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
정책·판로·투자 한자리에…사회적경제, 성장의 조건을 다시 묻다

사회적경제, 시장에서 도약하는 법 <1> 판로 확대와 투자 연계가 여는 새로운 성장의 길 “마트에서 만 원짜리 농산물을 사면, 농부에게 돌아가는 돈은 절반뿐입니다.” 해남고구마생산자협회에서 13년간 일해 온 박진우 파머스넷 대표는 농산물 가격 구조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수많은 농가가 중도매 중심의 오프라인 공판장에서 ‘헐값 낙찰’ 피해를 호소해 왔다”며 “그중에는 제 아버지도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가 택한 해법은 농산물 가격을 생산자가 직접 제시하는 ‘역경매 온라인 공판장’이었다. 오프라인 공판장에서 중도매인이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와 달리, 온라인 공판장에서는 생산자가 산지에서 곧바로 배송까지 맡는다. 신선도와 가격 경쟁력이 동시에 확보되는 이유다. 현재 파머스넷에는 46개 농가가 입점해 있고, 지난해 월평균 주문량은 약 2만 건에 이른다. 박 대표는 이를 “농민과 소비자가 지속가능하게 만나는 공정거래 플랫폼”이라고 소개했다. 지난달 28일 열린 ‘2025년 사회적경제 도약패키지’ 성과공유회에서 파머스넷이 주목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사회적경제조직들의 사업 발표와 더불어, 정책 강연·투자 상담·판로 전략 등이 이어졌다. 기업 발표가 끝나자 정책 실무 강연이 진행됐고, 외부 상담 부스에서는 각 기업이 투자자·판로 전문가와 일대일 상담을 진행했다. ‘정책-판로-투자’가 한 자리에서 연결된 드문 장면이었다. ◇ 경기도가 그리는 사회혁신 생태계의 기반 ‘사회적경제 도약패키지’는 업력 3년을 초과해 도약 단계에 있는 사회적경제조직을 대상으로, 사업 고도화와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는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의 대표 프로그램이다. 우수 창업 기업을 선발하고 경기도 소셜밸리 기반을 구축하는 데 목적이 있다. 올해는 글로벌, 사회문제해결, 기술고도화 세 분야에서 총 40개 기업이 선정됐다. 이 중

99% 기부 선언 그 이후, 저커버그는 무엇을 해냈나

10대 기업가 재단이 바꾼 세상의 지도 <10·끝>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 면세 혜택 대신 ‘유연함’을 택한 LLC 구조가 만든 새로운 자선의 방식 교육·과학·정책을 아우르는 ‘직접 개입형 자선’의 실험 2015년 12월, 억만장자가 쓴 공개서한이 관심을 끌었다. 마크 저커버그와 프리실라 챈 부부는 딸 맥스의 탄생을 축하하며, 자신들이 보유한 페이스북(현 메타) 지분의 99%를 생전에 사회에 내놓겠다고 밝혔다. 당시 가치로 약 450억달러(약 66조원). “모든 생명은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는 선언과 함께,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를 약속한 것이다. 이들이 선택한 방식은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세제 혜택이 보장되는 전통적 재단을 세우는 대신, 유한책임회사(이하 LLC) 형태의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이하 CZI)’를 출범시켰다. 이름은 자선 이니셔티브지만, 법적 구조는 영리 회사와 같아 사기업에 투자하고 수익도 창출할 수 있는 형태다. ◇ LLC, 혜택을 포기하고 자유를 얻다 미국의 비영리 재단은 기부금에 대해 세제 혜택을 받지만, 영리 투자나 정치 활동은 엄격히 제한된다. 매년 국세청에 사업보고서(990)를 제출해 자산 운용 내역·기부자 정보·임원 보수 등 거의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그래서 사실상 대부분의 재단은 ‘보조금(grant) 지급’ 중심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저커버그 부부는 이런 전통 재단 구조의 제약을 LLC 형태로 우회했다. 세금 혜택을 포기하고, 대신 정책·시장·여론을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풀옵션’을 선택한 것이다. 저커버그는 CZI 출범 당시 “세제 혜택은 받지 않지만, 사명을 더 효과적으로 실행할 자유를 얻었다”며 “투자로 발생하는 순수익 또한 이러한 사명을 달성하는 데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왜 이베이 창업자는 ‘빅테크’를 견제하는 데 자기 돈을 쓸까

10대 기업가 재단이 바꾼 세상의 지도 <9> 오미디야르 네트워크 비영리·LLC를 동시에 활용한 ‘듀얼 체크북’ 모델의 원조 AI·플랫폼 독점·자본주의 규칙을 다시 설계하는 실험실 “사람은 태어날 때 비슷한 능력을 갖지만, 기회는 평등하지 않다.” IT로 부(富)를 쌓은 기업가가 다시 디지털 기술의 형평성과 접근성을 위해 돈을 쏟아붓고 있다. 온라인 경매 플랫폼 이베이(eBay)를 창업해 31세에 억만장자가 된 피에르 오미디야르(Pierre Omidyar) 이야기다. 그는 기술이 사람들을 연결하고 신뢰를 만들 수 있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2004년 아내 팸 오미디야르(Pam Omidyar)와 함께 ‘오미디야르 네트워크(Omidyar Network·ON)’를 세웠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믿음 아래, 잘 설계된 시장과 디지털 플랫폼이 개인의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확신에서 출발한 실험이었다. 오미디야르 네트워크의 목표는 명확하다. 디지털 혁신의 과실이 극소수 빅테크 기업으로 집중되는 구조를 깨고, 기술 발전이 더 많은 시민에게 돌아가도록 ‘게임의 규칙’ 자체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가 택한 방식은 자선(Grant)과 투자(Investment)를 병행하는 ‘투 트랙’ 전략이다. 공익단체에는 보조금을 주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에는 직접 자본을 넣는다. 전통적 자선과 벤처캐피털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 우리는 하이브리드 재단…“단일한 수단이 아니라, 전체 도구 상자를 쥔다” 이베이가 이커머스라는 새 시장을 열었다면, 오미디야르 네트워크는 실리콘밸리 필란트로피의 새 문법을 열었다. 하나의 이름 아래 비영리 재단(Foundation)과 유한책임회사(이하 LLC)를 나란히 둔 ‘하이브리드 재단’ 구조를 도입한 것이다. 이후 마크 저커버그의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CZI)’나 로렌 파월 잡스의 ‘에머슨 컬렉티브(Emerson Collective)’가 잇달아 이 모델을 벤치마킹했다.  배경에는 전통적 재단 모델에 대한

“의료 사각지대 해소” 롯데복지재단, 외국인 근로자 300명 건강검진 지원

국내 체류 외국인 근로자 대상 초음파·CT 등 80종 정밀검진…총 1억 원 규모 지원 롯데복지재단이 지난 9일 롯데의료법인 보바스기념병원에서 ‘2025년 신격호 롯데 외국인 근로자 건강검진 사업 보고회’를 개최했다고 10일 전했다. 이날 행사는 올해 사업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로, 조한봉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김천주 롯데의료재단 이사장, 나해리 보바스의료원장 등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신격호 롯데 외국인 근로자 건강검진’은 의료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근로자에게 고품질의 건강검진을 제공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추진해 온 사업이다. 재단은 롯데의료재단과 협력해 서울·경기 지역 외국인 근로자 300명에게 초음파·CT를 포함한 80여 종의 검진항목을 지원했다. 검진은 보바스기념병원과 보바스병원 건강증진센터에서 진행됐으며, 총 1억 원 규모의 사업비를 전액 부담했다. 올해는 이 가운데 긴급치료가 필요한 근로자에게 치료비까지 추가 지원하며 검진-치료로 이어지는 연속형 의료지원 체계를 마련했다. 롯데복지재단은 내년에도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무료 건강검진을 이어갈 계획이다. 조한봉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은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묵묵히 역할을 다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와 그 가족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며 “외국인 근로자들의 의료환경 개선을 위해 시작된 이 사업이 그들의 건강 증진과 건강한 생활 습관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조선DB
[단독] 66년간 유지된 비영리법인 설립허가제, 위헌 심판대 오른다

서울행정법원, 9일 위헌제청…여가부의 반복적 설립 거부가 직접 계기 “주무관청 자의적 판단 막을 명확한 요건 필요” 지적 비영리법인 설립을 주무관청이 ‘허가’해야만 가능하도록 한 현행 민법 조항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이 지난 9일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함에 따라, 66년간 유지돼 온 이른바 ‘설립허가제’가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특정 부처가 명확한 기준 없이 법인 설립을 거부할 수 있는 구조가 과연 정당한가를 둘러싼 논란이 본격화된 셈이다. 문제의 뿌리는 민법 제32조다. “영리 아닌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사단·재단은 주무관청의 허가를 얻어 법인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지만, 정작 허가 요건은 법 어디에도 없다. 자격 기준도, 허가 기준도 없이 ‘허가 권한’만 부처에 주어진 구조여서 설립 승인 여부가 행정기관의 해석과 재량에 좌우될 수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번 사건은 청소년 교육 단체 A가 여성가족부(현 성평등가족부)에 2024년 6월, 비영리법인 설립을 신청하면서 촉발됐다. A단체는 전국에서 청소년이 환경·차별 등 사회문제를 토론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비(非)법인 단체였다. 그러나 여가부는 ▲2개 시·도 사무소 미확보 ▲재정 안정성 부족 등을 이유로 수차례 설립을 거절했다. 여가부 매뉴얼에는 ‘기본재산 기준’이 명시돼 있지 않지만, A단체는 500만원을 기본재산으로 출연하고 발기인 2명이 각각 300만원을 추가 출연하기로 약정했다. 그럼에도 여가부의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 A단체는 두 번째 신청에서 전국 사업장 3곳을 확보하고 회비 수익을 늘렸지만, 여가부는 “사업이 단발적”이고 “500만원이라는 기본재산은 재정 안정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반복했다. 재정 안정성의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2025 추천 인권도서’ 46권 공개

15개 인권 주제 구성…시민과 교육 현장에 새로운 길잡이 역할 기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을 맞아 ‘2025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추천 인권도서’를 공개했다. 올해는 15개 주제에서 46권을 선정했으며, 연령과 관심사의 폭을 넓혀 다양한 독자가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한 점이 특징이다. 국제앰네스티는 “독서를 통해 시민들이 인권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더 깊은 논의로 확장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책이라는 매개가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게 하는 도구라는 판단에서다. 이번 추천 도서를 선정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인권교육 자문위원회는 현직 교육자 4인으로 구성돼 있다. 실용적인 인권교육 콘텐츠 개발과 교육 현장 자문·연구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전쟁·분쟁으로 생명과 자유가 침해되는 사례가 지속되고, 온라인·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혐오와 차별 역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을 국제앰네스티는 지적한다. 이 같은 문제는 교육 현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모든 학교는 차별과 혐오가 배제된 공간이어야 하며, 구성원이 젠더·사회적 지위·문화적 배경 등 어떤 이유로도 소외돼선 안 된다는 것이 국제앰네스티의 설명이다. 국제앰네스티 인권교육 자문위원회는 “이번 추천 도서가 교육 현장에서 다양한 주제로 인권을 이야기하고, 인권의 가치를 확산하는 데 의미 있는 동행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25 국제앰네스티 추천 인권도서’ 목록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평등·비차별·통합·존중·참여를 기반으로 한 교육 환경 조성을 목표로 다양한 인권교육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하고 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정부가 못 하는 일 먼저 한다…‘촉매자본’의 원형, 게이츠 재단

10대 기업가 재단이 바꾼 세상의 지도 <8> 게이츠 재단 고위험 영역에 먼저 들어가 국제기구·정부 자본을 끌어낸 촉매적 필란트로피 질병에서 교육, 기후에서 성평등까지…지구적 난제에 속도를 내다 “부자로 죽지 않겠다.”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 빌 게이츠가 2025년 5월, 재단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사실상 ‘유언장’에 가까운 기한을 못 박았다. 앞으로 20년 동안 자신이 가진 재산 약 2000억달러(약 294조원)를 모두 사회에 내놓고, 2045년 게이츠 재단을 문 닫겠다는 선언이다. 설립 25주년을 맞은 세계 최대 민간 자선재단이 ‘영속(永續)’ 대신 ‘유한(有限)’을 택하면서, 공익재단의 존재 이유와 방식 자체를 다시 묻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단의 뿌리는 한 편의 기사에서 시작됐다. 선진국에선 사라진 설사·폐렴 같은 질병으로 저개발국 아이들이 매년 수백만 명씩 죽어간다는 보도였다. “모든 생명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All lives have equal value)”는 문장을 미션으로 박은 부부는 1990년대 후반부터 자신이 보유한 마이크로소프트(MS) 주식을 내놓기 시작했다.  1999년 마이크로소프트 주식 약 160억달러(약 23조6200억원), 2000년 51억달러(약 7조5300억원)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윌리엄 H. 게이츠 재단’과 ‘게이츠 도서관 재단’을 통합해 2000년 지금의 게이츠 재단을 출범시켰다. 출범 초기 재단 예산의 절반 가까이는 글로벌 보건에, 나머지는 미국 내 교육 불평등 해소와 정보 접근성 개선에 배분됐다. 처음부터 단기 구호가 아닌 ‘구조를 바꾸는 자선’을 표방했다. ◇ 백신값 70달러에서 3.5달러로…‘촉매적 자선’의 실험장 게이츠 재단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키운 배경에는 실험적 접근과 파트너십이 있다. 대표 사례가 2000년 출범한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이다. 재단은 세계보건기구(WHO), 유니세프(UNICEF), 세계은행 등과 손잡고

스페이스 작당, ‘청년들의 작당’ 4기 모집…낯선 연결 실험한다

12월 28일까지 신청…다양한 배경의 청년이 사회문제 놓고 대화·탐구 사회적협동조합 스페이스 작당은 오는 12월 28일까지 청년 참여 대화 프로그램 ‘청년들의 작당(청작)’ 4기 참가자를 모집한다. ‘청작’은 일상에서 접하기 어려운 사회적 고민과 관점을 나누고, 낯선 조합 속에서 새로운 연결을 실험하는 대화 프로그램이다. 올해 주제는 ‘낯선 연결’로, 서로 다른 배경의 청년들이 모여 생각의 경계를 넓히는 경험을 목표로 한다. 노영준 ‘청작 4기’ 공동기획단장은 “우리는 대개 익숙한 틀 안에서 생각하지만, 청작에서 만나는 낯선 조합이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열어준다”며 “청년들이 함께 낯설어지는 순간을 통해 서로의 세계를 넓혀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참여 대상은 ‘세상을 연결하고 싶은 사람’, ‘세상과 더 연결되고 싶은 사람’ 등 관심 있는 청년 누구나 가능하다. 신청과 세부 안내는 홍보물에 게재된 QR코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청작’은 스페이스 작당의 대표 청년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관점의 청년들이 사회문제를 주제로 대화·탐구·실험을 이어온 장이다. 1기는 ▲좋은 경제 공동체 ▲AI 윤리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 등을 다뤘고, 2기는 ▲지방소멸 ▲정치적 효능감 ▲포기와 선택 ▲협력 기반 교육 등으로 소설·리플릿·보고서·길거리 캠페인 등 창의적 결과물을 냈다. 3기는 안전한 대화장을 주제로 ‘대화 룰북’을 제작했다. 한편, 이번 프로그램을 주최하는 스페이스 작당은 “선 넘는 시도, 낯선 연결, 신나는 작당!”이라는 슬로건 아래 대한민국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세대·진영을 초월한 연대와 협력을 추구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이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인도 여성의 IT 취업 돕는 ‘엠파워허’…교육에서 일자리까지 잇다

경력단절·비전공 여성에 첫 디지털 진입로 제공, 교육·인턴십 연결로 80% 현장 진입 한국사회투자·AVPN, 아시아 여성 역량 강화 모델 확산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코딩을 배우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제 목소리를 찾고, 같은 목표를 가진 여성들과 연결되며 ‘나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된 과정이었어요.” 올해 인도 여성 디지털 역량 강화 프로그램 ‘엠파워허(EmpowerHer)’에 참여한 강가 바바니 반타쿠(Ganga Bhavani Vantaku) 씨가 전한 소감이다. 인도는 올해 세계 4대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지만,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 장벽은 여전히 높다. 인도 노동력 조사(PLFS)에 따르면 여성 노동참여율은 41.7%로 남성(78.8%)보다 37.1%포인트 낮다.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에서는 격차가 더 뚜렷하다. 유네스코 글로벌 교육 모니터링팀(GEM)은 인도 여성 STEM 졸업 비율이 43%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실제 관련 직무 종사율은 27%에 그친다고 지적한다. ◇ 취약 여성 위한 디지털 교육, 인도로 확장되다 한국사회투자가 운영하는 ‘엠파워허’는 이러한 간극을 줄이기 위해 마련됐다. 기술 비전공자, 경력단절여성, NEET(비교육·비고용·비훈련) 여성 등 교육 접근성이 낮은 여성을 대상으로 디지털 기술 교육과 인턴십 기회를 제공해 정보통신(IT) 분야로의 진입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2023년 AVPN의 ‘아시아 성평등 펀드(Asia Gender Equality Fund)’를 기반으로 출발했다. 샤넬재단(Foundation CHANEL), 빌앤드멜린다게이츠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 타겟재단(Target Foundation)이 사업을 주관하며, 한국사회투자는 아시아 8개 수행기관 가운데 유일한 한국 기관으로 선정됐다. 1차 연도에는 한국 내 경력단절 여성과 경력 미보유 여성을 대상으로 2개월 교육과 3개월 인턴십 과정을 운영했다. 디지털 마케팅, 온라인 광고·홍보, 디지털 상담 등

“선한 사람에게 베팅하라” 사회혁신 생태계를 움직인 스콜 재단

10대 기업가 재단이 바꾼 세상의 지도 <7> 스콜 재단 사회적 기업가정신 정의하고 스콜 포럼·스콜 어워드로 사회혁신 생태계의 뼈대를 세우다 ‘영웅적 기업가’에서 ‘시스템 오케스트레이터’로, 스콜式 필란트로피 진화기 제프 스콜(Jeff Skoll)은 ‘테크 1세대 억만장자’ 가운데서도 독특한 궤적을 가진 인물로 꼽힌다. 온라인 경매 플랫폼 이베이(eBay)의 초대 사장으로 기업공개(IPO)를 이끌며 막대한 자산을 쌓았지만, 경영 일선에서는 일찍 물러났다. 이후 그가 붙잡은 화두는 “돈을 버는 법”이 아니라 “돈을 쓰는 방식”이었다.  1999년 설립된 스콜 재단(Skoll Foundation)은 그 질문 위에서 탄생한 실험장이다. 스콜은 이베이에서 번 돈의 상당 부분을 재단에 출연해 전 세계 사회혁신가에게 ‘장기 자본’을 맡기는 구조를 설계했다. 사업 아이템보다 ‘사람’을 먼저 보고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의 문법을 자선 영역으로 옮겨온 셈이다. 프로젝트 한 건, 성과 지표 몇 개가 아니라 “불공정한 구조를 바꾸겠다는 문제의식과 그걸 끝까지 밀어붙일 리더십”에 베팅하는 모델. 스콜 재단이 현대 필란트로피에서 ‘임팩트 베팅’의 시초로 불리는 이유다. ◇ “선한 일을 하는 선한 사람에게 베팅하라” 스콜 재단의 설립 철학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선한 일을 하는 선한 사람들에게 베팅하라(Bet on good people doing good things).” 이 조언을 건넨 이는 미국 시민사회 원로 존 가드너(John W. Gardner)다. 존슨 행정부에서 보건교육복지부 장관을 지내고, 시민단체 ‘커먼 코즈(Common Cause)’와 ‘인디펜던트 섹터(Independent Sector)’를 만든 인물이다.  이베이 상장으로 갑작스럽게 억만장자가 된 제프 스콜은 “이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고민하다 가드너를 찾아갔다. 당시만 해도 스콜 재단은

선진국 공여 축소 속 새 판 짜는 개발협력…WFUNA “다층 파트너십이 해법”

UNESCAP 포럼서 신흥국 중심 협력 부상…WFUNA, 민관·국제기구 연결하는 새 모델 제시 전통적 공여국 중심의 국제개발 모델이 흔들리면서, 개발도상국 간 협력(South-South Cooperation)과 국제기구·선진 공여국이 결합한 삼각 협력(Triangular Cooperation)이 새로운 국제협력 방식으로 부상하고 있다. 유엔협회세계연맹(이하 WFUNA)은 이러한 흐름이 “국제협력의 다음 단계”라며, 아시아·중동·아프리카 등 주요 신흥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협력 체제가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고 5일 밝혔다. 이 같은 논의는 지난 2~4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7회 UNESCAP 아태 지역 국장급 포럼’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포럼은 UNESCAP과 태국국제협력기구(TICA)가 공동 주최했으며, 한국을 포함한 20개 정회원국과 모로코·콜롬비아 등 10개 옵서버 회원국 고위급 대표들이 참석했다. 기존 선진국 공여 중심 구조가 전쟁·지정학·재정 압박 등으로 사실상 한계점에 도달하면서, 개발도상국 스스로 해법을 모색하는 ‘새로운 협력 생태계’가 현실이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행사에서는 국가별 협력 전략과 민관 파트너십(PPP) 모델이 공유됐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발전한 경험과 성과 검증 시스템을 소개하며, “정량·정성 평가 체계의 투명성이 글로벌 신뢰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WFUNA는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독일국제협력기구(GIZ)와 함께 아태 지역 3P(Public-Private Partnership) 세션 발제를 맡아 지난 8년간 300여개의 성공적인 임팩트 스타트업을 육성해온 아태 지역 도시혁신 창업 경진대회, 시티프레너스(Citypreneurs)의 성과를 바탕으로 공공기관-국제기구-기업-스타트업 간 파트너십 모델을 공유했다. WFUNA는 포럼 기간 모로코 국제개발협력기구(MAIC)와 별도 회의를 통해 시티프레너스 아프리카 사업을 서아프리카를 대상으로 재개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며, 일본국제협력기구(JICA)·독일국제협력기구(GIZ)와의 협력도 한층 강화할 계획이다. 김용재 WFUNA 사무국장은 “선진국 공여사업이 축소되는 지금, 아시아·중동·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의 주요 개발도상국이 공통의 과제를 중심으로 새로운 연대를

MIT 무료 강의에서 기후금융까지, 미래의 ‘큰 판’ 짜는 휴렛 재단

10대 기업가 재단이 바꾼 세상의 지도 <6> 윌리엄 앤 플로라 휴렛 재단 오픈코스웨어·클라이머트웍스·기후 금융으로 ‘시스템을 바꾸는 자본’ 실험 돈을 쓰는 법보다 ‘어디까지 바꿀 것인가’를 먼저 묻는 실리콘밸리 재단 크루즈선은 요트보다 뱃머리를 돌리기 어렵다. 규모가 큰 조직일수록 변화 속도가 더디다는 뜻이다. 대형 재단도 마찬가지다. 연결된 사람과 돈이 많을수록 방향을 바꾸기 힘들다. 그럼에도 ‘배우면서 전략을 고친다’는 원칙 아래 유연하게 진화해 온 재단이 있다. 실리콘 밸리 1세대 기업 휴렛 패커드 공동 창업자 윌리엄 휴렛(William R. Hewlett)이 세운 ‘윌리엄 앤 플로라 휴렛 재단’(The William and Flora Hewlett Foundation·이하 휴렛 재단)이다. 이 재단의 출발점은 창업자의 오랜 실험과 고민이었다. 휴렛은 10년에 걸친 다양한 필란트로피 방식 연구 끝에 1966년 자신의 이름을 딴 ‘윌리엄 R. 휴렛 재단’을 세웠다. 이후 아내 플로라 휴렛(Flora Hewlett)이 세상을 떠나며 대부분의 유산을 재단에 남겼고, 이를 기려 재단 명칭도 지금의 ‘윌리엄 앤 플로라 휴렛 재단’으로 바뀌었다. 윌리엄 휴렛 역시 막대한 유산을 재단에 추가로 기부했다. 이렇게 축적된 자산은 현재 139억 달러(약 20조4100억원)에 이르며, 휴렛 재단은 미국에서 7번째로 큰 재단(private foundation)으로 꼽힌다. ◇ 전략은 고정값이 아니다, 휴렛 재단의 세 번의 전환점  변화는 재단의 핵심 가치였다. 가족이 아닌 첫 회장으로 취임한 로저 W. 하인스(Roger W. Heyns·전 캘리포니아대(UC) 총장은 생전 재단 활동에 깊이 관여했던 플로라 휴렛이 “재단이 시대의 도전에 맞춰 끊임없이 바뀌고 발전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기를 바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