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방] 누가 봉사활동을 모욕하는가

서울의 한 여자고등학교가 군부대와 자매결연을 맺고 학생들에게 위문편지를 쓰게 한 일로 온라인상에서 한바탕 전쟁이 났다. 일부 학생들이 장병들을 조롱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게 알려지면서다. 학교는 편지를 쓴 학생들에게 1시간의 ‘봉사활동’ 점수를 인정해줬다고 한다. 미성년자인 여학생들에게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성인 남성을 위로하는 편지를 보내게 했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나왔고, 결국 여혐·남혐 논쟁으로까지 번졌다. 원론적으로 따지면 위문편지는 훌륭한 봉사활동이다. 코로나 이후 고립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면서 ‘심리 케어’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에 따르면 투병 중인 동료를 정기적으로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 온라인 응원 캠페인에 참여하는 것도 봉사활동에 해당한다. 하지만 위문편지를 쓰게 한 그 학교는 애초부터 군장병의 심리 케어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봉사활동을 해서 점수를 얻는 건 괜찮지만, 점수를 얻기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건 ‘공익성’과 ‘자발성’이라는 봉사의 기본 원칙과 너무 멀어진다. 시대착오적인 봉사활동에 대한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매년 겨울이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기업 임직원들의 ‘김장 나눔’과 ‘연탄 배달’ 봉사가 대표적이다. 이걸 한국 기업이 버려야 할 ‘적(赤)과 흑(黑)’이라고 표현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김치라곤 담가본 적 없는 임직원들이 모여서 만든 김치를 누구 먹으라고 준다는 것인가. 맛있는 김치를 사주는 게 백 배 낫다. 연탄 배달 봉사도 마찬가지다. 임직원들이 일렬로 연탄을 나르며 구슬땀을 흘렸다는 구태의연한 스토리에 감동하는 사람은 없다. 봉사활동이 아니라 홍보활동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저개발국 아동·청소년에게 티셔츠와 운동화를 보내주는 캠페인이 유행한 적 있었다. 하얀 티셔츠와 운동화에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쌀의 변신은 무죄? 8조원 시장 온다

쌀은 밥이 된다. 이 밥을 잘 먹기 위해서는 짠맛 나는 반찬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의 밥 문화는 그랬다. 그런데 약간만 눈을 돌려보면 전혀 다른 밥의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흰밥만 먹는 국가는 그리 많지 않다. 밥은 주식이지 요리 재료가 될 수는 없다는 우리의 믿음은 근거가 희박하다. 이탈리아의 리소토는 쌀로 만든 대표적인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스페인의 부리토에는 쌀 요리가 들어가고, 중국과 태국에서 볶음밥은 우리의 흰밥처럼 자연스럽다. 서아프리카의 대표적 쌀 요리인 졸로프는 국민 음식 대접을 받고 있다. 세네갈의 체부젠은 종교로까지 격상돼 이에 대해 부정적인 평을 했다가는 외교적 마찰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세계는 점점 더 많은 쌀을 먹고 있다. 1960년대 2억t 정도에 불과하던 쌀 소비량은 2020년에는 5억t까지 늘어났다. 특히 서아프리카 국가에서 쌀 소비량의 증가가 가파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1990년 120㎏이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60㎏ 아래로 떨어졌다. 반면 밀과 육류의 섭취는 크게 늘어났다. 쌀을 적게 먹게 된 건 소득이 높아지면서 식습관도 따라 변했기 때문이다. 1인 가구의 증가도 영향을 미쳤다. 밥과 여러 반찬을 곁들여 먹는 기존 방식을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2020년 우리나라 식용밀 수입량은 250만t으로 그해 국내 쌀 생산량의 70%에 달하는 양이다. 점점 더 많은 청년이 밥보다 빵을 더 선호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선호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우리나라의 기후위기 대응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시작

벤처 투자자들이 최종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딱 한 가지를 고르라고 한다면 무엇일까?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 산업의 시장성? 시장 내 경쟁상황? 물론 이 모든 다양한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검토하지만 결국 최종 결정을 앞두고서 가장 주의 깊게 살피고 또 고민하는 것은 뜻밖에도 창업자의 됨됨이다. 창업계에는 ‘될 사업도 안 될 창업자가 하면 망하고, 안 될 사업도 될 창업자가 하면 성공한다’는 류의 이야기가 흔히 떠돈다. 아주 희박한 성공 확률을 이겨내고 성과를 만드는 것은 역시나 사업을 이끌어가는 사람 자체에 전적으로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벤처 투자자로서 인터뷰나 강연 요청에 응할 때 ‘어떤 사람들이 창업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이때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모두 ‘자신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조금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수많은 창업자를 만나면서 확신하게 된 것은 자신을 더 새로운 경지로 이끌도록 자신을 사랑하는 것 또한 그 사람의 능력이라는 것이었다. 창업가들은 도무지 창업을 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았기에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할 수 없는지, 궁극적으로 무엇을 해야 내가 행복한지를 아주 정확히 알아야만 창업에 뛰어들 수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창업했노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조차 이내 자신이 이 일을 얼마나 지독히 사랑하는지를 깨닫는다. 그래서일까 창업가들이 자신을

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
[모두의 칼럼] 멈춰버린 엘리베이터

이달 6일,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의 엘리베이터가 봉쇄되는 사건이 있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멀쩡히 작동되던 엘리베이터가 갑작스레 봉쇄된 까닭은 바로 장애인단체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 때문이었다. 장애인들이 시위를 진행해 역사를 혼란스럽게 만드니 아예 시위가 불가능하도록 장애인들의 필수 이동 수단인 엘리베이터를 막아버린 것이다. 이 사건을 접한 많은 이들이 봉쇄 조치에 대해 화를 내며 이의를 제기했다. 장애인 당사자인 나도 이 사건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려 한다. 먼저 엘리베이터 봉쇄의 의도가 악질적이며 노골적이라고 생각한다. 혜화역 측에선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의 안전을 지키고 시설물을 보호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봉쇄했다고 밝혔다. 그들이 말하는 시민의 범주에 이동권 보장을 주장하는 장애인들은 포함되지 않다는 것이 충격을 받았다. 시설물을 보호한다는 표현도 불쾌했다. 장애인들을 공공에 해를 입히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들처럼 묘사했기 때문이다. 혜화역은 다른 역들보다 장애인들에게 각별하다. 혜화역 인근에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노들장애인야학, 서울대학교병원 등이 있다. 특히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은 봉쇄당했던 혜화역 2번 출구 엘리베이터에서 도보 1분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장애인이 다양한 목적으로 혜화역을 찾는다. 심지어 봉쇄 당일인 12월 6일에는 ‘무장애예술주간’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예술을 즐기기 위해, 공부를 하기 위해, 진료를 받기 위해 혜화역을 찾은 수많은 장애인의 이동권을 강제로 빼앗아버린 그날의 봉쇄 조치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시위는 주로 유동 인구가 많은 출근 시간대나 주말에 이루어진다. 이에 대해 ‘왜 굳이 제일 바쁜 시간대에 시위하느냐?’ 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은 시간대에 시위를 진행하면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지킬 박사와 하이드, 그리고 보물섬

어느 밤, 영국 런던 번화가의 어느 작은 도로에서 ‘하이드’라는 남자가 소녀를 무참히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하이드에게 “돈으로 소녀에게 배상하라”고 요구했고, 하이드는 지역 내 명망 높은 지킬 박사의 서명이 적힌 백지 수표를 건네주고 자리를 떠난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서막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자신의 자아에 내재하는 또 다른 자아에 쫓기는 한 인간의 이중성을 다룬 작품으로,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지킬 박사가 사실은 잔인하고 추악한 모습을 지닌 하이드였다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최근 한국의 어느 ESG(환경·사회·거버넌스) 평가기관이 ‘ESG 워치리스트’를 발표했다. ESG 리스크가 높은 요주의 기업 9곳을 선정해 공개한 것이다. 오염물질 배출 및 배출량 조작,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근로자 사망사건, 근로자 산업재해, 고객정보 유출 사고, 하도급업체 기술 유용, 총수일가 횡령, 뇌물공여, 계열사 부당지원, 정경유착을 통한 합병 등이 선정 이유였다. 그런데 이들 기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ESG 경영을 선언하고 ESG 활동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타 ESG 평가에서는 우수한 기업으로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ESG 우수기업으로 ESG 경영을 잘 실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셈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어떻게 해야 기업의 이러한 이중성을 막을 수 있을까? 이탈리아 사크로 쿠오레 가톨릭대학교의 알폰소 델 주디체 교수와 실비아 리가몬티 교수는 기업의 부정행위와 ESG 평가 결과와의 관계에 대해 연구했다. 연구에 따르면, 일반적인 ESG 평가는 복잡한 설문지와 기업이

210420-0012
[모두의 칼럼] 워킹(working)과 워싱(washing) 사이, 노플라스틱 캠페인

매월 22일에는 자동차를 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또 그날 저녁 8시에서 9시에는 전등을 끈다. 에너지를 적게 사용해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여보자는 것이다. 고기 없는 월요일(Green Monday)을 시도하는 공공기관과 기업도 많아졌다. 더 나아가 다양한 층위의 채식주의에 도전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메탄을 줄이는 방법이자 동물복지를 고려한 소비다. 상품 포장과 분리배출에 관한 정보 공유도 활발하다. 플라스틱을 사용한 물건과 포장재의 재활용은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발생과 관련이 있다. 플라스틱 생수병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다회용기를 쓰지만 어쩔 수 없을 경우에는 종이팩 생수와 같은 대안적인 물품을 찾는다. 환경에 관한 이슈만이 아니다. 매일 마시는 커피와 차에도 공정함을 담고 싶고 마스코바도로 요리를 하면서 멀리 필리핀의 노동자와 연대감을 느낀다. 장애인들이 만드는 쿠키와 콩나물을 구매하는 것도 소비에 사회적 가치를 더하고 싶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이렇게 자신들의 소비생활에 의미를 담으려는 시도들은 기업들이 이에 걸맞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 기후위기 시대에 소비자들과 기업들의 이런 노력은 놀랍게도 항상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환경을 생각하고 공정무역에 관심이 많으면서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의 상품을 소비하는 노력에 대해 ‘유별나다’는 말을 듣기 쉽다. 혹은 ‘너 혼자 그래 봐야 세상 안 변한다’라는 말이 덧붙는다. 완전한 비건이 아닌 경우, 특히 채식을 하되 상황에 따라 육식을 허용하는 아주 낮은 단계의 채식주의자들에게는 ‘선택적 비건이냐’하는 비아냥이 따르기도 한다. 기업의 경우는 더욱 엄격한 잣대가 있다. 그래서 생겨난 용어들이 이른바 ‘워싱(washing)’이다.

[진실의 방] 뜻밖의 발견

한국 나이로 열여섯 살. 유지민양은 더나은미래의 최연소 칼럼니스트이자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다. 태아 때 몸속에 생긴 종양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받았고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를 갖게 됐다. 장애인 이동권 향상을 위해 활동하는 협동조합 ‘무의’의 홍윤희 이사장이 지민이의 엄마다. 지민이에게 칼럼을 부탁한 건 ‘즉흥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장애인 당사자이자 Z세대인 지민이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칼럼을 쓰게 된 인연으로 우리는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사 장소는 모녀가 정했다. 맛집이 많기로 유명한 광화문 F빌딩의 한 식당을 알려줬다. 하지만 식당 입구에서 막혔다. 계단처럼 생긴 턱이 여러 개 있어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었다. 이렇게 크고 좋은 빌딩에 자리한 품격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휠체어 출입을 고려하지 않고 인테리어를 했다는 게 뭐랄까, 참 모자라 보였다. 남자 직원들이 지민이의 휠체어를 들어서 안으로 옮겨줬다. 예약한 자리에 앉은 엄마는 지민이의 눈치를 조금 살피며 “식당 알아볼 때 가장 먼저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인지부터 알아보는데, 여긴 전에 와본 곳이라 되는 줄 알았더니 착각했나보다”라며 어색하게 웃었다. 엄마는 늘 모든 것을 미리 알아보고 준비한 뒤에 움직인다고 했다. 원래부터 성격이 그렇게 꼼꼼하셨냐 물었더니 손사래를 쳤다. 결혼 전까지는 완전 기분파에 왈가닥이었다는 이야기였다. 갑자기 떠나는 여행,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인연과 풍경, 이런 걸 너무 좋아했는데 지민이를 키우면서 성격이 정반대가 됐다고 했다. 지금은 어디를 가든 동선부터 살피고 경로를 다 찾아본 뒤 움직인다. 무턱대고 나섰다가 휠체어가 못 가는 길이라도 만나게 되면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의 커피 한 잔] 오염자 부담의 원칙

글래스고 기후회의가 지난달 13일 막을 내렸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 이후, 6년 만에 열린 당사국총회가 협상 마감 시간을 하루 남기고 가까스로 마무리됐다. “약속은 거창하지만, 산출물은 미흡하다”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평가대로 단계적 탈석탄이 아닌 석탄 감축에 머무른 합의와 기온 상승 폭 1.5도를 훌쩍 넘긴 2.4도를 허용해버린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은 현재의 고통을 미래에 전가하며 우리의 앞날을 어둡게 만들었다. 아쉬운 가운데 몇 가지 진전도 눈에 띄는 진전도 있었다. 6년이란 시간을 끌어온 파리협약 6조의 ‘세부이행 규칙’이 완결되면서 국제 탄소 시장이 활성화될 길이 열렸다. 기껏 탄소를 배출해 놓고, 탄소 교환권을 매입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지속가능해 보이지는 않지만, 최소한 기업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게 되었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더불어 기후위기에 취약한 개발도상국과 섬나라 정상들이 ‘원조가 아닌 보상’을 시행하라며 ‘오염자 부담 원칙’을 들고나온 것도 눈에 띈다. 기후위기의 무력한 피해자가 아닌, 권리를 침해당한 주권자로서의 자기 인식의 출발이다. 그간 기후위기로 피해를 본 가난한 나라들은 탄소 배출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유국들에게 손실과 피해에 따른 보상금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부유국들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비용을 부담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보상이 아닌 국제협력’으로 선을 긋고 있다. 부자로서 의무는 하겠지만, 잘못해서 비용을 내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주머니에서 빼서 쓰나 저 주머니에서 빼서 쓰나, 부유국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은 같은데, 왜 지원금으로 국한하는 것일까. 영국 개발협력단체 옥스팜(OXFAM)은 2017~2018년 공공 기후적응 지원금의 80%가 차관으로 지원됐다고 집계했다. 차관은 빚이다.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모두의 칼럼] 공익사업도 사람이 합니다

비가 새는 집에 남매가 라면 하나를 나눠 먹는 광고를 보면 많은 사람이 채널을 멈추고 지갑을 연다. 이렇게 모인 돈이 아이들의 생활비로 지급되면 당장의 위기를 넘길 수 있으니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잠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은 제한적이고, 연말 지갑을 여는 속도는 더욱 심화하는 양극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최저주거기준 상향, 아이들만 집에 두고 보호자가 일을 나가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지 않도록 하는 육아기 가정 지원과 돌봄 시스템, 기초생활수급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연구, 입법운동, 캠페인, 연대활동이 필수적이다. 기부금 긴급 지원에서도 전달되는 금액보다 스스로 도움을 구할 수조차 없는 수요자 발굴, 기존의 복지 시스템과의 연계, 정서적 유대관계를 통한 회복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모든 일은 오롯이 사람의 몫인데, 우리나라 제도는 사람이 일하는 것을 지독히 싫어한다는 데 있다. 공익단체의 인건비가 높으면 횡령이라도 한 듯 비난과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진다.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은 단체에 운영비를 지급하지 못하도록 하고, 기부금품법은 모집비용을 15% 이내로 사용하도록 제한한다. 심지어 지난달 16일 대구지방법원 항소심은 단체 인건비는 전액 위 모집비용에 해당한다며, 모집비용 초과 등을 이유로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법인과 사무총장을 형사처벌하는 판결을 하였다. 기부금품법상 모집비용이란 모집에 필요한 비용뿐만 아니라 모집과 사용, 결과보고에 이르기까지 모집목적 사업을 진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일체의 비용을 포함하는 개념이므로 법인의 인건비로 사용된 금액은 모두 모집비용에 포함된다는 것이 판결의 취지이다. 무료급식소 주방 직원들, 가가호호 방문하여 도시락을 배송한

[정경선의 최적화 인류] 유년기의 끝

영국의 SF 작가 아서 C. 클라크(Arthur C. Clarke)가 1953년 출판한 ‘유년기의 끝’이라는 책이 있다. SF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작품은 갑작스러운 외계인 ‘오버로드’의 출현으로 급속도로 진화하는 인류 문명과 그 끝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70년 전에 썼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물질적 풍요에 따른 정신과 문화의 권태, 그에 대응하기 위한 예술, 철학 공동체의 노력 등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이 다른 작품들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부분은 결국 인류 문명의 종말을 바라보는 관점이 아닐까 싶다. 혹시 책을 안 본 독자들을 위해 최대한 안전하게 표현하자면, 이 작품에서 인류가 맞이하는 운명은 어떤 이들에게는 공포스러운 종말일 것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종교에서 표현하는 영적 부활에 가까울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소설 제목에 쓴 ‘유년기’란 말 그대로, 어떤 의미로든 인류는 한 단계를 넘어갔다는 점이다. 현실의 인류는 지금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무게감으로 ‘한 시대의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1972년 지구의 미래를 연구하는 기관인 ‘로마클럽’이 MIT에 인류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예측하는 프로젝트를 의뢰했는데, 인류가 자연에 존재하는 비재생 가용 자원을 과잉 개발하고 낭비한 끝에 21세기 중반에 정점을 찍고 쇠락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그리고 최근 국제 회계 컨설팅 업체 KPMG 연구진이 50년 전 로마클럽의 분석에 최신 데이터를 반영해 검증한 결과, 당시의 분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구체적으로는 2040년경 급격한 쇠퇴가 시작될 것으로 드러났다. 인류 문명의 급격한 쇠퇴가 곧

임성규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농어촌정책팀장
[사회혁신발언대] 청년과 농촌, 생명의 순환 고리를 잇다

언제부터인가 농촌이라는 단어와 청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멀어지는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는 사람이 많았다. 농촌은 식물과 동물을 키워내는 일을 하는 곳이자 풍요로운 삶의 보금자리로서 생명력이 가득한 장소이다. 청년은 몸과 마음이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의 사람으로 절정에 달한 생명력을 품은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아름다운 생명력을 내포하고 있어 공통점이 많은 두 단어인데, 오늘날 우리 사회는 농촌과 청년이 가까이 있는 광경이 오히려 낯설다. 이러한 가운데 농촌으로 들어오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최근 5년간 약 1만3000명의 사람이 도시에서 살다가 농촌(산촌과 어촌을 포함해서)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이렇게 농촌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수는 2019년까지 약 46만3000 명에 이른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 중 약 50%가 40세 미만이라는 것이다. 인구감소로 농촌 소멸의 우려가 종종 거론되는 상황에서 젊은 층의 농촌 유입이 늘어나는 것은 그 자체로도 긍정적인 느낌이다. 그런데 이러한 추세가 나타났기 때문에 만족하고 말 것인가? 우리의 청년들이 농촌에서 온몸으로 부딪혀 가며 일궈낸 삶의 양식은 기성세대가 농촌에서 삶을 생각할 때 막연히 떠올리는 모습과 다른 부분이 많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농촌으로 간 30대 이하 청년층의 수는 2019년 기준으로 약 22만4000명이다. 이들 중 약 8만2000명은 동반 가족이고, 나머지 약 14만2000명이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농촌에서 살며 일을 하는 청년의 숫자가 약 14만2000명인 셈인데, 이들 중 농업 종사는 0.9%, 어업 종사는 0.1%에 불과하다. 나머지 99%는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농사를 짓는 청년도

권미영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장
[사회혁신발언대] 자원봉사의 변화적응적 도전

전 인류가 바이러스와의 전투를 펼친 지난 두 해 동안 우리나라의 자원봉사현장 또한 치열하고 준엄했다. 자원봉사자들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불신과 배제가 아닌 연대와 협력의 힘임을 실증했다. 위기에 처한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헌신적인 활동을 펼친 자원봉사자들은 물리적 거리두기가 사회적 거리감으로, 개인의 고립으로 고착되지 않도록 필요한 곳에 손을 내밀어 우리 사회에 안전한 온기를 보강하였다. 그리고 이제 ‘자원봉사 일상’으로의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자원봉사를 둘러싼 사회환경은 변했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필요한 변화를 촉진해야 한다. 그동안 새롭고 다양한 비대면의 활동과 개인의 참여를 촉진하는 접근방식이 개발되었으며 비대면 자원봉사가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대면봉사를 대체할 수는 없다. 자원봉사현장을 다시 정비하고, 안전한 활동현장을 지키기 위한 준비는 누구랄 것 없이 우리 모두의 과업이 되었다. 지난 7월, 촛불재단 자원봉사 콘퍼런스에서는 불확실성과 도전으로 가득한 현재 상황에 맞서 ‘영감얻기’ ‘배우기’ ‘행동하기’(Inspire, Learn, Act)로 자원봉사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제안을 하였다. 격변하는 어려운 시기일수록 돌봄을 요구하는 곳은 많아지고,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는 넓어지기 마련이다. 국경의 구분 없이 시민의 자원봉사활동을 격려하고, 차세대의 시민의식을 높이는 주요한 통로로서 자원봉사를 일상화해야 할 이유다. 바이러스 시기를 거치면서 더욱더 곤경에 빠진 사회적 약자 돌봄활동, 벌어진 학습격차를 줄이기 위한 학습지원활동, 지역사회문제를 발굴하고 이를 시민참여로 해결하기 위한 안녕캠페인의 활성화, 보다 근본적인 기후위기 대응 등이 중요한 과제로 자원봉사시민 앞에 있다. 위드 코로나 시기, 자원봉사의 전환을 도모하며 두 가지의 접근방법을 제안하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