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방] 드물게 일어나는 사건

  사람들이 쳐놓은 그물에 고래가 걸렸다. 멸치를 잡으려고 설치해둔 촘촘한 그물에 ‘우연히’ 고래가 걸려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고래잡이는 법으로 금지돼 있다. 고래를 불법 포획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하지만 멸치잡이 그물에 고래가 걸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처음부터 고래를 노리고 ‘의도적으로’ 그물을 친 게 아니라서 처벌받지 않는다. 혼획(混獲). 어업 활동을 할 때 원래 목적했던 어종이 아니라 다른 생물이 섞여 잡히는 걸 가리키는 말이다. ‘고래 혼획’을 굳이 처벌하지 않는 데엔 다음과 같은 전제가 깔렸을 것이다. 고래 혼획은 100% 우연히 발생하는 상황이며, 의도적인 포획처럼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국제포경위원회(IWC)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한국을 제외한 10개 나라에서 혼획된 고래 수는 평균 19마리였다. 한 달에 1.5마리 정도 혼획된 셈이니 ‘자주’라고 보긴 어렵다. 문제는 이렇게 드물게 일어나는 고래 혼획이 우리나라에서는 수시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에서 혼획된 고래는 무려 1835마리였다. 다른 나라 평균의 100배에 달하는 수다. 현행법상 혼획된 고래의 소유권은 발견한 사람에게 있다. 의도적으로 잡은 게 아니라 우연히 잡혔다는 것만 입증하면 고래의 주인이 될 수 있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판매도 할 수 있다. 밍크고래의 유통 판매 가격은 최소 수천만원에서 최대 수억원에 이른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밍크고래를 2번 혼획했다고 신고한 어부는 34명이나 된다. 심지어 한명의 어부가 혼자서 6번 혼획한 경우도 있었다. “사실을 말할 수는 없지만, 하나만 말씀드리면 고래가 다니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고래를 6번

[모두의법] 시민사회, 규제를 넘어 자발적 연대로

과거 민주화 운동부터 노동 운동, 인권·환경 운동까지. 그간 시민사회는 정부나 기업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며 세상을 바꿔나갔다. 시민사회는 이러한 공익적인 영향력 때문에 ‘제3섹터’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시민사회에 대한 정부의 보수적이고 차가운 시선에는 변함이 없다. 시민사회 단체들이 활동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비용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비영리법인의 수익사업이나 보조금 규모도 커지긴 했지만, 재정에서 가장 중요한 수입원은 여전히 후원금이다. 시민사회 단체의 운동성은 시민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 시민 후원금은 단체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부는 여러 가지 법제도를 통해 시민사회 단체를 규제한다. 일차적으로는 민법, 공익법인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사회복지사업법 등으로 법인 설립 단계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주무관청의 광범위한 관여가 이뤄진다. 또 후원금을 받고 지출하는 과정에서 법인세법, 소득세법,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른 세제 혜택을 부여받는 대신 과세관청의 강력한 관리감독 아래 놓이게 된다. 심지어 모금행위를 적극적으로 할 경우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상 모집등록의무가 발생해, 내용 측면에서 중복 규제까지 받게 된다. 최근 논의되는 시민공익위원회 도입과 관련한 제도 역시 감독행정의 효율화 측면이 강하다. 시민사회에서는 단체의 열악한 상황과 불필요한 중복 규제를 지적하며 지원의 필요성을 호소한다. 그러나 이따금 발생하는 기부금 횡령 같은 극히 일부의 사례에 목소리는 묻히고 만다. 반면 기부금에 대한 규제 강화를 외치는 입장도 존재하고, 이러한 주장의 반향이나 설득력을 무시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이처럼 시민사회 인프라가 어떤 방향을 향해 나가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최근 작지만 의미 있는 움직임을

[진실의 방] 느슨하게 위대하게

  연말이 다가오면 슬슬 압박이 시작된다. 여기저기서 내년 공익 분야 트렌드와 전망을 짚어달라는 요청들이 밀려든다. 제3섹터 트렌드, 기부·모금 전망, CSR 트렌드 등을 분석해 발표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게 오늘 자 신문에 게재한 ‘기업 사회공헌 전망’이다. 내년에 기업들이 사회공헌 예산을 얼마나 쓸 것이며 어떤 종류의 사회공헌 사업을 진행할 것인지 대략적인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 ‘매출 상위 10대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와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순탄치 않다. 서로가 하나의 ‘표’ 안에 나란히 담겨 비교되는 걸 기업들이 매우 조심스러워하기 때문이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일수록 더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0월 더나은미래가 주최한 ‘CSR커넥트포럼’은 국내 사회공헌 역사에 기록될만한 일대 사건이었다. 표 안에 같이 이름을 올리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는 기업들을 한 무대에 세운 것이다. ‘아동·청소년’을 주제로 사회공헌을 하고 있는 5개 기업을 모아 포럼을 열었는데, 내용도 좋았지만 기업들이 이렇게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삼성디스플레이, GS칼텍스, CJ문화재단, 현대자동차그룹, 한국타이어나눔재단 담당자들이 차례로 무대에 오르던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짜릿하다. 공통의 관심사를 지닌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벌이고, 끝나면 각자의 자리로 쿨하게 흩어지는 ‘느슨한 연대’가 확산되고 있다. 환경 문제에 관심 있는 평범한 시민들이 ‘플라스틱 제로 운동’을 펼치거나, 비영리 단체들이 아동학대나 동물권 등 특정 주제로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들 사이에서도 ‘연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곤 했지만, 기업마다 색이 다르고 업종과 규모가 다르다 보니 진전이 잘 안 됐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좋은

[강철희의 NPO 이노베이션] 미국 부자들, 재단 대신 LLC 설립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일부 고액 자산가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부를 기부하고 있다. 전통적 방식인 재단 설립 대신 ‘LLC’(Limited Liability Company)라는 유한책임회사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부의 사회환원을 통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지난 2015년 페이스북 지분의 99%(약 450억 달러)를 평생에 걸쳐 기부하겠다고 밝힌 마크 저커버그를 비롯해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부인인 로렌 파월 잡스와 이베이 공동 설립자인 피에르 오미디아르 등이 LLC를 선택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전통적 방식인 재단 대신 LLC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법적으로 LLC는 조합원들이 출자한 자본으로 운영되는 ‘조합’에 가깝고 동시에 본인이 출자한 지분만큼만 유한책임을 지는 ‘주식회사’의 특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런 LLC는 미국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익재단과는 다르게 세법상 비과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제한점을 갖는다. 그럼에도 고액자산가들이 LLC를 택하는 이유는 장점을 갖기 때문이다. 예로 LLC는 일반 재단들과는 다르게 투자영역에 대한 자율성을 갖는다. 동시에 유한회사의 운영에 대한 일반적인 사적 권리 및 통제권을 갖는다. 미국의 경우, 재단은 의결권이 있는 타 기업 주식을 20% 이상 보유할 수 없고, 매년 순 투자자산 총액 중 5%를 공익적 목적을 위해 의무적으로 지출(5% payout rule)해야만 하고, 이를 어기면 엄청난 세금을 추징당한다. 즉 재단은 세제상 혜택을 받는 것만큼 투자, 지출, 운영 면에서 규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반면 LLC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예로, 영리조직과 비영리조직의 구분 없이 원하는 곳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고, 심지어는 정치적 의사를 표명하고 이를 위해

[사회혁신발언대]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떤 투자를 할 것인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귀족도 아니고 가톨릭 성직자 신분도 아닌 ‘새로운 상류층’이 등장했다. 이들은 주식회사와 증권거래소, 보험과 선물계약 등 전에 없던 ‘금융’이라는 것을 태동시켰고 상업과 금융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스페인 식민지였던 북유럽의 저지대 지역을 ‘네덜란드’라는 정치적 독립국으로 우뚝 세운 것도 바로 이들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당시의 암스테르담은 ‘뉴욕’과 같은 곳이었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17세기 상업자본주의를 이끌었다. 맨해튼으로 이주한 네덜란드인들이 그 땅을 괜히 ‘뉴 암스테르담’이라 불렀을까. 금융의 발전이 없었다면 현존하는 최고의 생산체제인 ‘자본주의’가 아예 없었을지도 모른다. 금융은 돈을 단순히 실물거래를 뒷받침하는 교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에 부(wealth)를 저장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재정의했다. 심지어 빚(신용)을 얻어 시세차익을 좇는 행위도 합법화했다. 투기가 제도화한 것이다. 우리 같은 ‘스타트업 투자자’들은 yes보다 no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범상치 않은 창업팀들을 만나면 그들이 그리는 미래에 설득되고 만다. 임팩트벤처펀드를 운용하는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에 금융이 ‘투기’가 아니라 ‘투자’가 될 수 있는 기준점은 간단하다. ‘짧게는 5년, 길게는 30년 후 우리 자녀가 어떤 세상에 살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투자다. 다시 말해 투자는 더 나은 미래를 내다보며 다음 세대로 돈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10여년 전 세계적 금융위기가 확산할 무렵, 금융의 새로운 역할을 찾던 일군의 투자자와 패밀리오피스, 재단이 모여 ‘임팩트투자’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지금은 채권, 부동산, 벤처투자 등 다양한 자산으로 확산해 총 규모 5020억달러 시장이 형성됐다. 임팩트투자를 목표로 2011년 설립된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는 임팩트벤처투자조합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아시아 지역의 임팩트투자자들과 함께하는 포럼인

[사회혁신발언대] SOCAP, 임팩트투자의 담론을 넘어 사례를 논하다

지난 8월 미국 주요 경영자 모임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이 내놓은 성명은 세계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아마존, 제네럴모터스(GM) 등 내로라하는 기업의 경영자들이 기업의 존재 이유를 주주의 더 많은 이익 창출이 아닌 윤리적, 사회적 책무로 정의한 것이다. 전통적 주주 자본주의의 요람으로 여겨진 미국에서 말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 최대 임팩트투자 컨퍼런스 SOCAP(Social Capital Market)의 열기는 그 어느 해 보다 뜨거웠다. 현지시각으로 지난달 22일부터 25일까지 나흘간 열린 SOCAP은 매년 전 세계 임팩트투자자, 사회적기업·비영리기관 종사자, 정부·학계 관계자, 자선가 등 3000여명이 모이는 행사다. 지난 2008년 시작해 올해로 12회째를 맞았다. 이번 SOCAP에는 전 세계 50여 개국 500명의 연사가 참여했고, 총 150개 세션이 열렸다. 특히 올해는 총 13가지의 주제를 다뤘는데, 대표적인 주제인 ‘임팩트투자(Impact Investing)’ ‘가치(Meaning)’ 외에도 ‘일의 미래(Future of Work)’ ‘임팩트 기술(Impact Tech)’ ‘이야기의 힘(Power of Story)’ 등을 추가해 다양성을 높였다. 이번 SOCAP의 특징은 대세가 된 임팩트투자에 대한 담론을 넘어 구체적 실천 사례들이 논의됐다는 점이다. 신분 증명이 어려운 개발도상국의 사회적 약자 돌봄을 위한 생체인증 기술, 학교와 일터에서 소외된 19~29세 청년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등이 그 예다. 행사 현장에서는 질의응답과 토론도 활발하게 이어졌다. 특히 정부 기관과의 협업, 로컬에서의 상생 방법, 투자 유치를 위한 전략·비법 등이 쏟아졌다. 사회적기업가(social entrepreneur) 또는 투자자로서 사회적 의미(Meaning)와 재무적 성장(Money)을 모두 추구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도 매 세션 빠지지 않았다. 특히

[진실의 방] 잊을 수 없는 아이

잊을 수 없는 아이가 있다. 만난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는 아이지만, 가끔 그 아이의 모습이 환영처럼 눈앞에 나타난다. 초여름 날씨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롱패딩을 입은 작은 여자아이. 나이는 대여섯 살쯤. 모임에서 만난 A의 표정이 심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올해 초였다. 그러니까 1월쯤. A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모녀를 만났다. 같은 아파트 사람은 아닌 듯해 가볍게 목례만 하고 서 있었는데 우연히 아이의 얼굴을 보게 됐다. 상처도 있었고 멍이 심하게 들어 있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아이 엄마에게 “애기가 다쳤나 봐요”라고 했단다. 아이 엄마는 “계단에서 넘어졌다”고 대답하고는 묻지도 않은 말들을 쏟아냈다. 애가 야단스러워서 키우기 어렵다, 얘 때문에 사는 게 너무 힘들다, 바로 옆에서 아이가 듣고 있는데도 큰 소리로 떠들었다. A는 뭔가 더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오지랖인 것 같기도 해서 “힘드시겠어요”라고 말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 엘리베이터에서 모녀를 다시 만난 것이다. A는 모녀를 단번에 알아봤다. 전보다 멍이 더 심하게 들어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그냥 넘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여름 날씨였는데 아이는 롱패딩을 입고 있었다. 반팔을 입어도 땀이 나는데 롱패딩이라니. 아이의 몸에 난 상처를 가리기 위해 그런 옷을 입힌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A는 엄마에게 인사를 건넨 뒤 “아이가 또 다쳤나 보네요. 혹시 이 아파트 사세요?”라고 물었다. 그 말에 아이 엄마가 돌변했다. 당신이

[모두의법] “종교 활동 금지도 박해” 난민 심사 일관성 유지해주길

로마 제국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박해 대상이었다.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도시의 수호신을 경배하지 않아 기존 사회 질서에 위협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공공연히 드러내지 않고 신앙을 숨겼다면 위해를 입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로마 지하 카타콤에서 몰래 ‘안전하게’ 예배를 드리던 초기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2000년대 초반 미국의 한 난민 소송에서 법원은 초기 로마제국 기독교인들의 사례를 예로 들며 ‘종교의 자유’에는 ‘종교 활동의 자유’도 포함한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제시한 바 있다. “초기 로마제국의 기독교인들이 숨어서 종교 생활을 했다면 사자 밥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로마제국이 기독교인을 박해하지 않았다거나, 자신의 종교를 숨기지 않은 기독교인이 합리적이지 못한 행동을 했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8월 한국 법원에서도 ‘종교 활동에 대한 자유’의 침해를 이유로 난민 지위를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난민의 손을 들어줬다는 사실만으로 반가운 결정이다. 작년 한 해만 1만6000명이 넘는 난민 신청자가 있었지만, 50여 명만 최종적으로 난민 인정을 받았다. 난민 인정률이 1%도 되지 않는 셈이다. 법원에서 난민 신청자의 승소가 가뭄에 콩 나듯 드물다는 점도 안타까운 일이다. 이 사건에서의 원고는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이란 국적 난민 신청자였다. 법원은 이슬람교가 국교인 이란에서 기독교로의 개종은 ‘배교 행위’로 사형에까지 처해질 수 있는 범죄로 규정되어 있다는 사실과, 십자가를 착용하는 등의 공개적인 종교적 표현과 전도 행위 등도 정부 탄압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회혁신발언대] 아시아의 제3섹터 실무자들이 한자리에!

지난 7월 태국 방콕의 니다(NIDA) 대학에서 제11회 ‘아이스타 아시아(ISTR, International Society for the Third Sector Research)’가 열렸다. 아이스타 아시아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제3 섹터 연구자와 실무자가 모이는 국제 학회로, 서구 현장과 이론 중심으로 돌아가는 기존 학회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06년 처음 시작됐다. 올해는 ‘규제 변화와 제3 섹터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32개국의 145명이 참여해 나흘 동안 95개의 연구 성과를 공유했다. 아름다운재단은 ‘청소년 배분사업의 성과 연구’ 발표를 위해 이번 아이스타 아시아에 참석했다. 제3 섹터 연구는 내용이 현장에 기반을 둔 경우가 많고, 아이스타 아시아 또한 실무자 세션을 별도 마련할 정도로 현장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연구도 발표할 수 있다. 발표자가 연구 질문과 방법론을 공유하면, 세션에 참석한 사람들이 함께 의견을 나누며 질문을 발전시켜간다. 발표자는 이 과정에서 진행 중인 연구를 더 섬세하게 다듬을 수 있고, 참가자들은 연구의 기여자가 되는 동시에 자신의 연구나 실무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아시아 제3 섹터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 2017년에는 매년 네덜란드에서 개최되던 국제 모금 컨퍼런스 ‘IFC(International Fundraising Congress)’가 처음으로 방콕에서 열렸고, 제3 섹터에서 가장 저명한 국제 학회로 꼽히는 ‘아노바(ANOVA, Association for Research on Nonprofit Organization and Voluntary Action)가 중국에서 제1회 아시아 지역 학회를 진행했다. 멀리 미국이나 유럽까지 가지 않아도 전 세계 제3 섹터  연구자·실무자들을 만날 수 있는 여건이 점점 좋아지고

[이희숙 변호사의 모두의 법] ‘지정기부금단체’ 관리 국세청 일원화…실효성은 글쎄

[이희숙 변호사의 모두의 법] 얼마 전 기획재정부의 ‘2019 세법개정안’이 발표됐다. 개정안에는 ‘공익법인의 공익성 및 투명성 제고’라는 주제로 공익법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여러 정책이 포함됐다. 가장 큰 구조적 변화는 지정기부금단체 지정 및 사후관리를 국세청으로 일원화하는 것이다. 기존에 주무 관청에 하던 지정기부금 신청과 의무 이행 보고를 국세청(소재지 관할 세무서)에 하고, 국세청은 사후 관리의 주체로서 단체에 기부금 모금·지출 세부 내역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공익법인의 공시가 국세청 홈택스에서 이뤄지는 등 다수 자료가 국세청에 모이는 점을 고려할 때 국세청으로 지정기부금 신청 및 관리를 일원화하는 것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이다. 문제는 위와 같은 제도 변화가 이뤄진다고 해도 단체에 대한 각종 중복 행정은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참에 불필요한 중복 행정을 없애고 실질적인 감독이 가능한 곳으로 진정한 의미의 일원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 비영리법인은 설립에서부터 기본재산 처분, 정관 변경 등 단체 운영 전반에 대해 주무 관청의 감독을 받는다. 주무 관청은 매년 사업 계획 및 결과 보고, 예·결산 보고를 받아 단체를 관리·감독한다. 시민들이 모여 만든 결사체의 운영을 주무 관청이 감독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나마 근거는 세제 혜택에 대한 국가의 관리 책무인데, 지정기부금단체 추천 및 관리 권한마저 국세청으로 이관된다면 이와 별도로 주무 관청이 비영리법인의 예·결산을 관리할 실익이 없다. 개정안과 같이 변화하는 경우 지정기부금단체는 국세청이 관리하고, 세제 혜택을 받지 않는 비영리법인, 특히 일반 사단법인은 회원들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운영될

[진실의 방] 아름다운 이별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난 우리의 끝을 생각했어.’ 대중가요 가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요즘 기업 사회공헌 분야에서 이런 종류의 파트너십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10년 이상 꾸준히 사회공헌 업무를 해온 기업 담당자들을 만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영원한 파트너는 없다. 우리는 끝을 생각하고 시작한다.” 끝이라는 말이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 반대입니다. 수많은 국내 기업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다양한 형태의 사회공헌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빈곤과 분쟁으로 고통받는 해외 저개발국 주민들을 돕기도 하고, 쇠락한 국내 중소도시와 마을을 살리는 지역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지속가능성’인데요. 사업 기간이 종료돼 기업이 빠져나가면 그동안 쏟아부었던 모든 게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사태가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개발국에서는 기껏 지어놓은 건물이나 시설이 관리가 안 돼 폐허로 방치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무한정 도울 수는 없는 일. 그래서 기업들이 생각한 게 ‘아름다운 이별’입니다. 기업과의 협업이 끝난 뒤 파트너가 완전히 ‘자립’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철저하게 이별을 준비하자는 것입니다. 이달 초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바가모요 지역의 푸가요시 마을에서 뜻깊은 ‘이별식’이 열렸습니다. 기아자동차와 굿네이버스가 5년 전 건립해 운영해오던 푸가요시 중등학교에 대한 소유권과 운영권을 지역사회에 완전히 넘기는 이양식(移讓式) 행사였습니다. 저개발국에 건물을 지을 때 보통 준공식이나 완공식은 해도 이양식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업에서는 이양식이 준공식이나 완공식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단순히 운영권을 넘기는 자리가 아니라, 파트너의 ‘진정한 자립’을 축하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사업 담당자들은 이날을 위해 최소

[사회혁신발언대] 사회적 가치, 블록체인으로 투명하게 평가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가치 평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 머물지 않고 효과를 확인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를 평가하고 적용하는 일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지표와 기준을 만드는 것도 어렵고, 평가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인력이 소모된다. 평가의 신뢰성 문제도 종종 제기되고, 합리적인 피드백도 부족하다. 물론 평가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 가치 평가의 발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신뢰기계(trust machine)’라는 별명을 가진 블록체인은 현재의 사회적 가치 평가 방식이 가진 문제를 개선하는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블록체인이 어디나 쓸 수 있는 만능 다용도 칼은 아니지만,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과업을 수행하는 데에는 꽤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방식은 이렇다. 우선 평가 지표를 프로그램으로 코딩한 다음 블록체인에 설치한다. 평가에 기초가 되는 측정 데이터만 입력하면 알고리즘에 따라 평가가 진행되는 ‘평가의 자동화’가 가능해진다. 블록체인을 바탕으로 한 프로그램은 전 세계의 네트워크를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주관이 개입할 수 없다. 악의적으로 조작하거나 수정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해진 규칙대로 작동하고, 작동 과정과 결과는 보이는 그대로 신뢰할 수 있다. 평가 결과는 중앙 관리자가 필요 없는 블록체인에 낱낱이 기록되기 때문에 정보 유지·관리의 편의성이 극대화된다. 필요한 경우에는 암호 화폐를 활용해 평가에 대한 보상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데이터가 입력되고 출력되는 모든 과정이 투명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 블록체인이 사회적 가치를 평가하는 유용한 수단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