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자선단체 재정적 지표만 따지지 말고, ‘기부의 임팩트’ 보세요… 피터싱어 인터뷰②

피터 싱어 교수 인터뷰 2  <피터싱어 인터뷰① 에서 계속> ◇기부의 임팩트를 평가하라 ―개인 기부자들은 어떤 단체가 효과적인지 알기 쉽지 않다. 잘 모르다 보니 비영리단체의 투명성에 막연한 의구심을 품는 이도 많다. “사실이다. 미국 내 자선단체는 100만 곳에 이르고, 연간 기부금 규모는 3000억달러(약 337조억원) 수준이다. 각 단체가 얼마나 효과적이고 투명한지에 대한 정보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그래도 미국에선 지난 10년간 비영리단체의 활동을 평가하는 다양한 중간 평가 기관들이 생겨났다. 빈곤 해결 분야에 종사하는 비영리단체의 효과를 연구하는 ‘기브웰(GiveWell)‘이나 ‘당신이 구할 수 있는 생명(The Life You Can Save)‘ ‘기빙왓위캔(Giving What We Can)‘ 등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서는 비영리단체들을 심층 조사한다. 연구 자료도 끌어모으고, 임의 표본 검사도 실행한다. 미국에서 ‘효율적 이타주의’ 운동이 큰 힘을 받게 된 건 이런 기관들이 생겨난 덕분이다.” ―’기브웰’ 같은 기관이 기존 ‘가이드스타(GuideStar)’나 ‘채리티내비게이터(Charity Navigator)’ 같은 평가 조직과는 어떻게 다른가. “완전히 대척점에 서 있다. 가이드스타나 채리티내비게이터는 재무 성과 지표에 기반해 단체를 평가한다. 자선단체들이 국세청에 의무적으로 제출한 운영 보고 양식을 받아, 기부금 수입에서 구호 활동비로 어느 정도를 썼고, 모금에는 얼마가 들었고, 운영비나 인건비에는 얼마를 썼는지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것은 책의 겉 표지만 보고 책이 좋다, 나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운영비나 모금에 쓴 비용이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비영리단체의 진짜 효율성과는 관계가 없다. 가령 어떤 기관은 프로그램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뛰어난 인력을 고용하고,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연구 평가를 하는 데 투자한다고 하자.

[Cover Story] 기부도 효율적으로 비용 대비 효과 따져야…피터싱어 인터뷰①

피터 싱어 교수 인터뷰 ‘시각장애인 한 명을 돕는 것과 2000명의 실명(失明)을 막는 일, 무엇이 나은 선택인가.’ ‘우리나라도 힘든 사람이 많은데, 빈곤국의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게 우선일까.’ 두세 번은 곱씹게 되는 날카로운 질문들, 정답이 있을까. 여기 “답이 있다”고 단언하는 이가 있다. 프린스턴대 생명윤리학 교수이자 ‘동물 해방론자’, 미국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꼽히는 피터 싱어(Peter Singer·70·사진) 교수다. ‘동물 해방’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실천윤리학’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등 그의 저서들은 묵직한 논쟁을 세상을 던졌다. 지난 10여 년간 그의 주장에 영감을 받아 실천에 옮긴 이들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500억원에 달하는 사업 소득 전체를 기부하는 이가 나오는가 하면, 비영리단체 활동을 평가하는 기브웰(GiveWell) 같은 단체도 생겨났다. ‘더 많이 기부하기 위해, 더 많이 버는 직업을 택한다’는 이들도 나왔다. 점과 점이 이어져 한 흐름이 됐다.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이어지고 있는 ‘효율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 운동이다. 지난 3월, 한국에서도 번역·출간된 피터 싱어의 최신작 ‘효율적 이타주의자'(원제 The Most Good You Can Do)에 그 흐름이 담겼다. ‘효율적 이타주의’란 무엇일까. 지난 12일, 그와 스카이프로 인터뷰했다. ◇남을 위해 가진 것을 나눠라, 단 효율적으로! 지난 40여 년간 그의 논지는 한결같다. 하나, 도울 능력이 되면서도 타인을 돕지 않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연못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아이를 못 본 척 지나치는 셈이다. 둘,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도움을 받는 이와의 거리는 중요하지 않다. 말라리아로 죽어가는 아이를

[Cover Story] 병원 모금 문화 바꾸는 의사 5인방

“직업은 의사, 기부 전도사로도 유명하죠” “기부는 의술 중 하나… 환자의 상황도 함께 고쳐야 완치” 지난 5월 기준, 전 세계 대부호들이 기부를 약속하는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 운동에서 빌게이츠, 마크 저커버그를 포함한 143명의 부자 중 72명이 의료 분야에 나눔을 선언했다. 국내 병원들도 수익 대부분을 진료비에 의존하는 데서 탈피, 의료 공공성을 되찾기 위해 ‘기부자 찾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누구보다 환자와 현장을 잘 아는 의사들이 직접 ‘펀드레이저(Fundraiser·모금가)’로 나서고 있다. 연세의료원, 서울성모병원,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이화의료원 등 대표 주역 5인방을 만나봤다. 편집자 ◇김원호 세브란스병원 교수, “병원 모금 문화 정착 위해 1만번 거절도 이겨내” “사람들이 의사 이야기는 잘 경청해요. 귀를 열어주니 ‘기부가 좋다’는 이야기도 좀 더 들려줄 수 있죠(웃음).” 전(前) 청와대 의무실 실장이기도 한 김원호<사진>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대장 내시경 분야에서 국내 최고로 꼽히는 명의이자, ‘기부 전도사’로 유명하다. 모교 대학에 지금까지 1억원가량의 장학금을 기부해온 김 교수는 병원 발전도 ‘기부’에 달렸다는 생각에 2006년 연세의료원 초대 발전기금사무국장을 맡았다. 부푼 꿈으로 선진국의 모금 기술을 배우기 위해 미국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등은 물론 비영리학회들을 직접 찾아다녔다는 김 교수는 “모금 관련해 100여 개 질문을 만들어 가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MD앤더슨·존스홉킨스·메이요 클리닉 등 미국 유수의 병원들은 매년 수십억원의 기부금 덕분에 불법체류자들도 치료해줄 수 있었고, 끊임없는 연구로 세계 의학계를 선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내 기부문화도 걸음마 단계였던 10여 년 전, 대학병원에 기부가 필요하다는 걸

[보니따의 지속가능한 세상 만들기] 식사 하셨나요? 플라스틱을 드셨군요

플라스틱이 일상이 된 우리의 하루는 플라스틱으로 시작해, 플라스틱으로 끝납니다. 아침에 일어나 플라스틱 통에 담긴 샴푸와 세안제로 씻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칫솔로 양치질을 합니다. 플라스틱 냉장고 안에는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반찬통, 일회용 비닐랩에 싸여 있는 음식이 들어 있습니다. 출근길에 마시는 아이스 커피가 담긴 용기도, 자동차도, 우리가 하루 종일 사용하는 컴퓨터와 스마트 폰, 그리고 신용카드까지 플라스틱이 없다면 우리의 일상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많은 플라스틱,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7번째 신대륙 19년 전, 북태평양을 항해하던 미국인 찰스 무어씨는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던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발견합니다. 그 규모가 워낙 커서 사람들은 이곳을 ‘7번째 신대륙’의 발견이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쓰레기 섬의 90%는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처음 발견됐을 당시, 한반도의 7배에 달했던 플라스틱 섬은 2009년 14배로 커졌습니다. 우리가 버리는 플라스틱은 이곳 저곳을 떠돌다 결국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2050년에는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질 거라는 세계경제포럼의 발표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결과 바다에 사는 생물들은 지금, 가장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바다 거북의 죽음이 그 한 예라고 호주바닷새구조의 총 책임자 로셸 페리스는 말합니다. “죽은 바다거북의 장 밑바닥에서 317개의 플라스틱 조각이 나왔습니다. 바다거북을 죽음으로 이끈 것이 플라스틱이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퀸즐랜드 대학교의 까마르 스카일러 박사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전 세계 52% 바다거북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뱃속에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호주의 해양산업연구소도 바닷새 90%의 소화

[Cover story] 나눔을 몰랐던 배우, 비영리단체 대표가 되다

2009년 ‘라파엘의 집’ 봉사하며 나눔에 눈떠…  2년 전부터 국내 길 소개하는 ‘길이야기 캠페인’ 진행… 작가·화가·IT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 재능기부 회원 100여 명연예인의 영향력으로 이웃 생각하는 문화 만들고파 “‘길스토리’를 단체로 만들겠다고 했을 때, ‘사고 안 칠 자신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사람들 눈에 보이는 건 대표를 맡은 ‘배우 김남길’이니까, 제가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모든 게 다 무너질 수도 있다면서요. 그때는 당연히 자신 있다고 했는데 저도 사람인지라 힘은 조금 듭니다. 요즘도 자다 벌떡벌떡 일어나서 ‘내가 미쳤었지!’라고 한다니까요(웃음).”지난달 28일,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 앉은 김남길(35) ‘길스토리’ 대표는 과묵하고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와 다르게 진솔한 이야기들을 늘어놨다. 길스토리는 그가 2013년 설립한 문화예술 NGO다. 현재 길스토리에는 작가·화가·작곡가·사진작가·IT전문가·변호사·회계사·번역가 등 100명이 넘는 다양한 전문가가 프로보노(Probono·재능기부) 회원으로 소속돼 활동 중이다. ◇자원봉사로 공익활동 첫발… 단체까지 설립 인기 배우가 100명이 넘는 회원을 직접 모아 비영리단체를 차릴 정도면, 처음부터 나눔에 뜻이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러나 김 대표는 “먹고 사느라 정신이 없어서 봉사나 기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2003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이후,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까지 1만~2만원도 벌기 어려울 만큼 힘든 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그가 나눔에 눈을 뜨고, 공익활동을 결심한 건 ‘라파엘의 집’과 ‘인도네시아’ 덕분이다. 김 대표가 중증 장애어린이를 돌보는 ‘라파엘의 집’을 후원하게 된 건 2009년 무렵. 소속사 지인의 소개로 나갔던 봉사활동에서 그는 난생처음 나눔의 기쁨을 경험했다. 바쁜 스케줄

[Cover Story] 천재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의 이유 있는 기부

“다음엔 또 뭘 할까 고민… 나눔에도 계속 발전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지난 10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삼성동 테헤란로. 국제구호기구 옥스팜과 이탈리안 셰프 샘킴이 함께하는 ‘푸드트럭’ 현장에 앞치마를 둘러맨 ‘천재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Richard Yongjae ONeill·38)이 깜짝 등장했다. 오닐은 샘킴이 직접 만든 파스타를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세계의 가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1990년대와 비교해 세계의 빈곤 인구는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10억 명 가까이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어요(UN새천년개발목표보고서, 2015). 한국은 전 세계가 놀랄 만큼 멋진 일을 해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앞으로 더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말을 마친 오닐이 비올라를 켜자, 북적이던 테헤란로가 일순간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 중 한 명인 바흐의 곡과, 한국의 동요 ‘섬집아기’가 빌딩숲 사이로 울려 퍼졌다. 음악가 최고의 영예로 불리는 ‘에버리 피셔(Avery Fis her)’ 수상, 미국 UCLA 최연소 음악교수(2007~2016)이자 줄리어드 음악대학원 최초로 아티스트 디플로마(Artist Diploma·전문연주자 과정) 전액 장학금을 받은 비올리스트. ‘세상 모든 사람은 선하다’는 믿음으로 오늘도 자신을 낮추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남자. 리처드 용재 오닐의 삶과 음악,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 푸드트럭 현장을 방문한 시민 중 50여분이 정기후원 약정서에 사인했대요. 정말 놀랍고 멋진 일이죠? 이렇게 좋은 날,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다니. 전 정말 행운아인 것 같아요.” 오닐을 다시 만난 것은 저녁 8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푸드트럭을 마치자마자 일정 하나를

기부 선진국 英 비결… 정부와 NPO 협력에 있었다

 [Cover Story] 英 민관 협력 현장을 가다 (上)  자선단체·사회적기업 등에 영국 국민 절반이 활동 중 비영리단체 등 통합 지원하는 ‘제3섹터청’ 2006년 설립 기부 활성화 제도 만들고 관련 법안 개선 주도 역할 한국에서 비영리단체, 사회적기업 등 ‘제3섹터’는 정부로부터 홀대받는 영역이다. 행자부·외교부·복지부 등 부처별로 허가를 받아야만 비영리단체를 설립할 수 있고, 제3섹터를 전담하는 부처가 없어 세부 업무별로 권한과 책임이 쪼개져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련 예산과 정책도 들쭉날쭉이다. 기부 선진국으로 꼽히는 영국은 어떨까. 영국의 자선단체는 총 17만개. 19만5000개의 사회적기업까지 합하면 제3섹터에 고용된 직원 수는 2382만명으로, 영국 국민의 절반(3100만명)이 관련 분야에서 활동한다. 제3섹터 전체 자산 규모는 약 318조원으로, 올해 한국 정부 예산(387조원과) 맞먹을 정도다. 이에 영국은 2006년 내각부 안에 자선단체·사회적기업·기업의 사회공헌·공익재단·자원봉사단체 등을 통합 지원하는 ‘제3섹터청(이하 OCS·The Office of Civil Society)’을 설립해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 제3섹터와 금융을 연결하는 기관을 설립하거나, 각 자치구가 협력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지난 5월 말 서울시NPO지원센터와 동행한 ‘민관협력 및 시민사회 지원시스템’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영국 정부와 제3섹터간 최신 동향을 전한다.   편집자     “영국은 관대한 나라입니다. 국민의 75%가 한 달에 한 번씩 기부나 자선활동에 참여하고, 매년 ‘기부의 날’엔 1분에 60만 파운드(10억1035만원)씩 모금됩니다. 제3섹터를 지탱하는 힘이죠.” 영국 ‘제3섹터청(OCS)’은 런던시 재정경제부(HM Treasary) 빌딩에 있었다. 샘 지나두(Sam Jinadu) 제3섹터청 정부와이해관계자소통팀(Ministerial and Stakeholder Engagement Team) 담당자는 OCS를 “기부 문화 활성화를 위한 제도와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곳”으로 소개하면서 “지역 스포츠 프로그램에 기부하면 25% 세금 감면 혜택을

[Cover Story] ‘능률교육’의 그 남자, 공교육 혁신에 뛰어들다

[Cover Story] 이찬승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대표 “주위에서 좀 쉬라고 해요. 누구는 너무 소처럼 일한다고 하더라고. 근데 내가 소띠예요. 어쩔 수가 없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한 계속 하고 싶어요(웃음).” 이찬승(67)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이하 교바사)’ 대표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이찬승’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다면? 예상이 맞다. 능률 VOCA, 리딩튜터 시리즈 등 ‘영어’하면 떠오르는 대표 교재를 줄줄이 출간한 능률교육의 그 이찬승이다. 연 매출 400억원대의 ‘잘나가던’ 기업을 운영해오던 이 기업가는 2009년 30년간 운영해오던 회사를 매각하고 돌연 교육 시민단체의 수장이 됐다. 국내 공교육의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뜻에서였다. 교육 시민단체의 대표가 된 지 7년째. 그는 “이제야 진정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을 찾았다”며 “앞으로 할 일이 더 많다”고 메모가 빼곡한 노트를 보여줬다. 지난 12일 서울 서교동 교바사 사무실에서 “한국 교육의 미래를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며 제2의 인생을 다짐하는 머리 희끗희끗한 ‘청년(靑年)’을 마주했다. ◇바깥세상이 궁금했던 시골 소년, 영어에 빠지다 영어와 인연을 맺게 된 처음을 묻자 이 대표는 “이제 영어 이야기를 하면 생소하다”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1949년 경상북도 풍기에서 여섯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책 앞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이 노는 일”이었을 만큼 유난히 학구적이었다. 책밖에 모르던 시골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은 게 또 하나 있다면 바로 바깥세상이었다. “참 힘들었던 시절이에요. 농사일을 거들고 학교 갔다 오면 소 먹이러 들로 나갔어요. 그러다 하늘에 비행기가 한 대

[Cover Story] ‘투자’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한국의 임팩트 투자자 8인 인터뷰 임팩트 투자, 재무적인 수익에 사회·환경 가치까지 고려한 투자 작년 전 세계 임팩트 투자 70조원 2020년엔 400조원까지 늘어날듯 “상위 1%가 아닌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기업 성공법칙 바뀌는 중” 투자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저성장 시대의 돌파구로 ‘임팩트 투자’가 뜨고 있다. 임팩트 투자란 재무적 수익뿐 아니라 사회·환경적 가치를 고려한 투자를 말한다. JP모건과 ‘글로벌임팩트투자네트워크(GIIN)’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임팩트 투자 규모는 70조원. 1년 전(53조원)과 비교하면 30% 넘게 급증했고, 2013년(9조5000원)에 비해 3년 만에 8배 성장했다. 2020년이면 임팩트 투자 규모가 400조원까지 불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더나은미래는 창간 6주년을 맞아, 한국의 민간 임팩트 투자를 이끌고 있는 8명의 대표주자를 만나 특별 인터뷰했다. D3쥬빌리 이덕준(51) 대표, 미스크(MYSC) 김정태(39) 대표, 소풍(Sopoong) 한상엽(32) 대표, SK행복나눔재단 김용갑 사회적기업 본부장, HGI 정경선(30) 대표,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지주 이병태(52) 대표, 쿨리지코너 인베스트먼트 권혁태(42) 대표, 크레비스파트너스 김재현(34) 대표다(기관명 가나다순). 8명 모두 “사회·환경 문제가 복잡해지면서 사회적 가치와 결합된 비즈니스가 미래 산업의 중심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편집자 ◇투자·금융 전문가 출신 임팩트 투자자, D3쥬빌리 이덕준 대표 “지금까지의 투자는 자본 논리만 있고, 시민적인 가치는 배제돼왔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회의 구성원이자, 세계 시민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기업이 돈을 벌어야 전체적인 시스템이 좋아진다.” D3쥬빌리의 이덕준 대표는 영국계 자산운용사 슈로드, 시티은행, 크레딧스위스(CSFB) 등 외국계 투자은행에서 경험을 쌓고, 2000년대 G마켓을 나스닥에 상장시킨 재무이사(CFO)로 활약했던 인물이다. 그는 2011년

[Cover Story] “고교 자퇴에 구치소 생활까지 나도 한때는 문제 많은 청소년”

위기 청소년 돕는 비영리단체 ‘별을만드는사람들’ 심규보 대표 인생의 가장 어두웠던 순간이 돌이켜보면 축복이 될 때가 있다. 심규보(34·사진)씨도 그랬다. 그는 ‘구치소’ 안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2006년 폭행 사건으로 구치소에 송치된 심씨. 10개월간 재판을 받으면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났다. 마약 혐의로 들어온 조폭 두목부터 10원짜리 내기 장기를 두다가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인 노인까지. 사연 없는 사람은 없었다. “수감자 중에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 많았어요. 상대적으로 저는 교육 수준이 높은 편이었습니다. 탄원서를 써 달라고 하나둘씩 찾아왔어요. 제가 써준 탄원서로 형량이 많이 깎였다는 소문이 나니 어깨가 떡 벌어진 사람들이 굽실거리며 저를 찾았죠. 탄원서를 쓰다 보니 이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왜 범죄를 저질렀는지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범죄자들의 유년기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가정이 어렵거나 혹은 깨졌거나, 그 사람을 둘러싼 ‘지지 환경’이 부족했다. 심씨의 오른쪽 세 번째 손가락엔 매일 탄원서를 쓰느라 혹만 한 굳은살이 생겼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 240시간으로 풀려난 심씨. 그는 구치소에서 만난 사람들의 ‘유년기’를 만져주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다. 이 생각은 봉사를 하면서 더 굳어졌다. 처음 찾아간 곳은 다운증후군 재활센터. 옷핀을 만드는 작업장에서 만난 장애인들의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저보다 한 살 많은 형이 있었는데, 갈 때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는 말을 반복하는 거예요. 이분들 수명이 서른 살을 넘기가 어렵거든요.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지정된 봉사 단체 외에 다른 기관도 여러 곳 찾아다녔다.

[Cover Story] “아동학대, 정부가 나서라”

아동학대 현장 20년, 굿네이버스 김정미 아동권리사업본부장 “아동 학대 최근 이슈됐지만 언론에 보도 안된 사건도 많아… 아동 학대의 가장 큰 이유는 부모의 자녀 양육기술 부족, 최소 産前 부모교육 의무화해야… 우리나라 아동보호전문기관 민간 NPO 위탁 운영 시스템, 상담사 트라우마 치료까지 민간이 부담… 과연 맞는 일일까”“행방불명 19명 외에도… 호적 없이 고시원 전전하는 아이들 많아” 엄마들에겐 조금씩 죄책감이 있다. 울거나 떼쓰는 아이에게 가끔 화도 내고, 신경질도 부린다. 아이를 너무 사랑함에도 그렇다. 아동 학대 사건이 터지면, 엄마들은 분노로 치를 떨지만 또 그만큼 안타까워한다. ‘그 부모와 아이들은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 하고. 아동 학대가 핫 이슈로 떠오르다가 식은 게 벌써 몇 차례다. 극악무도한 사건 중심의 뉴스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동 학대 이슈는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간다. 이런 밀물과 썰물을 무려 20년째 경험한 사람이 있다. ‘아동 학대’라는 말이 법에 명시되기도 전인 1996년부터 매 맞고 죽어나가는 아이들 곁을 지켜온 ‘엄마’, 김정미(46)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이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범정부 아동 학대 예방·근절 대책을 조속히 수립하라”고 말한 22일, “아동 학대라면 며칠 밤이 새도록 얘기할 수 있다”는 그녀와 마주앉았다. -예전에 아동 학대 취재를 위해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을 만나고 온 취재기자가 “현장에 너무 충격적인 사례가 많아, 그걸 보고 나니 도저히 아기를 못 낳을 것 같다”고 트라우마를 호소하더라. 어떻게 20년씩이나 있었나. “뭘 몰랐으니까. 1996년 굿네이버스 아동 학대 상담센터가 문을 열었는데, 발령받고 나서야 실감이 나더라. 한번은 다섯 살짜리

[Cover Story] “남 돕기 위해 創業 내가 손해 보니 회사는 더 잘되더라”

美 종합건축회사 ‘팀하스’ 하형록 회장“직원들에게 비영리단체 ‘이사’ 되라고 권해… 봉사활동 원하면 유급 휴가도 줘” 서른 살의 한 남자는 뉴욕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에서 의식을 잃었다. 병명은 심실빈맥. 심장이 불시에 빨리 뛰어 죽을 수 있는 병이다. 의사는 살아날 확률이 25%라고 말했다. 심장병 환자의 절반은 병원에서 심장이식을 기다리다 죽고, 남은 절반은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후 1년 내 감염 후유증으로 죽는다. 성공적으로 이식 수술을 받은 사람도 평균 수명이 10년 남짓. 그는 5개월을 기다린 후 얻은 심장이식수술 기회를 옆 병실 환자에게 양보했다. 한 달 뒤, 알코올중독 병력이 있는 40대의 심장을 이식받았다. 그리고 6년 뒤 또 한 번의 심장이식 수술을 받아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기적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은 미국의 종합건축회사 ‘팀하스(Timhaahs)’의 하형록(58·사진) 회장. 건축가 최고의 명예직이자, 미국의 건축정책을 사실상 결정하는 국립건축과학원(National Institute Of Building Science, NIBS)의 이사로 활동하는 인물이다. 심장이식 수술 후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We exist to help those in need)’는 기업 철학을 가진 회사를 창업, 20년간 키워낸 삶을 담은 책 ‘P31(두란노)’을 지난해 펴내 종교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4일, ‘정직’과 ‘희생’을 기업의 핵심 가치라고 말하는 하 회장을 만났다.   ◇”내 것을 희생할 때, 비즈니스도 잘됩니다” ―대개 죽음 문턱에 갔다온 사람들은 ‘내려놓음’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회장님은 심장이식 수술 후 아예 회사를 새롭게 창업하셨는데,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목회자인 부모님을 따라 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