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배려와 소통을 알려주는 새내기 선생님의 가르침 이런 작은 리더가 대한민국호에도 많아졌으면…

“엄마, 오늘 창체(창의적 체험 활동) 시간에 라면 파티해요~. 우리 반 친구들이 노력해 시범 수업을 잘 끝마쳐서 사랑의 온도계가 1℃ 올라갔어요~.” 초등학교 4학년인 큰딸이 아침부터 신이 났습니다. 딸의 반에는 ‘사랑의 온도탑’이 있습니다. 친구들끼리 다투지 않고 협력해서 일을 할 때마다 온도계가 1℃씩 올라간다고 합니다. 라면 파티, 영화 상영 등 단계별로 ‘선물’이 주어지는데, 최종 단계는 근처 산을 함께 등반하는 것입니다. 딸아이는 사랑의 온도탑을 통해 경쟁만이 아닌 협력과 배려를 몸소 배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흐뭇한 일을 하는 딸아이의 담임은 스물다섯 살인 2년차 젊은 교사입니다. 반 배정이 이뤄진 첫날, 선생님은 부모들에게 ‘편지’ 한 장을 보냈습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학교에 올 수 있도록 하겠다’며 ‘아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부모님도 글을 써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게다가 ‘일기 쓰기’를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직접 A4 한 장에 스스로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90가지의 주제 일기 아이템을 프린트해주었습니다. ‘나만의 숨겨진 비밀 한 가지’ ‘친구 3명에게 상장을 준다면’ ’30년 후 나의 자식에게’ ‘나는 왜 공부를 할까’ ‘나에게 100만원이 생긴다면’ 등 재미있는 주제 일기를 3개씩 쓸 때마다 스티커 한 장을 받도록 했습니다. ‘클래스팅’을 통해 아이들과 온라인으로 소통도 하는 담임선생님의 이런 신선한 시도를 보면서 고맙고 기뻤습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이뤄진 첫 선거를 통해 우리는 또다시 ‘희망을 걸어보기 위해’ 리더를 뽑았습니다. 딸아이의 담임선생님을 보면서 훌륭한 리더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공익 향한 4년의 길… 이제 그 내비게이터로

100장 가까운 원고를 읽다가 그만 울어버렸습니다. 창간 4주년을 맞아 공익 분야 전문가 100명에게 설문을 부탁했고, 마지막 질문에 ‘더나은미래에 바란다’를 슬쩍 집어넣었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정성스러운 코멘트가 고맙고, 따끔하고, 힘이 났습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겁도 납니다. “해외에서 정부, 기업, 비영리 섹터가 함께 사회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가는 우수한 사례들을 더 많이 소개해줬으면.” “공익 분야 롤모델 리더들을 발굴해 우리 사회의 영웅으로 만들어주길.” “정책과 제도가 커버할 수 없는 사각지대의 현실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기사가 많아지길.” “규모는 작지만 변화를 이끄는 작은 NGO를 많이 소개해주길.” “보수 진보를 넘어 사회 혁신가를 발굴하고 서로 연결해주는 장을 마련해주길.” “NGO가 자칫 매너리즘에 빠져 사회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때 자극받을 수 있는 NGO의 거울이 되어주길.” “우리 사회에 도움이 필요하지만 스스로의 목소리가 약한 계층에 대한 권리 옹호에도 힘써주길.” “공익 활동과 활동가를 지나치게 미화하지 말고, 언론으로서 건강한 감시와 견제 기능을 해주길.” “시민사회단체들이 정부 및 기업과 협력할 수 있는 네트워크이자 브리지 역할을 해주길.” “복지에 치우치지 말고, 사회·경제·환경 등 주제별로 균형 있게 접근해주길.” “자선적 관점의 접근보다는 권리의 관점에서 이슈를 다뤄주길.” “공익 분야의 의제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중장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공익 분야 전문기자들을 지속적으로 양성하는 등 네트워크와 인적·물적 DB를 구축하길.” 이처럼 많은 분이 “더나은미래가 공익 분야의 내비게이터가 되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지금도 진행 중인 ‘세월호 참사’를 보며, 저는 사실 ‘언론은 뭘 할 수 있을까’를 되물었습니다.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수학여행, 꼭 필요한가요”

세월호 참사가 터진 다음 날인 17일 다음 아고라에는 ‘초중고 수학여행, 수련회 없애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하루 만에 2만명이 넘게 서명했습니다. 청원 제안자는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80년대처럼 경제가 어려워 가족 여행이나 캠핑 등이 드문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수학여행과 수련회 등 단체 이동으로 인한 사고 위험 노출과 행사 이후 후유증(요즘 초딩들도 수학여행 후 왕따, 폭력 등에 시달린다고 합니다)이 있는 관행적인 행사를 수십년째 없애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우리 주위에는 이런 관행이 참 많습니다. 외국인들의 눈에는 좀 이상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한 NGO 사무국장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외국계 기업 CEO에게 이메일을 보내면 대부분 피드백을 하지만, 국내 기업 CEO는 절대 피드백을 하지 않는다. 외국계 기업 사회공헌 담당 임원은 협의할 일이 있으면 아무 거리낌 없이 우리 사무실로 찾아오지만, 국내 기업 임원은 바로 코앞에 사무실이 있어도 반드시 우리가 그 사무실을 찾아가야 한다.” 기업뿐 아니라 정부도 비슷합니다. 아동 학대 문제를 애초에 정부에서 주도권을 쥐고 담당했더라면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요. ‘다문화가족지원센터’나 ‘드림스타트센터’와 같이 200개가 넘는 센터를 지정하고, 담당 인력과 인프라 예산을 확보했을 것입니다. 민간단체가 아동 학대 사업을 해왔다는 이유로 정부는 이 사업의 우선순위를 낮게 책정해왔습니다. 이번 ‘더나은미래’ 인터뷰에서 유명 석학인 기 소르망도 말하듯 이제 정부와 시장(기업)이 모든 걸 할 수 있는 시대는 갔습니다. 이 흐름은 앞으로 더 강화될 겁니다. 우리는 과연 준비가 돼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이서현 보고서’

이번호 커버스토리를 다루면서 울산 울주에서 계모의 학대로 사망한 8세 소녀 ‘이서현 보고서’를 읽었습니다. ‘제2의 이서현 사건’을 막기 위해 사건의 전개 과정, 제도적 문제점, 개선 방향을 정리한 한국판 클림비 보고서입니다. 2000년 빅토리아 클림비라는 아이가 아동학대로 숨졌을 때 영국 정부는 2년에 걸쳐 전문가들의 체계적인 조사 활동을 토대로 한 보고서를 만들고 이를 국회에 제출해 승인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서현 보고서는 2개월 동안 민간위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보고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왜 우리는 서현이를 살려내지 못했을까’를 짚어내는, 이른바 실패 연구집입니다. 사건 개요를 읽다 눈물과 분노, 안타까움이 일었습니다. 최초 신고를 받은 포항아동보호전문기관, 서현양 가족이 급히 이주했던 인천아동보호전문기관에 대해 “왜 아동을 격리 조치하지 않았느냐” “왜 적극 개입하지 않았으냐”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학교, 유치원, 병원 등 신고 의무자에 대해 “왜 신고하지 않았느냐”고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최선을 다해 서현양을 돌봤던 상담원 A씨는 사건 이후 경찰에 불려가고 각종 진상보고서를 만드느라 시달리는 등 갖은 고초를 치렀다고 합니다. 신고 의무자들 중 신고 의무자 교육이나 아동학대 예방교육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의사는 의과대학 시절 소아과 과목에서 학대 예방교육을 들은 게 전부요, 교사는 교사 양성 과정에서 학교폭력에 초점이 맞춰진 교육을 받았을 뿐 아동학대 인지 교육은 받지 못했고, 민간 학원은 본인이 신고 의무자인 줄도 몰랐다네요. 궁금해졌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연 이 보고서를 읽었을까요. 역대 정부에서 아동정책은 늘 후순위였지만, 여성 대통령인 박 대통령은 좀 다를 걸 기대했습니다. ‘투표권이

[기고] 슈퍼 영웅될 첫걸음… 29일 저녁 8시 30분, 불을 꺼주세요

2013년 전 세계 154개국 7000개 이상의 도시에서 이뤄진 지구촌 전등 끄기(Earth Hour) 캠페인이 올해도 시행된다. 늦게까지 손님을 맞이하는 곳도 많고 새벽에도 불야성을 이루는 한국에서 이 캠페인을 시도하는 것이란 어찌 보면 도전에 가깝다. 보통 일찍 어둠에 잠기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밤에 소등을 시도하는 게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많은 도시가 밤늦게 살아 있는 것만큼이나 역동적이면서도 적극적으로 이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환경부·교육과학기술부·문화체육관광부·안전행정부·농림수산식품부·법무부·통일부·기획재정부·외교부·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기상청·대검찰청·관세청·중소기업청·문화재청·해양경찰청·식품의약안전청·수도권대기환경청·방위산업청·농촌진흥청·경찰청 등 정부기관과 전국의 초·중·고·대학교를 포함하여 16개 시·도의 7만5063개 공공기관 건물과 270여만 가구 주택, 그리고 네이버 해피빈·교보생명·삼성화재·삼성엔지니어링·스타벅스커피 코리아·한국코카콜라·필립스전자·매일유업 상하목장 등 6500여 개 국내외 기업 및 민간 건물이 1시간 동안 전등 스위치를 내리는 데 동참해 주었다. 유엔환경계획(UNEP) 한국위원회·유엔글로벌콤팩트(UNGC) 한국협회·유엔아동기금(UNICEF) 한국위원회·유엔과국제활동정보센터(ICUNIA)·그린피스(GREENPEACE) 서울사무소·그린크로스(Green Cross) 코리아·에코피스리더십센터(EPLC)·그린스타트·더나은세상 등 여러 유엔기관 및 국제단체와 비정부기구(NGO)도 좋은 뜻에 기꺼이 함께해 주었다. 더욱이 지난해에는 이 캠페인에 동참하기 위해 전국에서 2000여 명의 초·중·고 학생이 서울로 모였다. 올해 지구를 위한 1시간 어스아워(Earth Hour)는 3월 29일이다. 전 세계가 그날 저녁 8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1시간은 전등을 끄자고 약속한 날이다. 2시간, 3시간을 더 끄고 있어도 좋다. 작업, 안전 등의 이유로 부분만 소등하거나 5분 만이라도 소등에 참여하는 기관들도 있다. 자발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개인이든 기업이든 단체든 각각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참여하면 된다. 개인이 행동할 때 사회가 생각하고 그런 움직임들이 모여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세계자연기금(WWF)의 주도로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이젠 진짜 복지 개혁을 시작할 때

박근혜 정부가 ‘규제 개혁’에 한창입니다. MB 정부 초반에도 대불산단의 ‘전봇대 규제’가 대표 사례로 제시되면서 “규제를 없애자”고 나라가 들썩들썩하던 게 떠오릅니다.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 이슈가 되자, 최근 사회복지 관계자 한 분이 저희에게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이명박 정권 때 방송에 보도된 ‘공원 공중 화장실에서 기거하는 3남매’ 때에도 소외 계층 찾아내기 총력전이 벌어져 한 달여 호들갑을 떨었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방법이 현장에서 반복돼 너무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지금보다 더했습니다. 동사무소뿐만 아니라 세탁소협회, 목욕탕협회, 음식점협회, 사회복지 관련 단체들까지 모두 나서 띠를 두르고 “사각지대를 찾자”고 나섰지요. 하지만 찾는다고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100명을 찾았으면, 이 100명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 이뤄질 대책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대책이란 게 대개 이런 식입니다. 시·군·구, 지역사회에 흩어져 있는 복지 서비스망을 통합 지원하는 시스템 ‘○○센터’가 만들어집니다. 정부 부처나 지자체는 그곳에 3년 정도 사업비를 주고, 민간단체에 입찰을 통해 운영을 맡기거나 퇴직 공무원을 센터장으로 내려보냅니다. 흩어진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엮는 초특급 전문적인 일은 월 100만원짜리 단기계약직들이 맡게 되고, ‘○○ 시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기존에 해왔던 비슷한 종류의 일을 반복합니다. 만약 이 와중에 이번 송파 사건과 같은 대형사건이 나면, 언론과 정치권, 시민단체 등은 “정부는 왜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않느냐”고 질타합니다. 그러면 정부는 또다시 예전의 써먹었던 대책을 이름과 콘텐츠만 약간 바꾼 채 발표합니다. 이러다 보니 지역사회의 복지 서비스망을 들여다보면, 정부로부터 일정한 사업비를 받아 운영하는 고만고만한 중간지원조직이나 종합지원센터 등이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복지정책이 살펴야 할 개인의 삶

제가 아는 어떤 아이는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자, 할아버지·할머니의 주민등록에 이름을 올린 ‘조손가정’입니다. 시골에 사는 조부모는 팔리지도 않는 땅과 차량 등이 있기에, 아이는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이나 국가의 복지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합니다. 그나마 주변 친인척 등의 도움이 마지막 사회안전망입니다. 제 고향 시골에 사는 어떤 초등학생 아이는 술만 먹으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자랍니다. 엄마는 가출했고, 아들 삼형제는 학교에서 유명한 학교 폭력 아동입니다. 아버지가 있는 상태에서, 이 아이들을 보육원으로 보내는 문제도 쉽지 않습니다. 보육원이 과연 최선의 선택인지도 의문입니다. 저 또한 시골에서 도시로 처음 나와 홀로 가난과 외로움에 맞서 싸운 경험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제가 살던 자취방엔 소외 계층투성이였습니다. 세무대학에 가서 집안을 일으키겠다던 고학생, 밤마다 가정폭력을 일삼던 가장이 있던 가족, 곤로에 밥을 해먹어가며 좁은 방에서 자취하던 여고생 둘…. 어느 날 밤, 제 자취방에 침입하려던 도둑이 문을 따려는 소리를 듣고 저와 제 친구는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날 이후 그 방에 들어가기 너무 무서웠지만, 제 주변엔 도와줄 어른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 방법도 몰랐습니다. 일주일 남짓 친구의 하숙집 신세를 지다가 두려움에 떨면서 그 방에 다시 들어가던 그때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얼마 전,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살던 세 모녀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동반 자살한 사건 때문에 나라가 들썩들썩합니다. 과연 이들이 주민센터에 찾아갔더라도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복지부나 지자체는 ‘대책 마련’을 일회성으로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사회와 이상의 괴리감 저는 오늘도 흔들립니다

현대해상과 더나은미래,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가 함께하는 ‘청년, 세상을 만나다’ 프로젝트에 응모한 이들의 경쟁률이 9대1을 넘었습니다. 스펙으로 가득한 이력서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습니다. ‘더 이상 봉사활동도 차별화가 안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도대체 이 많은 스펙을 쌓기 위해 이들은 24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외계인도 아닐 텐데, 93년도에 대학을 다녔던 저는 ‘이게 과연 가능한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변변한 스펙이 없는 학생을 보면 ‘그동안 뭘 한 건가’ 싶었습니다. 면접관의 눈높이가 이미 상향평준화돼버린 탓이겠지요. 게다가 이력서 속에 담긴 비정규직의 아픔이 읽히자, 말문이 턱 막혔습니다. 특목고를 졸업하고 SKY 대학까지 졸업했으나, 한번 계약직에 몸을 담근 후 2년마다 계약직을 전전한 채 20대 후반이 된 학생들. 이들은 신입도 경력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가 돼버린 듯 보였습니다. ‘딸 둘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까지 생겨났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딸아이 주변에는 영어, 수학학원을 안 다니는 아이가 거의 없습니다. 어떤 반 친구는 벌써 학원 숙제 하느라 새벽 1시에 잔다고 하더군요.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제 딸은 세 자릿수 곱셈이 느려, 모둠활동에서 민폐를 많이 끼치는 존재입니다. 봄방학을 맞아 아이를 돌봐줄 곳이 마땅치 않아 시골 할머니 댁에 보냈는데, 아이는 “너무 재밌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아이도 어른과 비슷한 모양입니다. 여유 있게 하늘도 보고, 바람 맞으며 산책도 하고, 하릴없이 뒹구는 그 시간이 좋은 게 말입니다. ‘어차피'(피 터지게 공부하느라 고생해봤자 SKY 나와도 좋은 직장 구하기 힘든 세상인데)와 ‘그래도'(좋은 대학이라도 가지 않으면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비영리 시장, 탄탄한 길이 필요하다

설 명절 전후로 흉흉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한 비영리단체에서는 차기 회장 선임을 둘러싸고 이사장과 전임 회장을 따르던 이들이 갈등을 빚고, 이사장이 아예 일부 반대파 직원을 지방으로 발령 냈다고 합니다. 또 다른 단체에서는 후원액이 줄어들어 사업을 계속하기 어렵다며, 오래 몸담아온 직원을 구조 조정했다고 합니다. 반면 옥스팜 같은 해외의 유명 국제구호 NGO들은 한국을 두고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이라며 속속 국내 상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린피스는 거리 모금 활동가를 무려 10명씩 뽑기 위해 채용공고를 지난달 냈고 취업설명회까지 열 예정입니다. 펀드레이저(fundraiser·모금가)라는 직업군이 모여 설립한 ‘한국모금가협회’도 2월 말 창립 기념행사를 연다고 합니다. 올 한 해 비영리 시장이 얼마나 격동적으로 움직일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반이 튼튼한 비영리단체는 굳건하게 성장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곳은 자칫 사업을 접어야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때로 이렇게 불붙는 비영리 모금 시장이 약간 불안합니다. 개인과 기업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기부를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테크닉(기술)이 너무 앞서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영리단체를 위한 싱크탱크는커녕 제대로 된 통계자료조차 아직 구하기 어렵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선 정보를 공유하고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모금시장 격화로 일부에선 폐쇄적 태도를 보입니다. S단체, C단체 등 일부 큰 단체는 중소단체를 위해 노하우를 공유하거나 함께 연대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비영리 영역이 커지고 성장하려면, 가야 할 길이 첩첩산중입니다. 불투명한 비영리단체 한 곳의 비리 문제로 모금 시장 전체가 위축될 수도 있습니다. 우선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작은 NGO에게도 단비가 내려야 할 때

‘더나은미래’는 지난 2011년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가 수여하는 ‘제5회 지속가능경영언론상’ 대상을 받았습니다. 언론사에 몸담고 있으면, 이처럼 외부로부터 상을 받거나 지원을 받는 기회가 있습니다. 삼성언론재단, LG상남언론재단, 한국언론진흥재단, 관훈클럽 등 많은 곳에서 기자들의 국내외 대학원 진학 지원, 해외연수 지원, 저술지원, 언론상 시상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숨 가쁜 일상에 지친 기자들에게 이런 외부지원은 역량 강화와 자기계발을 위해 ‘단비’ 같은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비영리단체·복지기관·사회적기업 등 공익분야 종사자들을 위한 외부지원은 많지 않았습니다. 복지기관 종사자 해외연수 프로그램이나 모금·홍보·국제개발협력 등에 관한 교육 등이 일부 있지만, 매우 부족해 보입니다. 지난해부터 저에겐 가끔 “내부 직원들에게 홍보와 글쓰기 전반에 대해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옵니다. 연초부터 몇몇 단체의 지인으로부터 “유능한 홍보담당자 좀 찾아달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비영리단체 중간관리자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 괜찮은 것 없느냐”는 문의도 받았습니다. 비영리단체에서 이처럼 적극적으로 직원 역량강화에 나서는 데는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경쟁이 그만큼 심해졌기 때문이지요. 이번호 ‘더나은미래’ 지면에서 보듯, 해외 유명 NGO들은 ‘노하우’와 ‘자금’을 갖춘 채 본격 모금활동을 벌일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미 수십만명의 개인후원자들을 보유한 대형 NGO들은 보다 세련된 후원자 관리 시스템과 홍보전략으로 ‘집토끼 잡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사회공헌을 통해 함께 사업을 해오던 기업은 점점 ‘전략적 사회공헌’을 강조하면서, 사회공헌팀이 직접 사업을 하거나 가시적인 임팩트(Impact)를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약 중소 NGO 대표라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결국 외부의 충격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NGO들도 전문성 있고 역량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과분한 격려받은 지난 2년… 올해도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이른 새벽 반짝이는 이슬은 하늘을 향하여 불평했습니다. 하나님, 이 차가운 새벽 저를 이렇게 추위에 떨게 하십니까? 진정 저를 사랑하여 만드신 것입니까? 제게 따뜻한 햇볕을 내려 주십시오. 그 소원대로 따뜻한 햇살이 내리비쳤습니다. 그러자 이슬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산마루서신에서) ‘존재의 긴장이 사라지면 존재 자체도 사라진다’. 이른 새벽, 묵상을 위해 이 글을 읽고 여운이 오래 남았습니다. 지난 2년간 더나은미래 편집장 자리를 돌아봤습니다. 고민하고 분투했으며, 때로 안주하고 교만했습니다. 2013년 결산보고서를 쓰느라 한 해 더나은미래 발자취를 들여다보니, 걸어온 자리가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4월 창간 3주년 기념 국제 콘퍼런스를 시작으로 6차례 콘퍼런스를 열었습니다. 공익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네트워킹의 장을 마련하려는 시도였는데, 분에 넘치는 격려를 많이 받았습니다. 굿네이버스·하트하트재단·코이카·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아름다운가게·초록우산어린이재단·한국사회투자 등 외부 파트너들과 공익캠페인을 벌였습니다. 특히 지난해 8월부터 아산나눔재단과 함께 ‘아산미래포럼’을 발족한 것은 매우 뜻깊었습니다. 탈북·장애·미혼모·비행·가정외보호 청소년의 자립과 성장을 위해 35인의 현장전문가들과 함께 25번의 좌담회를 갖고, 솔루션을 모색해 보았습니다. 청년 소셜벤처인 위즈돔과 함께 6월부터 7개월 동안 ‘청년, 기업 사회공헌을 만나다’ 행사를 통해, 13곳의 국내 대표 사회공헌 우수 기업을 초청했습니다. 2주에 한 번 지면을 메우기에도 헉헉대는데,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요. 삼성꿈장학재단 손병두 이사장 대담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소명의식’ 때문입니다. ‘더나은미래는 왜 존재하는가’, 누군가 물을 때, 그 답을 좀더 잘 하고 싶어서입니다. 중국 베이징으로 떠날 일정이 막혀 계속 더나은미래 편집장을 하게 된 것도 ‘보이지 않는 손’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2014년에도 더나은미래팀은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모두

[기고] 우리의 나눔이 방글라데시의 삶을 바꾸고 있다

황현이 아름다운가게 나눔사업팀장 차와 릭샤로 가득 찬 도로, 양 손 가득 선물을 들고 있는 사람들. 지금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는 국가적인 축제 인 ‘이드’를 앞두고 들썩이는 분위기다. 불과 6개월 전인 지난 4월 24일, 이곳에서는 8층 높이 건물이 무너져 내리면서 공식적으로만 ‘1127명 사망, 2300여 명 부상, 300명 실종’이라는 피해가 발생했다. 건물 잔해에 깔리거나 튀어나온 철근 등에 찔린 피해자는 대부분 의류공장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오전 8시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고 40달러 남짓한 월급을 받았다. 아름다운가게는 사고 직후 피해자 100가구에 긴급의료비와 생계비를 지원했다. 이후 심리치료와 자립을 위한 기술훈련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 6개월 동안 피해자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프로그램 모니터링을 위해 다시 이곳을 찾았다. 로지나 악터(25세)는 척추가 부러지고 신장이 파열되고 다리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고통과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이제 부축을 받아 걸을 수 있을 만큼 회복했다. 특히 심리치료 프로그램에서 다른 피해자들을 만나는 것이 그에게 큰 위로가 됐다. 사고의 충격으로 입을 닫고 지냈던 리나(18세)는 재봉기술 교육을 받고 있다. 그는 사고 후유증으로 심각한 단기 기억상실증을 겪고 있다. 교육 담당자가 “엊그제 옷 본뜨는 거 연습했잖아. 기억 안 나?”라고 묻자, 한참을 망설이다 “그랬던 것 같다”고 답했다. 그래도 리나는 여기서 멈출 수 없다. 빨리 일을 시작하고 돈도 벌어야 한다. 교육 과정을 마치면 공장에 돌아가지 않고 양장점에 취업할 수 있을 것이다. 화려한 보상계획을 발표했던 방글라데시 의류제조·수출협회는 “어떠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