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세계 Top10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서⑩ ‘하갈(Hagar)’ 설립자 피에르 타미

“머리 아닌 가슴으로 운영”… 거리의 아이들을 ‘꿈꾸는 아이’로 미소년 소팟(Sophat)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바로 부엌이다. 채소를 다듬고 잘게 써는 일부터 고기를 알맞게 구워내는 일까지 다 그의 몫이다. 소팟과 함께 일하는 다른 요리사들은 “요리실력만 좋은 게 아니라, 성격도, 태도도 너무 좋은 친구”라며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했다. 자신에 대한 칭찬에 부끄러워하면서도 소팟은 “너무 행복하다”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삶이었어요.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거리의 아이로 자랐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고 쓰레기를 뒤지며 간신히 굶어 죽지 않는 삶을 살았죠.” 꿈꾸는 일조차 사치라고 생각했던 그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것은 2007년 ‘하갈(Hagar)’을 만난 이후다. ‘하갈’은 아동 성매매, 가정폭력 등으로 상처 입고 버려진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쉼터다. 직업훈련, 사회훈련을 위해 출장요리 업체 ‘하갈 케이터링’ 같은 사회적 기업도 운영한다. ‘하갈’은 당시 소팟에게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거리의 아이였던 소팟에게는, 재료를 다듬는 즐거움도, 음식을 만드는 흥분도, 손님이 깨끗하게 비운 접시를 닦는 보람도 다 처음이었다. 직업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친 소팟은 현재 다른 레스토랑에서 정식 요리사로 일한다. 프놈펜에 위치한 ‘하갈’은 이처럼 가장 사랑받아야 할 가정에서 버림받은, 또는 상처를 받은 이들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곳이다. 집에 감금되어 남편에게 매일 폭행을 당하다 구출된 젊은 여성, 가난 때문에 고작 300달러에 팔려가 아동 성매매에 수년간 희생되다 탈출한 소녀 등 수많은 여성과 아이들이 ‘하갈’을 찾는다. 지난 15년간

세계 TOP 10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서 ⑨ 인도 지적장애인 취업센터 연 수간다 수크루타라지

“지적장애인이 어떻게 일하냐고요? 조금 느리지만, 함께라면 가능하죠” 국제우주항공박람회 유치(1993), 국방연구개발기구(DRDO) 컨설턴트, 데칸항공 최고기업연락경영자(Chief Executive Corporate Liaison), 정부 내 정보기술부 프로그램 디렉터. 국방과 정보기술(IT) 분야에서의 화려한 경력과 타이틀, 그 모든 것이 한순간 의미가 없어졌다. IT업계 내 최고의 전문가 중 하나였던 수간다 수크루타라지(Sugandha Sukrutaraj·54)씨가 2000년, ‘스페셜 올림픽(Special Olympics)’을 만난 후의 일이다. ‘스페셜 올림픽’은 지적장애인들의 올림픽으로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여동생, 故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 여사가 시작했다. 선수보다 자원봉사자가 더 많은 ‘특별한’ 올림픽으로 4년마다 개최된다. 그녀는 2000년 12월, 인도 스페셜 올림픽의 이사로 초청됐다. 그렇게 많은 지적장애인을 만난 것도, 그렇게 가까이에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본 것도 처음이었다. “그동안 제가 너무 몰랐던 것이, 무관심했던 것이 미안했습니다.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페셜 올림픽에서 지적장애인들을 만난 지 4년 후인 2004년, 수크루타라지씨는 ‘AMBA CEEIC’라는 지적장애인의 경제력 강화를 목적으로 한 센터를 세웠다. 그 결과 현재 인도 전역에는 AMBA CEEIC 센터가 26곳이 있다. 235명의 청년들이 직업기술을 훈련받고 맡은 업무를 수행한다. 센터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은행, 학교, 공항 등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도 49명이나 된다. 2007년 아쇼카 펠로로 선정되어 지원금도 받았다. “항상 ‘절대로 늦은 때는 없다’,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마음으로 했습니다. 기업을 설득해 업무계약을 맺는 것이 어렵긴 해도 불가능하진 않더라고요. 학생들도 마찬가지예요. 조금 느릴 뿐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진 않거든요. 만약 어떤 일이 어렵다면, 좀 더 쪼개고 나누어서 여러 명이 하면 됩니다. 혼자 해야

세계 TOP10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서⑧ 日 ‘테이블포투’ 창업자 마사히사 고구레

선진국엔 ‘건강식’ 후진국엔 ‘희망식’ 20엔<약 280원>으로 만드는 기적의 식탁 기업·학교 등 330여 기관과 제휴, 현재까지 1억200만엔 모여…르완다·우간다·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54개 학교에 급식 지원 일본 최대 무역회사 중 하나인 미쓰이(Mitsui & Co.). 이곳 구내식당에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점심메뉴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12시가 가까워지자 직원들이 하나 둘 구내식당으로 모여들었다. 다양한 메뉴들 중에서도 유독 ‘테이블포투(Table for two)’ 메뉴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섰다. 유이치 아오키(57) 사회공헌부장은 “2008년 8월부터 테이블포투 메뉴를 시작했다”며 “직원들이 이 메뉴를 선택할 경우, 판매액에서 자동으로 20엔(약 280원)이 기부되고 회사도 20엔을 매칭해 추가 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2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미쓰이 상사는 테이블포투 메뉴 판매를 통해 약 148만엔(2000만원)의 기부금을 모았다. 지난 7월부터는 포인트 카드 제도를 도입해 이 메뉴를 10번 먹으면 무료 음료수를 제공하면서 기부를 독려하고, 회사는 동시에 아프리카 고아원에 추가 기부를 하고 있다. 회사 내에는 테이블포투 서포터즈 모임도 구성돼 있다. 주로 20~30대 젊은 직원들로 구성된 모임은 사내 캠페인 활동을 주도한다. 정기적으로 사내 설문조사를 통해 메뉴 개발, 홍보 전략을 짠다. 서포터즈 중 한 명인 히데아키 시미즈(29)씨는 “사회적 책임은 기업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시민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며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글로벌 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는 게 참 보람있다”고 말했다. 테이블포투 메뉴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두 사람을 위한 것이다. 비만으로 고심하는 선진국 사람들과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후진국 사람들을 위한 메뉴다. 비타민·무기질

[세계 Top 10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서] ⑥ 인도 ‘베어풋 컬리지’ 벙커 로이 대표

“희망 잃은 주민에 용기 북돋우니 ‘맨발의 기적’ 일어나” 델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차를 타고 장장 10시간을 움직였다. 바로 ‘베어풋 컬리지(Barefoot College)’의 창업자이자 대표인 산짓 벙커 로이(Sanjit Bunker Roy·65)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베어풋 컬리지는 인도의 가난한 시골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고 그 기술과 재능을 개발하도록 돕는 비영리 단체다. 국제구호단체가 전문가들을 파견해 ‘제공’하는 형태였던 기존의 지역사회개발 모델과 달리,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결정해서 자신들의 공동체를 자력으로 개발해 나가도록 돕는다. 이러한 혁신성 때문에, 베이풋 컬리지는 스콜(Skoll) 재단과 슈밥(Schwab) 재단 등 세계적인 기관들로부터 우수한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올해 초에는 타임(Time)지가 선정한 ‘100명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에도 뽑혔다. 로이 씨가 베어풋 컬리지를 설립한 것은 1971년이다. 지역사회개발에 관심이 있던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가 찾아간 작은 마을, 틸로니아로 왔다. “약 5년간 우물을 파는 기술자로 일했어요. 정말 서툴고 숙련되지 않은(unskilled) 채였죠. 그렇게 5년간 함께 일하고 함께 살면서, 인도의 농촌 마을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일자리를 찾아 농촌을 등지는 청년들, 남겨진 노인과 여성, 아이들은 결국 소득거리가 없어 가난하고 무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머리뿐 아니라, 가슴으로, 삶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베어풋 컬리지를 시작했죠.” 지역사회개발이란 존중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그는 “마을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 삶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지혜는 바로 그 마을에서 살아가는 주민들 스스로에게 있다”며 베어풋 컬리지의 정신을 반복해 강조했다. 그래서 단체의 이름도 맨발의 농촌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도우며

[세계 Top 10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서] ⑤ 英 ‘글로벌 에식스’ 창업자 던칸 구즈

“생수 팔아서 아프리카 생명수 끌어올립니다”… ‘One Water’ 브랜드 생수 판매 수익금으로 ‘플레이펌프’ 보급… 英 최고 사회적기업 반열 올라 사회적 기업이 가장 발전한 국가는 영국이다. 그 위상답게 영국에는 사회적 기업의 수가 5만5000개를 넘는다. 사회적 기업의 매출만도 50조원을 넘어, 국가 GDP의 2%, 고용의 5%를 담당하고 있다. 이 5만5000곳 중 올해 영국 기업이사기구(IOD)로부터 의장상을 수상하고, 지난해에는 사회적기업런던(SEL)으로부터 최우수 사회적 기업상을 수상한 기업이 있다. 바로 글로벌 에식스(Global Ethics)다. 철저히 시장 시스템 안에서 경쟁하면서 아프리카 빈곤퇴치에도 기여하는 글로벌 에식스의 노하우를 배워보고자 창업자, 던칸 구즈(Duncan Goose·41)씨를 찾았다. 사무실에서 나와 반갑게 인사하는 구즈씨의 손엔 샌드위치가 들려 있었다. 연속되는 회의 때문에 이렇게 점심을 때운단다. 정부 지원금이나 기부금 하나 없이 치열하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그의 ‘기업가 정신’이 살짝 엿보였다. 점심시간을 뺏은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려는 찰나, 오히려 그가 적극적으로 질문한다. 한국의 사회적 기업은 어떠한지를. 구즈씨는 마케팅 및 사업기획 전문가였다. 미친 듯 일을 하던 29살(1998년), ‘이 일을 진짜 내가 원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묻기 시작했단다. 한참을 고민해보아도 답을 찾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결심했다. 2년간의 여행 경비는 집과 차를 팔아 마련했다. 자아와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그는 일부러 여행자들이 잘 가지 않는 곳들을 찾아다녔다. 지진을 겪기도 하고, 심지어는 총에 맞은 적도, 어느 부족에게 잡혀 경찰의 도움으로 구출된 적도 있다. 구즈씨는 “여행 중 온두라스에서 허리케인을 만난 것이 인생을 바꾼 계기”라고

[Cover story] [세계 Top 10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서] ④’안데스 식료품점’ 설립자 기욤 밥스트

빈곤층에 꿈을… 일자리·저렴한 식료품에 독립심까지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이드리스 벤메라(Idris Benmerah·52)씨는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프랑스에 왔다. ‘프랑스 드림(France Dream)’을 품고 이민 온 수많은 알제리인 중 하나였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13살 때 아버지가 허리를 다쳐 일을 그만두신 후로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농사며 공사장 일이며 손에 닿는 일은 다 했다. “어른이 되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가정을 이루었지만, 도무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요. 오히려 부양해야 할 가족만 늘어난 셈이죠. 우리 아이들에게 이 가난을 물려줄 수는 없었습니다.” 벤메라씨는 그렇게 프랑스로 건너갈 결심을 하고 2005년 홀로 지중해를 건넜다. 큰 꿈을 품고 프랑스에 왔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도 한 명 없으니 일자리를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직장도 집도 구하지 못한 벤메라씨는 고향의 가족에게 안부 전화를 거는 것조차 마음이 불편했다. 수개월 그렇게 방황하던 중, 그는 구직상담소의 도움으로 안데스(ANDES:Association Nationale De Développement des Epiceries Solidaires)라는 곳을 알게 됐다. 빈곤층 대상의 식료품점인 이곳에서 가난한 ‘고객’들은 시중가의 10~20%에 해당하는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구매한다. 벤메라씨는 총 14개월 동안 이 회사의 인턴으로 일하며, 채소와 과일을 나르고 손으로 불량품을 골라내고 각 식료품점으로 갈 상품을 포장하고 배송했다. 몇 년이 흐른 지금, 그는 안데스 중앙물류센터에서 배달과 인턴 교육을 담당하는 정규 직원이 됐다. 알제리에 남아 있던 가족도 드디어 프랑스로 데려올 수 있었다. “두 딸, 두 아들에게 제 어린 시절과는 다른

[세계 Top 10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서] ③ ‘KIVA’ 창업자 맷 플래너리

타인의 삶을 바꾸는 나눔 빛이 되는 대출 5년간 가난한 이들에게 1600억원 지원 2005년부터 52개국 35만명 도와 현지 돌아다니며 제안·타당성 검토 모금기간 한계선 정해 희소성 심어 1998년 5월 6일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북쪽에 위치한 콘뎀바야 마을에 혁명군(RUF)이 들이닥쳤다. 이날 혁명군은 눈에 띄는 대로 마을 젊은이들의 손을 잘랐다. 적에게 협조했다는 이유였다. 당시 18살이었던 옌쿠 세새이(Yenku Sesay·30)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피투성이가 된 옌쿠를 오토바이에 태워 병원이 있는 수도로 3일 밤낮을 달렸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손을 되살릴 수는 없었다. 그 후 옌쿠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시에라리온에서 손이 없는 옌쿠가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거리로 나와 구걸을 시작했다.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온 것은 2006년, 사회적 기업 키바(KIVA)의 현지 파트너인 살롱소액금융신용(Salone Microfinance Trust·SMT)을 만나면서였다. SMT는 긴 시간의 면접과 심사를 통해 옌쿠의 잠재력과 자립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높이 사 30만레온(100달러에 해당)을 빌려주었다. 옌쿠는 작은 구멍가게를 열어 과자, 건포도 등의 마른 과일을 팔았다. 2년 만에 옌쿠는 자신의 대출금을 모두 갚았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발생한 수익을 재투자하여 다양한 식료품, 의류, 신발 등을 파는 가게로 사업을 확장했다. 옌쿠처럼 키바를 통해 지금까지 인생 역전을 이룬 사람은 52개국, 35만명이 넘는다. 키바는 세계 최초로 개인 대 개인(P2P) 방식의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 소액금융) 사업을 온라인으로 펼치는 사회적 기업이다. 인터넷을 통해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 자립하려는 사람들과 자신의 작은 도움으로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Cover story] 세계 Top 10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서 ②’아쇼카 재단’ 창업자 빌 드레이튼

“사회적 기업가? 불평 대신 실용적 해답을 찾는 사람” 5만달러 모금으로 시작해… 현재 3500만달러로 성장… 아쇼카 펠로우 선정 과정?… 새로운 생각·창의성·윤리성… 기업가 자질·사회적 영향력의… 5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검토… “모든 사람이 변화 창조자로… 한국의 ‘아쇼카 펠로우’ 기대”… 지원서ㆍ아이디어ㆍ에세이ㆍ사업장 방문까지… “5단계 거치면 후보 중 12% 정도만 남아” 최초의 ‘사회적 기업가’라고 불리는 사람. 전 세계 100만명이 넘는 사회적 기업가의 롤 모델(role model). 71개국 2800명 ‘아쇼카 펠로우’의 정신적 스승. 모든 사람이 변화 창조자(change maker)가 돼야 한다고 믿는 남자. 아쇼카(Ashoka) 재단의 창업자 빌 드레이튼(Bill Drayton, 67)을 만나기 위해 미국 버지니아주로 찾아가는 길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세계의 Top 10 사회적 기업가 시리즈를 시작하며 어떤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냐는 설문 조사에 빌 드레이튼이 첫손에 꼽혔던 것이다. 인터뷰 전 프로필만으로 접한 빌 드레이튼은 열정적이고 때로는 주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도자였다. 사회적 기업가이면서도, 빌 게이츠, 오프라 윈프리 등과 함께 미국 최고의 지도자 25인(2005년 US 뉴스앤월드리포트)에 뽑힌 이력이나, 하버드 대학(2006년), 예일 로스쿨(2005년) 등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동창으로 선정됐다는 프로필도 이런 심증에 확신을 더했다. 하지만 빌 드레이튼의 첫 모습은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다소 초라해 보일 수 있는 마른 체구. 작은 목소리로 느리게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말투. 세계의 변화를 주도하는 글로벌 리더의 이미지보다는 인도 고승의 이미지가 더 강했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는 순간,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사회적 사업과 사회적 기업가 정신을 구분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일을

[Cover story] 세계 Top 10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서 ①’잡 팩토리’의 로버트 로스

“시작은 사명감으로, 생존은 기업가 정신으로” 2000년 정부 지원 끊겼지만 실업 청소년 위해 포기 안 해 연간 매출액 약 99억원… 사회적 비용 절감 약 93억원 돈 버는 일? 어렵다. 직원들 월급 주며 사장 노릇 하기? 더 어렵다. 게다가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주려고 사업을 벌인다면? 불가능한 꿈이다. 하지만 이런 불가능한 꿈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혼자가 아니기에, 그리고 꿈꿀 만한 가치가 있기에, 이 악물고 도전한다. 지금 세계를 바꾸고 있는 ‘사회적 기업가’들은 이런 꿈을 꾸는 사람들이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회사를 차리는 게 아니라,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회사를 차린다. 이자를 벌기 위해 은행을 하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자립할 돈을 꿔주기 위해 은행을 만든다. 어려운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에 맞는 병원을 짓고,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싼 전기를 제공한다. ‘욕심’을 버리니 세상이 바뀐다. 전 세계 사회적 기업가는 100만명을 넘어섰다. 조선일보 공익섹션 ‘더 나은 미래’는 ‘세상을 바꾸는 사회적 기업가’들을 찾아 지난 3개월간 유럽과 미국, 아시아를 누볐다. 나라마다 대륙마다 사회적 기업가의 철학과 비전도 달랐다. ‘공동체’를 주장하는 시민운동가에 가까운 사회적 기업가부터, 철저히 시장 마인드로 무장한 사회적 기업가도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사회적 기업가들의 심층 인터뷰와 분석을 통해 한국형 사회적 기업의 가치를 찾아보려 노력했다. 첫 번째 인터뷰는 스위스에서 이뤄졌다. 청소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0년 ‘잡 팩토리’를 설립한 로버트 로스(Robert Roth·60)씨가 주인공이다. 다보스포럼의 창립자인 슈밥이 만든 슈밥재단(Schwab Foundation)은 ‘잡 팩토리’가 연간 860만 스위스프랑(약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