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세계 시민으로서 눈높이를 갖는 법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지난달 30일부터 2박3일 동안 경북 경주에서 열린 ‘제66차 유엔 NGO 콘퍼런스’ 의미를 퇴색시킨 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일까, 한국 언론일까. 100여개국에서 온 4000여명이 참석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비영리 포럼이 열린 첫째날 오전, 기자회견장에는 한국 언론사 기자 100여명이 진을 쳤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스콧 칼린 공동위원장, 크리스티나 갈라크 유엔 DPI(공보부) 사무처장이 자리에 앉았다. 한국 언론의 첫 질문은 반기문 총장에게 향했다. “왜 UN 관련 일정이 적냐, 개인의 정치적 행보를 위한 방문이라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어진 다음 질문은 이랬다. “유엔 사무총장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 이후 3명 모두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고, 거기서 기자회견은 끝났다. 행사장을 떠난 반 총장을 따라 기자들이 모조리 그곳을 떴다. 100명까지 이용 가능한 대형 기자실엔 오후 내내 적막감만 감돌았다. 3일 내내 현장을 취재한 매체는 ‘더나은미래’가 유일하다시피했고, 스콧 칼린 위원장을 정식 인터뷰한 매체도 우리뿐이었다. 스콧 칼린 위원장은 “왜 한국 기자들은 콘퍼런스에는 관심이 없느냐. 반기문 사무총장에만 관심이 있어 아쉬웠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이후에 들려온 소식 또한 가관이었다. 콘퍼런스 마지막날, ‘경주 액션플랜’을 채택할 때 우리 정부에서 ‘새마을운동’을 넣으려고 엄청 노력했으나, 유엔 측에 의해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특정 나라의 개념을 글로벌 액션플랜 안에 넣을 수 없다”는 게 유엔 측의 입장이었다. 많이 부끄러웠다. 세계 GDP 순위 11위이지만, 우리 사회의 주요 시스템은 아직도 초고속 성장시대에 머물러있다는 자괴감은 지나친 걸까. 100명의 기자가 똑같이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진짜’가 대접받는 공익 생태계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지난해였나. 한 사회복지기관 팀장과 저녁을 먹다가 좀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이 사회복지법인의 대표직을 4대째 세습하려고 해서, 내부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고 했다. 초대 회장은 희생과 열정으로 사업을 키웠지만, 이후 규모가 방대해지면서 가족이나 친인척이 운영을 독차지하는 ‘복지사업’이 된 경우도 많다. ‘공익(公益)’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사익(私益)’을 취하는 사례도 있다. 기부금으로 사업을 하면서, 일명 ‘돌려막기’를 하는 것이다. 친인척 명의 빌딩에서 대관료, 임대료, 식음료비 등을 받아 잇속을 챙기기도 하고, 외부 거래처와 짜고 물품 비용을 부풀린 후 차익을 되돌려받는다. 조직 구성원의 내부 고발이 있지 않는 한, 쉽게 드러나기 힘들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우리 사회의 ‘비영리 영역’이 하나의 산업 생태계, 혹은 직업 영역에 포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좋은 일 하는 사람이니까 행복하겠다’ 혹은 ‘남의 돈 기부받아, 아무렇게나 쓰는 거 아냐’ 하는 이분법적 인식만 존재한다. 단적인 사례가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비영리법인을 만드는 데 정부 부처의 허가를 받는 나라다. 선진국에선 비영리법인을 만드는 데 규제를 하는 게 아니라, 법인 설립 이후에 기부금을 투명하게 잘 썼는지를 규제한다. 지난해 미국에서만 국세청으로부터 면세 혜택이 박탈된 비영리법인이 30만개에 달한다. 자정 작용 없고, 외부 감시도 없는 이 비영리 생태계에선, 진짜 선의(善義)를 갖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들이 피해를 입는다. ‘가짜’는 가고, ‘진짜’가 대접받는 공익 생태계를 오늘도 꿈꾼다.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더나은미래 프렌즈’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20년 가까이 위기 청소년 공동체를 이끌어온 ‘세상을 품은 아이들’ 명성진 대표님이 최근 책(세상을 품은 아이들) 출간 소식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좋아요’와 응원 댓글을 달았는데, 대표님이 이런 답글을 올렸습니다. “감사드려요. 더나은미래가 저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주셨죠”라고.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2013년의 저희 지면 인터뷰가 대표님을 세상에 널리 알린 계기였겠구나 싶었습니다. 괜히 마음이 기뻤습니다. ‘더나은미래’가 창간 6주년을 맞았습니다. 이쯤 되면 쉬엄쉬엄 여유도 부려야 하건만, 아직도 종종거리며 사는 걸 생각하면 좀 슬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고난에도 축복이 있다는 우리 취재원들의 이야기처럼, 신기하게도 요즘 더나은미래엔 좋은 분들의 격려와 응원이 많습니다. 4월 말 어느 저녁에는 매출 100억원대 중견기업을 일군 회장님이 저희를 응원하고 싶다며 팀 전체 저녁을 사주셨습니다. 2000년대부터 기부에 뜻을 품고 직접 ‘펀드 레이징(모금)’ 기획까지 하는 분인데, ‘더나은미래’ 열독자라고 하셨습니다. 크로스백 지퍼를 열더니, 지난 호 지면을 꺼내셨습니다. 선진국 기부 관련 기사 아이디어와 고액 기부자들의 기부 심리도 이야기해주시면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저희들에게 종종 막걸리를 사주기로 약속하셨습니다. ‘더나은미래 팬’을 자처하는 한 교수님은 영향력 있는 콘텐츠를 위한 조언을 직접 설계해주시기도 하고, 나눔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신 국내 최고의 경영대학원 교수님은 틈날 때마다 언론사 경영에 대한 조언을 해주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기업 사회공헌팀과 비영리단체의 많은 이해관계자분 또한 ‘더나은미래 프렌즈’로서 진정성 어린 조언을 해줍니다. 배는 고픈데, 또 한편 배가 부릅니다. 어떻게 우리 사회의 공익 분야 지평을 키워낼지 아직 막막하지만,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콘텐츠의 시대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콘텐츠의 시대는 가고 플랫폼의 시대가 왔다.’ 수년 동안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말입니다. 국내 언론사 중 톱이라는 조선일보 기자들조차 ‘포털의 뉴스 편집자보다 못한 신세’라고 자조적으로 한탄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IT 비즈니스의 원리는 이랬습니다. “일단 사람을 많이 모아라. 비즈니스는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네이버, 카카오톡을 봐라.” 이런 마당에 좋은 콘텐츠를 우직하게 만드는 건 마치 중세시대 성 안에만 머물러 있던 수도승 취급받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상황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네이버, 카카오, 유튜브(구글), 페이스북 등 소위 사람들을 모으는 플랫폼들이 많아지면서 플랫폼 간의 경쟁이 심해져서일까요. 이용자를 오래 붙들 수 있는 좋은 콘텐츠를 찾는 플랫폼 기업도 덩달아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콘텐츠는 많이 부족합니다. 뉴스만 봐도 기존 언론 매체는 비슷비슷한 팩트 보도가 많아 차별점이 부족하고,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인터넷 매체의 경우 보도자료 베끼기 수준을 넘기는 기사를 찾기 힘들지요. 블로그는 순수성을 상실해, 블로거의 글이 진짜인지 마케팅을 위한 것인지 헷갈릴 때가 제법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부 콘텐츠 제작자는 소위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립니다. ‘양띵(YD)’이라는 아프리카TV BJ이자 유튜브 콘텐츠 창작자는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장래 희망’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생인 제 딸은 웹툰 ‘조선왕조실톡’의 강력한 팬이기도 합니다. 콘텐츠 하나만 잘 만들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 같기도 합니다. ‘더나은미래’ 또한 요즘 여러 곳에서 콘텐츠 제휴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6년째 공익 콘텐츠만 꾸준히 내고 있으니, 희소성을 인정받는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NGO 살리는 기부종잣돈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가끔 비영리단체 실무자를 대상으로 강의할 때면 저는 ‘열혈교사 도전기’라는 책을 꼭 권유합니다. 교육 격차를 해소하는 비영리단체 ‘티치 포 아메리카(Teach For America)’를 설립한 웬디 콥의 이야기입니다. 미 명문대 졸업생을 선발해 2년간 도심 빈민 지역의 공립학교 교사로 봉사하도록 하는 사업으로, 교육 개혁을 이끈 인물입니다. 우연히 비영리단체를 설립한 후 초기에 운영 자금을 모금하느라 동분서주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는 ‘미국 NGO도 한국과 비슷하구나’였고, 또 하나는 ‘신생 NGO가 말라죽지 않도록 기부 종잣돈을 주는 곳이 미국엔 많구나’였습니다. 우리나라였다면 과연 이 NGO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을까요. 최근 국내 비영리단체들의 사회 혁신 프로젝트에 총 30억원을 지원하는 ‘구글 임팩트 챌린지’ 설명회에 500명이나 몰렸다고 하지요. ‘공익 기금’이 부족하다 못해 말라버린 국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국내에 기업 사회공헌 자금이 3조원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말 그대로 ‘비지정 기부금’이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기 어렵습니다. 미국 재단센터(Foundation center)에 가보니 그곳에는 미국 전역에서 나오는 ‘그랜트(Grant·기금)’ 정보가 하루에도 수십 개씩 홈페이지에 올라오더군요. 공익 목적의 사업을 하고자 하는 NGO와 기금을 잘 쓰고 싶은 기업 재단이 만나는 투명한 ‘정보 거래장터’가 형성돼 있었습니다. 이 장터가 열리기 위해선 기부자의 이해관계를 벗어난 공익 기금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아직 갈 길은 좀 멀어 보입니다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더나은미래와 함께 저도 많이 변했더군요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 선험적으로 알지 못하는 일들이, 살면서 종종 생깁니다. 서른 살에 아기를 낳고 처음 엄마가 되었을 때가 그랬고, 원고지 1000장에 달하는 첫 책을 탈고했을 때가 그랬습니다. 요즘 또다시 이런 일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CEO를 인터뷰해왔고 유명 CEO가 쓴 경제경영서들을 읽었건만, 역시 경험만 한 스승은 없는 것 같습니다. 침대에 머리가 닿기만 하면 1~2분 만에 잠드는 저는 ‘잠이 오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더나은미래’를 잘 이끌어야 하는 책임감과 부담감에 한숨이 나왔다가, 미래에 대한 설계와 기대감으로 부풀어올랐다가, ‘글쟁이로 평생 살고픈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현실 부정까지 하룻밤에도 여러 번 혼자서 롤러코스터를 탑니다. 더나은미래는 지난달 성수동 생활을 마감하고 광화문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광화문빌딩 9층에 위치한 사무실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습니다. 기자들과 함께 ‘으쌰 으쌰’ 하면서, 많은 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대한민국에 하나뿐인 공익 섹션을 만드는 자부심을 갖고, 따뜻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좋은 콘텐츠와 프로젝트를 하나씩 선보일 것입니다. 올 초 거인병 앓는 전 농구 국가대표 김영희씨의 기사를 보고, 독자 한 분이 하얀 봉투에 1만원을 넣어서 보내왔습니다. 더나은미래를 만들면서 제 삶은 어딘지 모르게 달라졌습니다. 뭔지 정확하게 설명할 길은 없는데, 예전의 저처럼 사는 사람들을 만나면 ‘아! 내가 변했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저희 지면을 꼼꼼하게 읽는 독자들 또한 마음속 울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머리’와 ‘가슴’이라고 하지요. 머리와 가슴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연탄의 추억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지난 연말, 더나은미래 기자들과 함께 연탄 봉사를 했습니다. 늘 다니는 성수동 지하철역 근처였는데, ‘뒷골목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쪽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습니다. 연탄 때는 집이 딱 두 곳밖에 없다 보니 이런 지역은 오히려 기업에서 ‘그림이 안 돼’ 거의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연탄을 나르는 우리를 못마땅한 얼굴로 지켜보던 한 노인은 “그 정도면 됐다”고 면박을 주었습니다. 반면, 중년 아줌마는 우리를 도와 열심히 계단을 오르내리며 연탄을 날랐습니다. 알고 보니 노인은 쪽방 아줌마에게 밀린 월세 독촉하러 온 집주인이었습니다. 쪽방에 혼자 산다는 아줌마는 “작년에는 초봄까지 추웠는데 연탄이 없이 지내다 다리 근육이 마비되기도 했다”며 “연탄 한 장 한 장 땔 때마다 여러분을 생각하겠다”며 고마워했습니다. 그녀의 사연이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보진 못했습니다. 기자들에게 “연탄 때 본 적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1년가량 연탄을 때고 ‘곤로’에 밥을 해먹는 고등학교 1학년 자취 시절을 보냈습니다. 오랜만에 연탄을 보니 그 시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친구와 저는 각각 월세 3만원씩 내고 쪽방에 같이 살았는데, 그 집에는 온갖 군상이 자취를 하고 있었습니다. 시시때때로 부부싸움으로 악다구니를 쓰고 가재도구를 마당에 집어던지는 중년 부부도 있었고, 가난한 집안을 일으켜 세우겠다며 세무대학 입학을 목표로 공부하던 독학생도 있었습니다.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저는 저녁 자율학습 시간에 잠깐 빠져나와 자취방으로 내달렸습니다. 제 자취집에선 우리 고등학교의 화장실 창문이 다 보이고 친구들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연탄불을 간 후 급히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2주짜리 인생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얼마 전 만난 기업 사회공헌팀 관계자가 이렇게 묻더군요. “더나은미래 팀은 어떻게 그리 열정적인가요?” 곰곰이 생각하다 “헝그리 정신이 살아있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기자들의 삶이란 게 늘 그렇듯이, 밤낮이 없고 취재가 있으면 주말에도 현장에 나갑니다. 게다가 더나은미래는 섹션 발행뿐 아니라 대학생 공익기자를 양성하기 위한 멘토링도 하며, 비영리리더를 위한 교육과정에도 나서서 홍보 관련 멘토링도 합니다. 책자도 발간하고, 콘퍼런스 준비도 하고, 공익사업 기획도 직접 합니다. 일도 많고 피곤할 텐데, 더나은미래 기자들은 참 씩씩하고 열정적입니다. 내년 더나은미래가 온라인, 모바일 전략을 강화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데, 모두 자기가 CEO인 양 아이디어를 냅니다. 다혈질 편집장인 저는 마감 때면 모질게 기자들을 몰아붙입니다. 마음에 안 드는 기사는 다시 쓰게 하고, 취재가 부실하면 “왜 그것밖에 못 하느냐”고 구박합니다. 마감이 끝나면 항상 후회하지만, 2주마다 늘 ‘도돌이표’입니다. 12월 초, 영국 출장을 가느라고 마감 때 완전히 지면에서 손을 뗐습니다. 불안했지만 눈을 딱 감았습니다. 돌아와 보니, 멋진 지면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편집장의 빈자리를 메워준 팀원들을 보는데, 어느새 성큼 자란 자식을 보는 것처럼 대견하고 고맙고 미안했습니다. 이번 송년호 마지막 커버스토리의 주인공은 그동안 고생한 우리 기자 5인방입니다. 때때로 ‘이 지긋지긋한 2주짜리 인생’이라고 한탄하면서도, ‘어디 퀄리티 높은 공익 콘텐츠 없는지’ 매일 고민하고, 마감 때면 밤새워가며 원고 쓰는 기자들입니다. 내년에도 더나은미래는 이 든든한 기자들 덕분에 잘 굴러갈 것 같습니다. 어려울수록, 식구들이 더 소중한 법입니다. 유례없는

[특별기고] ‘본-프리세대’를 ‘체인지메이커’로

[특별기고] 지난 10월 말, 난생처음 아프리카 대륙을 방문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글로벌 사회혁신 조직인 아쇼카(Ashoka)가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개최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아쇼카는 남아공의 악명 높던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공식 철폐된 1994년 이후, 남아공에서만 100명이 넘는 사회혁신 기업가들을 ‘펠로(Fellow)’로 선정해 왔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총 8개의 ‘체인지메이커 학교(Changemaker School)’도 발굴해 선정 및 지원해 왔다. 이 중 일부가 남아공의 심각한 교육 불평등과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체인지메이커 학교로 선정된 초·중·고등학교 학생들부터, 위기 청소년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파도타기(서핑)’라는 스포츠를 매개로 해결하는 30대 젊은 사회혁신 기업가, 교사직을 뒤로하고 남아공 청소년들의 역량 강화에 투자하는 50대 벤처회사 CEO 등 다양한 세대의 주체들이 모였다. 이들은 남아공 정부의 정책 변화를 유도하는 워킹그룹을 구성하고, 체인지메이커 학교들 간의 협력 플랫폼을 구축하기도 했다. 또한 펠로 조직과 체인지메이커 학교들이 MOU를 체결해 사회와 학교의 자원을 적극 연계하기로 하는 등 눈에 띄는 진전을 이뤘다. 그와 비슷한 시기, 케이프타운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떨어진 남아공의 수도 요하네스버그에선 40년 만에 대규모의 대학생 거리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흑인 저소득층 대학생들이 ‘등록금을 내려라(Fees Must Fall)’는 구호를 내걸고 화염 시위를 벌이고, 의회 진입을 시도한 것이다. 남아공의 점점 심화되는 양극화와 대학 교육 시스템의 불평등이 발단이었다. 이 상황을 다룬 서양의 한 언론은 “남아공의 ‘본-프리 세대(Born-free Generation)’가 결국 신화에 불과했다”고 꼬집어 말했다. ‘본-프리 세대’란 1948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기고] 진정한 국민중심 소통 정책 펼치려면

[기고] 국민과 정부의 소통은 시대를 거치며 진화해 왔다. 첫 번째 시기는 정부 홍보의 태동과 민주적 전환기를 거친 ‘공보의 시대’다. 1945년 11월 미 군정기 공보과가 신설된 이후 공보는 1997년까지 그 명맥을 유지했다. 두 번째 시기는 적극적으로 대국민 홍보를 강화한 ‘국정 홍보의 시대’다. 언론뿐 아니라 대국민 직접 홍보가 적극적으로 모색된 시기로, 뉴미디어 등 다채널 시대에 맞는 다각화된 홍보가 시도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열심히 국민에게 정책을 알리면 정부의 진정성을 알아줄 것이라는 호소형 소통의 한계에 봉착했다. 이제 정부의 대국민 소통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직면한 새로운 소통 패러다임은 무엇일까. 현 시기는 ‘국민중심 소통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국민중심 소통이란, 국민에게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 소통하는 것이다. 쟁점이 내재한 정책은 시간을 갖고 국민과 대화하며 사회적 담론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소위 광고홍보전문가가 제작해 화려한 문구로 치장한 정책 광고를 집행하는 것보다 국민이 만들어 낸 투박하지만, 공감이 가는 메시지를 공유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인 소통이 될 수 있다. 소통의 패러다임이 정부 주도에서 민관 협력, 일방적인 정보 전달에서, 듣고 동참하도록 하는 소통으로 변화된 것이다. 국민을 수동적 존재로 보아서는 안 되며 시민의식을 기반으로 실천 의지를 고취하는 협력의 동반자로 받아들여 소통해야 한다. 그래야만 창의적인 국민 공감형 소통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정책은 국민의 일상 속 문제를 다루는 해결책이다. 정부는 큰 의제를 제시하고 소통의 동기를 유발해내는 역할에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버리니 신선하더군요… 의전 사라진 콘퍼런스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13일의 금요일, 다음세대재단 ‘2015 비영리 미디어 콘퍼런스 ChangeON(이하 체인지온)’에 가려고 대전행 KTX에 올랐습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며 ‘대전까지 내려가 하루를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습니다. 비영리, 미디어, 플랫폼, 혁신, 미래 등 요즘 고민하는 키워드가 담긴 강연 속에서, 제 맘을 울린 건 따로 있었습니다. 하나는 ‘의전도 없고’ ‘내빈 소개도 없고’ ‘식전 사회자도 없는’ 특이한 진행 방식이었습니다. 수십 년간 익숙해진 우리의 행사 진행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화면 속 텍스트와 영상이 사회를 대신하더군요. 내빈 소개 대신, 특이한 참가자를 현장 생중계하니 마치 참가자들이 콘퍼런스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지난 주말, 구청장배 줄넘기 대회에 참가한 딸아이를 따라갔다가 30분간 내빈 소개와 인사말을 듣고 박수 치느라 파김치가 되었는데, 이런 탈권위적인 시도가 새삼 반가웠습니다. 또 하나는 비영리 대상 IT 커뮤니케이션 에이전시인 ‘업리프(Upleaf)’ 공동 창업자 엘리자베스 비시의 발표였습니다. 그녀가 직접 방한하는 대신, 영상을 활용해 사전 인터뷰를 한 후 이를 텍스트로 번역해서 영상 발표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요즘 콘퍼런스가 봇물을 이루다 보니, 웬만한 해외 연사들의 방한 행렬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기대에 차서 콘퍼런스에 가보면, 엉망진창인 동시통역 때문에 짜증날 때도 많고, 관객 수준에 맞지 않게 기초이론만 늘어놓아 실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관객 수준을 예측한 정확한 질문, 제대로 된 번역을 통해 우리 현실에 맞는 ‘맞춤형 발표’를 듣게 돼 오히려 신선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픈 세션을 통해 평범한 참석자들이 ‘비영리와 미디어’를 주제로 자신들의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경쟁의 그늘

대학생 기자단을 멘토링할 때마다 복잡한 마음이 듭니다. 소위 ‘스카이(SKY)’라 불리는 명문대생들이 언론사 입사라는 치열한 바늘구멍 뚫기 경쟁을 하면서 고민하는데, 해줄 말이 별로 없습니다. “요즘 신문사는 예전 같지 않아. 온라인으로 매체의 주도권이 옮겨간 지 오래야.” 열망이 가득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말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편집장이 아닌, 학부모로서 이들을 보면 더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아니, 명문대에 들어가려고 초등학교 2~3학년 때부터 미친 듯이 학원 다니면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목적지에 안착하기가 이렇게 힘들단 말인가. 그럼 우리 애는 공부시키지 말아야 하나. 아니야. 공부해도 이렇게 힘들다면, 공부 안 하면 더 힘들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절로 듭니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그냥 나오지는 않았겠지요. 이런 패배적인 생각은 경쟁에 뒤처진 일부의 불평불만에 불과하다고 하기엔, 요즘 상황이 매우 심각해 보입니다. 어떤 분은 그러더군요. “우리 사회의 온도가 무척 차가워진 것 같아요. 예전에 비하면 확실히.” 이분은 심지어 대안학교에서도 왕따와 같은 현상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소속감과 안정을 느끼는 공동체가 점점 없어지는 것도 분명해 보입니다. 가정이라는 마지막 보루조차 많이 깨지고 있으니까요. 변변한 자원 하나 없던 우리나라가 이렇게 성장해온 건 분명 치열한 ‘경쟁’의 힘이 뒷받침되었을 겁니다. 무슨 제품이든 누군가 새로운 걸 만들어 히트시키기만 하면, 1등 프리미엄을 몇 달 누리기도 전에 금방 뒤쫓아온 2~3등이 오히려 더 잘나가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니까요. 하지만 이제 경쟁은 우리에게 그늘을 많이 주는 것 같습니다. 경쟁이라는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