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재 교수 인터뷰 미국 피바디 음대박사 재능 기부하고 싶어서 시각장애인들 모아 체임버 오케스트라 운영 연간 100회 이상 공연 “악기 부는 재주 하나로 남에게 도움돼 기뻐” 술래잡기를 하다 차에 치인 소년은 그 길로 빛을 잃었다. 3년 동안 9번의 수술을 해봤지만 허사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년이 기댈 곳은 음악뿐이었다. 쓸쓸한 소리가 좋아 고른 악기는 ‘클라리넷’. 음악은 취미로만 하라던 부모님의 반대에 이틀을 굶으며 버텼던 소년은 미국 3대 음대 중 하나인 피바디(PEABODY) 음대 140년 역사상 최초의 장애인 박사학위 수여자가 됐다. 이상재 한국나사렛대 관현악과 교수는 몸값 높은 연주자가 된 지금도 오케스트라 운영, 재능 나눔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는 9월 2일에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주최하는 ‘나눔음악회’에 초청 연주자로 나서, 재능 기부를 할 예정이다. ―교통사고로 인해 갑자기 시력을 잃었는데, 어떻게 음악을 하게 되었나요. “일곱 살 되던 해, 동네 형들하고 술래잡기하다가 차에 치였습니다. 몇 미터를 날아갔대요. 발목은 부스러졌고 머리도 많이 다쳤죠. 처음엔 눈은 다친 줄은 몰랐는데, 나중에 병원에 갔더니 사고 충격 때문에 망막이 손상됐대요. 3년 동안 수술을 9번 받았는데 다 실패하고 열 살 때 완전히 실명했어요. 지금은 불빛도 감지가 안 돼요. 시력을 잃은 이후 초등학교 4학년 때 바이올린을 처음 시작했고,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클라리넷을 했어요. 클라리넷의 어원은 ‘클리어(Clear)’예요. 가을바람처럼 맑은소리를 내요. 그런데 소박하고 쓸쓸한 느낌도 있거든요. 시각장애인이 돼서 힘들고 어려운 시절, 강한 바이올린 소리보다 제 마음을 더