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새로운 변화’는 현장에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딸아이는 요즘 미니어처를 만드는 데 푹 빠져있습니다. 손가락 한 마디만 한 크기로 떡볶이, 오므라이스, 스파게티 등 온갖 음식을 만듭니다. 친구들한테 쇼핑몰 정보를 알아와서 각종 재료를 산 후, 유튜브를 통해 만드는 방법을 하나씩 배웁니다. 수학 문제를 풀라고 하면 30분만 지나도 피곤해하는데, 미니어처를 만들 땐 2시간이 넘도록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유튜브가 딸아이한테는 교과서요, 선생님입니다. 자신도 떡볶이 만드는 방법을 공유하기 위해 유튜브에 올리겠다며, 한 시간 넘게 제 휴대폰을 갖고 낑낑댔습니다. 그 모습이 저한테는 새로운 문화 충격입니다. ‘배움’이 더 이상 학교에만 있지 않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지만, 아이의 행동을 통해 실제로 목격하니 더 생생합니다. 기존의 방식, 즉 위에서 아래로 정보나 지식이 하달되는 틀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요? 최근의 사회 흐름을 지켜봐도 그렇습니다. 땅콩 회항, 디자이너 이상봉씨 열정 페이, 연말정산 세금 폭탄 등 모든 이슈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그 이슈가 유통되는 과정에는 페이스북의 공유, 그리고 유튜브 동영상 등 SNS가 반드시 존재합니다. 5년 전쯤 한 NGO 사무총장이 “아~ 이제 NGO의 운명이 바람 앞의 촛불이야. 시민들을 광장으로 불러모으던 NGO의 역할을 이제 SNS가 다 하게 될 텐데”라고 한 말이 떠오릅니다. 새로운 것과 낡은 것, 그 사이에는 반드시 격차(갭)가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그 격차가 작아야 불행하지 않습니다. 모든 시민이 새로운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데, ‘부시맨 정부’ ‘부시맨 학교’ ‘부시맨 기업’만 홀로 존재하는 모습을

[더나은미래 기고] ‘사회 투자式 복지’가 바로 창조경제다

전 국토를 폐허로 만들어 놓은 한국전쟁의 아픔을 딛고 우리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냉장고 하나도 못 만들던 우리가 가전은 물론이고 자동차, 건설, 조선, 반도체, 정보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의 산업을 이끌고 있다. 지구촌 인구 3분의 1이 한국이 만든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동전의 양면이다. 그 고속 성장은 자살률, 고령화, 청년 실업, 사회적 갈등, 다문화, 환경오염 등 많은 사회문제를 우리 사회에 남겨 놓았다. 압축 성장이 가져다준 그늘이다. 이러한 사회문제들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금년 우리나라 정부 예산은 376조원. 그중 30.7%인 115.5조원이 고용과 복지 관련 예산이다. 환경·교육·문화 등에 소요되는 예산을 합하면 총예산의 50%가 사회 관련 예산이다. 고용과 복지 예산은 다른 예산보다 많은 매년 8% 이상 오르고 있다. 그만큼 사회문제 해결이 중요한 과제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재원은 항상 부족하다. 부족한 재원을 조달하느라 세금을 올리자니 납세자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연말정산 파동이 그 방증이다. 세제를 바꾸어 슬그머니 세금을 더 걷다가 들통이 나니 정부가 그 대책을 마련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재원이 한정되어 있으니 돈을 쏟아 붓는 복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재원이 선순환되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여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기반 시설을 마련하듯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사회 투자적인 접근 방법이 병행되어야 한다. 현대 사회문제가 점점 다양하고 복잡해져서 이제는 전통적인 복지 접근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사회문제가 복합적인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복잡하듯이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사회공헌 초고속 성장의 덫

“이제 기업 사회공헌은 다 죽은 거 아니에요? 몇 년 동안 반짝 붐을 이루더니, 요새 경기가 안 좋아서 다시 죽었네요. 솔직히 사회공헌팀은 조직에서 한직(閑職)이잖아요.” 한 기업 재단 담당자의 솔직한 얘기입니다. 경기 불황과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 이후 기업들의 이슈는 리스크 관리가 된 모양입니다. 기업마다 국회나 시민단체 등을 담당하며 기업의 리스크에 해당하는 사안을 모니터링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대외협력팀을 운영하는데, 여기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입니다. 최근 한 대학생으로부터 황당한 얘기도 들었습니다. 대학생을 학습 멘토로 운영하는 한 기업 사례인데, “이 프로그램을 왜 하는 것이냐”고 묻는 대학생에게 그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가 “우리 기업에 나쁜 사건이 터졌을 때, 이걸로 막으려고 하는 거야”라고 답했다는 겁니다. 이뿐 아닙니다. 겉으로는 자사의 사회공헌 사례를 적극 홍보하는 한 기업 CEO가 “솔직히 이런 사업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내부 회의에서 대놓고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파트너십에 관해서라면, 비영리 단체들로부터 ‘기업의 갑질 사례에 관한 익명의 제보’를 수집하면 아마 책 한 권을 써도 될 만큼 나올 것 같습니다. 다만 기업의 후원이 끊어질까 봐 절대 공개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기업의 사회공헌이 양적으로 확대되는 것이 반가웠는데, 요즘은 ‘모래성 쌓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연산도 못 푸는 초등학생이 미분·적분을 푸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인가 싶은 것이지요. ‘더나은미래’는 과연 기업 사회공헌의 질적 성숙에 기여했을까, 기업 사회공헌의 초고속 성장 속에서 우리가 놓친 것은 없을까, 반성도 하게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혁신의 시작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서

2012년 구글의 슈퍼컴퓨터 중 하나가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했습니다. 유튜브 영상에 있는 섬네일 1000만개를 훑어본 후 75%의 정확도로 고양이를 구분한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처럼 보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인간의 경우 네 살짜리 꼬마들조차 완벽하게 해내는 일이지요. “우리는 컴퓨터 혼자서 해낸, 별것 아닌 일들에는 감동하면서도 인간이 컴퓨터의 똑똑하지 못한 부분을 채워주며 이뤄낸 커다란 업적들은 무시한다”는 말을 한 이는 바로 피터틸입니다. 전자결제시스템 회사 페이팔 CEO이자, 실리콘밸리를 움직이는 파워 그룹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이지요. 페이스북 친구 중 몇몇이 하도 칭찬을 많이 해서, 연말에 읽어본 책 ‘제로투원(Zero to One)’의 저자입니다. 그는 ‘빅데이터’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쏟아냅니다. “빅데이터는 보통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데이터다. 오직 인간만이 쓸모 있는 통찰 결과를 찾아낼 수 있다.” 재밌는 내용은 또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경쟁을 건강하다고 믿는 걸까.’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기초로 ‘게이츠(MS)와 슈미트(구글)’ 연극을 이야기합니다. 신생기업일 때 각자 번영하던 이들 가문은 점차 성장하면서 서로 경쟁에 집착했고, 그 결과 홀연히 애플이 나타나 두 가문을 모두 제쳤습니다. 그는 “경쟁하지 말고 (창조적) 독점을 하라”고 주장합니다. 경쟁에서 이겨봤자 1에서 n이 될 뿐이요,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0에서 1이 된다는 것입니다. 숙박공유기업 에어비엔비처럼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아무도 발견 못한 비밀을 발견해야 위대한 기업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공익 분야가 시장이 얕다 보니 경쟁자가 없는 게 내심 불안했고, 컴퓨터도 기사를 쓰는 시대에 ‘인사이트(insight)가 있는 매체를 만들자’며 구닥다리

[특별기고] 구세군 자선냄비는 하늘과 땅의 통로

지난해도 어김없이 12월 한 달 동안 거리에는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자리를 지켰다. 1928년 시작된 이후 한국전쟁 기간을 제외하고 항상 계속된 일이다. 벌써 86년을 지켜온 사랑이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아마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추운 겨울 한자리에 가만히 서서 종을 치는 일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손과 발뿐만 아니라 온몸이 꽁꽁 얼어 자선냄비가 끝나도 몸에 남아 있는 한기는 쉽게 가시지 않는다. 2014년의 자선냄비는 전년도의 기록적인 금액을 넘었고, 애초 목표로 했던 65억도 훌쩍 넘은 68억3000여만원이 모금되었다. 한국구세군의 자선냄비는 1928년 시작 이래로 한 번도 모금액이 줄어든 적이 없다. 추운 겨울 한결같이 자선냄비를 지키는 사람들, 매년 최고 모금액을 달성하는 자선냄비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구세군 자선냄비는 1891년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되었다. 1928년 12월, 홍수와 가뭄으로 고통받는 이가 많았던 한 해의 끝자락, 가난한 이들이 얼어 죽은 변사체로 발견되는 일이 일어나면서 당시 박준섭 구세군 사령관은 정부에 공식 모금을 요청하여 허가를 받았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그해 12월 15일 서울 명동 등 20여 곳에 처음 등장했으며 첫해 848원 67전이 모금되었고, 그 돈은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들의 식사와 땔감에 쓰였다. 그 후 자선냄비 모금액은 계속 증가했고, 심지어 IMF 시기에도 줄어들지 않았다. 2014년의 자선냄비는 그 어느 해보다 봉투 기부자와 그 안에 담긴 사연이 많았다. 돌아가신 부모님께서 마지막으로 주신 용돈을 기부한 자녀들, 이젠 편지를 받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를 넣어 주신 분,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찾습니다

‘수송보국(輸送報國·수송업을 통해 나라에 보답한다).’ 대한항공 창업주인 고(故) 조중훈 회장이 가졌던 신념입니다. 칼럼을 쓰려고 책상에 앉아 있는데, 문득 딸에게 읽어보라고 선물한 ‘대한민국을 바꾼 경제거인 시리즈'(FKI미디어)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지금은 재벌이 된 대한민국의 대표 기업 창업주들 이야기를 엮은 청소년 도서입니다. 9권(조중훈처럼)을 열어보니, 1945년 11월 인천시 해안동에서 트럭 한 대를 가진 청년이 ‘한진상사’라는 간판을 내걸고 장사를 시작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8남매의 둘째로 태어난 후 가세가 기울어, 열일곱 나이에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선박 기술을 배운 식민지 청년이 바로 조중훈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당장 필요한 물품을 들여오는 무역업에만 신경 쓸 때, 그는 물자를 원하는 곳까지 가져다줄 ‘수송’에 눈을 돌렸습니다. 책의 감수를 맡은 유재천 전 서강대 사회과학대학장은 “(당시 경영이 어려워 아무도 인수를 원치 않던) 대한항공공사, 대한선주, 인하공대 등을 인수한 조중훈 회장님은 기업의 이윤에 앞서 나라의 부름에 응하는 선공후사(先公後私)를 보여준 기업인”이라며 “가정 형편 때문에 중학교를 중퇴한 뼈아픈 경험에 대한 회한으로 직원들의 자녀가 학비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일이 없도록 세심하게 배려했고, 사재를 쏟아부어 인하대와 항공대를 있게 했다”고 적었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사내 대학까지 만들어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직원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었다고 합니다. 조중훈 회장이 살아 있었다면,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을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나눔이나 배려, 사회에 대한 기여 등과 같은 ‘가치 있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은 아무나 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직접 어려움을 겪어보았기에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영수증 없이 연 5000만원 지원하는 ‘아쇼카’ 이야기

제가 매달 한 번씩 참여하는 ‘사회적경제언론인포럼’이라는 공부모임이 있습니다. 시작은 작년 초쯤 사회적기업을 취재해온 ‘이로운넷’ 선배와 통화하면서 “출입처도 없는 외로운 기자들끼리 한번 모여보자”며 뭉친 게 계기였습니다. 매달 한 분씩 모셔서 사회적기업·협동조합 분야 이야기도 듣고, 토론도 합니다.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한겨레경제연구소가 함께하는 따뜻한 모습에 참석자 몇몇은 놀라기도 합니다. 이번 달에 만난 인물은 아쇼카의 이혜영 대표였습니다. 아쇼카는 사회 혁신 기업가(소셜 앙터프리너)를 지원하는 비영리 조직인데, 30여년 동안 88개국에서 아쇼카펠로 3000여명을 선정해 지원해왔습니다. 올해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아동 인권 운동가 카일라시 사티아르티(Kailash Satyarthi)씨는 무려 21년 전에 아쇼카펠로로 선정됐다고 합니다. 아쇼카펠로로 선정되면, 아쇼카는 생계비(1년 평균 5000만원)를 3년 동안 지원하는데, 3개월에 한 번씩 생활비만 입금할 뿐 영수증을 전혀 요구하지 않습니다.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혜영 대표는 “3000명 중 96%가 자기 조직을 성장시켰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한국 같으면 영수증 붙이느라 정신없거나, 누구 ‘백그라운드’로 이 사람 지원했느냐는 식의 공격이 들어올 것”이라고 씁쓸히 웃었습니다. 신뢰 자산이 참 무섭습니다. 아쇼카를 본뜬 재단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에코잉그린(Echoing Green) 재단은 창립한 지 3년 이내의 스타트업 사회적기업가를 지원하고, 스콜(Skoll) 재단은 사회적기업가들을 발굴할 뿐 아니라 네트워크 확산에 주력합니다. 인터내셔널 브릿지스 투 저스티스(International Bridges to Justice)라는 비영리단체는 커가는 단계별로 에코잉그린-아쇼카-스콜의 지원을 모두 받았습니다. 이혜영 대표는 “한국에선 마치 사회적기업가가 사회적기업을 운영하거나, 비즈니스 모델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게 안타깝다”며 “사회적기업가들은 영리와 비영리에 상관없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라는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나눔의 시너지 내려면 ‘룰’부터 정해야죠

“싸움과 권투의 차이가 뭔지 아세요? 룰(Rule)이 있느냐 없느냐죠. 저는 상담할 때 딱 두 가지 룰만 줍니다. 상대방의 얘기를 끊지 않을 것, 상대방이 한 말을 재확인할 것.” “부모가 자녀를 존중하면, 자녀는 집중력과 자신감을 갖게 되고, 리더십을 발휘하죠. 반면, 부모가 자녀를 간섭하면, 자녀는 한계를 정해 수동적이 됩니다.” 지난 19일 더나은미래가 이지웰가족복지재단과 함께 세 번째 부모교육포럼을 열었는데, 미국에서 10년 동안 가족 상담을 해온 남동우 한국가족상담센터 상담소장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룰과 존중. ‘왜 우리나라는 협력과 공유가 잘 안 될까’라는 제 오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단초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사회문제를 해결한 좋은 모델을 분석해보면, 한 단체나 개인이 해낸 게 아니라 파트너십을 통한 결과물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돈을 주는 기업이나 정부, 현장에서 일을 하는 비영리단체·사회적기업과의 파트너십이 삐걱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습고 창피한 일이지만, 최근 몇 년간 협동조합 붐이 일면서 지자체·정부기관·민간단체 할 것 없이 너도나도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하러 간 적이 있는데 이 때문에 이탈리아의 한 기관에서는 ‘한국 해외연수단 더 이상 안 받겠다’고 공언했다고 합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느라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며 “너희 나라는 왜 정보 공유를 안 하느냐”고 물었다는 후문입니다. 지난해 더나은미래가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의 민관협력사업 3년을 분석하는 좌담회를 열었을 때도, 한결같은 목소리는 “기업·정부·비영리단체 간 파트너십을 잘하는 게 가장 어렵다”였습니다. 해결의 열쇠는 바로 ‘룰(Rule)을 정하는 것’입니다. 파트너끼리 우선 목표와 성과에 대한 합의를 한 후, 서로의 역할을 어디까지로 할지 명확히 룰을 정해야 합니다. 기부금액이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한국도 비영리에 대한 신뢰자산 쌓아야

지난 5일 ‘국제 나눔문화 선진화 콘퍼런스’에 참석했다가, 예정에 없이 티모시 제이 매클리몬 아멕스재단 이사장, 도요타재단 디렉터 등과 함께 점심을 먹게 됐습니다. 이야기 주제가 기업과 비영리의 파트너십으로 흘러갔습니다. 도요타재단은 1974년에 만들어졌으니, 생긴 지 올해가 꼭 40년이 됩니다. 재단은 시민사회 및 NPO(비영리단체)를 지원하는 다양한 연구 및 공모·배분 사업을 하는데, 200억원이 넘는 돈을 씁니다. 아멕스재단은 NPO의 역량 강화를 위한 리더십 프로그램에 지금까지 약 326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한국의 젊은 층은 NPO분야로 진출하려는 관심이 높은가” “한국에선 대학이나 대학원에 NPO 리더십 과정을 들을 수 있는 곳이 있는가” “한국의 기업과 NPO의 파트너십 관계는 어떤가” …. 어느 질문 하나에도 속 시원하고 자랑스럽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갈 길은 멀지만 그렇기에 더나은미래 같은 매체의 존재 이유가 있다”며 농담 섞인 진담으로 얼버무렸습니다. 다만 두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요타재단은 만들어지고 나서 10년 동안 무조건 직접 사업을 벌였지만, 이후부터는 NPO를 간접 지원하는 형태로 방향을 틀었다고 합니다. 아멕스재단 또한 NPO의 역량이 높아지고 NPO에 좋은 인재가 많이 뿌리 내려야만 실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깨닫고 리더십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몇 달 전 한 대기업 CSR 담당 임원이 “함께 사업을 하는 비영리단체의 역량이 부족해서, 우리 직원들의 글로벌 사회공헌 사업 투입량이 너무 많아 고민”이라며 “비영리단체는 왜 이렇게 자주 사람이 바뀌는가”라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비영리단체의 사정이 왜 열악한지 사정을 설명하자, 그 임원은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귀 열고 들어보세요… 변화의 ‘신세계’ 열릴 겁니다

최근 며칠 동안 카카오톡을 만든 김범수 의장 이야기를 쓴 책을 이북으로 읽었는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6개월 이론’입니다. 프로그래밍을 할 줄 모른 채 삼성SDS에 입사했던 그는 입사 이후 막막했다고 합니다. 그때 던진 질문이 “6개월 후에 남들보다 뛰어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게 뭘까”였습니다. “윈도가 뜰 것이다”라는 데 힌트를 얻어, 당시 유행하는 코볼·포트 대신 6개월 동안 C++와 윈도만 했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윈도 기반의 프로젝트 수주를 하게 됐고, 그걸 잘하는 사람이 없어 갑자기 그가 전문가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는 “6개월 정도만 고민해서 답을 낼 수만 있으면, 남들보다 한 발자국은 아니더라도 반 발자국 앞서갈 수 있다”는 걸 터득했습니다. 인터넷 시대가 됐을 때 ‘6개월 이론’을 적용해 한게임을 창업하고,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시대가 열렸을 때 카카오톡을 만든 것도 같은 원칙에서입니다. 더나은미래에 있다 보면, 새로운 해외 소식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해외에서는 비영리,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CSR(기업의 사회적책임) 등의 역할과 중요성이 큰 데 반해, 국내는 이 분야에 대한 인지도가 낮다 보니 늘 해외 콘퍼런스 연사는 ‘더나은미래’에 인터뷰 요청을 해옵니다. 이번에도 ISO 26000의 최고 전문가 마틴 노이라이트 교수, 미국 사회적기업협회 의장 케빈 린치, 독일 위기청소년 교육전문가 리햐드 권더 도르트문트대 명예교수 등 수많은 전문가의 인터뷰를 지면에 실었습니다. 정보가 쌓이니, 마치 ‘6개월 이론’처럼 자연스레 세상 돌아가는 흐름이 읽힙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런 ‘신세계’를 저희와 애독자들만 알고 있는 것입니다. 민간이나 젊은 층일수록 이 분야에 대한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反기업 정서 깨는 가장 큰 힘, 나눔

“이제 시작인데요, 뭐.” 지난 7일 아산나눔재단 창립 3주년 기념식장에서 정몽준 명예이사장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산나눔재단은 아산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서거 10주기를 맞아 정몽준 전 의원이 2000억원을 쾌척하고 범현대가(家) 기업들이 총 6000억원을 출연해 설립한 재단입니다. 이날 행사에는 정몽준 명예이사장 부부 외에도 정몽진 KCC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이 참석해 끝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얼마 전 딸이 사관후보생으로 해군사관학교에 입영해 화제가 된 SK 최태원 회장의 부인 노소영 관장(아트센터 나비)도 참석해 축하해줬습니다. 축사만 하고 VIP들이 우르르 빠지는 행사만 봐오다 1시간 30분 가까이 이어진 행사에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고 따뜻한 박수와 웃음이 이어지는 걸 지켜본 건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몇 차례 실패와 턱걸이 끝에 ‘정주영 창업경진대회’를 통해 입상한 예비 청년 창업가 “너희가 복지를 알아”라며 의심 반 호기심 반으로 시작했다 비영리에도 전략과 경영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은 사회복지사, 중국 기업 글로벌 인턴을 하는 동안 북한의 아버지와 전화 통화 끝에 “자랑스럽다”는 얘기를 듣고 울먹인 탈북 대학생 스토리까지…. ‘청년 창업 활성화’와 ‘비영리 인재 육성 사업’이라는 두 축을 대표하는 수혜자들의 생생한 소감에 참석자들은 때로 고개를 끄덕이고 때로 목이 메었습니다. 정진홍 이사장은 마지막 인사에서 “5년 후 신문 기사에 ‘아산나눔재단이 1조원을 출연한 재단이 됐다’는 걸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돌아오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기업 정서를 누그러뜨리는 확실한 방법은 ‘나눔’이라는 것이고, 이제 곧 국내에도 1조원대 재단이 출연할지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지원 체제 안 바뀌면…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영원한 ‘庶子(서자)’

조선시대는 아니지만, 지금도 대한민국엔 ‘적자’와 ‘서자’가 있습니다. 보조금을 36억원 횡령한 ㈔한국경제교육협회는 청소년 경제 교육을 장려한다는 명분으로 지금까지 기재부로부터 268억원의 예산을 받았습니다. 설립된 이듬해인 2009년 ‘경제교육지원법’이 만들어져 경제 교육 실시 단체로 지정됐기 때문입니다. 이런 ‘적자’ 단체가 우리 사회에는 한두 곳이 아닙니다. 취약 계층 아동 맞춤형 통합 서비스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드림스타트센터’는 2008년 생긴 후 3년 만에 130개로 늘었고, 현재 220곳에 달합니다. 기관당 3억원씩 658억원의 예산이 들어갑니다. 반면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서자’입니다. 정부가 아동 학대 문제를 인식하기도 훨씬 전인 1996년 민간단체인 굿네이버스에서 아동학대상담센터를 운영해오며 이 불쌍한 아이들을 보살폈습니다. 1998년 충격적인 ‘영훈이 사건'(영훈이 누나는 부모에게 맞다가 숨진 후 암매장됐고, 영훈이 또한 심하게 맞은 상태로 발견됨)으로 2000년 아동복지법이 만들어져 아동 학대에 국가가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동보호전문기관은 50곳뿐이고, 가해자로부터 위협당하는 상담원 신분은 보호받지도 못하며, 기관 운영 예산은 민간단체와 지자체가 분담합니다. 출생 신분이 관(官) 주도가 아닌, 민(民)이기 때문에 생긴 현상입니다. 내년 예산안 뚜껑을 열어보고, 전국의 아동보호전문기관들이 떠들썩합니다. “더 이상 민간은 아동 학대 문제에서 손을 떼고 아예 국가에 운영권을 반납하자”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이쯤에서 궁금해집니다. 우리나라에서 국가가 할 일과 민간이 할 일에 대한 공론화가 이뤄져 있는지 말입니다. 357조원에 달하는 국가 예산을 공무원이 모두 쓰기란 불가능합니다. 공무원은 이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민간단체에 위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성공하면 ‘민관 협력’의 롤모델이 되고, 실패하면 ‘보조금 빼먹는 민간단체 세금 도둑들’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