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 커피, 여성 농부의 손으로 다시 태어나다

[인터뷰] 안젤리끄 튜이센지 르완다 커피여성그룹 쿵가하라 의장 올해 초 아름다운커피는 르완다 여성 농부의 역량을 키우고 소득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뷔샤자 커피협동조합 내에 여성그룹 ‘쿵가하라(Kungahara)’를 결성했다. 쿵가하라는 ‘풍요로운 삶을 위하여’라는 뜻의 키냐르완다어다. 이들은 흔히 ‘남성의 작물’로 여겨지는 커피를 여성 농부의 손으로 직접 키우고 소비자에게 선보이기 위해 커피 생산의 전 과정을 섭렵했다. 최근 쿵가하라는 첫 결과물로 ‘여성의 커피(Coffee by women)’를 내놓고 첫 해외 수출지인 한국과 연을 맺었다. 지난 9일 서울에서 개최된 월드커피리더스포럼 연사로 나서기 위해 한국을 찾은 안젤리끄 튜이센지(28) 쿵가하라 의장은 “커피 애호가들의 가치 소비로 르완다 여성 농부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커피협동조합 내에 별도의 여성그룹을 만든 이유는 뭔가? “기존 커피 생산 구조는 남성 중심이다. 여성 농부는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받을 수 없다. 여성은 커피 재배와 수확 같은 낮은 임금의 역할만 수행하고, 가공과 테스팅 등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업무는 남성들이 독식하고 있다. 르완다에서 커피 재배 노동력의 약 70%를 여성이 맡고 있지만 높은 소득원은 모두 남성의 차지다. 여성그룹 결성은 그 구조를 깨기 위한 시도다.” ―여성농부가 차별받고 있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커피 한 잔이 소비자를 만나려면 씨 뿌리기부터 묘목 재배, 가지치기, 열매수확, 가공, 유통에 수출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는데 부가가치가 높은 업무는 남성들이 맡고 있고 또 당연한 듯 여긴다. 정부 차원의 역량강화 교육도 남성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여성들은 가공과 유통 업무에 대한 교육받을 기회조차

“성장하는 사회적경제… 한국 소셜벤처에 세계가 주목”

SEWF 유일 아시아인 이사 김재구 교수 인터뷰 2008년 영국서 시작된 ‘사회적기업 월드포럼’ 올해 행사 최초로 개도국 아프리카에서 개최 경제 분야에서도 ‘분배’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 내년 한국 사회적기업을 스피커로 내세울 것 이례적인 일이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이 ‘빈곤’을 연구한 개발경제학자 3인에게 돌아갔다. 매사추세츠공대의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를 비롯한 수상자들은 15년간 40여 개 저개발국 현장을 누비며 빈곤 문제의 해법을 연구했다. 그간 빈곤 퇴치를 위해 선진국들이 해왔던 국제개발협력 사업이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 경제학적으로 해석하고 분석해 대안을 제시했다. 지난달 23~25일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2019 사회적기업 월드포럼(Social Enterprise World Forum·이하 ‘SEWF’)’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오갔다. 72개국 1500여 명이 참석한 이 포럼의 키워드는 세 가지였다. ‘아프리카’, ‘국제개발협력’, 그리고 ‘사회적경제’. 지난 1일 만난 김재구(55) 명지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아프리카 빈민층의 삶을 개선하는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사회적경제가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8인으로 구성된 SEWF 이사회의 유일한 아시아인이다. “노벨위원회는 지금까지 주로 ‘성장’을 연구한 경제학자들에게 상을 줬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분배’를 연구한 학자들에게 준 겁니다. 성장이 아닌 분배를 위한 고민, 기울어진 운동장을 똑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이 박수 받는 시대가 됐어요. 그 중심에 ‘사회적기업가’들이 있습니다.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혁신가들이죠.” SEWF는 사회적기업 생태계를 확장하고 사회적기업가들의 활동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마련된 국제 포럼이다. 영국,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오스트레일리아 등 사회적경제가 발달한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이사회가 꾸려져

“분쟁 지역 아동 구호 지원금 턱없이 부족…장기적 지원 필요해”

“분쟁 지역의 아동 구호는 아이를 전쟁터에서 꺼내오는 일에서 끝나서는 안됩니다. 전쟁으로 고통받은 한 아이가 다시 건강하게 자라나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합니다.” 지난달 16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열린 ‘인도적 지원 정책 포럼’ 현장. 린제이 호킨 국제월드비전 UN 대표부 인도주의 정책 선임고문이 분쟁 지역 아동이 처한 상황을 생생한 목소리로 전했다. 호킨 고문은 지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약 3년간 남수단에서 월드비전의 아동 구호 활동을 총괄했다. 남수단은 지난 2011년 수단으로부터 독립한 신생국가로 2013년 정부군과 전 부통령인 리에크 마차르를 추대하는 반군 세력의 대립으로 내전이 시작됐다. 포럼 당일 만난 호킨 고문은 “남수단에서는 지금도 무력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지난해 700명가량의 아이들이 마을로 돌아오긴 했지만, 아이들을 위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아이가 전쟁의 상처 극복하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아이들에게는 병원이나 학교뿐 아니라 아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줄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마약에 취해 사람을 수없이 죽인 남자 아이들, 군인에게 성폭행당해 임신하거나 출산한 여자 아이들을 마을 사람들이 보듬어줘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들은 아이들을 ‘살인자’나 ‘미혼모’로 낙인 찍고 손가락질한다. 심지어 가족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마을 공동체를 되살려내는 것까지가 아동 구호단체의 일이다.” –남수단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 “크게 보면 ‘협상’과 ‘구호’ 두 가지 일을 했다. 협상은 정부나 무장 단체를 상대로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달라고

“부정부패로 얼룩진 인도네시아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멈춰주세요”

“찌레본 석탄화력발전소가 인도네시아 환경과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운영사인 현대건설은 군수에게 뇌물을 증여한 혐의로 수사까지 받고 있습니다. 이런 사업에 한국 정부의 공적자금이 계속 들어가고 있으니, 한국 정부는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투자를 멈춰 주십시오.” 지난 7일 열린 산업자원부 국정감사장에 두 명의 인도네시아 시민단체 활동가가 참고인으로 등장했다. 환경단체인 ‘왈히(Walhi)’ 소속 드위 사웅(38) 에너지팀장과 메이키 웸리(46) 서부 자바 지부장이다. 이들은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증언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현대건설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주 찌레본 지역에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현지 공무원에게 5억3000억원 가량의 뇌물을 공여했다는 내용이다. 두 활동가는 “석탄화력발전소는 2012년부터 두산중공업(1호기), 현대건설(2호기) 등 한국 기업이 운영하고 있다”며 “환경 오염이 심각해 주민 반대가 거센데 이를 무마하기 위해 현지 공무원에게 수억원대 뇌물을 공여했다는 사실이 인도네시아 부패방지위원회 수사 결과 드러났다”고 증언했다. 국정감사 출석 이튿날인 8일, 서울시 종로구 한 카페에서 두 사람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질문에는 주로 사웅 팀장이 답했다.    ◇석탄화력발전소 건설로 지역 환경과 공동체 망가져 –국감에서는 어떤 증언을 했나. “지난 2017년부터 추진되고 있는 찌레본 석탄화력발전소 2호기 건립을 위해 현대건설이 지역 군수였던 순자야 뿌르와디 사스트라에게 지역 주민들의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반대 운동을 잠재워달라며 65억루피아(약 5억3000만원) 상당의 뇌물을 공여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환경 단체들의 주장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부패방지위원회(KPK)가 혐의를 포착한 사안이다. 환경이나 공동체 파괴도 매우 심각한데 시간이 없어 구체적인 진술을 못했다.” -KPK는 어떻게 뇌물 공여 사실을 알아냈나. “KPK는 인도네시아의 각 정부

“소셜벤처에 실질적 도움 되는 정책 마련하겠다”

[인터뷰] 서성만 서울시 노동민생정책관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문을 연 ‘소셜벤처허브’는 서울시가 소셜벤처 창업·육성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며 마련한 공간이다. 1400㎡(약 424평) 규모에 사무실, 세미나실, 회의실뿐 아니라 소셜벤처의 서비스와 제품을 시험할 수 있는 ‘테스트랩’까지 갖췄다. 서울시의 사회적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서성만 노동민생정책관<사진>은 “지난해 11월부터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장학재단, 공공상생연대기금과 협력해 소셜벤처허브 개관을 준비했다”며 “소셜벤처들에 안정된 업무 공간을 제공하고 ▲비즈니스 인큐베이팅·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세무·법률 컨설팅 ▲시제품 제작 ▲해외시장 진출 지원 등 성장 단계별 맞춤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라고 했다. 지난 16일 만난 서 정책관은 “서울시의 사회적경제 규모가 꾸준히 확장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소셜벤처가 있다”고 강조했다. 2019년 7월 기준 서울시 소재 사회적경제 조직은 4869개로, 시가 ‘사회적경제 종합지원계획’을 처음 수립한 지난 2012년보다 6배가량 늘었다. 서 정책관은 “다양한 사회적경제 주체들 중에서도 세운상가, 서울혁신파크, 성수동 일대에 터를 잡은 소셜벤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면서 “소셜벤처들은 창의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청년 일자리 창출에도 이바지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는 소셜벤처허브 개관을 시작으로 소셜벤처 지원 정책을 본격적으로 펼칠 계획이다. 사회적기업·마을기업·자활기업·협동조합 등 정부의 인증제도 안에서 이뤄지는 사회적경제 조직 지원 사업들과 구별되는 새로운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게 목표다. 서 정책관은 “소셜벤처는 정부의 인증제도에 구애받지 않길 원하고 ‘보조금 지원’보다 ‘투자 유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소셜벤처의 특성과 요구를 반영한 별도의 지원 정책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소셜벤처에 인건비·사업비 등 직접적인 재정 지원을 하는 대신 사회적 금융이나 벤처캐피털로부터

“나쁜 사장보다 나쁜 제도가 문제… 이주노동자도 똑같은 권리 누려야”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 인터뷰 1998년 네팔서 건너와 첫 직장서 구타당해 이후 이주노조 활동, 이주노동자 권익 대변 고용허가제, 노동자 옥죄는 독소조항 많아 폭행 당해도 사업주 허가 없으면 이직 못해 노동자가 일터 선택할 수 있는 법 도입해야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우리의 인권까지 싼값에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지난 15일 서울 은평구에 있는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우다야 라이(51) 위원장이 말했다. 네팔 출신으로 1998년 한국 땅을 처음 밟은 그는 첫 직장인 봉제 공장에서 동료 직원에게 구타당했다. 금속 공장, 가구 공장으로 옮겨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폭행과 폭언, 장시간 노동과 임금 체불이 일상이었다. 한국인과 비슷한 외모 때문에 친근하게 말 붙이던 사람들도 “네팔에서 왔다”고 하면 욕을 뱉었다. 그는 2009년부터 이주노조에서 활동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있다. 2014년에는 5대 위원장이 됐다. 2005년 설립된 이주노조는 10년간 법외노조로 머물다 2015년에야 합법 노조가 됐다. 고용노동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포함됐다’는 이유로 설립 신고 필증을 내주지 않았으나, 대법원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노조법이 규정하는 근로자 범위에 포함되고 자유롭게 노조를 만들거나 가입할 수 있다”며 이주노조 손을 들어줬다. “이주노동자들과 상담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내가 운이 좋지 않아서 나쁜 사장을 만나 고생한다’입니다. 처음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나쁜 사람이 너무 많은 게 문제라고요. 그게 본질이 아니었어요. 고용 허가제라는 이름의 나쁜 제도가 문제였죠. 우리는 ‘나쁜 사장’이 아니라 ‘나쁜 제도’를 없애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고용 허가제는 고용노동부가 이주노동자의 체계적

“단체 떠나도 지역은 남아… 국제개발협력 핵심은 ‘지역민 역량 강화'”

국제개발 비영리단체 ‘캠프’ 대표 이철용 목사 인터뷰 필리핀 불라칸주 산호세델몬테에서는 매년 가을 ‘땅라완(Tanglawan) 축제’가 열린다. 땅라완은 이 나라 말로 ‘빛’이라는 뜻이다. 색색의 손전등을 든 수천 군중의 행진이 축제의 백미. 어둠이 내린 바다를 밝히는 등대가 도시의 상징이라고 하니, 태생이 빛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산호세델몬테에는 태풍 같은 자연재해나 철도 건설 등 국가 개발 사업으로 터전을 잃은 도시 빈민 7만여 명이 모여 사는 ‘타워빌’이 있다. 이곳에 ‘땅라우(Tanglaw)’로 불리는 한국인이 산다. 땅라우도 빛을 의미한다. 주인공은 이철용(56) 목사. 올해로 10년째 타워빌에서 구호 활동을 하고 있다. 주민들이 일하고, 배우고, 치료받고, 서로 연대하는 토대를 쌓는 것이 그가 대표로 있는 국제개발 비영리단체 ‘캠프’의 역할이다. 캠프는 타워빌이 본진이다. 다른 단체들이 한국에 본부를 두고, 활동가를 파견해 사업하는 것과 반대다. 슬로건도 ‘지역에서, 지역을 위해, 지역과 함께’다. “로컬의 문제는 로컬에서 푼다”는 이 대표의 철학이 담겼다. 그는 국제개발협력의 핵심 키워드로 ‘주민 역량 강화’와 ‘선택과 집중’의 두 가지를 꼽는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대문구 캠프 한국사무소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올해가 타워빌에서 사업한 지 꼭 10년째다. “변화를 주민들 얼굴에서 본다. 필리핀 사람들은 낙천적이다. 악취가 진동하는 마닐라 빈민촌에도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타워빌은 달랐다. 다들 무표정했다. 일자리가 없어서다. ‘하루에 50페소(약 1200원)를 못 번다’더라. 캠프는 일터를 만드는 데 집중했고, 주민들은 미소를 되찾았다.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돈 번다는 것에 다들 자부심을 느낀다. ―캠프의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보면

“짓밟힌 권리에 대한 분노… 법으로 풀어드립니다”

소셜벤처 ‘화난사람들’ 이끄는 최초롱·하정림 변호사 법 몰라 불이익당하는 사람들 위해… ‘공동소송 플랫폼’ 지난해 8월 문 열어 IT 활용한 데이터 관리 시스템 개발 번거로운 공동소송 과정 단번에 해결 원스톱 법조 서비스 구축, 대중화 목표   지난 7월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노쇼’ 사건은 국내 축구 팬들을 화나게 했다. 호날두 내한 경기를 주최한 업체는 애초 ‘호날두 45분 이상 출전’을 약속했다. 이 말을 믿고 초등학생도 쌈짓돈을 털었지만, 호날두는 90분간 벤치만 달궜다. 눈 뜨고 코 베인 관중은 소리쳤다. “이건 사기지!” 소셜벤처 ‘화난사람들’은 이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법알못'(법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속끓이는 사람들을 위해 지난해 8월 문을 연 ‘공동소송 플랫폼’이다. 라돈 침대 사태로 피해를 본 소비자, 기업의 실수로 개인정보가 유출된 고객 등 다양한 억울함을 가진 이들의 집단적 분노를 법으로 해결하고 있다. 현재까지 22건의 공동소송을 진행해 1만여 명이 참여했다. ‘호날두 노쇼 손해배상청구’도 그중 하나다. 노쇼 사건 피해자 161명이 적게는 2000원에서 많게는 1만원까지 소송비를 십시일반 걷어 소송을 진행 중이다. 화난사람들은 두 명의 ‘별종’ 변호사가 이끌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연구원으로 일한 최초롱(32·연수원 45기) 대표가 만들었다. 김앤장법률사무소 출신 하정림(31·연수원 44기) 변호사는 지난 5월 합류했다. 하 변호사는 “법조 서비스의 대중화에 관심이 있던 차에 ‘보수적인 법조계를 함께 바꿔보자’는 최 대표의 제안을 받고 화난사람들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짓밟혔던 작은 권리들, 법으로 지킨다 ‘뭉치면 권력이다. 우리가 권력이다.’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원효전자상가 사무실. 최

폐차 가죽 시트 가방으로 연 매출 30억원 눈앞… “착한 스토리보다 품질에 주력합니다”

[인터뷰] 최이현 모어댄 대표 창업 후 2년은 온전히 연구에 투자 각종 대회 참가해 품질 입증 업사이클 사업, 대량 생산 여부 중요 충분한 양의 소재 비축해둬야 전 세계에 업사이클 원단 공급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는 게 목표 자동차 시트 가죽으로 가방을 만드는 업사이클(upcycle) 기업 ‘모어댄’의 월평균 매출은 2억원이다. 지난해엔 창업 3년 만에 연 매출 10억원을 돌파했고, 올해는 30억원을 무난하게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연 매출이 5000만원도 안 되는 기업이 허다한 업사이클 업계에서는 파격적인 행보다.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의 모어댄 사무실에서 만난 최이현(38) 대표는 “업사이클은 쓸모없는 것을 쓸모 있게 만드는 일”이라며 “사용자에게 유용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폐기된 자동차 시트 가죽을 가방으로 재탄생시키는 게 전부가 아니라 ‘사용자가 구매해서 사용하고 싶은 가방’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얘기다. 최 대표가 모어댄을 설립한 것은 2015년이지만, 본격적으로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한 건 2017년부터다. 그는 “2년을 소재 연구, 제품 개발, 생산라인 확보 등에 투자했다”면서 “하나라도 빨리 만들어 팔아야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충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업사이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대량 생산 능력’이라고 했다. “2016년 시험 삼아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 적이 있어요. 100개 만들어 팔고, 다 팔리면 또 100개 만들어 파는 식이었죠. 당시 역량으로는 한 번에 100개밖에 못 만들었으니까요. 그때 ‘이런 식으로는 사업이 안 되겠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임대 수익 아닌 ‘건물 보존’ 위한 부동산 투자 실험 중입니다”

부동산 임팩트 투자사 ‘공공그라운드’ 배수현 대표 인터뷰   설립 두돌을 갓 넘긴 공공그라운드는 ‘부동산 임팩트 투자’를 표방하는 소셜벤처다. 역사·문화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을 사들여 이를 사회 혁신의 실험 공간으로 활용하는 게 이들의 미션이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공공일호’에서 만난 배수현(35) 공공그라운드 대표는 “부동산 임팩트 투자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낯선 모델”이라고 했다.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투자는 ‘투기’에 가깝게 이뤄지고 있어요. 건물을 사서 땅값이 뛰길 기다렸다가 비싸게 팔거나, 임대료를 높여서 최대한 수익을 내는 식이죠. 공공그라운드는 부동산 투자의 새로운 방식을 실험 중입니다.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대학로 명물 ‘샘터’ 사옥 사들여 소셜벤처 실험장 조성 공공그라운드 이야기는 공공일호에서 시작된다. 공공일호는 대학로의 ‘샘터’ 사옥을 사들여 조성한 공간이다. “2017년 부동산 시장에 샘터 사옥이 매물로 나왔어요. 샘터 사옥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고(故) 김수근의 작품인데다, 40년 세월을 거치며 대학로의 상징이 된 유서깊은 건물이어서 당시 시장에서도 화제가 됐어요.” 몇몇 투자자가 관심을 보였지만 건물이 워낙 고가(高價)라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샘터 사옥으로 임대 수익을 내려면 증축하거나 아예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자칫하면 건물이 원형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그때 제현주 전(前) 대표가 공공그라운드 법인을 세우고 투자자를 모아 300억원을 마련해 샘터 사옥을 사들였어요.  당시 저는 글로벌 경영컨설팅업체의 유통·소비재 기업 컨설팅 팀장으로 있었는데, 제현주 대표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고 공공그라운드에 합류했어요. “ 배 대표는 2018년 1월 공공그라운드 대표직을 이어받았다. 샘터

[공변이 사는 法] 광주에 터 잡은 최초의 공익변호사…”지역 주민 사회권 보장 위해 고군분투”

[공변이 사는 法] 이소아 변호사 “지방에는 공변(공익변호사)이 거의 없어요. 사건은 많고 변호사는 턱없이 부족하니 광주·전남 지역에서 일어나는 공익 사건은 저희가 거의 다 다루고 있습니다.” 이소아(40) 변호사가 최근 새로 단장한 사무실을 정리하며 말했다. 그는 광주에서 공익 활동을 전업으로 삼은 최초의 공익변호사다. 지난 2015년 5월 비영리단체 ‘공익변호사와함께하는동행’(이하 동행)을 설립해 지역에서 발생하는 공익 사건을 무료로 수임해왔다. 그가 맡은 사건은 다양하다. 장애인이동권, 지적장애인 노동 착취,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사건, 아동 학대, 성매매 피해 여성 보호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나 홀로 사무실을 꾸린 지 올해로 5년째. 최근 후원 회원 500명을 넘겼고, 식구도 4명으로 늘었다. 지난달 20일 만난 이소아 변호사는 “공익변호사로 산다는 건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라면 분야를 가리지 않는 제너럴리스트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전남 지역 첫 공익변호사 ‘깃발’ 이소아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수료 이후 줄곧 서울에서 활동했다.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다시함께상담센터, 민변 등 여러 비영리단체에서 상근으로 일하며 공익변호사로서 근육을 단련했다. 그러다 2013년 별안간 귀향을 택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광주로 내려가 공익변호사 활동을 하겠다는 그를 주변에서는 만류했다. “언젠가 광주로 활동 무대를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지역에서도 법률 조력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지만 공익변호사는 없으니까요. 심지어 법적인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거든요. 결심이 안 서던 차에 부모님 건강이 나빠져 고향으로 오게 됐죠.” 이 변호사는 광주로 내려와 지역 내 인권 단체에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요청하라는 메모를 남겼다. 사무실을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