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뉴스
[사진으로 본 기업 사회공헌] 민둥산이 20년 후… 이렇게 푸르게

1985년 시작된 유한킴벌리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 민둥산은 20년 만에 푸른 숲이 됐다. 유한킴벌리의 대표적인 사회공헌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 덕분이다. 1985년 처음 나무를 심었던 충북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는 20년 후인 2005년, 물이 없던 곳에 실개천이 생겨났고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나 곳곳에서 새소리가 들린다. 나무가 자라는 만큼 사람도 자란다. 유한킴벌리는 매년 봄 신혼부부들을 초청해 ‘신혼부부 나무심기’ 체험행사를 가졌는데, 2000년 신혼부부로 참여했던 김동준ㆍ이은하 부부가 10년이 흘러 두 자녀(문정·도현)와 함께 다시 행사를 찾았다. 환경과 미래를 생각하는 가치는 미래세대에게도 이렇게 전해진다. 1984년부터 숲가꾸기를 위한 공익기금을 조성해 국내의 국유지와 공유지에서 나무를 심은 유한킴벌리는 캠페인 30년을 맞는 2014년까지 5000만그루를 심거나 가꿀 계획이다.

기숙사 무료 입주… 국가 장학금 사각지대 지원해야

늘어난 국가 장학금, 기업 장학재단이 나아갈 방향은 해외교환 장학생 선발-글로벌 교육사업 제공 등… 기업의 특성 살린 지원 국가 등록금 혜택과 기업 장학금 중복 수혜 등… 지원 조건 다양화해야 “국가 장학금이 너무 많아졌는데, 저희 기업재단에선 어떻게 하면 좋을지 현장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 때문에 장학재단 담당자들은 요즘 삼삼오오 만나면 동향을 묻는 경우가 많다. “학생 뽑는 데 어렵지는 않으냐” “학생들 뽑아놓으면 조건이 좋은 데로 가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땐 어떻게 하느냐” 등을 물으며 정보를 교환한다. ◇’국가장학금’ 도입에 기업장학사업 담당자들은 고민 중 현재 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에 등록된 국내의 장학금 종류는 270여가지에 달한다. 이 중 든든학자금대출, 일반학자금대출, 미래드림장학금, 희망드림장학금, 국가근로장학금 등 국가에서 운영하는 학자금과 장학금은 12가지다. 각 정부부처에서 국가보훈처, 근로복지공단, 공무원연금공단 등을 통해 지원하는 학자금과 장학금은 16가지,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장학금은 155가지다. 민간기업의 장학재단 장학금은 49가지, 개인이나 종친, 해외에서 주는 장학금은 43가지다. 한 기업장학재단 관계자는 “과거에 국가나 공공영역에서 복지를 다 감당할 수 없었을 때는 기업이 장학재단을 통해 어려운 학생을 돕는 게 큰 의미가 있었는데, 이제 국가에서 장학금을 확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기업장학재단의 고민이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기업재단에서는 국가장학금 확대 이후 제도 일부를 바꾸기도 했다. 국내 보육시설, 그룹홈 또는 저소득 가정 청소년을 대상으로 장학사업을 해온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 송헌석 과장은 “예전에는 ‘돈이 없어 대학에 못 가는 아이가 생기면 안 된다’는 취지로 1학년생은 등록금 전액을, 2학년생은 90%를 지원했는데, 국가 혜택이

굿네이버스 동영상 본 후 기부금 보낸 8살 소년

“자말 형 얘기 너무 가슴 아파” 용돈·후원 모아 100만원 기부 “자말형. 우리 가족은 엄마 그리고 누나, 나 이렇게 세 명이야. 나도 자말 형처럼 아빠가 없어. 내가 3살 때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 형아 CD보고 마음이 아팠어. 우리 누나는 엉엉 울었어. 우리 누나는 고3인데 공부하는 걸 싫어하거든. 그런데 형아가 돈이 없어서 학교도 못 가고 돈을 벌려고 물동이 배달하고 빨래하고 남은 시간에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았어. 그래서 요즘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 나도 만나는 사람마다 형아 이야기를 했고 돈도 많이 모았어. 형아 이 돈으로 꼭 학교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사먹고 엄마 치료약도 사드려(…).” 지난 3월 말 굿네이버스로 현금 100만원이 들어 있는 편지가 도착했다. 대전한밭초등학교 1학년 2반 이주원 군이 쓴 편지였다. 이군의 어머니인 이성희(48)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이씨는 “주원이와 누나가 둘이서 굿네이버스 CD를 보더니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고 울어서 뒤늦게 함께 봤는데, 나도 울컥했다”며 “아빠가 없고 엄마도 아픈데도 생활을 책임지고 밝게 사는 자말의 맑은 눈동자를 보면서 우리에게도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이군은 근처에 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주말에 모인 친척들, 학습지 선생님에게 CD를 다 보여줬고, 이들은 1만원, 2만원씩 십시일반으로 후원금을 냈다고 한다. 10만원 남짓한 후원금에 이씨는 90만원을 보태 100만원을 만들어 굿네이버스로 보냈다.

6월 2일까지 ‘지구촌 희망편지쓰기대회’

지난 3월 2일부터 전국의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시작된 제4회 ‘지구촌 나눔가족 희망편지쓰기대회’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회장 이일하)가 지난 2009년부터 세계시민교육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 희망편지대회는 가족이 함께 어려운 환경에 처한 지구촌 이웃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갖고, 그들에게 희망과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행사다. 오는 6월 2일까지 진행되는 편지쓰기 대회에 참여를 원하는 분은 학교를 통해 단체로 참여하거나 굿네이버스 홈페이지(www.gni.kr)를 통해 온라인에서도 참여할 수 있다. ●대회기간: 2012년 3월 2일~6월 2일(3개월) ●참가대상: 전국 초·중·고등학생 ●수상자 발표: 2012년 6월 말, 굿네이버스 홈페이지(www.gni.kr) 또는 개별 발표 ●참여문의: 굿네이버스 캠페인 사업부 02)3278-2282, 온라인(www.gni.kr) ●후원: 외교통상부, 교육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저개발 국가 상황 보며, 세계시민 깨닫는 아이들… 이것이 인성교육 아닐까”

‘나눔교육’ 함께한 다멘드라 칸 이번 굿네이버스 나눔교육에 참여한 다멘드라 칸(Dhamendra Karn·사진)씨. 네팔의 버티켈 초등학교에서 교사와 교장선생님으로 일하기도 한 그는 현재 굿네이버스 네팔 벌디야 지역개발사업장 매니저로 7년째 일하고 있다. 굿네이버스 네팔지부는 2010년부터 세계식량계획(WFP)과 공식 파트너십을 맺고, 한국의 새마을운동이 결합된 농촌개발사업인 ‘FFNV(Food for New Village)’ 사업을 펼치고 있다. 김미주 언론홍보팀장은 “단순히 식량을 배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 주도권을 갖고 지역사회의 자립기반을 만드는 데 의의가 있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나눔교육을 마친 다멘드라 칸씨와 짤막한 인터뷰를 가졌다. ―한국에서 직접 나눔교육을 진행한 소감이 어떤가.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을 찾은 이유도 아이들에게 좁은 시각을 벗어나 다른 나라 아이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다 넓은 시각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한국 아이들이 자신의 상황과 네팔 아이들의 삶을 서로 비교해보고, 저개발국가들의 어려운 상황을 알았으면 좋겠다. 또 아이들에게 ‘세계시민’임을 알게 해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동기부여를 하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인성교육’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다만 아이들이 이번 한 번의 교육으로 그칠 게 아니라, 부모와 함께 저개발국가의 상황이나 어려운 이웃에 대해 생각해보고 다양한 실천으로 이어졌으면 더 좋을 것 같다.” ―학교 교장선생님에서 굿네이버스 지역개발 사업장 매니저로 커리어를 바꿨는데….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개발 사업이 훨씬 더 보람 있다. 지금까지 1만2000명의 아이가 교육을 받게 되었다. 이 중 일부는 벌써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특히 부모들의 소득을

“네팔 아저씨 이야기 듣고 나눔 참여 결심했어요”

34개 초교서 ‘나눔교육’ 네팔인 라주씨가 현지 상황 들려주자 “정말요?” 휘둥그레…” 가엾은 친구 도울래요” 용돈 기부하는 아이도 “나마스떼~ 저는 네팔에서 온 라주입니다.” 네팔 전통의상을 입고 두손을 모아 인사하는 이 사람, 굿네이버스 네팔지부에 온 라주 카드카(Raju Khadkaㆍ35·아래 사진)씨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변호사를 거쳐 굿네이버스 네팔 아동결연서비스 담당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지난 5일, 서울 신용산초등학교 강당에 모인 5학년 학생들에게 직접 ‘나눔현장’ 이야기를 전하러 이곳까지 왔다. “여러분, 제가 네팔에 관해 이야기할게요. 에베레스트산 본 적 있으세요? 네팔에는 에베레스트산뿐만 아니라 100개가 넘는 산이 있어요. 참 아름다운 경치를 가진 나라예요. 그런데 저기 한 어린이를 보세요. 배가 고파서 울고 있어요. 그 옆의 남자아이는 길에서 버려진 음식을 찾고 있어요. 아래 사진 보이나요? 길거리에서 차로 다가가 구걸을 하고 있답니다. 이 소년은 몇 살일까요? 12살이에요. 여러분과 같은 5학년이에요. 이것이 지구촌의 현실이에요. 어떤 곳에 사는 친구들은 학교에 가고, 어떤 곳에서는 구걸을 해요.” 미동도 없이 집중하는 아이들에게 라주씨는 또 다른 사진을 보여준다. 행복하게 웃는 소년의 사진, 네팔에 사는 ‘람’이다. 라주씨는 ‘람’이 직접 쓴 편지를 보여줬다. “람은 원래 길에서 지내던 아이였어요. 쓰레기더미로 가득 찬 마을에 살았어요. 학교도 가지 못했죠. 지금은 람의 삶에 큰 변화가 찾아왔어요. 고맙다고 꼭 전해 달라고 하네요. 람은 지금 학교에 다녀요. 깨끗한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요. 어렵고 힘든 친구를 위해 아동권리행사에도 참가해요.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아세요? 여러분의 부모님, 선생님, 여러분과

너무 비싼 전문센터 비전문적 무료센터… 전문적 상담 받기 어려워

美 의료보험에 비용 포함 日 민간센터 적극 활용 호주센터서 헌옷 수거·판매해 운영비로 충당 하기도 우리나라 상담의 역사는 40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상담에 대한 인식은 낮았다. 정신적인 문제가 심각한 사람만 상담을 받는다는 게 보편적인 인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상담 수요가 늘고 있다. 삼성이나 LG 등 대기업도 기업 내 상담센터를 열거나 외부상담센터와 연계해 직원들의 정신건강 관리를 해주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상담 환경이 지나치게 양분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문상담센터의 경우 1시간에 10만원이 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해 일반인이 이용하기엔 문턱이 높다. 반면 전국 곳곳에 퍼져 있는 무료상담센터나 24시간 전화상담의 경우 비(非)전공자들이나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아, 전문적인 상담을 받기 어렵다. 현재 사랑의전화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용문상담심리대학원의 김선경 교수는 “80년도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상담 전공조차 없어서, 전문가가 활동하기 이전에 전화상담기관이 먼저 활동했다”며 “이후 상담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전문가가 배출되긴 했지만, 비전문가와 전문가 체제가 동시에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담자격증이 남발되는 것도 문제다. 김 교수는 “최근 청소년 학교폭력 등이 많아지면서, 학교에 전문상담사가 많아지고 있다”며 “미국은 스쿨 카운슬러(School Counselor)라는 자격이 한 개밖에 없는데, 우리는 교육학과·사회복지학과·심리학과·아동복지학과 등 전공별로 자격증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바람에 관리가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국처럼 상담비용을 의료보험에 포함시키는 등 전문상담센터의 문턱을 낮추고, 무료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민간 상담센터의 수준을 높이는 게 시급한 과제다. 현재 한국생명의전화·사랑의전화 등 국내 전화상담기관은 해당 지자체로부터 예산의 일부분을 지원받고 있지만, 그 규모가 운영비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아픈 마음 달래주는 상담원, 그들도 아프다

전화상담 36년… 현실은 역행 작년 ‘생명의전화’ 10만건 넘게 상담 10년 전 比 70% 늘어 상담원 처우는 제자리 대부분 봉사자에 의존 감정 이입해 대화하니 내담자의 고통 그대로 트라우마로 남아 상담자 후유증 치료와 전문적 교육과정 절실 “근데 남편은 왜 이혼을 안 해 줄까요?” 김선경 용문상담심리대학원 교수가 질문을 던졌다. “아이 때문 아닐까요?” “남자 심리상, 애 때문은 아닐 거예요” “이혼해야죠, 평생 이렇게 (맞으며) 살 텐데…”라는 전화상담 자원봉사자들의 의견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잠시 후, 김 교수가 또 한 번 물었다. “그런데 이 내담자가 30분 이상 전화통화 한 후 받은 도움은 뭘까요?” 이날 상담사례를 발표했던 한현순(69)씨는 잠시 주저하더니 “쌓였던 얘기를 실컷 하고 마음이 좀 풀렸던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다른 참석자들도 “마음이 후련하겠죠” “내 편이 있다고 느끼죠”라며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그분의 삶이 고통스럽다는 건 하나도 변하지 않았죠. 상담의 주제를 아주 작게 줄이는 것, 그래서 구체적인 방법이 나오게 하는 것이 전화상담의 키포인트예요.” 지난 3월 29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사랑의전화 상담센터 ‘카운셀24’ 1층 회의실에 상담 자원봉사자 5명이 모였다. 이 세미나는 상담 자원봉사자들이 서로 상담사례를 공유하고, 상담 과정에서 겪는 애로점을 전문가들로부터 조언받는 자리다. 3년차 자원봉사자 김봉연(가명·56)씨는 “봉사 초기에는 너무 황당한 사연이 잦아 힘들었는데, 이런 자리를 통해 가짜 사연으로 장난전화를 일삼는 내담자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고 했다. ◇”자원봉사자 없으면 운영 못해”… 국내 전화상담 현실 1976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전화상담 역사는

현지에서 마을 자생사업 기획 2년 활동 후 심화과정 지원 청년 지역전문가 양성에 앞장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브릿지’ “2년 동안 해외에 봉사나갔다 왔더니 친구들에 비해 혼자 뒤처진 느낌이 들어서 한동안 우울했어요.” “청년인턴제 채용공고가 나면 경쟁률은 무척 높은데, 막상 합격자 발표 후 ‘못 가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현실적인 손익계산을 해보고 나면, 덜컥 겁을 먹는 거죠.” 코이카 해외봉사단으로 참여한 이들의 이야기다. 자원봉사단이나 청년인턴으로 해외에 나간 청년들이 1~2년 후 실업자가 되는 걸 막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 한국 YMCA 지구시민교육센터 송진호 협동사무처장은 “개발원조 분야에도 비즈니스를 융합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며 “코이카의 공적개발원조(ODA)사업, 노동부의 사회적기업 모델, 교육과학기술부의 적정기술, 기획재정부의 비즈니스 모델을 결합해, 개도국 현장에서 한국 청년들이 장기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이와 같은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곳이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브릿지사업단이다. 이 프로젝트의 명칭은 ‘브릿지’. 아프리카 6개 국가, 18개 지역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풀뿌리 교육발전 사업이다. 마을 주민들의 주도적인 지역개발을 돕기 위해 2010년 10월, 18명의 한국 청년지역활동가들이 아프리카 땅을 밟았다. 이들은 현지 지역 NGO들과 협력해 오지마을마다 언어교육을 실시하고 주민공동체를 활성화하는 지역학습센터(CLC)를 구축하고 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브릿지사업단 김동훈 팀장은 “보다 장기적인 개발원조를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외부 원조보다는 마을의 자원을 활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다”고 했다. ‘브릿지’는 마을의 자생을 위한 지역경제 비즈니스 모델을 청년들이 직접 찾아내 기획, 실행할 수 있도록 전 과정을 교육하고 지원한다. 2년간의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청년들은 심화교육과정을 받을 수 있다. 김 팀장은 “2년간 현장을 보고 돌아온 청년들은 해당 국가의 대학원, 기업, 국제기구

인력난 겪던 NGO 숨통 트였지만 ODA 청년인턴, 1년 후 갈 곳 없어

‘ODA 청년인턴제’ 시행 1년 국내 78개 ODA 기관과 34개국 해외사무소 근무 해외 근무 인턴 현장에서 전문성 쌓고 중소 NGO 기관은 인건비 부담 덜 수 있어 정규직 채용 인원 한정 일회용처럼 끝나지 않게 지속 가능성 열어줘야 취업경력자는 제외되는 지원 자격도 문제 제기 “청년인턴으로 일하면서 현장에서 직접 새로운 것을 배워보니 무척 좋았어요.” 재작년 성신여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채송아(28)씨는 최근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의 1년 계약직 직원으로 채용됐다. 작년 4월부터 1년 동안 이곳에서 ‘ODA 청년인턴’으로 일한 후 곧바로 채용된 것이다. 채씨는 그동안 다양한 국제개발 협력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채씨는 “내년쯤 대학원에도 진학해 국제개발 분야를 좀 더 깊게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채씨는 운이 좋은 편이다. 많은 청년인턴의 경우, 6개월~1년 인턴기간이 끝나면 다시 백수로 되돌아가 구직자 대열에 끼게 된다. 청년인턴은 많이 배출되지만, 막상 이들을 채용해줄 기관이 마땅치 않은 것이 큰 이유다. 기자는 청년인턴을 채용한 기관 10곳을 취재, 시행 1년을 맞은 ‘ODA 청년인턴제’의 빛과 그림자를 살펴봤다. ◇ODA 청년인턴, 인력난으로 허덕이는 NGO 숨통 트이게 해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하 코이카)은 작년부터 청년인재를 공적개발원조(ODA) 전문가로 키우기 위한 ‘ODA 청년인턴제’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 92명의 청년인턴이 아프리카, 아시아 등 34개국 코이카 해외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으며, 월드비전이나 지구촌나눔운동,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등 78개 ODA사업 수행기관에서 159명의 인턴이 근무 중이다. “이제야 겨우 숨통이 트였어요.” ODA 청년인턴을 채용한 기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인건비 부담 때문에 직원을 쉽사리 채용하지 못했던 중소 NGO에 청년인턴제는 반가운 소식이다.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무조건적 ‘혜택’보다 낯선 땅에서의 적응 도와줄 ‘시스템’ 만들어야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요.” 다문화 취재를 통해 만난 몽근졸씨와 저는 말이 아주 잘 통했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 그건 정말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를 일입니다. 2008년 여름부터 2년 동안 저는 미국에서 소위 ‘다문화 여성’으로 살았습니다. 매일 아침 다섯 살짜리 딸아이를 프리스쿨(어린이집)에 맡기고 돌아서면서 저는 선생님께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맴돌았지만 그냥 웃으며 “굿 모닝(Good Morning)”만 하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선생님과 낄낄거리며 대화하는 미국인 학부모를 보며 자괴감을 느껴야 했지요. 마트에서도 “Plastic or Paper?(비닐봉지, 아니면 종이봉투에 담아갈래?)” 하고 재빠르게 묻는 종업원의 말을 못 알아들어 창피당한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서커스장에서 모든 관객이 일어나 미국 애국가를 부르는 통에 우리 가족만 어색한 채 입만 벙긋벙긋한 기억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습니다. ‘영어를 제대로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주위를 둘러본 순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제 스케줄을 채워줄 다양한 프로그램이 눈에 보였습니다. 월요일엔 도서관, 화요일엔 초등학교, 수요일엔 지역 커뮤니티센터, 목요일엔 미국인 자원봉사 할머니집, 금요일엔 교회를 다니며 생활영어를 배웠습니다. 도서관에서 40년 넘게 자원봉사로 일한 70대 애비(Evy)할머니 부부는 매주 목요일 자신의 집으로 저와 몇몇 한국 여성들을 초대해 토크타임을 갖고, 미국 문화와 미국 생활에서 겪는 아주 사소한 어려움을 상담해주기도 했습니다. 운전면허증을 딸 때 유의할 점, 식당에서 팁(tip)은 얼마나 줘야 하는지, 할로윈 데이에는 아이에게 무슨 옷을 입혀서 학교에 보내야 하는지 등을 말입니다. 이렇게 2년쯤 지나 귀국할 때쯤, 저는 전화 통화를 통해 “왜

공장서 일하는 여성은 시간 없어 교육 못 받아 10년 지나도 한국말 못해

다문화 여성이 본 다문화 정책 다문화 이해하고 부인 존중하는 남편 교육도 함께 이뤄져야 ‘다문화’란 단어, 낙인처럼 느껴져 오히려 관심 자체가 싫어지기도 최고 요리사를 꿈꾸던 몽골의 처녀. 2000년 한국으로 요리 유학을 온 몽근졸(37·사진)씨는 지금 한국에서 ‘다문화 강사’로 살고 있다. 전국의 초·중·고등학교 교실에서 2시간 동안 몽골문화를 알려주고, 이주민의 인권에 대해 가르치는 일을 한다. 2008년부터 5년째 아시아인권문화연대의 다문화 교육 강사로 활동 중인 그녀를 경기 부천에서 만났다.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는. “우리 아들(초2)이 초등학교에 가서 이런저런 일이 생길까 걱정됐다. 한국 학교시스템을 알고 싶어서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일하면서 자신감이 생기자 아들도 엄마를 자랑스러워한다. 1학년 장기 자랑 때 몽골옷 입고 몽골어로 자신있게 발표하더라.” ―다문화 가정의 가장 큰 어려움은 뭐라고 보나. “언어다.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다문화센터라는 게 없어 TV만 보고 한국어를 배웠다. 지금은 천천히 한국어 쓸 수 있는 정도다. 2~3년 정도는 ‘밥 먹었어요’ 하는 간단한 것만 했다. 5년쯤 지나니까 한국말 알아듣는 자신감이 생기더라. 결혼해서 살아도 10년은 필요한 것 같다. 어떤 엄마가 며칠 전 학교 선생님이 ‘엄마 대신 아빠를 학교에 보내라고 했다’며 눈물 흘리더라. 선생님과 말 안 통할까 봐 겁나고…. 아직도 아들 받아쓰기 시험 준비할 때면 발음 안 되는 것도 있다.” ―다문화 지원이 많아졌는데,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도는. “별로 도움받아본 적은 없다. ‘다문화’라는 단어 듣기가 싫다. 내가 한국에 왔을 때는 한국어 배울 데도 없어 알아서 다 해야

더나은미래 특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