문화재와 첫 만남을 가지는 자리였기에 기자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최기영(68) 대목장은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74호이자 세계가 인정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작년까지 충남 부여군 백마강 일대에 1300년 전 사라진 백제를 재현하는 ‘백제문화단지’ 조성을 지휘했고, 서울 서대문 봉원사, 경기도 양평 용문사, 전남 순천 송광사, 창경궁, 남한산성 등 수많은 문화재들이 그의 손길을 거쳐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인간문화재는 한복을 입고 한과를 즐길 것’이라 생각했던 기자의 선입견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전수교육관에 들어서자마자 여지 없이 깨졌다. 최기영 대목장은 ‘삼부특수목재’라는 글자가 박힌 검은 작업복 점퍼를 입은 채 탁자에 코를 박고 한옥 설계도를 그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현장 속으로 뛰어들 것 같은 모습이었다. 상상했던 모습과 다르다는 말에 “대통령이든 서민이든, 어린 아이든 백세 노인이든 분수를 알아야 혀. 분수를 알아야 공부도 저절로 되고 기능도 저절로 익히게 된다 이 말이여. 목수는 목수로 끝내야 혀. 문화재니 교수니 해도 ‘나는 목수다’하고 생각허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말이지.”라며 웃었다. ‘나는 목수다’라는 목소리 속에는 대목장이기 이전에 목수라는 업에 대한 자부심과 작업에 대한 집요한 열정이 느껴졌다. 대목장(大木匠)은 나무를 소재로 집을 짓는 사람으로 나무를 다듬고 집을 설계하는 것부터 공사의 완성까지 책임지는 건축가다. 전통건축현장에서는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 최기영 대목장은 신응수 대목장, 전흥수 대목장과 함께 중요무형문화재로 당대가 지정한 대목장 세 명 중 한 명이다. 평생 목수를 하기로 마음먹은 때를 물었더니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